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송경동
2014 년 1 월 2 일
캄보디아 프놈펜 남서쪽 카나디아 공단
한국계 기업 ' 약진통상 ' 정문 앞
봉제노동자 백여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최저임금을 올려달라고 127 개 공장이 파업 중이었다
공단 내 다른 한국 기업인
' 인터내셔널 패션로얄 ' 노동자 피룬도 춤을 추고 있었다
하루 평균 열시간 일하며
부자를 위해 비싼 옷을 만든다는 피룬의
월수입은 130 달러 , 한화로 14 만원
한시간 잔업수당 50 센트 의료수당 5 달러
아침 7 시 출근을 한번이라도 어기면 나오지 않는
보너스 5 달러 교통비 5 달러를 포함해서다
" 나도 ' 꿈 ' 이란 것을 가져보고 싶다 "
서른한살 여공 파비도
댄싱 파업에 참가한 까닭이었다
네댓 명이 함께 사는 쪽방 월세가 40 달러
식비 60 달러 십년을 일했지만 남은 건 200 달러 빚뿐
그것도 육개월에서 일년 단위 비정규직
지난 이년 동안 카나디아 공단에서
영양실조로 작업 중 쓰러진 봉제노동자 4,000 명
춤추는 노동자를 향해
트럭 열대에 나눠 타고 온 헌병들이
곤봉을 휘두르기 시작한 건 오후 3 시 30 분
약진통상 공장 부지를 나눠 쓰는 911 공수부대원들도
쪽문을 열고 나왔다 911 부대 차프소포른 소장은
약진통상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울부짖는 소리 끌려가는 소리가
이튿날 새벽 3 시까지 이어졌다
다음날 분노한 카나디아 공단 노동자 만명이
오전부터 거리를 가득 메웠다 . 아침 8 시
내무부를 향한 시위대가 이백 미터쯤 전진했을 때
총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다섯 명이 죽고
삼십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피룬의 오른쪽 다리에도
총알이 박혔다 가까운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의사는 없고 간호사들은 치료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 시각 , 시위와 관계없이 병원을 찾은 한 여성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했으나 거부당했다 이 여성은
되돌아가는 길에 숨졌다 단층집 옥상에서
시위를 구경하던 폭은 왼쪽과 오른쪽 발목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오토바이택시 기사 세론은
손님을 기다리던 중에 총을 맞았다 생선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던 임산부도 총을 맞았다 분노한 노동자들이
병원을 향해 돌을 투척하기 시작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대사관은
유혈 사태 전 ' 긴급 ' 서한을 통해
" 정체불명 아웃사이더들의 불법 행동 " 에 대한 단호한 대처가 없을 시
" 캄보디아 내 한국 투자에 대한 부정적인 효과가 우려된다 " 고
캄보디아 정부와 정치권의 강력한 개입을 요청했다
캄보디아에서 2012 년 기준 한국은 중국을 제치고
캄보디아 투자국 1 위 한국 대사관이 1 월 6 일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 치안안전정보 ' 안내문에 따르면
" 현지 수경사령부와도 접촉해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
" 캄보디아 국가대테러위원장과 접촉하고 내무부 · 법무부 · 경찰청 등 정부 주요 기관에
우리 기업의 안전과 피해를 막아달라는 취지의 협조 공문을 발송했다 "
이렇게 캄보디아 정부를 재빨리 설득해
" 금번 상황을 심각히 고려하고 신속히 대처하는 계기를 마련 " 한 것이
자신들 공이라고 자평했다 캄보디아 군 병력이
특별 보호조치를 취한 공장 건물은
한국 공장이 유일하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진압에 앞장선 훈센 총리의
' 총리 경호부대 ' 와 '70 여단 ' 의 공개적인 후원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훈센 총리의
경제 자문위원이었다 2011 년 총리 경호부대가
2,800 만 달러의 기갑장비를 도입할 때도
한국 정부가 지원했다 60 여개 업체가 모인 한국봉제협회는
사태 후 좀더 발빠르게 움직였다
캄보디아 의류생산자연합회를 움직여
통합야당 대표 삼랭시와 8 개 노조를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들어갔다
비슷한 때인 2014 년 1 월 9 일
방글라데시 남부 치타공에 위치한 ' 영원무역 ' 해외공장
최저임금이 인상되자 다른 수당들을 삭감해
도리어 전체 임금을 깎은 사측에 분노해
노동자들의 돌발 시위에 나섰다 영원무역은
방글라데시에 공장 열일곱개를 소유한 대기업
월급날인 그날 , 경찰 발포로
갓 스무살 여성 노동자 파르빈 악타르가 죽고
십수명이 다쳤다 작년 말에 올랐다는
최저임금은 5,300 타카 , 한화로 7 만원
오르기 전엔 4 만원이었다 영원무역에서는
2011 년 4 월에도 경찰 발포로 세명이 죽고
250 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방글라데시에선 2013 년 4 월
닭장 같은 한 봉제공장 건물이 붕괴해
노동자 1,235 명이 압사당하기도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파르빈 악타르가 죽은 날
새벽 6 시 50 분 , 베트남 북부 타이응우옌성 옌빈
삼성전자공장 신축현장에선
작업시간에 늦어 출입구를 뛰어넘는 한 노동자를
삼성보안서비스 용역들이 구타하고 전자충격봉으로 기절시켜
베트남 건설노동자 4,000 명이 ' 폭동 ' 을 일으킨
대규모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베트남 노동자들
최저임금은 12 만원이었다
약진통상은 ,
캄보디아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두었다
서울 송파구에 작은 본사를 두고
다국적 노동자 23,000 명을 고용하고 있다
바나나리퍼블릭 , 갭 , 올드네이비 등
유명 브랜드 의류를 주문생산한다
영원무역은 ,
방글라데시와 중국 베트남 엘살바도르에 공장을 두었다
본사 한국인 직원은 448 명이고
현지고용인은 52,530 명이다
노스페이스를 생산하고 나이키 등을 주문생산한다
삼성은 ,
도대체 얼마나 많은 해외공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지
알 수조차 없다
수술을 두번 남겨둔 피룬은
당분간 춤을 출 수도
미싱을 밟을 수도 없다
그날 이후 피룬의 병실을 방문한 한국인은
취재진 몇명 말고는 없었다
한국의 수출자유무역공단에서
이십여년 노동운동 주변을 기웃거리며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사양산업이 도산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도산 , 폐업 , 해외 이전하는 봉제공장 전자공장 노동자들 곁에서
십수년 ' 빠이빠이 ' 눈물바람이나 하며 살아 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한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를
직접고용 정규직화하고 생산라인을 다시 돌리라고 싸워 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중국과 인도네시아로 공장을 이전하며 위장폐업한
기타 만드는 콜트 - 콜텍 노동자들 복직을 요구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필리핀 수비크에 2 조원을 들여 조선소를 세우고 비정규직 2 만명을 고용한
한진중공업 조남호 회장에게 맞서 싸우던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모든 게 경영상의 위기로 인한 정당한 정리해고이며 비정규직화라고
나아가 이젠 미래에 올 경영상의 위기로도 해고가 가능해야 한다고
오늘도 열심히 방망이를 두드리는 법 앞에서
속수무책 망연자실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정규직 자녀 우선채용에 합의하는
' 대공장 민주노조 ' 를 위해
비정규직 확산과 우선해고에 눈감는
' 대공장 민주노조 ' 를 위해
이젠 해외여행깨나 다니는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 고용안정을 위해
한국 사회 중산층의 다수를 이루는
' 민주노총 정규직 조합원 ' 들을 위해 힘써 살아온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5.18 광주 학살에 분개해 해마다 망월동을 찾는
해마다 전태일 열사 기일에 맞춰 전국노동자대회를 찾는
용산 철거민 학살을 오늘도 잊을 수 없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1985 년 구로동맹파업 기념사업일을 맡아 하고
가끔 구로공단 산업화 관련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다시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이 된 이곳에서
싼 전세 탓에 오도 가도 못하고 사는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전세계 부자 85 명이
세계 인구 절반과 동일한 부를 소유한 이 지구별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
나는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나는 송경동이다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파르빈 악타르다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국경을 넘어 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투쟁이며 항쟁이다
고산문학 축전운영위원회(위원장 구중서)와 계간《열린시학》에서 주관하는 제16회 고산문학 대상 수상자에 시조부문에 이지엽 시인, 시부문에선 송경동 시인이 선정됐다.
시조부문 수상시집은 이지엽 시인의「내가 사랑하는 여자」(책만드는집, 2016)이고, 시부문의 수상시집은 송경동 시인의「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창비, 2016)이다.
이지엽 시인의 수상 시집「내가 사랑하는 여자」는 단시조의 고차원적인 압축과 단아한 정형의 틀을 가장 정확하게 고수하면서 그 나름의 아름다운 서정까지를 구현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송경동 시인의「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시집은 세월호 이후 구조화된 사회적 아픔을 구체적인 시의 질료로 삼아 국가란 무엇인가 삶은 무엇인가라는 큰 질문을 시로써 묻고 시로 완성하며 마침내 시의 지평을 담대하게 넓혀가고 있는 시집이라는 심사평을 받으며 선정됐다.
이번 심사 선고위원으로는 시조부문에 정용국 시인, 박명숙 시인이, 시부문에는 이정록 시인, 안상학 시인이 6월과 7월 두 달 동안 2015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출간된 시집과 시조집을 대상으로 선고를 진행했다. 본심 심사는 구중서 시인(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박시교, 김제현, 강형철, 이하석 시인이 맡았다. 시상식은 고산문학 축전행사와 함께 오는 10월 8일 오후 3시 해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다. 상금은 각 1000만 원이다.
고산문학대상은 계간《열린시학》에 특집으로 소개하는 등 한국 시가문학을 대표하는 상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