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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조령진산도를 읽다 / 김영욱 

 

 

사라진 호랑이가 배꼽을 떨어뜨린 곳은 이쯤일 거야

성곽 옆구리에 엎드려 숨소리에 귀기울여봐

고깔 운무 쓰고 돌아앉은 어미 산

새재를 품에 안은 그림자도 우뚝한데

골짝 물길이 실핏줄로 감아 도는 등고선 한가운데

어느 멸망한 종족의 태실이 있지

예로부터 태를 묻은 곳엔 복이 들었지

장돌뱅이들이 등목을 하던 삼복더위에도

털옷을 걸치고서 평생을 떠돌았을 호랑이가

죽어서도 숲의 으쓱한 쇄골에 덮어둔 가죽은

하룻밤 묵어가는 길손들의 지름길 되고

봄비도 티 나지 않게 몸 낮추는 곳이 있다면

바로 여기 성황당 어디쯤일 거야

처녀치마로 둘러쳐진 아름드리 귀목을

노령의 소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있는 무림에서

아침햇살도 동티가 나지 않게 만다라를 그리는데

흙꽃 위에 두툼한 그늘막을 덮어주는 단풍 손은

어느 내생의 천수보살일까

길이 나기 전부터 탯줄을 품고 있던 이 숲은 보름달의 태반

오래전 궁예가 반달 같은 활을 내려놓고

신의 태엽을 발굴한 물의 나이테가 생사윤회의 바퀴라면

지아비의 발등 위로 불거진 핏줄은 사방으로 뻗은 산맥

못 박힌 발바닥에서 팔자로 갈라진 샛길은

괴나리봇짐 지고 호랑나비로 날아가는 활주로

이 울창한 안개들이 숨겨놓은 수구막이숲

길섶에 묻혀 있는 호랑이의 발품은 미래의 족보라지

예로부터 혈을 지른 자리에서 영웅이 났지

대대로 기를 받는 명당이 있다면

백두대간 등줄기를 제 피로 서늘하게 적시며

진달래꽃밭서덜로 새끼들을 밀어낸 어미의 자궁처럼

옴폭해서 아늑한 여기 이쯤일 거야

 

 

 

 

[우수상] 문경새재를 읽다 / 김겨리

 

 

한 걸음 한 걸음이 문장인 길이 있다

능선으로 제본된 목차마다 행간이 경건한 순례,

일목요연하게 펼쳐지는 둘레길이 고금으로 웅숭깊다

 

철릭을 입은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첫 장을 넘기자 새재의 서곡인 주흘관에 당도하니

관문교 물소리가 풍경風磬이 울리듯 애잔한 건

쥘부채 펴듯 펼쳐진 서사를 다 서술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일출과 일몰로 빚은 윤슬로 밝히는 너덜길 따라

조곡관에 이르러 다리쉼하듯 산세를 굽어본다

발자국과 손길, 와 철로 한 칸 한 칸 쌓은 성곽은

쉼표 없는 문장, 행갈이도 없이 편집된 질곡의 역사다

그랭이 공법으로 축조된 문장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 차곡차곡 집필되고 있으므로

 

등고선에 밑줄 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능선을 넘는다

주흘관에서 조곡관을 지나 조령관에 이르고 나서도

뉘엿뉘엿 지는 해가 부봉에 걸려 있는 것은

아직 다 읽지 못한 새재의 내력을 체득하려 하기 때문인가

 

능선을 넘고 계곡을 지나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관문

문경새재, 오체투지체로 휘갈겨 쓴 절필의 장르여!

 

바위 하나 나무 한 그루까지 문맥이 섬세하다

곳곳마다 탈자와 마모된 비문으로 편집되는 역사이지만

반으로 접어 놓고 두고두고 읽어야 할 지침서이기에

서표로 꽂아 놓은 달빛도 문장 부호가 되는 문경새재는

사계절의 의태어로 빚은 경전을 아직도 집필 중이다

 

 

 

나무가 무게를 버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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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 김완수

 

 

문경 새재 세 관문을 바람처럼 지나간다

볕 드는 곳마다 나는 물박달나무 냄새

당신과의 기억에 쓸릴 때마다

울음이 회갈색으로 조각조각 벗겨져도

단단한 냄새가 발자국을 찍으며 앞서가면

나는 새가 허공에 흘린 소리 같은 바람이 된다

 

눈앞에 아른거리는 봉우리들은

누군가에겐 통곡의 벽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사모(紗帽)의 신기루였을 것이다

땅에 발을 묻은 풀만 봐도 울컥하는 이라면

넘어서려는 마음은 흘려보내고

새처럼 길을 돌아내릴 줄 알아야 한다

산그늘이 젖무덤같이 봉긋봉긋해질 때

발부리에 차이던 생각들도 집을 찾는다

 

나는 아픔과 자기 연민의 사생아

나락에 떨어져 본 사람만이

가없는 길을 오르는 일의 덧없음을 안다

골바람을 배웅하고 문경으로 돌아설 즈음

퇴적된 표정에서 오래전의 얼굴이 돋아난다

나는 내 안에 또 하나의 관문을 만들며

어제가 남긴 길을 훌쩍 지나간다

이미 길을 잃고 찾은 길엔 이정표가 없어

돌아올 때는 세상에 없는 바람이 된다

 

내가 굽이굽이 지나온 시간은

이 고개에서 허물을 벗고 숨 돌리는데

마냥 오르려 하던 당신은 지금 안녕하신지

 

 

 

꿈꾸는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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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불안을 밟고도 시의 꽃은 핀다

 

2020년 우리 모두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낯설고 예측불가인 상황에 부딪쳤다. 코로나 19라는 신종 바이러스는 모두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소통과 교류는 멈췄고 세상은 봄의 문턱에서 차가운 겨울로 되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순리대로 봄은 왔고 꽃은 피고 다시 초록의 물결이 세상을 물들이고 있다. 어려운 시기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지만 우리는 다시 희망의 등불을 켜들어야 한다. 문학의 불씨만은 가슴 속에 간직하여 서로에게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만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문학이 가진 힘이 이런 때 빛이 나리라 생각한다. 불안정한 시기임에 응모작이 적지 않을까 염려했으나 많은 이들이 좋은 작품을 응모해 주셔서 무척 기뻤다. 응모된 281편 작품의 1차 심사를 끝내고 본선 심사를 앞둔 시점에 문경 인근 지역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하여 부득이 하게 심사가 미루어진 점에 응모자 여러분께 양해의 말씀을 드리는 바이다.

 

작년에 비해 응모작의 수준이 훨씬 향상되었음을 느끼며 기쁜 마음으로 심사에 임했다. 다만 다시 지적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잠시 언급하기로 한다. 응모를 할 때는 주최 측의 공모 의도를 좀 더 심사숙고 했으면 한다. ‘문경새재문학상은 문경과 문경새재에 대해 알리고 문경에 대한 애정을 북돋우기 위해 시행하는 문학상이다. 작품 자체로는 너무나 훌륭하고 시적인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도 너무 난해하거나 현학적인 시는 곤란하다. 다수의 작품을 보면서 이런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해 반해 너무 성의 없이 인터넷 검색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시들도 있었고 표현은 요란한데 도대체 알맹이가 없는 시들도 실망감을 주었다. 문경과 문경새재라는 정해진 소재가 있는 시인만큼 그 소재를 얼마나 새로운 시각으로 형상화 시켜서 보여주는지에 심사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알린다.

 

김완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 김겨리 문경새재를 읽다, 오영록 구름 공방, 김향숙 문경새재 아리랑, 김영욱 조령진산도를 읽다, 김국현 태양의 꽃 오미자, 이은정 순례의 영토 문경새재에 들다, 정영숙 물박달나무의 해원최종 여덟 작품을 선정하여 거듭 돌려 읽고 심사숙고 하여 대상으로는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 우수상에는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와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로 확정했다.

 

김영욱의 조령진산도를 읽다는 다른 이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고지도 조령진산도읽어내기를 시로 이끌어온 시도가 훌륭했다. 사라진 호랑이의 존재를 통해 새재라는 공간을 단박에 신화 속의 영험한 공간으로 이동 확장시켜 놓았다. 공간의 이동을 통해 신령한 기운을 품은 호랑이의 발자국이 곧 우리의 발자국임을 상기시키고 그가 남긴 가죽은 길손들의 지름길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신화 속의 세계는 모든 것이 신성하다. 성황당의 오랜 귀목도 손을 펼친 단풍나무도 모두가 존재만으로 수호신이 된다. 이로써 새재는 보름달을 탄생시키고 장대한 산맥들을 길러내는 명당이 되었다. 아무나 찾을 수 없는 새재의 신성한 영역을 보아내고 시로 엮어낸 솜씨가 놀랍다.

 

김겨리의 문경새재를 읽다는 문경새재를 한 권의 서책으로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읽어나가며 시를 완성했다. 막힘없이 읽히는 문장의 수려함이 돋보였다. 매끄럽고 적절한 표현으로 누가 읽어도 문경새재가 눈에 보이듯 아름답게 읽힌다. 자연이 발행하고 문경이 소장한 새재라는 책을 탐독하는 시인을 따라 읽는 이 누구나 함께 마음이 즐거워질 것이다. 특히 낭송을 통해 새재를 전달하기에도 아주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김완수의 새재엔 관문이 네 개 있다는 오로지 오르려고만 하는 욕심을 평생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을 새재의 세 개의 관문을 통해 말하고 있다. 더 높은 곳에 오르려고 애쓸수록 내려올 때는 허무감이 큰 것이 생이지만 그래도 놓지 못하고 자꾸 오르고 싶은 것이 인간사임을 보여주고 있다.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며 그 욕심을 내려놓고 한 꺼풀 허물의 벗을 수 있음을 안도한다. 새재가 내 안에 스스로 만들어둔 또 하나의 관문마저 훌쩍 지나가게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될 것이다.

 

문경과 문경새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소통이 힘든 시기이지만 시를 통해 마음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심사위원 : 황봉학, 엄정옥, 박윤일, 도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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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논을 빨래하는 시간 / 김민철

 

 

어린 벼가 여전히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 것일까

벼의 아랫도리에 잡초가

얼룩처럼 누렇게 묻어 있다

 

그때 우렁이는 세재 가루가 되어 논을 빤다

 

빨판으로 반점이 생긴 잎을 꾹꾹 누르고 펴고

소용돌이를 닮은 껍질로 물을 돌리고

가장자리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아직은 아이처럼 햇살과 놀기 좋아하는

벼의 목덜미에 남은 땀 냄새를 맡았을까

물에서 막 피어난 잡초줄기마저 세척하여

어둠조차 푸르게 만드는 우렁이,

 

오늘도 벼는 매일매일 깨끗한 빛깔을 입고

논물 위에서 살랑살랑 뛰어노는데

 

종종 하루 종일 빨래가 쌓이는 시간이 싫었다

새똥이 가슴팍에 붙어 떨어지지 않고

먹구름이 손발까지 검게 물들면

고무장갑과 앞치마를 벗어 던지고

우렁이는 논두렁 밖으로 나가 울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러나 허리 근육이 얇은 할머니를 생각하며

갈비뼈 하나를 잃은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우렁이는 온몸을 적시며 기어이 빨래를 끝낸다

 

못줄의 간격을 기억하고 있는 벼들이

뽀송뽀송한 갈색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한다.

 

 

 

 

[우수상] 제비 떠난 뒤 / 김완수

 

      

회로처럼 뒤엉킨 도시 한 귀퉁이에 새들이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눈길도 들어가기 빠듯한 초가(草家)에 한 쌍의 새는 찢긴 꽁지들을 다 들여놓지 못했다 집주인의 완고한 눈길은 임대차 계약처럼 강퍅했겠지 간신히 노숙의 한시름을 놓은 집 제비들은 헐거운 현실에서 퍼덕거리며 여름 한철 공중에 얹혀살았다 공동(共同)의 사각(死角)에서 모성을 품고 집주인의 푸대접도 품은 새들 어린것들은 젖은 날개를 접을 새 없던 어미 가슴을 연방 후벼 팠고 가파른 비행(飛行)에서 막 돌아온 아비는 어린것들에게 약자의 처세를 가르쳤다 가끔씩 들리는 악다구니로 초가에 금이 갈수록 어미와 아비는 헤뜨며 서럽게 부둥켰다 그러던 새들이 소리 없이 짐을 쌌다 집 턱밑까지 차오르던 텃세에 한 어린것이 추락하고 난 뒤 잠깐 풍장을 치르던 새들은 오던 길로 망명하듯 날아갔다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을지 모르나 천적의 마음까지 품으려 한 순례였기에 나는 이르게 떠난 새들의 빈자리가 눈에 밟혔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켕기는 객식구 마음이었을까 나는 이제야 폐가처럼 퇴락해 가는 집 아래에 빗더서서 새들이 저릿하게 갔을 길을 따라가 본다 공한지 같은 하늘엔 지상(地上)의 전세난을 비웃듯 구름 한 점 끼어 있지 않다 새들 삶이 무단 철거된 지 막막한 시간 계약 기간이 한참 남았어도 새들이 미련 없이 훌쩍 떠난 집엔 사람들 허세만 거미줄처럼 잔뜩 뒤엉켜 있는데

 

 

 

꿈꾸는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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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붉은 사슴들이 숲의 심장으로 뛰어들고 / 하수현

환상의 숲

 

 

1

 

숲속을 휘돌고 있는 파르스름한 기운에 대해 숲 아래 사람들은 잘 모른답니다 붉은 사슴들이 숲의 심장으로 소리 없이 뛰어들고 나무집 뒤 물푸레나무들 사이로 은밀한 바람이 드는 걸 그대 아시나요

 

숲속에 작은 초록빛 연못이 생긴 건 오래된 일이지요 연못 언저리에 튼실한 부들들이 초병(哨兵)처럼 항시 서 있고 어디에선가 끊임없이 피어나는 수상한 안개행렬은 스스로 백발(白髮)을 풀어 주변을 감싸준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알 수 없는 힘 때문에 나는 이 건강한 나무들의 세상 안에서 세상의 모든 기억을 잠시만 잊어 두기로 한답니다 잊으면 절대 안 되는 것들이라며 늘 손에 꼭 쥐고 있던 것들도 어차피 이 숲에 들면 나도 모르게 다 잊어버리고 말아요

 

그러니 한번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숲속에서 무엇이

 

견고한 진리가 될 수 있겠어요

 

2

 

이 숲을 아는 사람들이 노란 수선화를 숲속에서 몰래 키우는 일과, 청춘의 나비들이 주변을 이미 점령하고 있는 걸 나는 다 알고 있지요 숲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숲이 안고 있는 어떤 신비와 비밀들에 대해 너무 신경 쓸 필요는 없답니다

 

숲길을 걷고 있는 당신을

 

끝없는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일도

 

그 책임은 오로지

 

처음부터 이 숲에 있답니다

 

환상의 숲이여, 안일한 내 일상을 보거든 언제든지 나를 깨워주어요 잠자고 있는 내 꿈을 보거든, 날개 접은 벌레마냥 내가 움츠린 때를 보거든 나를 무조건 흔들어 주어요 숲에서 숨 쉬고 있는 새벽이슬이여, 여름안개를 탄 채 항시 내 영혼을 주시하는, 살아 있는 숲의 눈동자여.

 

 

 

 

 

[심사평] 자연은 자연을 치유하는 공존의 생태계 원리의 핵심

 

평택 생태시 문학상에서 세운 심사기준은 인간에 의한 자연환경 파괴, 인간에 의한 사회 환경 유린, 인간에 의한 인간 존엄성 상실상황에서 제생태계 질서 회복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위기의 생태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고발하고 비판하여 우리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며 살아있는 시인의 소리를 세상 사람들이 경청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데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심사요령은 사회에 문제 상황을 던지고 불평등질서에 대한 사회적 고발과 회복을 위한 노력, 제생태계 질서회복을 제시한 우수한 작품에 점수를 더 주었습니다. 모두 310분이 응모하였으며 총 작품 수는 2170편이었습니다.

 

먼저 대상을 수상한 김민철 시인의 <논을 빨래하는 시간>은 낯설기 기법을 구사하여 생태계의 문제 상황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그 문제 상황이란 자극을 통하여 자연치유로 회생(回生)되어가는 과정인데 이를 잘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할만합니다. 어린 아기로 치환된 ’, 우리의 오염된 생태환경인 ’, 논에서 벼가 건강한 생명을 가지고 생장하려면 반드시 중간자의 헌신이 필요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간자가 바로 우렁이입니다. 우렁이의 알레고리는 자연을 치유하는 자연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연의 본성임을 상기시키고 우리가 이와 같은 본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자연은 인간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농촌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허리근육이 얇은 할머니들과 갈비뼈 하나를 잃은 할아버지들입니다. 그들의 고달픈 농촌 지키기 여정은 우리 현대인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시놉시스입니다. 논의 중간자인 우렁이, 사회로 말하면 중산층. 김민철 당선자는 이들의 건강성이 우리의 자연과 사회 생태계질서를 유지시키는 중핵이 됨을 은근히 시사하고 있습니다.

 

자연생태의 순환도 사회생태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됩니다. 우수상을 수상한 김완수 시인의 <제비 떠난 뒤>도 무너져 내리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란 문제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사회도 무질서와 혼돈적인 카오스에 휘말리면 붕괴되기 마련입니다.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역시 건강한 중간자들의 헌신입니다. 기득권자를 대표하는 텃새들. 그들의 횡포를 극복하는 제비부모들의 절박한 행동은 바로 우리 사회 어둑한 부분을 시놉시스로 차용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사회의 중추기능을 하고 있는 중산층들이 어느 사이 붕괴되어 경제적 궁핍한 좌표로 옮겨갔을 때 조화로운 사회, 살맛나는 사회의 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세상을 궁지에 몰아넣는 허세들만 도처에 거미줄처럼 뒤엉켜있을 것이란 끔직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작을 수상한 하수현의 <붉은 사슴들의 숲의 심장으로 뛰어들고-환상의 숲>은 자극을 통한 회복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붉은 사슴들과 숲은 심장>에서 심장 그 자체는 그 생명체를 존재하게 하는 중심이기 때문에 결코 무너질 수 없습니다. ‘심장이 무너지면 그 생명체는 삶을 종언하고 맙니다. 병이 들어간다는 것은 심장 그 자체가 고장이 난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기관들의 고장인 것입니다. 관상동맥 혹은 협심증 등인데, 바로 이들로 치환된 은유가 붉은 사슴들로 그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숲의 건강성을 유지하게 하는 경락이며 혈 자리이고 생로(生路)이면서 동시에 병로(病路)입니다. 여기에 자극을 주면 다시 말해 붉은 사슴들이 건강하게 숲에서 뛰어논다면 숲의 심장은 계속하여 펌프질을 할 것이고 혈액을 각 기관 및 실핏줄까지 골고루 보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논리입니다. 이 순리의 주관자는 우리에게 영혼을 공급하는 살아있는 숲은 눈동자입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영원한 초월자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사회 생태환경의 구심점을 확실히 인식한다면 우리는 건강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고 시인은 희망적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 심사위원: 이귀선, 진춘석, 김영자, 배두순, 이태동, 한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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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김완수

 

 

레몬은 나무 위에서 해탈한 부처야

그러잖고서야 혼자 세상 쓴맛 다 삼켜 내다가

정신 못 차리는 세상에 맛 좀 봐라 하고

복장(腹腸)을 상큼한 신트림으로 불쑥 터뜨릴 리 없지

어쩌면 레몬은 말아

대승(大乘)의 목탁을 두드리며 히말아야를 넘던 고승이

중생의 편식을 제도(濟度)하다가

단것 단것 하는 투정에 질려

세상으로 향한 목탁의 문고리는 감추고

노란 고치 속에 안거한 건지 몰라 들어 봐,

레몬 향기가 득도의 목탁 소리 같잖아

 

레몬은 반골을 꿈꿔 온 게 분명해

너도 나도 단맛에 졀여지는 세상인데

저만 혼자 시어 보겠다고

삐딱하게 들어앉아 좌선할 리 없지

가만 보면 레옴은 말야

황달 든 부처가 톡 쏘는 것 같아도

내가 단것을 상큼하다고 우길 땐

바로 문 열고 나와 눈 질끈 감기는 감화를 주거든

파계처럼 단맛과 몸 섞은 레몬수를 보더라도

그 둔갑을 변절이라 부르면 안돼

레몬의 마음은 말야

저를 쥐어짜면서 단맛을 교화하는 것이거든

 

레몬은 독하게 적멸하는 부처야

푸르데데한 색에서 단맛을 쫙 빼면

모두 레몬이 될 수 있어

구연산도 제 가슴에 맺힌 눈물의 사리(舍利)일지 몰라

레몬이 지금 내게 신맛을 포교를 해

내 거짓 눈물이 쏙 빠지도록

 

 

 

 

꿈꾸는 드러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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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선소감]  "타자와 사회 치유하는 시 쓰고 싶다"

 

돌이켜 보면 신춘문예 열병을 앓아 온 내 장년기는 좌절의 연속이었다. 장르를 불문하고 불혹의 나이를 넘기도록 십수 년 동안 신춘문예에 낙방해 오면서 글쓰기에 대한 회의와 스스로에 대한 책망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말연시면 나는 늘 깊은 침잠의 겨울잠에 빠져들곤 했다. 하지만 그 열병은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열병이 나 자신을 망가뜨릴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도 그 중독에서 쉽게 헤어날 수 없었다. 열병이 심해질수록 절실함은 더했다.

 

특히 시는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세계였다. 그런데 태산 같은 세계에서 갈팡질팡하며 시작(詩作)을 창작열의 뒷전에 두던 중 시조를 접하면서 절제의 미덕을 배웠고, 정형에서 확장된 자유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 한 해는 내게 참 뜻깊은 해였다. 시심(詩心)의 고삐를 부여잡은 지 오래지 않았는데도 시는 내가 기울인 시선만큼 가능성이란 응답을 줬다. 그리고 그 정점은 아마도 지난 크리스마스 전날에 선물처럼 날아든 당선 소식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두 번째 신춘문예 당선의 영광이었음에도 그 기쁨은 남달랐다. 게다가 문청들에게 신선한 도전의 장()을 마련해 준 광남일보에 간택된 것이니 그 자부심이야 오죽했을까.

 

들뜬 마음을 추스르고 보니 감사해야 할 사람들이 많다. 먼저 지난 도전의 시기에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상처를 받았음에도 시의 응답이란 변함없는 확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내 신념을 누구보다 믿고 기다려 주신 어머니와 미국에 있는, 사랑하는 여동생 내외, 그리고 외로운 글쓰기로 휘청거릴 때마다 든든한 지지대가 돼 준 문우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또 내 신념에 명징한 이정표가 돼 준 광남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앞으로 나 자신보다 타자(他者)와 사회를 치유하는 시를 쓰고 싶다. 문청들이여, 결코 좌절하지 마라. 절실하면 꿈은 꼭 이루어진다!

 

 

 

 

누가 저 황혼을 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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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비판적 사유, 경쾌 통렬한 풍자로 전개"

 

600여 편의 투고작들은 우울한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전반적으로 죽음이나 상실을 노래한 시편들이 많았다. 그 중 세 사람의 시가 마지막까지 남겨졌는데, 이들의 시에 담긴 세계 역시 무겁게 침전되어 있는 모습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그 절망의 바닥에서 희미한 한 줄기 빛을 길어 올리는 일일 것이다.

 

'19910530일 생' 4편은 어두운 자화상이나 불우한 가족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내 안에는 한 마리 짐승이 산다"거나 "저울에 올려놓은 돼지고기처럼 / 어머니의 죽음 을 재본다"에서처럼, 그의 시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그 연원이 깊고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을 좀더 객관화하고 미학적으로 승화시켜 직설적인 차원을 넘어서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반면 '테오에게' 4편은 소재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능란한 편이지만, 충분히 체화되지는 못한 느낌이었다. 다양한 시적 형식과 화자의 설정, 유니크한 리듬 등은 무엇을 써도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역량을 잘 보여준다. 시행이나 이미지의 연결에 있어서도 적절한 비약을 통해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다만, 화려한 언어감각이 내실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집중력이나 되새김질이 좀더 필요해 보인다.

 

'레몬' 4편은 나머지 두 사람에 비해 투고작 전체의 수준이 고른 편이고, 개성적인 목소리와 활달한 상상력이 돋보였다. 시인 이상의 방을 자신의 유폐된 내면과 연결한 '이상(李霜)의 방', 벤치에 앉아 출전의 기회를 기다리는 후보 선수의 애환을 담은 '벤치 워머',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하지만 정작 자신의 병은 돌보아주는 이 없는 '신경정신과 닥터 김의 하루' 등은 현대인의 고독과 비애를 인상적으로 그리고 있다. 어느 작품을 당선작으로 해도 무방하지만, 세상에 대한 비판적 사유를 경쾌하면서도 통렬한 풍자를 통해 전개한 '레몬'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당선을 축하드리고, 그의 시가 "거짓 눈물"을 거슬러 "신맛의 포교"를 힘차게 해나가기를 기대한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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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의 시위 / 김완수

 

 

반디의 아스라한 시위가 궁금했다

다 켜지 못한 불을 꽁무니에 붙이고

구경꾼도 야경꾼도 없이 시위하는 걸 보고서

짠한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한여름밤의 이슬 같은 몸짓이라

그보다 뭔가 고결한 이유가 있으려니 생각했다

 

처음엔 저를 청정으로 내모는 결벽인 줄 알았으나

반디가 제 의식(意識)에서 불면하는 건

서툰 자의가 아니었다

대낮의 쇳소리가 총성같이 울리고

소리의 여백이 산그늘보다 넓을 때

반디는 제가 뿌리내린 숙면에서 깨

의식의 게토로 이주했다

 

사람의 퇴거 명령이 탈바꿈을 재촉하자

반디는 목소리를 키웠다

세상 이목에서 사라질 줄 알아도

날로 산란(産卵)하는 인적은 버틸 수 없었겠지

야박하게 반디들 간을 내먹던 차윤(車胤)*

일찌감치 그 목소리를 읽었을지 모른다

외면의 우범지대에서

내게 황달 같은 불을 켠 반디

 

내 발그레한 시선에 촛농이 떨어지는데

하루살이들의 가열(苛烈)한 시위를 보면서도

손사래로 눈 가릴 수 있을까

이제는 두메 끝 벼랑으로 날아가

촛불을 살리는 반디

반디의 꺼지지 않는 의식이 궁금하다

 

* 가난하여 여름밤에 반딧불이를 모아 그 빛으로 글을 읽었다고 하는 중국 동진(東晉)의 학자

 

 

 

 

꿈꾸는 드러머

 

nefing.com

 

 

 

[심사평]

 

세 사람의 심사위원(황지우 나희덕 신형철)이 각자 진행한 예심에서 추려낸 본심 진출작의 리스트는 거의 일치했다. 특수한 취향에만 호소하는 작품들이 아니라 객관적 기준을 넉넉히 만족시키는 작품들이었다는 뜻이다. 본심에 오른 작품만을 놓고 본다면, 이들

 

작품의 수준은,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의 본심과 비교했을 때 우열을 쉽게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났다. 문학상의 권위는 오로지 응모작의 우수성이 부여해주는 것일 뿐이다. 이만하면 5.8문학상의 권위를 흔쾌히 인정해도 좋으리라.

 

총 여덟 분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반성> 5, <하숙방 참사> 4, <고장 난 체육시간> 9, <반디의 시위> 7, <구름일기> 6, <말을 하고 있었네> 6, <눈동자> 6, <꽃씨의 수화> 6.

 

<반성> 5편은 반성이라는 주제를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는 일련의 연작시들인데, 상투적인 인식과 표현을 배반하고 말겠다는 시인 자신의 긴장 상태가 작품 전편을 관통하고 있고, 말을 하는 방법은 산문적인데도 문장과 문장 사이에는 유려한 리듬이 형성되게 만드는 스타일도 인상적이다. 오랫동안 수련을 한 (아니면 그렇게 느껴지게 하는 기교를 갖고 있는) 응모자로 보인다. 그러나 연작 전체를 보면 뛰어난 결과라고 평가할 만하지만, 개별 작품들이 각자 홀로 설 수 있을 만큼의 독자적 완성도를 갖고 있지 못해서 그중에서 특별히 우수한 한 편을 고르기가 어렵다(, 당선작이 될만한 작품은 없다)는 점이 결정적인 결함으로 지적되고 말았다.

 

<하숙방 참사> 4편은 5.18의 참상을 구체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통해 그려내고 있어서 주제의식이라는 측면에서는 5?18문학상의 취지에 잘 근접해 있다. 여리고 민감한 감수성으로 일상과 기억,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를 넘나들며 죽음의 트라우마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소재의 핍진성에 비해 시상을 전개시키는 힘이나 표현력은 다소 떨어진다.

 

<고장 난 체육시간> 9편은 다채로운 내용과 형식으로 부조리한 현실과 역사의 폭력성을 그려내는 솜씨가 활달하다. <양치기 소년의 증언>에 나타난 잔혹 동화나 <죽음의 춤>에 나타난 이발사의 우화, <귀 먼 자들의 도시>에 나타난 환청과 시체놀이 등은 단순한 알레고리가 되고 만 것이 아니라 풍부한 전언들을 함유하고 있어서, 5.18을 직접 다루지는 않지만, 은유적이고 메타적인 시선으로 역사적 상처를 보편적인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고장 난 체육시간>이나 <사기인간지구력> 같은 미숙한 작품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시적 완성도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지 않은가 한다.

 

<구름일기> 6편의 경우 보내온 시가 모두 골고루 뛰어나지만 <나무도마><살아있는 별>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후자는 한 문장도 더하거나 뺄 것이 없다 할 만큼 잘 짜인 시다. 805월에 대한 책을 읽다가 책에 나오는 어느 아름다운 죽은 사람에 대해 깊이 생각

 

하는 일이, 하늘의 별을 향해 전화를 거는 일이 되고, 그 별이 다시 책갈피에 끼워져 있는, 지금도 살아 있는 별이 되는 이 상상력의 흐름이 아름답다. 그러나 80년 광주를 제재로 삼았으되 그로부터 새로운 역사적 실존적 인식을 생산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는 점, 기타 다른 시들의 단정한완성도가 소박한인식론의 산물인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대상으로 천거할 수가 없었다.

 

<말을 하고 있었네> 6편은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인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다룬 연작들이라는 점에서 5.18의 또 다른 타자를 발굴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 비극적인 죽음을 증언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편 한편에 진심 어린 노력이 투여돼 있다는 것이 충분히 느껴지지만, 시적 형상화는 전반적으로 소박하다.

 

<눈동자> 6편은 언어적 감각이 섬세하고 신선하며, 전체적으로 시적인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일상의 풍경 속에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예민하게 포착해 내고 그것을 오래 되새김질한 문장들이 인상적이다. 이 내성적이고 개인적인 목소리는 충분히 독창적이고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5.18문학상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대상으로 선정하기는 어려웠다.

 

<꽃씨의 수화> 6편에서 특히 빼어난 시는 <꽃씨의 수화>였다. 이 시는 광주항쟁 초기 사망자 중 한 사람인 김경철씨가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사한 유형의 시들이 고루함과 생경함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빼어나다. 과거와 현재, 상처와 극복, 현실과 이상이라는 대립적 구도가 시를 안정적으로 떠받치고 있으며, 꽃씨와 수화의 이미지도 제 몫을 아름답게 해낸다. 부분적으로 어색한 표현들이 있지만, 여느 응모작들보다 한결 더 진실한 울림이 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 응모자가 함께 보낸 다른 작품들의 수준은 이만하지 못했다.

 

결국 대상은 <반디의 시위> 7편을 응모한 김완수씨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데 심사위원들은 흔쾌히 합의할 수 있었다. <반디의 시위><혀짤배기 사관>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둘 중 <반디의 시위>를 대상작으로 선정하기로 최종결정했다. 응모작 대부분이 골고루 우수했거니와, 심사위원들의 아래 논평은 이 응모자의 투고작품 전반에 대한 것이다. 골자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오랜만에 김수영의 시를 다시 읽는 것 같은 강렬한 부정의 정신과 그 심지에서 타오르는 시적 사유가 돋보인다. 군데군데 다소 자의적인 어색함이 시를 뻣뻣하게 경화시키는 대목이 있지만, 텍스트 안에 스스로 꿈틀대는 사유의 근육이 완강하게 느껴진다.”(황지우)

 

간결하고 담백한 시어로 대상을 정확하게 조준해내는 집중력이 있고, 시적인 논리나 구조가 탄탄하다. 5.18이라는 사건의 재현보다는 폭력의 메커니즘을 분석하고 풍자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주제 의식을 확장하고 있다. 지성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딱딱하거나 도식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서정적 온기와 비판적 의식이 적절한 협업을 통해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나희덕)

 

시에서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것이 언제나 제1의 장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도무지 하고 싶은 말 자체가 없어 보이는 시들을 읽다가 지칠 때 즈음이면,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고 그것을 백퍼센트의 상태로 전달하기 위해 역력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작품들 앞에서 반가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작품들이 그러했다. 특히나 5.18문학상이니, 이러한 장점이 더 크게 대접받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는 한편 시적 표현의 묘를 놓치지도 않고 있으니 여러모로 모범적인 작품들이라고 해야 하겠다.”(신형철)

 

김완수씨의 수상을 세 사람의 뜻을 모아 경하(敬賀)한다. 세월호의 비극 앞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해 심각한 물음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와중에 5.18문학상 수상작이 우리의 분노와 슬픔을 논리화하고 역동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는 우리 심사위원들의 마음은 전혀 엉뚱하거나 과도한 것이 아닐 것이라 믿는다.

 

심사위원 황지우, 나희덕,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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