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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 유자효

 

 

그를 향해 도는 별을
태양은 버리지 않고

 

그 별을 향해 도는
작은 별도 버리지 않는

 

그만한 거리 있어야
끝이 없는 그리움

 

 

 

황금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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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한 포기 동양란이 앉은 듯한 울림

 

시집 황금시대를 읽고 있노라면 한무리의 남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달의 빛그물 밑 넓은 마당에서 강강수월래를 노래하며 원을 그리고 도는 듯한 그림이 선명하게 눈앞에 떠오른다. 그러나 그의 시조는 또한 그 그림과 함께 서늘한 중립성을 시 한 편 한 편마다 지니고 있기에 그 그림은 또한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단 하나의 시어도 허투루 쓰지 않는 한국 시조의 미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그의 시들. ‘거리는 특히 그러한 한국 시조의 정수를 보는 듯한 감을 느끼게 한다. 한 포기의 동양란이 앉아 있는 듯한 그의 시조의 선명한 그림과 함께 가만히 던져지는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 세월이 켜켜이 앉은 흙마당의 부드러운, 그러나 서늘한 중립성의 시적 위로.

 

그는 한 편의 좋은 시가 추구하고 있는 시적 위로가 어떤 위상을 안고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닫고 있는 시인이 분명하다. 그 시적 위로가 따스한 시어들의 꽃이불이 되어 춥고 가난한 사람들을 덮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구름처럼/꿈결처럼/흐느끼듯 물 흐르듯//흙이거나/불 속에서나/다시 태어난 그 순간이나//빛나는 황금시대는 누구에게나 있건만’(달항아리전문)

 

시적 위로를 알고 있는 시인 유자효의 시조들을 오늘의 공초문학상 수상작으로 보내는 이유다. 아름다운 달항아리의 빛그물에 싸안긴, ‘서늘한 중립의 오늘의 시적 위로.

 

- 심사위원 이근배·김초혜·강은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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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 유자효

 

 

뼈가 시리다

넋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도의 위리안치

찾는 사람 없으니

고여 있고

흐르지 않는

절대 고독의 시간

원수 같은 사람이 그립다

누굴 미워라도 해야 살겠다

무얼 찾아 냈는지

까마귀 한 쌍이 진종일 울어

금부도사 행차가 당도할지 모르겠다

삶은 어차피

한바탕 꿈이라고 치부해도

귓가에 스치는 금관조복의 쓸림 소리

아내의 보드라운 살결 내음새

아이들의 자지러진 울음 소리가

끝내 잊히지 않는 지독한 형벌

무슨 겨울이 눈도 없는가

내일 없는 적소에

무릎 꿇고 앉으니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

질긴 목숨의 끈

소나무는 추위에 더욱 푸르니

붓을 들어 허망한 꿈을 그린다

 

 

 

정지용문학상 수상작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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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리 특파원으로 알려졌던 유자효(59·SBS 이사 라디오 본부장) 시인이 제17회 정지용문학상을 받게 됐다.

 

부산 출신인 유자효 시인은 서울대 사범대 불어과를 졸업하고 KBS 공사 2기 기자로 입사해서 현 SBS 이사 라디오 본부장에 있을 때까지 82년 시집 성 수요일의 저녁’(평민사), 90년 시집 짧은 사랑’(전예원), 산문집 피보씨는 지금 독서중입니다’(열음사), 93년 시집 떠남’(문학수첩)부터 2003년 시집 아쉬움에 대하여’(책 만드는 집) 8개의 시집과 4개의 산문집을 낸 시인이다.

 

이번 정지용문학상 심사는 고은 시인과 김재홍(경희대) 문학평론가, 김윤식(서울대 명예교수) 문학평론가, 김남조(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시인 등이 맡았다.

 

유자효 시인은 지용의 시혼 쏟아지기를이란 제목의 수상소감에서 고등학교 시절 친구 집에 가서 불온문서처럼 만난 책들이었다프랑스 특파원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지용제에 참석하러 옥천을 찾은 적이 있다고 했다.

 

심사위원 김재홍 문학평론가는 심사평에서 유자효의 시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를 오브제로 하여 삶의 외로움과 예술의 의미를 집약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것으로 판단 된다시인은 이 시에서 유배생활의 절망적 상황과 그로 인한 깊이 모를 고독과 슬픔, 적막과 허망감의 표출을 잘 표현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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