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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 / 이재곤

 

 

짧아진 가을 해

뉘엿뉘엿 서산에 숨어들고

땅거미 어둠 품으며 내려앉으니

온종일 분주하던 저잣거리는

좌판을 거두고 철시를 서두른다

 

기억자 허리 억지로 반쯤 펴며

통증을 뿜어내는 할머니 신호에

즐비하게 주차된 자동차 사이로

웅크린 채 기다리던 리어카는

지나치며 건네는 뾰족한 시선에 멍들어

싱싱함을 부끄러움과 좌절로 맞바꾼 물건들을 싣는다

 

소박한 방석 하나에

황제의 가마가 부럽지 않은 듯

그제야 두 다리를 펴보면서 안도하는

할머니를 리어카 뒷자리에 태우고

오가는 인파 속에 묻혀가는 할아버지

 

그 뒷모습 따라가는 그림자에

고된 일상 한 줌 고스란히 흘리며

어둠 밀어내는 가로등 아래로

따스함과 쓸쓸함이 숙연히 깃든다

 

 

 

 

 

[당선소감] “진솔함으로 참된 글을 지어가겠습니다

 

! 내게도 이런 행운이 오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습니다. 가슴 쿵쾅거리며 심박동이 빨라지는 기쁨으로 마치 먼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 은퇴를 하고 이제 그만 좀 쉬어야 한다는 말들이 처음에는 큰 위로로 들렸지만 6개월, 일 년이 지나면서 삶은 메말라지고 무의미한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글쓰기였는데, 어느 날 문득 취미로 쓴 글이지만 세상에 내보이고 싶어져, 수없는 망설임 끝에 용기를 내어 이번 동양일보 신인문학상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광은 더 겸손함으로 진솔한 글을 짓기 위해 성찰과 정진하라는 뜻으로 여기고, 앞으로도 독자가 보다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가치와 신념으로 창작에 몰입할 생각입니다.

 

행복한 즐거움으로 가슴 벅찬 기쁨과 함께 새로운 무게감을 느끼며, 지금까지와는 달리 더 세련되고 엄격한 기준으로 자신의 평가 잣대를 설정하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겠습니다.

 

겨울추위까지 동반한 채 코로나19 보릿고개를 건너고 있는 분들과 함께, 머지않아 마주할 터널 끝의 봄과 희망을 그려보고 싶습니다.

 

이 나이에 신인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그리고 지속적인 문화사업으로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신 동양일보와 관계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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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실한 설렘과 삶의 성찰 돋보여

 

28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준 작품(387)을 숙독하면서 느낀 점은 난해하거나 미숙한 작품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 그래도 성숙한 작품들이 다수 눈에 띄어서 다행이었다.

 

끝까지 선자의 손에 남아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 김난수의 봉안담과 최현숙의 바다에 비가 옵니다그리고, 이재곤의 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이란 시이다.

 

김난수의 봉안담이라는 시에서 영평사 야외 납골당 황련궁 222이곳은 내가 죽어서 들어갈 나의 봉안담, “내 죽음의 집이다면서 처음 살림집 장만했을 때보다 더 설레어 아무나 붙잡고자랑하고 싶었다면서 납골당을 장만했을 때 새벽 내내 안주가 되었고사람들은 집들이를 서둘러 하라고 난리였다라면서 당장 날 잡자는 말에 있는 돈 없는 돈풀어 술부터 샀다. 황련궁 벤치에 앉아 돌들과 구절초들과 모과나무에게 눈인사를 나눈다며 내가 들어오면 심심치 않게 놀아 달라고 당부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최현숙의 바다에 비가 옵니다란 시에서 바다에 비가 오면 바다가 물배를 채웁나다포구에 줄줄이 매달린 어선들과 갈매기호들을 바라보며 바다가 뻐끔뻐끔 물배를 채웁나다라면서 우리 어머니도 육남매를 낳아 키우느라바다처럼 삶의 허기로 배를 채우셨다며 그뿐만 아니라 십 리쯤 걸어야 하루 다섯 번 오가는 버스길을 이고지고 오르내린 어머니의 길” “코빼기도 뵈지 않는 자식들이 있어 처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곶감만 속이 말라간다.”며 모정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엿보이고 있다.

 

이재곤의 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이란 시에서 짧아진 가을 해뉘엿뉘엿 서산에 숨어들고 온종일 분주하던 저잣거리는 좌판을 거두고 철시를 서두른다.”기억 자 허리 억지로 반쯤 펴며 통증을 뿜어내는 할머니 신호에 웅크린 채 기다리던 리어카는소박한 방석 하나에 황제의 가마가 부끄럽지 않은 듯두 다리를 펴 보면서 안도하는 할머니를 리어카 뒷자리에 태우고오가는 인파 속에 묻혀가는 할아버지의 그 뒷모습 따라가는 그림자에 고된 일상 한 줌 고스란히 흘리며어둠을 밀어내는 가로등 아래로 따스함과 쓸쓸함이 숙연하게깃든다고 하였다

 

저잣거리 노부부의 삶 속에서 사랑과 설렘이 번져나고 있다. 늦가을 삶의 구체적 모습 속에서 신실한 설렘과 삶의 성찰이 돋보인다. 이재곤의 저잣거리, 노부부의 사랑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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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 / 박청환

 

 

떨어지지 않겠다고 버팅기며 목놓아 울어대는 통에

십 리 오솔길 급기야 어미가 동행했다

 

장날 마실 가듯

어미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풀 냄새 맡다가

나비 좇다가

어느 순간 흠칫 놀라 겅중겅중 뛰어와

마른 젖통 툭툭 치받던 길

 

아가, 주인 인상 좋아 뵈더라

외양간 북데기도 푸짐하더구나

말 잘 듣고잘 살거라

 

낯선 외양간에 울음 떼어 놓고

돌아선 울음

달빛 앞세워 새끼 발자국

되밟아 오는 길

 

큰 눈에 별 방울 뚝뚝

 

 

 

 

[당선소감] 뜨거운 용광로 보다 따뜻한 화롯불 같은 시 쓰고파

 

좋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늘 생각했습니다. 기술적으로 화려하거나 심오하게 어렵거나. 이 둘은 일단 내 능력 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내게 남은 건 작고 쉽고 가난한 글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게 좋았습니다. 작은 것일수록 진심을 꽉 채워 담을 수 있었고 가난할수록 따듯했습니다.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거대한 용광로보다 고구마를 묻어 놓고 둘러 앉아 부젓가락 헤집으며 가래떡을 구워먹는 화롯불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러고 싶습니다.

 

등단이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지요?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과 옥천문화원, 동양일보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물에도 입이 있다는 것과 그 입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는 걸 알게 해 준 마경덕 시인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직장동료이자 선배이자 영원한 글쓰기 멘토인 이한주 시인, 아니 한주형! 고마워요. 오진엽 시인이 그랬던가요. 형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내게도 그래요.

 

마지막으로 책 본다고, 글 쓴다고 툭하면 방문 닫고 처박히는 아빠와 남편을 그런대로 방치(?)해 준 두 아들과 마눌님, 고맙고 사랑합니다. 감사할 사람이 많은 나에게 또한 감사합니다.

 

 

 

 

 

 

[심사평] 비백과 약졸의 솜씨가 빼어난 작품

 

27회 지용신인문학상은 316명의 응모자가 총 2120편의 작품을 보내와서 어느 해보다도 양적으로 풍성하였다. 이렇게 시인지망자가 폭발적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현상은 현대사회가 아무리 물질만능의 시대이고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정보만능의 시대이지만 인간이 지닌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는 오히려 더욱 소중한 정신적인 가치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다.

 

현대시사의 드높은 봉우리인 정지용 시인의 시적 성취는 이미 우리 민족이 지닌 원형적 상징으로 만고불변의 역사적 사실이 된 지 오래다. ‘지용신인문학상은 지용이 도달한 문학적 가치를 되새기면서 그가 이룬 모국어의 시적 성취 앞에 겸허히 경배 드리는 시인의 등용문이라고 할 수 있다.

 

메밀묵밥’(윤영규), ‘구름 수선소’(최영희), ‘버슨분홍빛 소풍을 마치며’(문예진), ‘저 오름으로 가’(김미경)배웅’(박청환)이 최종까지 논의된 작품이다.

 

메밀묵밥구름 수선소는 시창작의 전형적인 답안처럼 단정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개성적인 파격이 안 보여서 아쉬웠다. ‘버슨분홍빛 소풍을 마치며저 오름으로 가는 개성적인 기교가 돋보였지만 그것이 시의 핵심과 만나 조응하는 시적 의미가 모호하고 평범하였다.

 

당선의 영예를 차지한 배웅은 너무 쉽고 무덤덤한 작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 않다. 잠깐 호흡을 멈추고 찬찬히 읽으면서, 어미 소와 송아지의 울음과 눈물이 행간에 숨어서 시의 영혼으로 변용되는 과정을 알아채면 깜짝 놀라게 된다.

 

손끝의 기교만을 뽐내면서도 실상 시적인 알맹이가 부족한 작품들에 비하면, ‘얼룩백이 황소가/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 노래한 지용의 시세계를 지그시 눈을 감고 연필로 그려낸 원근법(遠近法)이 예사롭지 않다. 비백(飛白)과 약졸(若拙)의 솜씨가 긴 여운을 남기는 빼어난 작품이다.

 

심사위원 유종호 문학평론가·오탁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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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인드라망 / 이선

 

 

차 한 잔 들고 창가로 가면

맞은편 101동이 성큼 다가온다

먼 나라에서 내려오신 함석지붕들

푸른 하늘 모래알 이야기를 받아 적느라

자글자글 삼매에 빠졌다

꼼꼼하게 써 내려간 경문들

구절구절 기왓장마다

흐르는 법문이 팔만이겠다

이렇게 우리 마주 보는 거울이듯

모든 동과 세대들

주고받는 선문답이 무량이겠다

구구절절 날아드는 비둘기들

벽에 갇힌 창문들도 틈틈이 귀를 열고

질서정연하게 밖으로 향해 있다

한 치 흔들림 없는 수평의 감각으로

층층이 견뎌내고 있을 천장들

모두 하나같이 바닥으로 존재할 터

내가 딛고 있는 이 자리

아래층에서 받쳐주듯

위층 이웃들 고단한 몸 뉠 수 있도록

내 생의 천장 높이 받드는 일

누겁의 업장을 녹이듯

하루하루 달게 받들어 모시는 일

삼키고 삼켜도 끓어오르는 솥단지 삼독을

식어 버린 한 모금의 찻물로 달래는 지금은

녹음이 독물처럼 퍼져나가는 상심의 계절

저 멀리 하늘가 햇살 비추이는 아파트들

수미산 그물망처럼 펼쳐져 있다

 

* 인드라망: 인드라(인도 신화의 천신)가 사는 궁전에 쳐져 있는 그물. 부처가 세상 곳곳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하는 말.

 

 

 

 

[당선소감] “하루하루 견뎌내야 하는 일에 대한 시 쓰고파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고군분투하는 삶의 진실 앞에 누구나 절대적인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동네 작은 공원을 찾아 걸어가는 길에서 만나는 동무들과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먼저 생기 가득한 화원 한 귀퉁이에 매어 체념한 듯 짖지 않는 개의 하루에 대해. 길머리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철부지처럼 피어 있는 꽃. 대책 없이 퍼져 나가는 신록의 잎사귀들. 개천가에 이르면 켜켜이 오물을 뒤집어쓰고 처박힌 채 생을 건너고 있는 크고 작은 돌부리들. 뿌연 하수 물도 푸른 은하수를 찾아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존재의 진면모란 티끌 하나에서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무수한 별들도 반질반질 자기 궤도를 닦으며 돌고 도는 일. 어둠 속을 떠도는 외톨이별에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잊지 않는 일. 그의 등 뒤에서 잠시 불 밝혀 주는 일. 우주라는 망막한 거소에서 밥을 나누며 그렇게 우리 함께하는 사이. 거기 진땀을 흘리고 좌절하는 일. 아무도 없는 외진 곳에 앉아 고배를 마시는 일. 밤하늘 금송화처럼 피어나는 별을 바라보며 일어서는 일. 하루하루 다만 견뎌내야 하는 일에 대해 더듬더듬 쓰고 싶다.

 

무엇보다 졸작을 뽑아주신 유종호 선생님과 오탁번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지용신인문학상에 성원을 아끼지 않는 동양일보와 옥천문화원, 옥천군에도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또 외롭게 글을 쓰며 좋은 시를 출품했을 많은 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다. 특히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심사평] 따뜻한 삶의 모습 형상화놀랍도록 참신해

 

지용신인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해마다 더해가는 것 같다. 올해 응모자는 300명을 훌쩍 넘었고 응모작품은 한 사람이 열편 스무 편도 응모한 경우를 포함해서 2000편에 육박하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요즘 날로 더해 가는 시창작에 대한 뜨거운 열기를 가늠해볼 수 있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당선의 영예를 놓고 겨룬 작품은 염종호의 금강초롱’, 윤계순의 그늘들은 가볍다’, 이선의 아파트 인드라망이었다.

 

염종호의 작품은 아주 정밀한 시적 장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흠 잡을 데 없이 깔끔하지만 여기서 한 걸음 내딛는 시창작 주체의 치열성이 조금 부족해 보였다. 관습적인 창작 방법을 탈피하여 과감하게 만의 시세계를 발견해 나갔으면 좋겠다. 윤계순의 작품은 느티나무그림자의 대조를 개성적으로 형상화한 시적 풍경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느티나무 그늘이 일렁거리는 모습을 온갖 사건 사고를 보도하고 비평하는 일간지의 페이지와 비교하는 재치 있는 수사가 너무 작위적인 비유라는 점이 아쉬웠다.

 

당선의 영광을 안은 이선의 아파트 인드라망은 신인이 지녀야할 독창성과 새로운 시창작 방법을 고루 갖춘 뛰어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떤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햇볕 밝게 비치는 아파트의 지붕과 창문들의 풍경을, 엉뚱하게도 제석천의 궁전 위에 펼쳐진 보배구슬 그물인 인드라망으로 순간적으로 기막히게 변용시키고 있다. 이웃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살아가는 따뜻한 삶의 모습이 곡진하게 형상화되고 있는 놀랍도록 참신한 작품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고되고 험난할지라도 시인은 저 멀리 하늘가 햇살 비추이는 아파트를 고즈넉이 바라보는 일이다. ‘내가 딛고 있는 이 자리/아래층에서 받쳐주듯/윗층 이웃들 고단한 몸 뉠 수 있도록/내 생의 천장 높이 받드는 일이야말로 시인이 지녀야할 시 의식의 첫째 자리가 되는 것이다.

 

심사위원 오탁번 시인, 유종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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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잇돌 / 김정숙

 

가물가물 사라진 방망이 소리

황학동 풍물시장에 나와 앉아

깊이 잠겨있는 유년의 시절을

아프게 들어 올리네

 

햇살 팽팽히 내리쬐는 날이면

이불홋청 양잿물에

묵은 설움 푹푹 삶아내어

춤추는 바지랑대 위에서

젖은 가슴 말리시던 어머니

옥양목 빳빳한 기억이

풀먹이던 손 베이고 가네

 

외지에 나가 계셨던 아버지

그곳에 새살림 차리고

한 계절만 집에 들어와

가정을 돌아보고 떠날 때면

배웅 대신 방망이 두드리며

다듬이돌 넘나들던

어머니의 붉은 목울대

눈치 빤히 알고부터

혼자서도 두드려 보던 여린 손이

어머니 마음 바닥에 촘촘히

서려 있는 눈물방울 어루만졌네

 

다듬이 장단 밤늦도록

추임새 흠뻑 매기고 나면

저 혼자 조금씩 아물어 가던 상처

어머니는 없는데 소리만 살아

아직도 생을 다듬질하는 방망이

내 귀를 훑고 가네

 

 

 

 

 

 

 

 

[당선소감] 이마가 하늘에 닿아 바위를 뚫을 때까지 정진할 것

 

연말 모임에서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번호가 핸드폰 액정에 떠서 망설이다 받았는데 축하드립니다

이제 선생님께 김정숙 시인이란 이름표를 달아 드리겠습니다 신문사에서 걸려온 전화가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서 내게 입은 있으나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전국 백일장과 문학상에서 받은 상은 몇번 받아 보긴 했지만 그때마다 시인이란 이름이

거북하여 올리지도 못했습니다. 정상을 향해 치열하게 가슴앓이하며 설친 고통의 날밤으로 몇 계절을 넘나들다 보니 그만둘 수도 없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신춘문예 문학상은 아무나 가까이

범접할 수 없는 아프고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숨 가쁘게 그 길을 통과하여 걸음마를 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시고 늦은 나이가 걸림돌이 될 수 없다는 편견에 손들어주신 동양일보 심사위원님들께 이제 시작이라는 말귀로 알아듣고 진심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오늘 저녁 시간에 벌어졌던 축제의 순간이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이 땅에서의 남아있는 발걸음이

언제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이마가 하늘에 닿아 바위를 뚫을 때까지 정진하겠습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인생의 큰 채찍을 들어주신 동양일보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마다않고 워드 작업을 도와주었던 오주영 요한에게 제일 먼저 소식을 전하며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이 영광과 기쁨을 깊이 간직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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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유년의 실체에서 삶의 성찰력 돋보여

 

26회 신인문학상 공모에 응모한 작품들 중에서 선자에게 넘겨진 작품(579)을 숙독하고 일정 수준작들이란 것과 아직도 응모작에 대한 이해가 미숙한 작품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었다.

선자의 손에 마지막까지 우열을 겨룬 작품으로는 신재근의 모래시계’, 전목의 고양이란 작품과 문영애의 탱자’, 김정숙의 다듬잇돌이란 작품이다.

신재근은 모래시계란 작품으로 텅 빈 가슴 손짓 하나로 모래성을 쌓는다. 줄 것 없는 빈 가슴이 되어야 무언가 받고 나면 줄 수밖에 없는 깨달음의 가슴, 일으킨 굴레에 비어가는 시간 영원의 가슴은 모래성에 묻힌다며 비움과 채움에서 사물의 의미를 찾고 있다.

문영애는 탱자란 작품에서 가시 틈 사이에서, 태양을 꿈꾸고, 가시에도 찔리지 않는 금줄 햇살 당겨, 햇살 씨앗을 품고 있다며, 탱글탱글 영그는 해의 분신이란다. 가시에 찔려도 향으로만 저항하는 여유로운 숙성이란 것을 제시하고 있다.

전목은 고양이란 작품에서 보드라운 털 속에 발톱을 숨기고, 아무도 관심 없이 지나간 시간을 찾아 촉수를 뻗는다. 기억의 저편에 흐르는 눈동자를 찾아 타클라마칸사막에 발이 빠져도, 고독의 절벽의 맛보고 싶은 야성의 발톱에 번득이며 서늘한 눈동자로 걸어가는 당당함을 진술해보이고 있다.

김정숙은 다듬잇돌이란 작품에서 사라진 방망이 소리를, 유년 시절에서 찾는다. 이불 홑청 양잿물에 묵은 설음 푹푹 삶아, 바지랑대 위에 걸어, 젖은 가슴 말리시던 어머니의 삶의 면모를 제시하고, 외지에 나가 새살림 차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의 회상을 통해 방망이로 옥양목 빨래, 배웅 대신 방망이를 두드리며 넘나들던 어머니의 붉은 목울대를 상기한다.

딸과 어머니의 마음 바닥엔 다듬잇돌과 함께 어머니는 없는데, 아직도 생을 다듬질하던 방망이 소리 내 귀를 흩고 간다고 리얼하게 구체적 사물과 사유를 시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김정숙의 다듬잇돌을 당선작으로 내놓는다. 더욱 정진하여 대성하기를 바란다.

 

- 정연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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