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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 김민정

 

1

자물쇠 단단한 철창 안에서만 잠들 줄 아는 날 내다 팔기 위해 오늘도 아빠는 포수로 그림자를 갈아입는다 나는 도망치지만 발빠르게 허골아가는 외발자전거는 땅속 깊이 층층 계단으로 쌓아 내린 뼈 마디마디를 뭉그러뜨리며 또 다른 사각의 메인 스타디움 안에 발 빠진다 끝도 없이 페달을 감아대는 페이스 끝에 홈스트레치에 접어들자 관중석마다 빽빽이 들어차 있던 나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내 나침반을 겨냥한다 어서어서 속력을 더 내렴, 너만 도착하면 완성된 퍼즐 속에서 우리들 되살아날 수 있을 거야 숟가락 들어 한 입 떠낸 아이스크림 같이 희게 휜 등뼈로 사격용 표적 하나 전광판에 부조되어 있다 포물선을 타 넘어가는 장외 홈런볼에 올라탄 내가 엿같이 찰싹 하고 내 실루엣 위에 달라붙는 순간, 탕! 소리와 함께 아빠의 눈알이 10점 만점의 놀라운 타격 솜씨를 자랑하며 과녁 중앙을 홉뜨고 들어온다 아빠가 마스카라 칠해 달군 속눈썹 깜빡거릴 때마다 내 몸에서 부서져 내리는 퍼즐 조각들이 까만 섬유소의 꼬임 안으로 쏟뜨려진다 그러나 낄낄거리며 인조 속눈썹을 떼어내는 아빠, 그걸 방비 삼아 내 키만 한 007가방 안에 나들을 싹싹 쓸어 담고는 자물쇠를 채워버린다

 

2

아빠가 도끼로 007가방을 내리찍는다 아야, 아야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저들끼리 자꾸만 부둥켜안으려는 퍼즐 조각들을 아빠는 시침 가위로 잘게 더 잘게 오려낸다 고춧가루처럼 매콤한 근육가루들이 아빠의 베게 옆에 잠들어 있던 발가벗은 마네킹의 몸 위로 솔솔 뿌려진다 코끝을 간질이는 제 피 맛에 재치기를 안으로 삼키느라 마네킹의 젖퉁이와 엉등이가 부풀고 있는 풍선처럼 똥글똥글해진다 고장난 수도꼭지에서 새어나오는 끈적끈적한 물풀로 손 버무린 아빠가 허겁지겁 마네킹의 몸에 퍼즐 조각들을 갖다 붙인다 잠깐만요 아빠, 설사를 참을 때처럼 뜨거워지는 입이 내 목젖을 쥐락펴락하고 있어요 눈을 뜨니까 난소 뚜껑이 벌어지고 코를 푸니까 피범벅인 태반이 뭉클 쏟아져 나오는 걸요 살 썩고 난 부엉이 같은 내 얼굴에서 솟고라지고 있는 이 털들 좀 보세요 대체 이게 뭔 일이래요?

 

3

지하에 계신 음부와 음모가 침봉으로 내 얼굴에 난 털을 벗긴다 나는야 털북숭이 라푼젤, 짜다 푼 목도리의 털실같이 꼬불꼬불한 털을 발끝까지 내려뜨린 채 울고 있다 울음을 짜보지만 눈물은 흐르자마자 냄새나게 덩어리지는 영일 뿐, 에이 더러운 년 킁킁거리며 내 얼굴을 냄새 맡던 음부가 빨간 포대기같이 늘어진 혀로 내 털 한 가닥 한 가닥을 싸매 핥는다 조스바를 빨던 입처럼 음부의 혀끝에서 검은 색소가 뚝뚝 떨어진다 이제부터 이게 네 머리칼이야, 알았어? 음모가 스트레이토용 파마약을 이제부터 내 머리칼인 털 한 가닥 한 가닥에 찍어 바르더니 참빗으로 쭈쭉 펴 내린다 물미역같이 홀보들한 머리칼을 부르카처럼 치렁거리며 나는 음부와 음모의 손에 잡힌 채 시장으로 끌려간다

 

4

장터에 도착하자마자 껍질 벗겨 통째로 삶은 계람처럼 맨송맨송한 머리통들이 내 주위에 둘러선다 수많은 볼링핀들이 저 먼저 머리 쪼매고 싶어 그 굵은 허벅지로 서로가 서로에게 허벅지후리기를 해대더니 눕자마자 발딱발딱 잘도 일어난다 십자가에 날 뚜드려박는 아빠의 망치질이 다급해지고 엄마가 떨어뜨린 대못이 구경 나온 아이들의 발등을 찍는다

꼬아 내린 검은 밧줄을 타 오르고 싶어 질금질금 오줌 지리고 있는 오뚝이들에게 이런 젠장, 염병할 놈의 요강 같은 평화 있으라!

 

5

아빠가 나눠준 족집게로 오둑이들 차례차례 내 머리칼을 뽑아댄다 나이스 풀러, 예 좋아요 그치만 한 번에 딱 한 가닥씩이오 머리칼이 뽑혀나가 입 벌어진 모공 속에다 엄마 색색의 셀로판지로 깃대 단 이쑤시개를 꽂아 넣는다 쑥쑥 잘 크거라 내 나무야 엄마가 물조리개로 물을 뿌려 주자 나는 화살이었다가 우산이었다가 낙싯대였다가 장대높이뚜기용 장대로 키 자라는 한 마리의 거대한 고슴도치가 되어 쀼쭉쀼쭉한 털들을 비벼대기 시작한다 울울창창한 가시숲에서 색색의 단풍이 물들어 나리자 여기저기 달아든 담뱃불로 지져진 내가 폭죽처럼 하늘을 향해 쏘여진다 색색의 꽃방석을 뒤집어 쓴 채 날으는 고슴도치 한 마리, 사방팔방 불붙은 가시를 발사한다 땀구멍마다 날아든 가시로 아빠는 밤송이가 되어가고 밤송이 브래지어와 밤송이 팬티를 주워 입은 엄마는 간지러움을 참다못해 숨이 꼴깍 넘어간다 밀고 난 겨드랑이 털의 흔적처럼 까슬까슬한 오뚝이들의 정수리 위로 시뻘겋게 달궈진 철골 한 줄 선 굵게 내리꽂힌다 얼굴에 금이 간 핫도그들, 서둘러 몸에 박힌 프랑크 소시지를 먹어치우려 하지만 끝끝내 가시지 않을 탄내를 언제까지나 기억하고 있다.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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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화기념사업회는 제33회 이상화 시인상에 김민정 시인(42)을 선정했다고 14일 밝혔다.

 

심사위원단(오탁번 전 고려대 교수, 장석주 시인, 장옥관 계명대 교수, 이규리 시인)은 이병률, 김민정, 문성해 시인을 최종 대상자로 꼽았으며, 논의 끝에 김 시인을 수장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김 시인을 두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어떤 주의, 관점에도 눈치 보지 않는 그만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다. 내적 저항이 있으며 말과 말 사이의 탄력이 거침이 없다. 특히 시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누추한 자신을 더러 내는 용기, 즉 칼끝을 자신에게로 향하는 의식이 값지다고 평가했다.

 

김 시인은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는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아름답고 쓸모 없기를>이 있고 산문집 <각설하고>가 있다. 박인환 문학상,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상화 시인상 시상은 오는 25‘2018 상화문학제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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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가리 노래방을 지날 때 / 김민정

- 일종의 라는 것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앙서점이나 남짜장’* 처럼 글자 하나 툭 떨어진 의외의 간판으로 마음 쿵 하는 경우라야 참 흔하다지만 그래도 발견하는 재미 꽤 쏠쏠하여 길 가다 우뚝 여기 어딘가 둘러볼 때가 있지

 

대낮이라 더 깜깜한 거기 그 가리, 가리 노래방 아래 나는 서 있었고 그건 배호나 고복수를 불러 제낄 때의 아버지처럼 비장을 건드리는 것이어서 나는 씁쓸과 쓸쓸 사이에서 창이나 슬쩍 열러둔 참이었는데

 

그때 들리는가, 모래바람이 인다고 했지 모래알갱이도 잘근잘근 씹힌다고 예사 사막인가 신발 벗으니 모랫발도 탈탈 털린다고 누군가는 말하였고 어떤 분은 말씀하셨는데 그게 무슨 멍게 여드름 짜는 소리래요, 닭살이나 긁는 나는 뱀살이나 비비는 나는 모레도 아니고 모래라니까 매일 아침 이 거리를 조깅하는 아가씨의 발목에 찬 모래주머니라도 찢어볼 요량으로 칼이 좋을까 모종섭이 좋을까 펜을 고르는 재미로다 라 하였는데

 

그건 아니라 하고 그건 틀렸다 하고 초 없이도 굳은 심지를 토하는 그분께선 부르면 답이요 받아 적으면 라 하였는데 초인이신가 만주벌판에서 말 타고 오신 선구자신가 농담인데 장난도 인생인데 왜 버럭 성은 내고 그러실까 이런 데서 화내시면 얼어 죽는다는 노래나 아실랑가 내 썰렁함의 전언은 바라건데 유대 일번지의 최양락처럼 안 괜찮아도 괜찮아유, 하는 것일진대 목도리는 왜 겹겹으로 싸고 그러실까 가리 하면 오리도 있지 않을라나 내 썰렁함의 두 번째 전언은 바라건대 일밤의 김정렬처럼 숭구리당당으로 힘없으면 다리 풀면 될 것일진대 이빨은 왜 앙다물고 그러실까

 

불쑥 이라는 붉은 글자나 달아볼까 이고 나오시는 주인아저씨는 가리용가리사이에서 아슬아슬 시소를 타는 우리들의 를 알까나 모를까나 어쨌거나 우리들의 는 오늘도 우리들의 오버로만 돌고 돌아 빙고!

 

* 양서점은 유강희 시인, 님짜장은 이규리 시인의 시 제목에서 빌음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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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자로 김민정(31·사진) 시인이 선정됐다. 박인환문학상을 주관하는 인제문인협회(회장:최병헌)와 계간 `시현실'은 김시인을 올해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수상작은 `어느 날 가리 노래방을 지날 때' 4편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최승호 시인은 심사평에서 김민정의 시는 자연스러우면서 재미있게 읽힌다. 그는 입심이 좋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제멋대로인 시인이다. 그만큼 자유롭고 개성이 있다. 시 속의 장난기는 의식의 가벼움이자 천진성이기도 하다고 소개했다.

 

최 위원장은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계는 지리멸렬한 실망스런 세계이고 인생은 진지할 필요가 없는 별것도 아닌 인생이다. 희망을 상실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는 농담, 넉살, 패러디, 난센스, 해학, 언어의 유희, 동화적인 환상 같은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끌어다가 시 속에 집어넣으면서 비빔밥처럼 맛깔스러운 나름대로의 스타일을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김민정 시인은 인천 출생으로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대학원을 나왔다. 1999`문예중앙' 신인문학상 시 부문에 검은 나나의 꿈9편의 시가 당선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가 있다.

 

시상식은 제8회 박인환문학제 기간인 1013일 오후 4시 인제문화관 대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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