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에서 아내가 붕어빵을 굽고 있다.파닥거리는 지느러미에서 비늘이 떨어진다.지구를 한참이나 돌다 온 듯한. 퇴계 선생 지폐 위에 가볍게 흩어진다.산달 아내. 배가 부푼다.
중환자실. 어머니는 링거병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한 알씩 세고 계신다. 끼니 때마다가는 호스 타고 내려가는 미음. 포르말린 먼지 반짝. 휠체어 힐끔 훔쳐보신다.
-저녁마다 어둠이 먼저 눕던 달셋방. 도란도란 웃음을 젓가락질하던 밥상에서어머니와 아내가 번갈아 등을 토닥거리고
몇 개월 전 신문처럼 할 일 잃고 누운 내 옆에서 아내는 낮은 기도 소리를 쥐어준다.가끔씩 지구는 벌떡벌떡 몸을 세워 링거병을 흔들고 아내를 병실 바닥까지 내려앉히지만 아내는 언제나 가지런히 웃는다.
모둠발을 해 본다. 날개가 돋은 휠체어.휠체어가 대기권을 향해 바퀴를 힘차게 굴린다.지구가 뒤로 밀리고 있다.
[당선소감] 못잊을 삶의 소리들
파란 눈동자를 가진 사람들의 마을에 검은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검은 눈동자 때문에 어릴 적부터 많은 놀림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처럼. 자기도 파란 눈동자를 가지게 해달라고 눈물로 기도하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될 때까지도 그의 눈동자 색깔은 파란 눈동자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청년이 된 그가 해외에 선교사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 때서야 청년은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왜 자기에게 검은 눈동자를 주셨는지를. 그가 선교사로 간 지역 사람들의 눈동자가 모두 검은 눈동자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제 길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었지만. 이 가까운 곳에 먼 길을 둘러 돌아 왔습니다. 둘러오면서 들었던 삶의 많은 소리들. 좁은 길모퉁이에서 보았던 모난 돌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에 밟혀 쓰러졌어도 생명을 잃지 않고 숨 쉬고 있던 풀들. 잊지 않겠습니다.
잘못하고 살았던 일이 많습니다. 生死의 경계를 넘나드는 어머님을 간호하느라 고생하시는 형님께 자주 찾아뵙지 못한 핑계거리가 생겼습니다. 나를 비켜가지 않는 가난한 밥상의 밥을 맛있게 먹어준 가족들 고맙습니다. 좋은 시를 건지기 위해 밤새도록 새벽을 낚아 올리던 시산맥 영남지회 분들.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난시 동인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묵묵하게 믿어주신 이병관 선생님 고맙습니다. 경남대학교 박태일 교수님 존경합니다. 천장에서 앵앵거리는 파리에게 푸념이나 하고 있을 저에게 손을 잡아 일으켜주신 심사위원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참 게으른 한 해를 보냈습니다. 내년에는 올해처럼 살지 않겠습니다.
[심사평] 이미지 이끄는 힘 탁월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지동설’ ‘서풍 불던 날’ ‘라디오 여왕’ ‘접시 시계를 타고 있는 소설가 P씨’ ‘석포역에서’ 그리고 ‘문 밖에는 봄’이었다.
그중 ‘지동설’은 도시를 사막으로 보는 구상이 낯익은 것이라는 점에서 점수를 잃었고. ‘석포역에서’는 안정된 화술에도 불구하고 감추고 있는 뜻이 약하다는 점이 드러나 있고. ‘라디오 여왕’은 포즈를 취하는 화자의 입장이 깊이를 드러내지 못했고. ‘서풍 불던 날’은 서술적인 리듬에서 얻어질 수 있는 어떤 원형적인 이미지가 살아나지 못 했다.
그렇게 제외하고 ‘문 밖에는 봄’이 남게 되었다.
이 시는 이미지가 투명하고 할 말이 뚜렸하고 구조가 대단하다.아내가 빵을 굽고. 어머니는 중환자실에 누워있고. ‘나’는 실직해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화목한 가정으로 거듭나 있다.
테마는 아주 상식적이지만 이야기와 이미지를 끌고가는 솜씨가 섬세하면서 탄력이 있다. 끝 연에서 ‘날개가 돋은 휠체어’에 화자의 의도가 집약되어 있다.심사위원 두 사람은 망설이지 않고 ‘문 밖에는 봄’을 당선작으로 하는 데 합의했다. 당선자는 이 밖에도 그의 능력이 일회성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대성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