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 / 이인주
폐허도 한 송이 꽃이다
그 붉고 난만한 꽃진이 자아내는 여흔은
아무나 발할 수 없는 불립문자다
뻘밭 페이지를 넘기면
그녀가 걸어온 길이 태풍 뒤의 고요처럼 누워 있다
한 세상의 끝에서
간단히 뛰어내려본 자만이
그 지독한 사체의 냄새를 향기롭게 맡을 수 있다
누가 뜨거운 자궁을 폐허로 읽는가
어둠이 습자지처럼 스며드는 갯벌
아무도 몰래 부풀다 자결해 버린
한 송이 꽃의 절정을,
그녀를 차고 환하게 승천하는
바람의 눈매가 젖은 광휘로 읽힌다
꽃 진 다음
상처의 배꼽, 밑자루로 받쳐 올리는
가없는 눈빛
다가가는 모든 위무의 손을 부끄럽게 하는
폐허 위에서는 함부로 흩날리는 꽃잎을 노래해서는 안된다
헝클어진 풍경을 오독해서도 안된다
다만 눈을 감고 끝없이 펼쳐지는 뻘밭 문장을 맨발로 느껴야 한다
그녀가 가르치는 저 뭉클한
포복의 예의를 제대로 읽는 인간이라면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제2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예비심사평
예심위원 박성민(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최금진(창작과 비평 등단)
266명 시인들이 보내온 2,656편의 작품들은 원고지에 적은 육필원고부터 A4에 칼라로 인쇄한 원고까지 다양했으며, 그중에는 십대 청소년들의 앳된 목소리와 인생 황혼에서 길어 올린 깊고 고요한 목소리까지 들어있었다. 접수번호와 작품만 주어진 상황에서 50여명을 선정하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가장 먼저 탈락한 작품들은, 과거의 경험을 여과 없이 옮겨 놓아 감정절제가 없는 시들, 새로운 인식과 발견의 기틀이 마련되지 않은 소박한 서정시들이었다. 이들은 일차적 의미 소통의 부재와 더불어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다. 앞서 도달한 선배시인들의 시적성취를 넘어서려는 고군분투를 엿보고자 하는 것이 모든 대회 심사자들의 바람일 것이다. 때문에 언어적 실험을 앞세웠으나 그 근거가 부족한 추상적 작품들도 심사에서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실험이란 기존의 것을 극복하는 것인데, 이미 이러한 시도는 제자리를 반복해서 답습하고 있고, 그것은 권력화 되고 있으며, 그럼에도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몇 번을 다시 윤독하여 10명의 본선 진출자를 골라내는 일은 매우 지난한 일이었다. 그리고 다소 부족해 보여도 힘든 삶을 자신의 문학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건강한 작품들과 새로운 도전 정신이 엿보이는 작품들을 뽑았다. 좋은 작품을 알아보지 못하는 심사자들의 맹목과 편견이 없진 않았겠으나, 좋은 시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스스로 우리에게 정서적인 충격과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법이다. 어떤 분이 당선이 되고 어떤 분이 낙선하든, 예심을 통과한 열 분 모두는 지금까지 끌고 온 자신의 문학적 성취들을 끝까지 추구해 나갈 것이라 믿을 만한 분들이었다.
심사를 마치고 나와서 바라본 목포의 저녁 바다에는 은갈치가 떼를 지어 몰려다니며 반짝이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 만난 반짝이는 언어들이었다.
본 공모전에 당선된 작가께서 출간한 시집을 소개합니다.
『제2회 목포문학상』시부문 심사평
참신한 시적 변용
응모작들의 수준이 예상 외로 높았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모하는 문학상의 응모작들의 그만그만한 수준을 익히 보아왔던 나는 이번 <목포문학상>에 응모한 작품을 읽다가 깜작 놀랐다. 웬만한 문학잡지의 신인 등단작보다도 더 짜임새 있는 구성과 탄탄한 시적 역량을 맘껏 발휘한 작품이 많아서 당선작 한 편을 선택하느라고 애를 먹었다.
당선작으로 뽑힌 「목포의 눈물」(접수번호 82)은 일견 진부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참신한 시적 변용을 통하여 작품의 배경에 서사적 요소를 장치하면서 뭉클한 생의 깨달음을 알맞은 어조로 담아내고 있다. 이분이 보낸 「칼바위 풍란」이나 「개짐을 빨다」도 아주 뛰어난 작품이어서 오랜 각고의 시적 수련을 쌓은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시를 쓰기까지 남모를 한숨과 눈물을 많이도 흘렸으리라.
차상위작으로 뽑힌 「푸른 송곳」(접수번호 78)도 절제된 언어와 시적 긴장을 통하여 빼어난 시적 성취를 획득하고 있다. 이밖에도 「호박」(접수번호 91), 「지지리궁상」(접수번호 236)등을 응모한 분들도 만만치 않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본심위원 오탁번(시인,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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