728x90

 

 

거울 속 거미줄 / 정용화

 

 

덕천마을 재개발 지역

반쯤 해체된 빈집 시멘트벽에 걸린

깨진 거울 속으로 하늘이 세들어 있다

무너지려는 집을 얼마나 힘껏 모아쥐고 있었으면

거울 가득 저렇게 무수한 실금으로 짜여진

거미줄을 만들어 놓았을까

구름은 가던 길을 잃고 잠시 걸려들고

새들은 허공을 물고 날아든다

 

거미줄에 무심히 걸려있는 지붕 위

주인도 없이 해가 슬어놓은 고요를

나른한 오후가 갉아먹는다

간절함은 때로 균열을 만든다

한때 두 손 가득 무너지는 인연 하나

잔뜩 움켜쥐고 있었던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가느다란 손금이 조금씩 깊어졌다

심경, 마음을 들여다볼 때 마주치는 거울 속으로

손금이 흘러들어 무수한 실금을 남겼다

균열은 어떤 부재를 품고 갈라진 틈 속마다

허기진 풍경을 흘려 넣는 것인가

 

무너짐이야말로 더 큰 열림이기에

거울 속 거미줄은 어떤 것도 붙잡아 두지 않는다

나를 흘리고 온 날

서까래 같은 갈비뼈 사이로 종일 바람이 들이쳤다

그러고 보면 깨진 거울은 무너지는 것을

움켜쥐고 있던 집의 마음이었음을

 

 

 

 

서투른 다정

 

nefing.com

 

 

 

[심사평]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수주문학상이 금년 14회째라는 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더불어 응모자의 수가 많다는 데 대해서 놀랐고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의 수준에 대해서도 놀라운 마음이 있었다. 모두가 일정 수준에 오른 작품들이었다.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심사위원 두 사람은 이름이 가려지고 번호로만 표시된 40인의 응모작들을 둘로 나누어 각각 읽고 다시 돌려서 읽고 끝내는 한 사람의 작품을 골랐다. 읽는 과정에서는 힘이 들었지만 합의하여 당선작을 내는 데는 별반 이의 없이 순조로웠다.

 

응모작품을 읽으면서 대체로 느낀 점은 응모작들이 대체로 장황하다는 점이다. 결국 시라는 문학 형식은 마음속 원망을 언어로 풀어내되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표현하자는 데에 그 출발점이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내면의 감흥이 뒤엉켜 있고 표현이 또한 뒤엉켜 있다 보니 자연스레 시들이 길어지면서 혼란스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능하면 짧은 형식 속에 많은 내용을 응축시키자는 것이 애당초 시의 약속이기도 하다. 또한 서사와 서정 형식이 혼동된 작품들도 다수 발견되었다. 더구나 문학상의 주인이신 수주 선생은 매우 단아한 형식미와 언어 감각을 지닌 서정시인이신데 이런 점에서도 응모자들은 십분 고려해 주었으면 싶다는 소감을 가졌다.

 

결국 당선으로 결정된 정용화의 시작품 거울 속의 거미줄5편은 응모작 모두가 일정 수준에 올라 있을뿐더러 시가 지녀야 할 품격을 고르게 갖추고 있어서 쉽게 믿음이 갔다. 형식상 잘 짜여 있고 언어를 매만지는 솜씨가 정교했다. 한구석도 빈틈이 없다는 점이 심사위원들 간에 오간 평가의 말이었다. 버려진 사물을 바라보는 데서 얻어진 미세한 시각이 자신의 내부로 돌아와 자아 성찰의 세계를 얻어냄은 조그만 화엄의 불꽃을 만들어냄이다. 좋은 시적 재질과 정진을 좋은 시를 쓰는 데에 오래 바쳐서 이 땅의 시문학 발전에 기여해 주기 바란다.

 

이와 함께 '울음이 닿아있는 동대구로 7', '철새도래지 ', '자귀나무 ', '새들이 떠나는 서쪽 하늘은 깊다 '의 작품이 끝까지 남아 종심을 겨뤘다. 나름대로 특색이 있고 일가견이 있는 작품들이었다. 이들 작품뿐만 아니라 더 많은 작품들이 물밑에 숨어있는데 심사위원들의 눈이 어두워 미처 발견해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크게 실망하지 말고 앞으로도 시를 사랑하며 시를 생산해내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 좋은 날이 오리라고 본다.

 

- 심사위원 오세영, 나태주

 

 

 

 

나선형의 저녁

 

nefing.com

 

 

부천이 낳은 민족시인 수주 변영로 선생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제14회 수주문학상 당선작으로 정용화(안양) 시인의 거울 속의 거미줄이 대상으로 결정됐다.

 

수주문학상 운영위원회는 10일 접수 기간(8/1~8/20)에 응모된 작품 수는 해외를 비롯해 395 3,000여 편으로, 이 중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작품이 40(200여 편), 본심에서 최종 5작품 중 정용화님의 거울 속의 거미줄  4편이 당선되었다고 밝혔다.

 

정용화 시인은 충북 충주 출생으로 동국대 예술대학원 문창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수료. 동국대 대학원 문창과 석사과정, 2001 <시문학> 2006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흔들리는 것은 바람보다 약하다」「바깥에 갇히다등이 있다.

 

운영위는 "그간 대상 1, 우수상 3명을 선정하던 방식을 바꾸어 올해부터 당선자 1명을 선정하고 상금 또한 1천만 원으로 올린 것이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말했다.

 

심사는 오세영 시인, 나태주 시인이 맡았으며 시상식은 오는 10 26 () 오후 3, 부천시청 5층 만남실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728x90

 

 

금이 간 거울 / 정용화

 

 

얼어있던 호수에 금이 갔다

그 틈새로 햇빛이 기웃거리자

은비늘 하나가 반짝 빛났다

그동안 얼음 속에서

은어 한 마리 살고 있었나보다

 

어둠에 익숙해진 지느러미

출구를 찾아 깊이를 알 수 없는

고요 속을 헤엄친다.

넓게 퍼져 가는 물무늬

한순간 세상이 출렁거린다

 

깊고 넓은 어둠 속에서

너를 지켜주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

반짝이는 모든 것은

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

 

금이 간다는 것은

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

깊이 잠들어 있는 호수 속에서

물살을 헤치고 길이 꿈틀거린다

 

 

 

 

나선형의 저녁

 

nefing.com

 


[당선소감] 참된 미학 지향해 나갈것

 

매서운 기세로 겨울이 당도했습니다
바라보던 눈빛 그대로 두고 이파리 다 떨군 나뭇가지는
그 모습만으로도 춥습니다 하지만 나뭇가지 속에는
겨울이 푸른 어둠으로 꿈꾸고 있음을 믿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시를 품고 살았습니다
문학은 내게 있어 미완성적 허기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시가 되기 위해 기다리던 사물들이 언어를 만나
갇혀있던 존재에게 제 이름을 붙여주고 작고 하찮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여 의미를 찾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때로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내안의 또 다른
나를 다독여야했습니다
언젠가 수필집에서 꿀벌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 꿀벌은 몸집에 비해 날개가 작아서 날 수 없는데
꿀벌은 그것도 모르고 열심히 날개짓을 해서 날 수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나 역시 꿀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선 부족한 글에 눈 맞춰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생을 부여해주신 부모님과
인생의 동반자이면서 같은 문학의 길을 걷고 있는 남편,
예비 시인인 딸 혜미와 함께 당선의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십년동안 변함없이 시창작을 지도해주신 배준석 선생님과
안양여성문학회 문우들에게 이 영광 돌리고 싶습니다
날카로운 지적 아끼지 않았던 박남희 선생님과 문학을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던 인사동 착시 모임도 꼭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입니다
날개가 있어서 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간절히 날기를 원하기
때문에 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시인이라는 날개를 달아주신 대전일보사에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참된 미학을 지향하는 시쓰기로 보답 하겠습니다

 

 

 

 

서투른 다정

 

nefing.com

 


[심사평] “완성도ㆍ날카로움 돋보여

 

수천편의 응모작 가운데 함민복 이정록 시인의 엄격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우이정의 빈컵외 정재영의 밤톨, 다이아몬드외 등 17분의 시 70여편이었다. 다시 심사위원 두 사람이 나누어 읽고 추려낸 것은 김영식의 떠들썩한 식사, 김명희의 노트북, 이지혜의 곰달래길 사람들, 정재영의 손이 쥔 손, 그리고 정용화의 금이 간 거울외 등이었다.

 

이 작품들을 면밀히 검토한 결과 최종 논의의 대상이 된 것은 곰달래길 사람들’, ‘손이 쥔 손’, ‘금이 간 거울3편이었다.

 

곰달래길 사람들은 안정된 시 정신과 표현이 너무나 모범적인 것이어서 좋은 작품으로 판단되었으나 바로 그점이 동시에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손이 쥔 손은 너무 작품성이 농익어 그만 터져버릴 것 같은 원숙함이 장점이었으나 동시에 그것이 신인다운 패기나 신선도에 있어 아쉬움으로 작용하였다. 오랜 고심과 논의 끝에 금이 간 거울을 당선작으로 결정할 수 있었다.

 

당선작은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시적 사유의 깊이 또한 갖추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예리하고 신선한 감각이 신인으로서 앞으로의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아픔 속에서 반짝임이 나온다/반짝이는 모든 것은/오랜 어둠을 견뎌온 것이다//금이 간다는 것은/또 다른 세상으로의 통로다라는 구절등에서 볼 수 있듯이 틈의 틈을 날카롭고 섬세하게 들여다봄으로써 어둠 속에서 빛이, 무에서 존재가 생성되고 존재가 비로소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존재론적 사유를 보여주는 것도 장점과 가능성으로 부각되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면 좋은 시인으로 성장해갈 것을 믿고 우리는 이 작품과 시인을 당선작으로 선정할 것을 합의할 수 있었다. 당선자의 각고 정진과 선외 예비 시인들의 새로운 분발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심사위원 김재홍 문정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