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집 / 박대성
정겨운 이웃들이 궁금한 소식들을
보퉁이에 담아 보냅니다.
앞서가는 계절의 깃을 달아 보내기도 하고
지난 계절을 잠 깨워 가기도 합니다.
섶섶에 묻어 온 향긋한 피로와
땀으로 얼룩진 소망의 연흔들
보드랍게 풀려나간 욕망의 실밥들을
맡겨두고 갑니다.
털어내고, 지우고
펴고, 접고
줄이고, 늘이고
이어 붙여야 하는 나른한 소식들이
따갑게 쪼아대는 재봉틀에 붙들려
한 땀 한 땀 다시 일어섭니다.
생살이 미도록 해어진 그리움 하나
누가 이 그리움의 솔기를 미어 놓았을까
튼튼하고 곱다란 사랑 조각 찾아내어
기워줍니다.
[심사평]
시는 언어를 매체로 하여 이루어지는 예술의 하나이다. 그러나 예선을 거쳐 넘어온 대부분의 작품들이 상상력이 일상적이고, 언어 구조가 느슨하여 예술적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박대성씨의 「수선집」과 김정순씨의 「감자꽃」, 조숙향씨의 「낡은 무명자루」는 상상력 면이나 언어구조면에서 어느 정도 일상적 평범성을 뛰어 넘고 있고, 언어 구조도 제법 완결성을 이루어 주목되는 것이었다.
김정순씨의 「감자꽃」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상상력의 특이함이 제법 높은 수준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끝 연에서 지금까지의 상상력을 뒷받침해 주는 힘이 갑자기 약화되어 감동을 허물어버리는 구조적 약점을 노출하고 있었다. 시를 하나의 구조라고 할 때, 무엇보다도 끝 부분에서의 완결성이 중요한데 이것이 제대로 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조숙향씨의 「낡은 무명자루」도 마찬가지 지적을 할 수가 있다.
앞의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약점에 비해 박대성씨의 「수선집」은 상상력이나 언어 감각 면에서 상당한 수준의 완결성을 갖는 것이었다. 결국 박대성씨의 「수선집」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지만, 이 작품은 특히 「연흔」이라든가 「생살이 미도록」, 또는 「솔기를 미어 놓았을까」와 같은 설익은 표현들이 있어 옥에 티가 되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대성씨의 여러 작품에서 보이는 시를 향한 도전적 노력이 당선작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도 밝혀 두고자 한다.
시인이 되는 일은 시에 대한 프로가 되는 것이다. 그만큼 진지성이 요구되고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박대성씨의 당선을 축하하면서 무한한 노력을 통해 훌륭한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기대해마지 않는다.
심사위원 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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