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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망설임 없이 / 김충규

 

 

살얼음 같은 어둠을 쪼개며 나비가 날아왔다

그 틈새로 딱딱해지지 않은

액체의 어둠이 주르르 쏟어졌다

날개가 젖어서 나비의 비행이 기울었다

관을 열고 온몸이 얼룩진 시신이 나와

나비 쪽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관 속으로 나비가 들어갔다

펄렁임을 멎고 나비가 누워 눈을 감았다

쪼개졌던 어둠이 봉합되는 소리

미세하고 허공을 긋고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스스로 관이 닫히는 소리

시신이 관을 짊어지고 숲으로 사라졌다

질척한 흙길에 발자국 하난 남지 앟고

고체가 된 어둠이 숲을 감쌌다

쥐들이 다 죽어버려서 숲이 고요했다

 

 

 

아무 망설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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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위원장 강수성)가 '2010 통영문학상' 수상자를 최종 선정했다.

 

통영문학제추진위원회는 김춘수 시문학상에 김충규 시인의 <아무 망설임 없이>(2010, 문학의 전당), 김상옥 시조문학상에 이달균 시조시인의 <말뚝이 가라사대>(2009, 동학사), 김용익 소설문학상에 소설가 김정남의 <숨결>(2010, 북인)을 각각 선정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문학상에는 전국에서 시부문 27명, 시조부문 7명, 소설부문 8명이 응모했다. 특히 시 부문에 많은 사람이 응모하여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송수권·정일근 시인이 시부문을, 박시교·이지엽 시인이 시조부문을 심사했으며, 소설 부문에 소설가 강석경·유익서 씨가 심사를 맡았다.

 

김춘수 시문학상 수상자 김충규(46) 시인은 진주 출신으로 1998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김상옥 시조문학상 수상자 이달균(54) 시인은 함안출신으로 1995년 무크 '시조시학'에 <생명을 위한 연가> 9편의 연작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김용익 소설문학상 수상자 김정남(40) 소설가는 2002 <현대문학> 평론과 2007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됐다. 통영문학상 시상식은 내달 1일 오후 7시 통영문학제 개막식과 함께 문화마당 특설무대에서 열리며 창작지원금 1000만 원이 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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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여게가 도솔천인가 / 문채인(문성해)

 

 

칠성시장 한켠

죽은 개들의 나라로 들어선다

누렁개, 흰 개 할 것 없이 검게 그슬린 채

순대처럼 중첩되어 누워있는 곳

 

다 부질없어라

살아서 쏘다녔던 거리와

이빨을 드러내던 증오

쓰레기통 뒤지던 욕망들이

결국은 이 몇 근의 살을 위해 바쳐진 것이라니

 

뒹구는 눈알들은 바라본다.

뿔뿔이 흩어져 잘려 나가는 팔다리와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날렵하게 춤추는 저 검은 칼을,

 

이제는 검은 길을 헤매다니는 일은 없을 거야

발길에 차여 절뚝거리는 일도

마음에도 없이 꼬리 흔드는 일은 더더욱....

 

좌판들 위에서

꾸덕꾸덕해진 입술들이 웃는다

이제는 물고 뜯는 일 없이 한통속이 된

검은 개들의 나라에서

 

살아서 오히려 근심 많은 내가

거추장스런 팔다리 휘적이며 걸어간다.

 

 

 

내가 모르는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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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겨울숲 우화 / 김충규

 

 

겨울 숲이 뜨겁다 나무들이 서로서로 끌어안고 있어 열기가 뿜어져 나온다 숲속의 좁은 길이 내 발자국을 보듬고 있다 새떼가 후루루 날며 하늘의 푸른 심줄을 당긴다 흙 속 잠들었던 벌레들이 고개를 내민 채 후후 숨을 쉰다 구겨진 햇살이 나무의 밑동을 감고 있다 숲은 고요한데 느닷없이 짐승들이 울부짖기 시작한다 숲 밖으로 말발굽소리 들린다 이를 악문 비명이 찢겨져 들린다 탕, , 총성이 연속적으로 울리고 산이 몸을 뒤척인다 하늘의 심줄을 문 새들이 뚝뚝 피를 흘리며 땅으로 떨어진다 나무들이 일제히 빈혈을 일으키며 감고 있던 어깨를 푼다 내 뒤를 따라 숲으로 들어온 바람이 잔기침을 토하며 새들의 빈집을 흔들어 보인다 그 속에 갇혀 있던 나뭇잎들이 후두둑 떨어지며 숲의 고요는 흩어지고 총성에 섞인 말발굽 소리들 날뛴다 빠르게 해 기울고 온순하던 바람이 얼굴을 벗은 채 칼을 물고 우우 미친 듯 숲을 빠져나간다 숲속은 일순간 어두워지고 숲 밖은 차츰 아우성으로 깊어간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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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조롱박을 타다 / 유종인

 

 

조롱박에 실톱을 들이댔다

덜 익은 하얀 씨앗들,

뻐드렁니처럼 햇살에 웃고 있었다

두 개의 그릇이 갈라져 나왔다

나를 대신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 바가지를 쓰세요

한 몸으론 그냥 썩을 몸,

갈라져 제 속을 파내야

누군갈 오래도록 퍼먹일 몸!

조롱(嘲弄) 때문에 모든 걸 끝낼 순 없다

먼저 타낸 갈색의 씨앗들

담뱃진 잔뜩 낀 이빨로 웃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재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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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 김충규


나무가 잎사귀를 일제히 틔우고 있다
감겨 있던 무수한 눈들이 눈을 뜨는 순간이다
나무 아래서 나는 나무를 읽는다
이 세상의 무수한 경전 중에서
잎사귀를 틔우는 순간의 나무는 가장 장엄하다
이 장엄한 경전을 다 읽어보는 것이 내 소원이지만
나는 안다 이 경전을 읽으려면
마음거울에 먼지 한 점 앉아서도 안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 마음거울은 너무 얼룩이 져 있다는 것을
닦아내어도 자꾸 더럽혀진다는 것을

새들도 이 경전을 읽으려고
나무의 기슭을 찾는 것이다
새들을 끌어당기는 나무의 힘!
나는 그 힘을 동경한다

나무로 집을 짓고
나무로 화살과 창을 만들어 썼던 시대,
그 시대까지가 평화의 시대였다
나무 화살과 창에 맞은 짐승들은
죽는 순간의 고통을 순순히 받아들였으나
금속 화살과 창이 나오고부터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제 나무가 경전인 줄도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나무는 자신을 희생하여 온갖 경전을 기록해 주기도 하지만
나무라는 이름만으로도 장엄한 경전인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세계를 다 망치고 있는 것이다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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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지난 일년은 내게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약을 먹어도 그치지 않는 무서운 기침과 함께 객혈이 쏟아졌고, 마침내 폐결핵이란 진단을 받았던 것이다.

스무알이 넘는 독한 약을 매일 먹어야 했고, 계속되는 현기증과 싸워야만 했다. 그 정도는 견딜 수 있다 하더라도 내가 무엇보다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내를 돈벌이의 현장으로 내보내야 하는 현실이었다.

꼬박 일년 동안 아내는 가장의 역할을 했고, 집안에 틀어박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학이고 뭐고 내게는 다 사치 같았다.

무능력한 가장, 병치레나 하는 가장, 나는 절망 속으로 매일 침몰하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한번도 나를 구박하지 않고 햇살처럼 환하게 웃어준 아내에게 가장 먼저 감사함을 느꼈다.

이제 폐결핵도 완치했고 이렇게 좋은 일도 생겼으니 다시금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창작에 전념하고 싶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두분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따뜻하게 맞이해준 농민신문사에도 감사를 드린다.

고향이 수몰되기 전 농부셨던 부모님, 그리고 나를 옆에서 지켜봐준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낙타는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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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신경희의 <우체국 가는 길>,오부제의 <추억은 적막의 숲에서 서식한다>,류지송의 <지노귀굿>,김충규의 <나무> 등 네 작품이 최종까지 남았다.

네 작품 모두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시를 빚는 능력이 만만치 않다. 그러나 신인의 경우 이런 능력도 능력이지만 이런 능력을 토대로 이 시대 현실이나 자연을 보는 이른바 신인다운 시각이 더욱 요구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신경희의 시는 이 시대 우리 농촌, 혹은 변두리 마을 풍경을 우체국 가는 길을 통해 차분히 노래하지만 다소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오부제의 시는 멋과 흥이 있지만 이런 것들이 다소 상투적이고 자칫하면 감상으로 떨어질 위험이 있고, 류지송의 시는 우리의 고유한 삶의 풍속을 노래한 점이 돋보이지만 이런 풍속이 이 시대 우리 삶에 대한 알레고리로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 점에서 김충규의 시는 나무를 노래하되, 이제까지 우리가 읽어온 그런 나무가 아니라는 것, 이 나무를 통해 산업사회적 가치를 승화시키려는 노력, 말하자면 이 시대 우리가 놓치고 있는 삶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자세가 분명하고, 시를 빚는 능력 역시 단단하다는 점을 높이 산다.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다.

심사위원 홍기삼 문학평론가, 이승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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