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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 박성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중심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것

 

먼 기억을 중심에 두고

둥글둥글 살아간다는 것

 

무심히 젖는 일에 익숙해진다는 것

 

 

 

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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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회 백석문학상 수상작으로 박성우 시집 웃는 연습이 선정됐다.

 

박 시인의 웃는 연습(창비. 2017)은 농촌 공동체의 일상에서 길어올린 진솔하고 질박한 언어로 고향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이들의 면면과 갖가지 사연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포착한 통찰을 들려준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도시적 생활 감각과 속도를 존재의 한 부면에 상처처럼 새기기도 한다.

 

본심에는 고형렬(시인), 천양희(시인), 한기욱(문학평론가), 예심에는 안미옥(시인), 황규관(시인)씨가 심사를 맡았다.

 

심사위원은 "자연과 어우러지는 사람살이 본연의 리듬을 창출해내고 이제는 희귀해져버린 토박이의 삶과 언어를 새롭게 발견한다는 점에서 백석의 시정신을 계승한다고 평가되어 올해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박성우(47. 시인)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신동엽문학상과 윤동주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거미, 가뜬한 잠, 자두나무 정류장, 웃는 연습, 청소년시집 난 빨강, 사과가 필요해등이 있다.

 

백석문학상은 백석(白石) 선생의 뛰어난 시적 업적을 기리고 그 순정한 문학정신을 이어받기 위해 자야(子夜, 본명 金英韓) 여사가 출연한 기금으로 199710월에 제정됐다. 창비가 주관해오고 있으며, 최근 2년 내에 출간된 뛰어난 시집에 주어지는 상이다.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원이 주어지며, 시상식은 오는 22일 오후 630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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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뜬한 잠 / 박성우

 

 

곡식 까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둥그렇게 굽은 몸으로

멍석에 차를 잘도 비비던 할머니가

정지문을 열어 놓고

누런 콩을 까부르고 있었다

키 끝 추슬러 잡티를 날려 보내놓고는,

 

가뜬한 잠을 마루에 뉘였다

 

하도 무섭게 조용한 잠이어서

생일 밥숟갈 놓고 눈을 감은

외할매 생각이 차게 다녀갔다

 

 

 

가뜬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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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전북지회(회장 이병천)가 선정하는 제3회 불꽃문학상에 박성우(37) 시인이 선정됐다.

 

지난해 5년만에 시집 ‘가뜬한 잠’을 출간하고 이 시집으로 신동엽 창작상을 수상했으며, 지역을 중심으로 대내외적인 활동을 활발히 펼쳐 온 점이 높이 평가됐다. 상금은 300만원.

정읍 출신으로 지난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시집으로 ‘거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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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박성우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술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더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200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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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별을 털며 집으로 가는 퇴근길은 아름다웠다.

지친 몸에서 빠져나온 사내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연필부터 깎곤 했다. 연필심처럼 생각이 올라오면 그것을 공책에 옮겼다. 사내의 왼손엔 어김없이 담배가 들려 있었는데 온 몸을 태울 듯 빠르게 타 들어갔다.

아침에 사내의 방문을 슬쩍 열어 보면 사내의 목이 앉은뱅이 책상 위에 툭, 털어져 있을 때가 있었다. 등을 흔들어 밤새 무엇을 썼느냐고 묻기도 전에 사내는 담뱃재처럼 흩어지곤 했다.

원고를 보내 놓고 나는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지 않았다. 대신 지독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모든 감각이 진공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허공을 걷는 아찔한 맛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혓바늘이 입천장을 찔러 대는 통에 나는 양식을 아낄 수도 있었다.

그런 증세는 1주일이 넘게 계속되었다. 몸살이 끝날 즈음 나는 일요일을 빌려 금강 하구의 갈대 숲에 접혀 있다가 돌아왔다.

혼자 콩나물국을 맵게 끓여 먹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얼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화기를 내리자마자 몹쓸 아버지가 울컥거려서 잠시 젖게 내버려두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눈물이 되곤 하는 어머니 김정자 여사, 지난해 성탄절 전야에 흙으로 돌아가신 존경하는 아버지, 묵묵히 지켜 봐준 사랑하는 핏줄들, 한시름 놓으셨죠?

큰형으로 느낄 때가 더 많았던 이상복.정영길.이혜성 교수님을 비롯한 문창과 교수님들, 어머니 같은 박라연 교수님, 그리고 내 생활의 지침서이신 정종환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호만형, 성민형, 문원을 비롯한 문우들과 시창작반 식구들, 절망할 때마다 다독거려 주던 동기생들, 출발점을 허락해 준 중앙일보와 출발신호를 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못 든 길에서 지도를 만들어 나가게 하신 강연호 은사님! 앞으로도 저를 가파른 벼랑 끝에 세워 두실 거죠? 선생님, 거기로 나오세요. 오늘은 제가 소주 한잔 살랍니다.

 

 

 

 

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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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온 적지 않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올해의 응모작들이 시적 다양성이나 인식의 틀로는 예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정서적 탄력이나 신인다운 패기 또는 개성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심사의 자리란 때로는 곤혹스럽다.

마지막까지 선자들이 주목했던 작품들은 김다솔.강성민.박승철.류남.박성우씨의 시편이었다.

김다솔씨의 응모 시에서 엿보이는 것은 섬세한 시어가 감당하는 풍경의 투명성이다. 관찰과 묘사에 기대고 있는 이 응모자의 시선은 드러나지 않는 삶의 굴곡과 파문들을 읽어내지만 정작 깊이나 높이로 확산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었다.

강성민씨는 환상과 이미지를 교직하는 매력적인 시상을 펼쳐 보이지만 그것들을 한 줄로 꿰보이는 맥락의 힘이 제대로 살펴지지 않는다. 응모 작품들이 유지하는 수준에는 편차가 두드러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다.

박승철씨의 작품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거기에 걸맞은 시어의 선택도 선이 굵다. 그럼에도 행간과 행간 사이에 긴장과 탄력이 지탱되지 않는 까닭은 범상하고 익숙한 수사에 비약이 심한 시상을 걸쳐놓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류남씨의 시편들은 분방한 상상력을 감당하는 그 나름의 형식미가 재미있게 읽혔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확인하기에는 응모 편수가 너무 적었다. 군데군데 부적절하게 동원된 시어들도 막상 선자들을 망설이게 했다.

박성우씨의 '거미' 가 당선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습작의 연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응모작에서도 시적 상상에 스며드는 체험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리하여 거의 제 솜씨로만 한 채 시의 집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응모자의 오랜 단련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다만 사물 앞에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려는 노력만이 앞으로 제 몫의 장인으로 자신을 세우는 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김명인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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