숱한 사람들이 최근 이렇게 묻는다. "전태일은 남한사회의 역사 속에서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라고. 이 질문을 구체적으로 바꾸어 말하면 노동자 계급은 어떤 역사 속에서 누구의 손에 의해 탄생하고, 노동자계급의 탄생은 장차 누구의 사멸을 뜻하는가?로 환치된다.
'전태일 문학상'의 본질은 바로 이 질문의 답변 속에 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통해서만 성장. 사멸되는 자본주의 사회체제에 의해 자본을 가진 사람이 자본을 갖지 못한 사람을 임금노예로 고용하여 고귀한 피땀을 빼앗는 데서 노동자계급은 탄생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은 자본의 무자비한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이다. 자본의 경쟁에서의 패배는 역설적으로 가장 인간적임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평한 세상에 대한 열망을 간절하게 지니게 된다. 이것이 새로운 세상을 위한 '인간해방의 전사!' '노동자 계급 해방의 전사!' 가 되어 새날을 열고 새역사를 여는 승리자로 솟구쳐 오르게 하고, 이는 바로 자본가의 발 밑에서 자본가의 무덤을 파서 그들을 묻어 버리게 될 철저한 주체세력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 진보의 합법칙적인 흐름이다.
김종석씨의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는 이러한 과학적 법칙의 기초 위에서 분출되는 노동해방의 피어린 투쟁을 형상화시킨 작품으로, 이제까지의 단시. 연작시를 뛰어넘어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새로운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빛은 김종석 개인에게서 발하는 빛이 아니라 남한사회 일 천만 노동자계급으로부터 내뻗쳐 나오는 새빛임이 현실적으로 분명함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이 순간 새날에 대한 전망과 그 실현과제는 시인 개인의 것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의 진보를 열망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 모두의 것이 된다.
이 땅에 처음 제시되는 노동해방서사시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는 해방을 가로막는 적을 선명히 제시하는 동시에 그 적을 무찌르는 무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마찬가지로 IMB노조의 윤병호씨의 작품 '그대들아'도 시가 사회변혁을 위한 무기가 되어 단결투쟁으로 진군하는 데 밑거름으로 기여하고 있음을 생생한 대립현장을 기초로 하여 훌륭하게 입증시켜 주고 있다.
결심에 오른 이 두작품 외에도 많은 작품이 대체적으로 구체적 현장성이 뛰어나 생생히 와 닿기만 하지마, 현실 그 자체의 묘사에 머무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리고 응모작품이 거의 모두 노동현장이나 노동자 계급의 투쟁을 소재로 채택하고 있는데, 이제는 노동현장이나 노동자 계급의 투쟁의 소재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문제로 시야를 넓혀 이 모든 문제를 소재로 채택하여 철저한 노동자 계급의 입장에서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