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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 / 김성규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올라가고

굴뚝 위에서는 모든 것이 훤히 보이지요

굴뚝 위에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당신이 없다면 우리 모두 흩어져 울었을 거예요

파업을 지지하러 몰려온 사람들도

이제 지쳤어 , 안 되겠어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자기만의 굴뚝에서 연기를 피우는 사람도

굴뚝 속이라도 들어가 손바닥을 쬐고 싶은 사람도

내려오면 안 돼요 끝까지 버텨 보세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는 사람도

내려오라 목이 쉬어 소리 지르는 가족들도

굴뚝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보이지요

하얀 구름을 찍어내는 굴뚝도 이젠 좀 쉬어야지

모두가 굴뚝 주변에서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울 때

이야기가 사방으로 흩어져 구름이 될 때

지나가던 구름이 굴뚝 위에서 쉬다

근심 많은 사람들 이마 위로 쏟아질 때

드디어 굴뚝에서 연기가 멈추고 공장도 지쳐 쓰러졌어

이제 모두 집으로 돌아가 밀린 잠을 자야지

언제 우리가 굴뚝 위로 올라왔지

굴뚝 위의 사람들은 언제 내려가야 하는지 모르고

내려가야 할 사다리마저 치워지면

굴뚝 위의 사람이 종일 뱉어내는 한숨으로 안개가 끼고

지상의 인간들은 가끔 이야기 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아 눈이 멀어버렸나봐

굴뚝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먼 곳을 보며 노래하네

파업이 시작되고 몇 명은 굴뚝으로 올라가고

 

 

 

[수상소감]

 

수상 소식을 듣고 무언가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내가 받아도 되는 상인가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박영근 선생님을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이십 대의 어느 날 우연히 뵌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고 노래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너무 가엽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골에서 자랐고 시를 썼고 도시로 와서 세상을 바꾸고자 했으나 바뀐 세상에 떠내려가는 모습이 앞으로 저의 운명이 될까 두려웠습니다.

 

삼십 대의 어느 날 시인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선생님을 만났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 시비가 건립되었고 혼자 시비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소주 한 병을 사서 시비에 술을 따르고 저도 한잔 마셨습니다. 공원 벤치에서 한참을 앉아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쓸쓸한 날이었습니다.

 

민중, 어머니, 혁명, 가난이라는 말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간절함은 사라지고 웃고 적당히 서로를 위로하고 살아가려 합니다. 상처받고 미워하지 않으려 교양인이 되어 거리를 두고 살아가려 합니다.

 

세상은 바뀌지 않은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시간이 흘러 누가 이 시인을 기억해 줄까요. 기억이 점점 부서져 가고 있는데 누가 그 시절의 상처와 미움과 설움을 기억해 줄까요.

 

역설적으로 풍요가 우리를 더 가난하고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이 가난함과 추위 속에서 누군가 다시 시를 찾게 될 날을 기다리면서 세상을 살아내야 합니다.

 

며칠간 혼자 박영근 문학상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밤입니다. 많이 부족한 저에게 상을 주시는 것은 슬픔을 가슴에 묻고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며 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그 의미와 가까운 곳으로 다가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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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자기 언어와 타자의 언어가 섞이는 접촉의 그물망

 

박영근 시인은 긴박한 현실과 삶의 에너지가 바로 시를 낳게 한다고 했다. 그 긴장 속에서 시는 대체할 수 없는 언어적 싱싱함을 얻는다. 삶의 언어가 시적 성취를 획득하는 그 자리는, 바로 팽팽한 긴장의 순간이다. 시는 순간의 서정이며, 삶을 품은 언어다. 박영근의 시 세계와 연결되는 작품을 선정할 때, 언어적 싱싱함과 더불어 삶의 언어로서의 현장감도 중요하게 고려하게 된다. 7회 박영근 작품상을 선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시적 성취와 더불어 언어적 현장감도 깊이 고민했다.

 

예심위원들이 추천한 총 14편은 모두 박영근의 시세계가 가지고 있는 미적 성취와 현실의 숨소리를 환기하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그 중 안주철· 조말선· 김사이· 신철규· 김성규의 시를 놓고 숙고와 토론을 거듭했다.

 

안주철의 천변산책분노가 되기 전에 / 안타까움이 되기 전에” “남은 힘을 낭비하려고 천변을 걷는 모습을 그려 냄으로써 노동자의 모습을 해학적이고 반어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수작이다. 조말선의 심야는 야간노동을 검정색이미지로 잘 형상화했으며, 작은 사물들을 내밀한 미의식으로 연결하는 시적 성취를 이뤄냈다. 김사이의 견고한 지붕 아래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체제의 억압을 단단해진 절망을 잘근잘근 씹는 분노와 함께 표현해냈다. 신철규의 인간의 조건은 우주적 상상력으로 코로나 19’의 위기에 처한 인간의 형상을 객관화하는 시대성을 획득한 작품이었다. 이들 작품은 2020년 한국 시문학의 한 성취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은 박영근의 시세계와 보다 더 긴밀하게 이어지는 작품으로 김성규의 굴뚝을 선정했다. 이 작품은 한국 노동계의 아픈 풍경인 굴뚝 고공농성을 시적 언어로 포착해냈다. 2014년부터 2015년에는 구미 스타케미컬 노동자들이 408일간이나 공장 굴뚝에서 농성을 벌였고, 2018년부터 2019년에는 금속노조 충남지부 파이텍지회 노동자들이 서울 목동 열병합 발전소 굴뚝에서 장장 426일간이나 농성을 벌였다. 파업 농성 노동자들의 절박함은 75미터의 굴뚝만큼 높고도 위태롭다. 김성규 시인은 굴뚝에 올라가내려오는 극단의 긴장 속에서 위의 세계와 아래의 세계를 대비시켜 그려냈다. 굴뚝 위 세상은 하얀 구름을 찍어내면서 먼 곳을 향하는 희망의 세계이고, 아래의 세계는 뭉게뭉게 이야기를 피워내며 근심많은 사람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긴장하는 곳이다. ‘굴뚝 고공 농성을 둘러싼 긴장은 브레히트의 시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상과 현실이 팽팽하게 맞서는 현실에 대한 알레고리적 형상화로도 해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시는 얼어붙은 눈물 목걸이로 표현된 아픈 감각이 돋보인다. 유례가 없는 장기 농성 투쟁 과정에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밖에 없는 고단함을 시적으로 포착해낸 것도 소중한 성취다. 시인의 언어와 타자들의 언어가 섞이는 다중의 발성이 시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는 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김성규 시인은 힘없는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시편들을 쓰고 싶다는 마음가짐을 피력했던 적이 있다. 7회 박영근작품상 수상이 그 귀한 마음에 큰 힘을 보탤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성규 시인에게 깊은 존중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 심사위원: 김해자(시인), 박수연(문학평론가), 오창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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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 김성규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시신은 부장품과 함께
바닥의 얼룩과 물을 끌어다 쓴 흔적을 설명하려
삽을 든 인부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
사방을 널빤지로 막은 동굴에서
앞니 빠진 그릇처럼
햇볕을 받으며 웃고 있는 가족들
기자들이 인화해놓은 사진 속에서
들소와 나무와 강이 새겨진 동굴 속에서
여자는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고
사내는 짐승을 쫓아 동굴 밖으로 걸어나갔으리라
굶주린 새끼를 남겨놓고
온몸의 상처가 사내를 삼킬 때까지
지쳐 동굴로 돌아오지 못했으리라
축 늘어진 젖가슴을 만져보고 빨아보다
동그랗게 눈을 뜬 아기
퍼렇게 변색된 아기의 입술은
사냥용 독화살을 잘못 다루었으리라

입에서 기어 나오는 구더기처럼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실린 기사가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새벽
지금도 발굴을 기다리는 유적들
독산동 반지하동굴에는 인간들이 살고 있었다

 

 

 

2004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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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한 소년이 검은 배를 띄운다. 눈을 감고 바다의 폭을 가늠해 본다. 노을이 지자 닻을 올린다. 며칠 동안 노를 저어가자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 닻을 올렸을 때와는 바다의 깊이와 폭이 다르다.

 

여러 번 낙선을 하고 당선통지를 받았다. 책장에 꽂혀있는 책을 바라본다. 시를 쓴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인간의 이중성을 파헤치는 것, 인간의 아름다움과 비참함을 노래하는 것, 인간의 위대함과 인간의 초라함을 불평하는 것, 인간이 인간을 구원하려다 실패하는 것.

 

어두워지는 물결을 떠다니며 소년은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야 될까. 얼마나 왔으며 또 얼마를 더 가야하는가. 처음 출발할 때의 소년은 이미 청년이 되었고 소년이 닻을 올렸던 해안은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기 위해 닻을 올린다.

 

자식을 구원하려다 이제는 반백이 되어버린 부모님께 밥 한끼라도 차려드려야겠다. 같이 표류하고 있는 문학회 친구들, 부족한 제자를 다독여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내 시가 부족함에도 돛을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함부로 닻을 내리지 않을 것임을 약속한다.

 

 

 

 

너는 잘못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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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당선작을 골라내지 못했던 지난해의 부담 탓일까? 예심을 거친 스무 명의 작품을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선자(選者)들은 공연히 긴장되고 조바심이 났다. 작년에 비추어 올해의 응모 시편은 시적 진지함이나 다양성에서는 확연히 향상되어 있었다. 그러나 판에 박힌 수사나 장식적 언술 탓인지, 작품의 개성이나 진정성을 드러내는 데서는 별다른 진전이 느껴지지 않았다. 산문 투의 엇비슷한 넋두리도 여전하였으며, 한 두 편 돋보이는 응모 시만으로는 그 가능성 또한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선자들이 주목한 시편은 최동일, 이상훈, 주예림, 정구영, 문신, 김성규 제씨의 작품들이었다.

최동일씨의 시에서는 삶의 풍경과 굴곡을 읽어내려는 투명한 시선이 살펴졌다. 그러나 「할머니를 바라보다」외에는 시야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상훈씨와 주예림씨의 경우는 소외된 삶의 애환을 능숙한 솜씨로 공들여 시화했다는 점에서 장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익숙함이 어딘지 모르게 낡았다는 인상을 갖게 하였다. 정구영씨의 응모 시들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시어의 선택도 비교적 선이 굵고 선명하다. 그럼에도 직조된 시상이 다소 작위적이어서 시의 깊이나 높이로 확산되지 못하였다. 똑같은 지적은 문신씨의 응모 시에도 적용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응모자는「우리들의 생활」과 같이 범상한 일상성을 따뜻하게 갈무리하는 작품도 함께 묶고 있어서 마지막까지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결국 신춘의 지면을 장식하기에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김성규씨의「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가 당선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위에서 지적된 단점들이 비교적 적게 살펴졌던 까닭이다. 암울한 세태를 바라보는 시선의 무거움을 수사적 절제로 감당해내려 한 그의 태도도 시적 상상력을 한결 돋보이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작품들간의 편차가 심하다는 것을 아울러 지적해 두어야겠다. 축하와 함께 분발을 당부한다

 

- 심사위원 유종호(문학평론가) 김명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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