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국물 / 신달자

 

 

메루치와 다시마와 무와 양파를 달인 국물로 국수를 만듭니다

바다의 쓰라린 소식과 들판의 뼈저린 대결이 서로 몸 섞으며

사람의 혀를 간질이는 맛을 내고 있습니다

 

바다는 흐르기만 해서 다리가 없고

들판은 뿌리로 버티다가 허리를 다치기도 하지만

피가 졸고 졸고 애가 잦아지고

서로 뒤틀거나 배배 꼬여 증오의 끝을 다 삭인 뒤에야

고요의 맛에 다가옵니다

 

내 남편이란 인간도 이 국수를 좋아하다가 죽었지요

바다가 되었다가 들판이 되었다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다 속은 넓었지만 서로 포개지 못하고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감았지요

 

상징적으로 메루치와 양파를 섞어 우려낸 국물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바다만큼 들판만큼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몸을 우리고 마음을 끓여서 겨우 섞어진 국물을 마주보고 마시는

그는 내 생의 국물이고 나는 그의 국물이었습니다

 

 

 

살 흐르다

 

nefing.com

 

 

28회 정지용 문학상에 신달자 시인의 '국물'이 선정됐다. '향수(鄕愁)' 시인 정지용 기념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옥천 지용회는 제28회 정지용문학상에 신달자 시인의 '국물'을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심사위원인 유종호 시인은 "17행의 경어체 시편이 일생의 경험을 오래 동안 반추하고 고아서 우려낸 진국 같은 작품이다""'국물'을 천거하는 소리에 아주 쉽게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근배 심사위원은 "'들판이다가 바다이다가' '포개지 못하는 절망으로 홀로 입술이 짓물러 눈을 감았지' 라는 대목에서 사랑이 시에 어떻게 포개지고 시가 사랑을 얼마나 진하게 '몸을 섞으며' '간질이는 맛을'내는지 알싸하게 느꼈다"고 평했다.

이 상은 내달 14일 제29회 지용제가 열리는 옥천군 구읍상계공원 특설무대에서 시상된다.

 

신달자 시인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1964'여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봉헌문자' '아버지의 빛' '어머니, 그 삐뚤삐뚤한 글씨' 등이 있으며, 수필집으로는 '다시 부는 바람' '백치애인'등이 있다.

 
728x90

 

 

헛 눈물 / 신달자

 

 

슬픔의 이슬도 아니다

아픔의 진물도 아니다

한 순간 주르르 흐르는 한줄기 허수아비 눈물

 

내 나이 돼봐라

진 곳은 마르고 마른 곳은 젖느니

 

저 아래 출렁거리던 강물 다 마르고

보송보송 반짝이던 두 눈은 짓무르는데

울렁거리던 암내조차 완전 가신

어둑어둑 어둠 깔리고 저녁놀 발등 퍼질 때

소금끼조차 바짝 마른 눈물 한줄기

너 뭐냐?

 

 

 

 

살 흐르다

 

nefing.com

 

 

 

[심사평] 잘 구워진 언어의 사리

 

일찍이 한국시는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시인에 의해 눈을 떴고 그가 개척한 우주적 광활한 시세계를 딛고 오늘의 눈부신 팽창을 이루고 있다. 그 드높은 시의 정신을 받들고 기리기 위하여 제정된 공초문학상 제17회 수상작은 신달자 시인의 헛 눈물’(현대시학 20093월호)이 선정되었다. 공초문학상 운영조항에서 수상작 선정기준은 등단 20년 이상의 시인을 대상으로 인품이 훌륭하며 최근 1년간 발표한 신작시 가운데 수상작을 뽑는다.’로 되어 있다. 이 규정에 의해 선정된 신달자 시인은 40년 가까운 등단 햇수와 왕성한 창작 활동, 작품의 우수성, 인품의 고매함까지 모든 조건에서 상의 권위를 덧입히는 수상자라 하겠다.

 

수상작 헛 눈물은 겉으로 읽어도 저 공초가 해냈던 깊고 넓은 사유와 맞닿고 있음을 알겠거니와 글자들이 감추고 있는 뜻을 헤아려 들어가면 시인이 삶의 문턱을 얼마나 아프게 넘나들었으면, 또한 거기서 곪고 터진 생각을 얼마나 오래 깎고 다듬었으면 그 흔하고 비린 눈물을 이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사리로 구워낼 수 있을까 하는 섬뜩한 궁금증을 자아낸다. ‘울렁거리던 암내조차 완전 가신에서 이승을 몇 바퀴나 돌아 나온 듯한 체관(諦觀)이 묻어 나오는가 하면 소금끼조차 바짝 마른 눈물 한줄기’, ‘너 뭐냐?’고 던지는 화두가 비어 있음()조차 넘어서는() 경지가 아닌가.

 

오늘의 시가 산문 쪽으로 넘어가고 낯설게 하기라는 탈을 쓰고 본래의 모습을 지워가고 있음에 비하여 신달자 시인은 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언어의 절제성과 명료성으로 그 울림의 폭을 드넓게 열어 가며 꾸준하게 앞서 나가고 있다. 이 수상의 후보에 그의 시선집 바람 멈추다가 참고되었음을 밝힌다.

 

- 심사위원 조오현 시조시인, 임헌영 중앙대 교수, 이근배 공초숭모회 회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