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 김민정

 

1

자물쇠 단단한 철창 안에서만 잠들 줄 아는 날 내다 팔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포수로 그림자를 갈아입는다 나는 도망치지만 발빠르게 허골아가는 외발자전거는 땅속 깊이 층층 계단으로 쌓아 내린 뼈 마디마디를 뭉그러뜨리며 또 다른 사각의 메인 스타디움 안에 발 빠진다 끝도 없이 페달을 감아대는 페이스 끝에 홈스트레치에 접어들자 관중석마다 빽빽이 들어차 있던 나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내 나침반을 겨냥한다 어서어서 속력을 더 내렴, 너만 도착하면 완성된 퍼즐 속에서 우리들 되살아날 수 있을 거야 숟가락 들어 한 입 떠낸 아이스크림 같이 희게 휜 등뼈로 사격용 표적 하나 전광판에 부조되어 있다 포물선을 타 넘어가는 장외 홈런볼에 올라탄 내가 엿같이 찰싹 하고 내 실루엣 위에 달라붙는 순간, 탕! 소리와 함께 아빠의 눈알이 10점 만점의 놀라운 타격 솜씨를 자랑하며 과녁 중앙을 홉뜨고 들어온다 아빠가 마스카라 칠해 달군 속눈썹 깜빡거릴 때마다 내 몸에서 부서져 내리는 퍼즐 조각들이 까만 섬유소의 꼬임 안으로 쏟뜨려진다 그러나 낄낄거리며 인조 속눈썹을 떼어내는 아빠, 그걸 방비 삼아 내 키만 한 007가방 안에 나들을 싹싹 쓸어 담고는 자물쇠를 채워버린다

 

2

아빠가 도끼로 007가방을 내리찍는다 아야, 아야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저들끼리 자꾸만 부둥켜안으려는 퍼즐 조각들을 아빠는 시침 가위로 잘게 더 잘게 오려낸다 고춧가루처럼 매콤한 근육가루들이 아빠의 베게 옆에 잠들어 있던 발가벗은 마네킹의 몸 위로 솔솔 뿌려진다 코끝을 간질이는 제 피 맛에 재치기를 안으로 삼키느라 마네킹의 젖퉁이와 엉등이가 부풀고 있는 풍선처럼 똥글똥글해진다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새어나오는 끈적끈적한 물풀로 손 버무린 아빠가 허겁지겁 마네킹의 몸에 퍼즐 조각들을 갖다 붙인다 잠깐만요 아빠, 설사를 참을 때처럼 뜨거워지는 입이 내 목젖을 쥐락펴락하고 있어요 눈을 뜨니까 난소 뚜껑이 벌어지고 코를 푸니까 피범벅인 태반이 뭉클 쏟아져 나오는 걸요 살 썩고 난 부엉이 같은 내 얼굴에서 솟고라지고 있는 이 털들 좀 보세요 대체 이게 뭔 일이래요?

 

3

지하에 계신 음부와 음모가 침봉으로 내 얼굴에 난 털을 벗긴다 나는야 털북숭이 라푼젤, 짜다 푼 목도리의 털실같이 꼬불꼬불한 털을 발끝까지 내려뜨린 채 울고 있다 울음을 짜보지만 눈물은 흐르자마자 냄새나게 덩어리지는 영일 뿐, 에이 더러운 년 킁킁거리며 내 얼굴을 냄새 맡던 음부가 빨간 포대기같이 늘어진 혀로 내 털 한 가닥 한 가닥을 싸매 핥는다 조스바를 빨던 입처럼 음부의 혀끝에서 검은 색소가 뚝뚝 떨어진다 이제부터 이게 네 머리칼이야, 알았어? 음모가 스트레이토용 파마약을 이제부터 내 머리칼인 털 한 가닥 한 가닥에 찍어 바르더니 참빗으로 쭈쭉 펴 내린다 물미역같이 홀보들한 머리칼을 부르카처럼 치렁거리며 나는 음부와 음모의 손에 잡힌 채 시장으로 끌려간다

 

4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껍질 벗겨 통째로 삶은 계람처럼 맨송맨송한 머리통들이 내 주위에 둘러선다 수많은 볼링핀들이 저 먼저 머리 쪼매고 싶어 그 굵은 허벅지로 서로가 서로에게 허벅지후리기를 해대더니 눕자마자 발딱발딱 잘도 일어난다 십자가에 날 뚜드려박는 아빠의 망치질이 다급해지고 엄마가 떨어뜨린 대못이 구경 나온 아이들의 발등을 찍는다

꼬아 내린 검은 밧줄을 타 오르고 싶어 질금질금 오줌 지리고 있는 오뚝이들에게 이런 젠장, 염병할 놈의 요강 같은 평화 있으라!

 

5

아빠가 나눠준 족집게로 오둑이들 차례차례 내 머리칼을 뽑아댄다 나이스 풀러, 예 좋아요 그치만 한 번에 딱 한 가닥씩이오 머리칼이 뽑혀나가 입 벌어진 모공 속에다 엄마 색색의 셀로판지로 깃대 단 이쑤시개를 꽂아 넣는다 쑥쑥 잘 크거라 내 나무야 엄마가 물조리개로 물을 뿌려 주자 나는 화살이었다가 우산이었다가 낙싯대였다가 장대높이뚜기용 장대로 키 자라는 한 마리의 거대한 고슴도치가 되어 쀼쭉쀼쭉한 털들을 비벼대기 시작한다 울울창창한 가시숲에서 색색의 단풍이 물들어 나리자 여기저기 달아든 담뱃불로 지져진 내가 폭죽처럼 하늘을 향해 쏘여진다 색색의 꽃방석을 뒤집어 쓴 채 날으는 고슴도치 한 마리, 사방팔방 불붙은 가시를 발사한다 땀구멍마다 날아든 가시로 아빠는 밤송이가 되어가고 밤송이 브래지어와 밤송이 팬티를 주워 입은 엄마는 간지러움을 참다못해 숨이 꼴깍 넘어간다 밀고 난 겨드랑이 털의 흔적처럼 까슬까슬한 오뚝이들의 정수리 위로 시뻘겋게 달궈진 철골 한 줄 선 굵게 내리꽂힌다 얼굴에 금이 간 핫도그들, 서둘러 몸에 박힌 프랑크 소시지를 먹어치우려 하지만 끝끝내 가시지 않을 탄내를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다.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nefing.com

 

 

이상화기념사업회는 제33회 이상화 시인상에 김민정 시인(42)을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오탁번 전 고려대 교수, 장석주 시인, 장옥관 계명대 교수, 이규리 시인)은 이병률, 김민정, 문성해 시인을 최종 대상자로 꼽았으며, 논의 끝에 김 시인을 수장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김 시인을 두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어떤 주의, 관점에도 눈치 보지 않는 그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다. 내적 저항이 있으며 말과 말 사이의 탄력이 거침이 없다. 특히 시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누추한 자신을 더러 내는 용기, 즉 칼끝을 자신에게로 향하는 의식이 값지다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쓸모 없기를>이 있고 산문집 <각설하고>가 있다. 박인환 문학상,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상화 시인상 시상은 오는 25‘2018 상화문학제에서 진행된다.

 

 

 

 

 

728x90

 

 

갇힌 새 / 박복조

 

 

어두운 성당이 푸드덕거린다 번쩍 날개를 펴고 달려 들어 머리를 박는다 거듭 솟구치며 자해하다가 큰 소철 잎이 숲인 줄 알고 내려앉아 떨어진다 십자가 앞에서 퍼덕이다가 제대 위를 가로지른다 창공인 줄 알고 돌진하다 낭떠러지에 뒹군다 줄 없는 그네를 타는 흔들리는 새, 안타까이 누군가를 불렀을 것이다 몸부림칠수록 출구는 멀어지고, 피비린내 나는 모색이다

 

문 없는 쪽으로만 날고 있으니 길은 없다 감실 불빛만 발갛다 입구만 알고 출구를 모르는 새, 상처가 크겠다 숨을 고르는 낮은 바닥이 기도로 울렁인다 다시 솟구쳐 빛을 보았는지 스테인드글라스 성화를 할퀴고 미끄러진다 휘저은 어둠이 고요히 내려앉는다 머릿속에는 넓은 하늘에의 망향,

또 날아올라 열린 문을 두고 깊숙이 들어간다 탄환 같다

 

모든 벽이 출구가 된 새, 해 뜰 때까지 더욱 피투성이가 되겠지
새도 나도 길 잃은 한 소절 격랑, 새가 나를 바라본다 어둠에 가두고 있다 뜨거운 숨결로 내 몸 안을 들락거리는 새 한 마리,

불을 밝히자 다시 공중 곡예, 할딱이며 벽에 붙어 있다 문 쪽으로 쫓아도 안으로만 날아든다

새가 불현듯 밖으로 날아간다 광막한 허공에 날개 활짝 펼치는
새의 발에 매달린 너는 누구? 캄캄하고 외로운 날을 얼마를 더 기다려야 날아오를 수 있을지, 비릿한춤
온 하늘에 문이 열려 있다

 

 

 

말의 알

 

nefing.com

 

 

 

‘2017 상화문학제’가 26~27일 이틀간 상화고택과 청라언덕, 대구문학관 일대에서 열린다.

26일에는 추모헌다례, 시낭송, 기념연주, 뮤지컬 ‘상화(想華)와 상화(尙火)’공연이 펼쳐진다.

27일 오전 11시부터 청라언덕에서 ‘상화랑 영랑이랑 시도 읊고 차 마시고’라는 주제로 시낭송과 찻자리 행사가 펼쳐지고, 오후 3시30분 대구문학관에서 ‘상화와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국제학술세미나가 열린다.

상화문학제와 함께 열리는 ‘제32회 이상화시인상’에는 박복조 시인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수상작은 ‘갇힌 새’다. 대구가톨릭대와 동 대학원 국어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한 박 시인은 1996년 ‘차라리 사람을 버리리라’를 내며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세상으로 트인 문’ ‘빛을 그리다’ 등이 있다. 현재는 국제펜클럽 대구지부 회장이며 대구의 작가상, 국제펜클럽 아카데미 문학상을 수상했다.

박 시인은 “이상화의 나라를 빼앗긴 서러운 깃발, 치열한 시의 본질에 대한 추구 뒤에서 다시 꿈꾸고 쓴다. 우러러 바라보며 그의 시 속에서 제 시가 다시 태어났으면 한다”며 “아픔이면서 위로였던 시 쓰는 일, 이 즐거운 짐을 기꺼이 지고 살아가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728x90

 

 

골목을 나는 나비 / 박덕규

 

 

나비가 떼가 날아간 자리

허공에 긴 뱀 같은 자국이 남는다.

늦게까지 놀다가

내 이마에 앉았다 가는 나비도 있다.

 

나도 나비를 따라 대문 밖으로 나간다.

긴 골목길을 따라가고 있다.

 

모퉁이를 돌아도

골목길이다.

 

길을 비켜 달라는 자전거 소리

채소 팔러 온 리어카

몰려다니는 동네 아이들

시장 갔다 오는 아낙네

 

그 사이를 나비가 가고

내가 간다.

 

때로 골목에는 나비와

나비를 좇는 나밖에 없다.

내가 날고

나비가 날 좇는 때도 있다.

 

골목이 일어나 나비를 좇고

내가 긴 골목으로 드러누워 있기도 한다.

나는 없고

나비 떼가 긴 골목이 되기도 한다.

 

모퉁이를 돌아

나비가 날고

골목이 날고

내가 난다.

 

큰길은 안 보이고

골목길이다.

 

 

 

골목을 나는 나비

 

nefing.com

 

 

이상화 시인을 추모하는 ‘2015 상화문학제’가 이상화기념사업회와 대구시수성문화원 공동 주최로 22일 대구시 중구 계산동 이상화고택 앞마당에서 열린다.

이날 행사에서는 문화공연과 문학상 시상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1부에서는 정가공연을 시작으로 연극인 박정자가 상화시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낭독한다. 이상화 시인의 며느리인 정태순은 ‘기원무’ 공연을 선사한다. 2부 문학상 시상식에서는 시집 ‘골목을 나는 나비’를 출간한 박덕규 시인에게 제30회 이상화 시인상이 수여된다. 박 시인은 1958년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단국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 시인은 8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됐으며 94년에 문예지 상상을 통해 소설가로도 등단했다. 시집 ‘아름다운 사냥’ ‘골목을 나는 나비’, 소설집 ‘날아라 거북이’ ‘포구에서 온 편지’ 등이 있다.

한편 23일에는 이상화기념사업회가 마련하는 ‘상화랑 영랑이랑 시도 읽고 차마시고’ 행사가 청라언덕에서 열린다. 이상화 시어가 찍힌 티셔츠를 시민들에게 무료로 배포한다. 일본인 미나미 구니카즈와 중국연변동북아예술가협회 최룡관 회장, 대구의 이하석 시인 등이 참여하는 한중일 국제 세미나도 23일 오후 3시 대구문학관에서 열린다.

 

728x90

 

 

소리의 그물 / 박종해

 

 

풀벌레는 달과 별을 빨아들여

소리의 그물을 짠다

명주실 보다 더 가늘고 연한 소리와 소리의

음계에 달빛과 별빛을 섞는다

나뭇잎마다 포르스름한 별빛과 달의

은빛 입술이 맺혀 있다

풀벌레는 이러할 즈음 잊혀진 그녀의 머리칼

한 올 한 올까지도 소리의 실로 짜 내린다

나를 벼랑으로 떨어뜨리고 가버린 그녀의

동그스름한 얼굴이 달처럼 떠오른다

 

잊어버린 시간의 풀섶에서 풀벌레가

잊어버린 말을 명주실처럼 뽑아낸다

아무렇지도 않던 생각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와

잊어버린 강 언덕 달빛 부서지는 메밀밭 언저리를

찿아가고 있다

어느새, 화안한 달빛 속에서 아련한 여장의 그리메가

나뭇가지와 오솔길과 벤취 위에 가득하다

 

 

 

소리의 그물

 

nefing.com

 

 

전 울산예총 회장인 박종해 시인이 제29회 '상화 詩人賞'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종해 시인은 역대 수상자 중 경남권역 최초의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는 영예를 안게 됐다.

상화 시인賞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등 주옥같은 시를 쓴 민족 시인 이상화 선생의 애국정신과 민족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다.

이상화 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대구광역시가 지원하는 상화시인상은 2013년과 2014년에 전국에서 발간된 시집 중 70권을 수집해 제1차 심사에서 15권을 뽑은 뒤 2차 심사에서 5권의 시집을 뽑아 최종적으로 박종해 시인의 시집 '소리의 그물'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심사위원으로는 시인 장석남과 시인 정민호, 문학평론가 권기호씨가 맡았다.

심사평에서 "박종해 시인은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한 지 34년 동안 전통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진솔하고 명징한 시세계를 추구해 왔으며 치열한 詩정신을 바탕으로 한  그의 시집 '소리의 그물'은 대단히 우수한 작품으로 평가해 선정하게 됐다"고 밝혓다.

 

728x90

 

 

나의 유산은 / 장석남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장마 큰물이 덮었다가 이내 지쳐서는 다시 내보여주는,

은근히 세운 무릎 상부같이 드러나는

검은 징검돌 같은 걸로 하고 싶어

 

지금은,

불어난 물길을 먹먹히 바라보듯

섭섭함의 시간이지만

내 유산으로는 징검다리 같은 것으로 하고 싶어

꽃처럼 옮겨가는 목숨들의

발밑의 묵묵한 목숨

과도한 성냄이나 기쁨이 마셨더라도

이내 일고여덟 형제들 새까만 정수리처럼 솟아나와

모두들 건네주고 건네주는

징검돌의 은은한 부동(不動)

나의 유산은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nefing.com

 

 

[수상소감]

 

봄빛이 난만합니다. 초록이 넘칩니다. 붉고 흰 꽃들이 차례로 피었다 갔고 들판엔 숨었던 새들의 울음이 다시 허공에 길을 내고 있습니다. 제 맘속에 상화 선생은‘가르마 같은 논길’을 끝도 없이 걸어가는 분으로 오랫동안 새겨져 있습니다. 가르마 같은 길이라니요. 그 정갈하고 사색적이며 또한 생산적인 길입니다. 그 길에서 호명하는 제 이름을 들으니 떨립니다. 그분이 살았던 시대를 떠올리고 그분이 살았던 공간을 떠올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분이 만났던 시와 사랑과 안타까움도 떠올립니다. 큰 영광이 없었던 일생인 듯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시와 마음이 봄빛처럼 살아서 해마다 이맘때면 빛납니다. 풀빛 짙어지는 이맘때 우리말을 아는 사람 치고 그분의 그 시를 떠올리지 않을 이는 아마 드물 듯싶습니다. 그분의 그 들판, 이제는 빼앗긴 들판이 아니라 봄빛 찬란한 들녘에서 그 정신의 메아리로 호명되는 제 이름은 초라합니다. 그러나 풀잎 한 잎에 맺힌 이슬 한 알로 그분의 영원한 들을 장식할 수 있다면 제 시력은 족하겠습니다. 관계된 분들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nefing.com

 

 

[심사평]

 

올해 이상화시인상의 심사는 어렵지 않게 합의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심사 자체가 수월했다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당대를 표상할 만한 뛰어난 시집들이 많았고, 그 가운데서도 대구 경북 출신 시인들의 시집이 여럿이었다. 다만 이상화 시인의 이름에 걸맞은 상이 되기 위해서는 지역의 대표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에 이를 필요가 있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 이것은 이상화 시인의 고향에 대한 역차별을 포함하는 것이었기에, 심사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결정을 내려주신 두 분 심사위원들의 결단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장석남의「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는 그대로 진경산수다. 진경산수이되, 돌 하나 얼룩 하나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무늬가 그려져 있는 인물화이기도 하다. 진정한 서정이란 앓는 몸을 지나쳐온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장석남의 시는 아프게, 아름답게, 아련하게 증언하고 있다. 저 세 개의‘아’자 돌림 부사야말로 이상화가「나의 침실로」에서 묘파해낸 것이 아니던가? 이상화 시인은 마돈나를 부르던 간절한 돈호법만으로도 사랑하는 이의 모습과 그와의 거리와 그를 기다리는 타는 마음을 그려냈다. 장석남의 시가 되살려내는 것도 바로 그런 흔적의 현현, 그리움의 에피파니 같은 것이다. 그것도 반드시 몸을 되울려 나오는 소리로. 집의 어디를 펼쳐 봐도 오감을 구현하는 감각들이 붐비고, 이 감각들의 병목현상으로 시가 풍요롭게 울린다. 이 풍요로움과 이상화 시인과의 만남을 환영한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 심사위원 도광의, 박정남, 권혁웅(글)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nefing.com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쓴 항일 민족시인 이상화를 추모하는 문학제 및 이상화시인상 시상식이 22일 오후 6시30분 중구 계산동 이상화고택 앞마당에서 열린다.

 

이상화 기념사업회(회장 박동준)는 이번 행사에는 대구 시민취타대의 장엄한 개막선언에 이어 시극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낭송, 추모 헌다례, 정은하 (사)영남민요'아리랑 보존회장의 일제강점기 1936년 최계란의 대구아리랑 공연, 뮤지컬 '이상화' 특별 축하공연 등이 잇따라 펼쳐진다.

 

제28회 이상화 시인상의 주인공은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를 출간한 장석남 시인이 선정됐다. 장 시인은 인천 출신으로 인하대 대학원 국문과를 나와,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등 7권의 시집을 냈다.

이날 행사에는 이상화 기념사업회와 최근 상호교류 협약을 체결한 전남 강진의 영랑 기념사업회(회장 김승식)을 비롯해 김선기 시문학파 기념관장 일행과 이상화 선생의 유족 이충희 씨가 참석할 예정이다.

 

728x90

 

 

마다가스카르가 떠다닌다 / 권혁웅

 

 

아파트처럼 외로워졌을 때 어머니는 아파트를 잃었다

 

그 집은 오래도록 골다공증과 협착증을 키워왔다

 

마다가스카르는 9,000만 년 전에 인도와 헤어졌고

 

1억 6,500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와 갈라섰다

 

추간판 하나를 떼어내자 대륙이 찢어지며

 

탕가니아, 말라위, 빅토리아 호가 생겨났다

 

호수들은 마다가스카르가 두고 온 체액이기도 하다

 

바오바브나무, 여우원숭이, 텐렉, 잘못 선 보증이

 

죄다 어머니 슬하다 마다가스카르가 떠다닌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nefing.com

 

 

신록의 계절을 맞아 대구가 낳은 민족시인 이상화의 문학혼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가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 잇따라 열린다.

이상화기념사업회(회장 윤장근)는 오는 22일 오후 6시 대구시 중구 계산동 상화고택 앞마당에서 ‘이상화 시인상’ 시상식을 포함한 ‘이상화 문학제 2012’를 연다.

이날 행사는 상화시 노래, 추모시 낭송, 무용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꾸며진다. 올해로 27회째를 맞는 이상화 시인상의 수상작은 권혁웅 시인의 시집 ‘소문들’이다. 권 시인은 1997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했으며,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와 함께 중구도심재생문화재단(이사장 윤순영)은 오는 26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상화고택 앞마당에서 ‘2012 상화골목 아트 프리마켓’을 운영한다. 이 행사는 근대역사문화벨트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기 관광브랜드인 도심골목투어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서는 작가들이 직접 참여해 관광기념품을 포함한 공예품과 의류, 잡화, 생활소품, 문구, 사무용품 등 다양한 창작품을 전시 판매한다.

수성문화원(원장 윤종현)은 ‘제7회 상화문학제’를 다음달 1~3일 수성구 일원에서 연다. ‘해 같은 능금을 나는 먹는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나는 해를 먹다’를 주제시로 삼아 열리는 올해 상화문학제는 학술세미나와 백일장, 시낭송대회, 문학의밤, 상화유적 답사 등으로 다채롭게 구성된다.

 

728x90

 

 

죽은 사람도 늙어간다 / 송재학

  

 

울 어머니 매년 사진관에 다녀오신다

그곳에서 아버지 늙어가시니

어머니 미간의 지층을 뜯어내면

지척지간 아버지 주름이다

굵은 연필이라면 머리카락 몇 올 아버지 살쩍에 옮겨

늙은 목탄 풍으로 바꾸는 게 어렵지 않다지

그때마다 깃 넓은 신사복은 찡그리면서

아버지, 어머니 그림자처럼 늙으신다

하, 두 분은 인중 닮은 이복남매 같기도 하고

오누이 같기도 하고

 

어머니의 고민은 할미의 얼굴로

어떻게 젊은 남편을 만나느냐는 것이지만

하, 이별의 눈과 입도 한 사십 년쯤 되면

다정다감하거나

닳아버리고

걱정하면서도

설렌다,

라고 되묻는 식솔들이 생기나보다

집이 생긴 별의 식솔들도 따라오나보다

 

 

 

내간체를 얻다

 

nefing.com

 

 

2011 이상화 문학제와 제26회 상화 시인상 시상식이 520일 이상화 고택 앞마당(대구시 중구 계산동)에서 열린다.

 

이상화 기념사업회(회장 윤장근)가 주최하고 매일신문사와 대구 MBC가 후원하는 이번 행사에서는 아미국악단의 풍물 공연을 시작으로, 시인 문태영이 추모시를, 시노래 가수 진우가 시노래를 한다. 또 권미희 씨가 국악 한마당 공연을 한다.

 

1985년 제정된 상화 시인상의 올해 수상자(26)는 송재학 시인이다. 수상 시집은 <내간체를 얻다>. 1986년 등단한 송재학 시인은 그동안 <얼음시집>, <살레시오네 집>, <푸른빛과 싸우다> 등의 시집을 발간했고, 김달진문학상, 대구시협상, 대구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중견 시인이다.

 

이날 송재학 시인은 시 '죽은 사람도 늙어간다'로 제26회 상화 시인상을 수상한다. 수상작 '죽은 사람도 늙어간다'는 젊어서 남편을 잃은 어머니가 매년 사진관을 다녀오면서 '자꾸만 늙어가는 얼굴로 어떻게 젊은 남편을 만날까 걱정하지만, 죽은 사람도 세월 따라 늙어가고 두 사람은 이복남매처럼 닮아간다. 세월 따라 모든 것은 닳아가지만 그래도 설렌다'는 내용이다.

 

송재학 시인은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상화의 낭만주의는 설마 도저한 허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살과 뼈의 노래처럼 보여집니다. (중략) 그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상화시인상 역시 그런 상화의 지향성에 대한 깨우침으로 저에게 다가옵니다'하고 행사 리플릿에 수상수감을 밝혔다.

 

728x90

 

 

/ 박정남

 

 

뼈 하나 없는 벌레들이 과일의 살을 뚫고 들어와 누워 있다

억센 이빨 한 없는 입술이 오물오물 껍질을 찢어

구멍을 내어 온 몸을 들이밀어 들어와 살고 있다

나뭇잎에 구멍을 뚫는 벌레 한 마리의 힘으로

저 달도 쉽게 구멍이 뚫릴 것이다

뚫린 구멍을 가진 몸들이 가벼워져 둥둥 하늘로 떠오른다

자신을 파먹는 벌레를 밀치지 않고 받아들인

잔뜩 발기되어 있는 달의 질이 붉다

무기도 하나 없이 파 들어가는 벌레들의 힘을 보아라

무기도 하나 없는 그 힘없는 벌레들을 받아들여

넉넉히 먹여 살려 온 밤하늘의 넉넉한 달빛을 보아라

 

 

 

명자

 

nefing.com

 

 

박정남 시인이 11일 열리는 '이상화 문학제'에서 제25회 '상화시인상'을 수상한다. 수상작은 박 시인의 4번째 시집 '명자'에 수록된 '달'이며, 상처입은 여성성을 아름다운 생명의 씨앗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정남 시인은 1973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숯검정이 여자' '이팝나무길을 가다' '길은 붉고 따뜻하다' '명자' 등이 있다.

 

한편 11일 오후 6시 상화고택(대구시 중구 계산동) 앞마당에서 열리는 '이상화 문학제 2010'은 1부 이상화문학제, 2부 상화시인상 시상식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식전 행사인 달구벌 북춤을 시작으로 이병훈 한국낭송문학회장의 추모시 낭송, 소프라노 이정하'피아노 정영란 등의 무대, 시노래모임 활동을 펼치는 진우의 상화시 낭송, 국악인 오영숙 등의 국악 연주와 창작 무용 등으로 꾸며진다.

 

728x90

 

 

껌 / 김기택


누군가 씹다 버린 껌.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껌.
이미 찍힌 이빨자국 위에
다시 찍히고 찍히고 무수히 찍힌 이빨자국들을
하나도 버리거나 지우지 않고
작은 몸속에 겹겹이 구겨넣어
작고 동그란 덩어리로 뭉쳐놓은 껌.
그 많은 이빨자국 속에서
지금은 고요히 화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껌.
고기를 찢고 열매를 부스던 힘이
아무리 짓이기고 짓이겨도
다 짓이겨지지 않고
조금씩 찢어지거나 부서지지도 않은 껌.
살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고기처럼 쫄깃한 질감으로
이빨 밑에서 발버둥치는 팔다리 같은 물렁물렁한 탄력으로
이발들이 잊고 있던 먼 살육의 기억을 깨워
그 피와 살과 비린내와 함께 놀던 껌.
지구의 일생 동안 이빨에 각인된 살의와 적의를
제 한몸에 고스란히 받고 있던 껌.
마음껏 뭉개고 갈고 짓누르다
이빨이 먼저 지쳐
마지못해 놓아준 껌.

 

 

 

 

 

nefing.com

 

 

이상화 문학제는 문학 공연, 상화 시인상 시상, 특별 전시회로 구성돼 있으며 1부에서 아미 풍물단의 풍물 들놀이를 식전행사로, 상화 추모시 낭송, 초청 성악, 상화 시노래 공연, 창작무용 등이 이어졌고 2부에서는 상화시인상 시상식이 진행되었다.

 

24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는 '태아의 잠' '바늘 구멍속의 폭풍' '사무원' '소' '껌' 등을 출간한 김기택 시인이 선정됐다. 1957년 안양 출생인 김기택 시인은 중앙대학교와 경희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김수영 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이수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올해 상화시인상 수상작은 그의 시집 '껌'이다.

 

함께 열린 특별전시회에서는 이상화 선생의 시와 서예 작품, 사진 작품을 비롯해 김기택 시인의 시와 서예 작품 10점이 전시되고 있다. 또 찬조 작품으로 염색 공예가 신계남의 천연염색 작품도 전시중이다.

 

특히 올해는 지금까지 죽순문학회 주최로 시상해온 상화시인상을 이상화 기념사업회(회장 윤장근)주최로 시상하여 문학제의 의의를 더하고 있다.

 

728x90

 

 

포옹 / 정호승

 

 

뼈로 만든 낚싯바늘로

고기잡이하며 평화롭게 살았던

신석기 시대의 한 부부가

여수항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한 섬에서

서로 꼭 껴안은 채 뼈만 남은 몸으로 발굴되었다

그들 부부는 사람들이 자꾸 찾아와 사진을 찍자

푸른 하늘 아래

뼈만 남은 알몸을 드러내는 일이 너무 부끄러워

수평선 쪽으로 슬며시 모로 돌아눕기도 하고

서로 꼭 껴안은 팔에 더욱더 힘을 주곤 하였으나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줄 알지 못하고

자꾸 사진만 찍고 돌아가고

부부가 손목에 차고 있던 조가비 장식구만 안타까워

바닷가로 달려가

파도에 몸을 적시고 돌아오곤 하였다.

 

 

 

포옹

 

nefing.com

 

 

제23회 상화시인상 수상자로 시집 '포옹'의 작가 정호승(58)이 선정됐다. 상화시인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송영목)는 2007년 4월부터 2008년 3월 말까지 국내외에서 출간된 만50세 이상 기성 시인들의 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벌여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권기호 시인은 "정호승은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그의 시어는 짤막하면서 내포하는 바가 크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정호승 시인은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일보와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새벽편지'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오후 6시 카페 스타지오(MBC 방송국 건너편)에서 열리며 상금 300만원과 기념메달(순금 한냥)이 수여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