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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 김미나

 

 

달 거미 한 마리 지붕을 밟고 목련나무로 걸어와요

 

거미의 집을 허무는 게 아니에요,
물웅덩이를 만드는 게 아니에요

 

솜 트는 기계 멈춰있는 집 앞의 목련나무
꽃송이 안으로부터 달이 솜털을 짜기 시작했나봐요
자동차 바퀴에 찍힌 고양이 울음소리도 되살아나요
솜이불을 짜는 소리 할머니의 귓바퀴에 감겨요

 

나는 벼락처럼 자라난 목련나무의 꽃과
달의 이빨들이 하나의 틀을 이루는 소리를 생각했어요

 

먹구름을 집어 삼킨 듯 검게 물드는 것들은
솜틀집 앞 배수구에 걸려있나봐요
그늘 쪽에 얼어있는 지난 봄눈 덩어리들이
아지랑이를 피워 올려요 아직 꽃샘추위는 발끝을
야금야금 베어 물고 있었죠

 

그러니까 목련들도 밤의 이불을 덮고 싶어
나뭇가지 침대에 꼭 맞는 그믐이 올 때까지

 

할머니의 꽃상여를 짜듯
깊은 어둠을 지우려고 달의 이불을 짜고 있나봐요

 

봄눈 녹자 귀신도 볼 수 있다는 물웅덩이엔
달과 목련과 거미가 한 가계(家系)에서 태어났다는
소문이 고여 있었어요 이불 한 채에 그려진 목련나무,
노란 나비들이 먼저 날아와서 날개를 풀고 있었어요

 

 

 

 

[심사평]

 

예심을 거쳐 열다섯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모두 나름대로의 발견과 인식은 있었으나 새로운 것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시 쓰기는 유행도 없고 왕도도 없다. 따라 쓰기도 흉내 내기도 용납하지 않는다.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한번 겨뤄볼만한 일이다. 가을문예는 바로 그 길을 가는 등용문이다.

 

시인에게 발견이 새로운 가치라면, 신인을 발견하는 일도 새로운 가치라 할 수 있다. 그 가치란 신인답게 참신하고 패기 있으며 앞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는 작품을 뽑는 일이다. 그래서 수많은 시들 중에서 골라야 하는 고충을 뽑는다고 말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시는 김성진의 '육분의 자리' 외 8편과 김미나의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외 9편이다.

 

'육분의 자리' 외 8편은 사물을 보는 시각이 남다르게 넓고 어떤 존재론적 고뇌와 성찰도 보였으나 시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언어적 기량을 뛰어넘는 원초적 힘이 미흡한 점이 아쉬웠다. 그 점만 깊이 생각한다면 내적인 리듬이 묘한 울림을 주는 좋은 시를 쓰리라 믿는다. 반면에 '달과 목련과 거미의 가계' 외 9편은 우선 제목에서부터 개성이 묻어난다. 그 자체가 가볍게 자연과 하나의 지경을 이룬다. 발상이 참신하고 삶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섬세한 언어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이 돋보이면서 섬세하고 연연하다. 말에 정감이 있고 상상력의 발랄명랑함이 있다. 그럼에도 은은한 슬픔을 건네준다. 작위적이지 않고 상투적인 말도 없다. 그래선지 그의 시에는 현실 너머를 생각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독자를 느껴져서 알게할 뿐 따라서 납득시키려 하지않는 것이 그의 장점이다. 앞으로 생의 성찰과 내공이 쌓인다면 매우 넓은 시의 지평을 가질 것이다. 야생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천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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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꽃은 뱀을 몰고 온다 / 김미나

 

꽃은 뱀을 몰고 온다고 하였다

그때 나무는 아득히 묻힌 땅 속의 긴 폭풍을 가지고 왔다

소용돌이치면서 피어나는 것은

 

꽃이 아니라 꽃살문에 비치는 햇볕

 

흙 속에 허물을 길게 벗어두고 튀어 오르는 뱀을,

우리는 구불거리는 나무라고 불렀는데

가지 끝에 매달린 그늘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는데

 

나무는 두근거리는 비을을 안은 채

대가리로 공기와 흙을 밀어낸다, 그때

꽃은 독을 질질 흘리고

입에선 한 점 봄이 질질 새어나오고

 

툭 불거진 뱀을 ㅁ\보고

그만 발자국은 꽃잎을 밟고 혼비백산,

산안개 자욱했던 봄도

발이 달려 있는지

발톱만큼, 개미걸음만큼

꽃이 비늘을 몰고 오듯이

걷고 있었다

꽃을 먹는 것들이 사는 마을

지붕 너머 쓰러진 사람들 두고

불쑥 떠오른 구름인 줄 알고

딴청 피우듯이 새소리를 찔러 넣고 다녔다

 

< 수상소감 >

행복하면 불안하고 불행하면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제 행복을 망치려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저의 주변인까지 힘들게 했습니다. 그 까닭으로 제 행복이 불안하고 힘들었습니다. 내가 행복하면 다시금 나와 내 주변인들이 아파할거라는 생각이 가슴 한편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스스로가 스스로의 행복을 증오해서 자꾸만 숨어들려고 했습니다. 그럴 때 다시 행복해보자며 끌어내준 나의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저는 저의 행복을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이 되었고 더 이상 나의 행복이 불안하지도, 증오스럽지도 않습니다. 제 행복을 보며 “수고했다”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또, 나의 사람들과 행복의 감정을 나누어줄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김포문학상에게 감사합니다.
한창 갈피를 잡지 못했을 때 무작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뜻밖의 여행에서 저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났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제 시가 되어주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되어준 모든 사물과 자연과 사람들에게 감사합니다.
‘행복’을 정의 내리고 싶어서 노력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결국 아직까지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정의 내리지 못했지만 아마 저는 지금 행복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행복에 대해 더 생각해봐야하겠지만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잘 보이는 거라고,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더 감사하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그 불행에게도 감사하고 “덕분에”라는 말을 남기고 싶습니다. 이 말을 할 수 있게 된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모든 것들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행복하겠습니다.

 

 

 

 

[우수상] 봄엔 다 그래요 / 노수옥

 

우리 집 자()들이 조금씩 자랐어요

그만큼 세상의 길이들은 줄었겠지요

의자들은 부풀고요 치마들은 뚱뚱해졌어요

언니들은 뒷굽을 조심해야 해요

평지들이 뒤뚱거리니까요

 

봄엔 다 그래요

할머니는 초록 머리카락이 새로 나고

흔들리던 이빨은 모두

새로운 뿌리가 생겨 단단해졌대요

지친 아지랑이가

노인의 이마에 와서 눕고요

삼각 혹은 길쭉한 씨앗도 모두

동그란 열매를 생각한대요

 

나도 새로운 말투로 말 몇 개를 바꿔야겠어요

말은 관계들 사이를 헐렁하게 풀어놓고요

이름마다 보풀이 일어나요

저녁이 되면 전등이 저벅저벅 걸어와요

조심해, 그건 넘어지는 방법이야

새로운 말투로 알려주고 싶어요

 

봄의 모서리가 줄어들면

태양은 더 둥굴어지고

밤은 착한 마음씨처럼 훈훈해져요

창문은 문틈에 푸른 귀를 매달아요

다 자란 삼각자는 삼각을 낭비하고요

줄자는 길이를 낭비해요

그건 헤픈 것이 아니래요

길이를, 사이를 줄이려는 거래요

봄엔 다 그렇대요

 

< 수상소감 >

끝을 눈여겨보겠습니다

“끝이니까” 라는 말을 “시작이야” 라는 말로 오해하겠습니다
모든 순위(順位)를 존중합니다
아득한 수평선을 만나면 일부러 넘어지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서 처음이 되겠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모든 것이 처음이고 결과입니다
봄에 그랬다면 여름에도 가을에도
다 그럴 것입니다

주저하며 응모한 시가
빛나는 순위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어떻게 긍정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분명 미흡한 시였습니다
심사위원님들의 감사한 선정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런 기쁨일이 일어났겠어요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고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시의 길로 인도해주신 마경덕 선생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문학상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해주신 박선생님
힘이 되어주는 중앙대 잉걸회 문우님들 고맙고 감사합니다
격려를 아끼지 않는 딸 윤정이 아들 영진이네 가정 축복하고
든든한 울타리가 돼 주는 남편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언제나 내편이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시>

제18회 김포문학상 공모에 시 부문은 모두 865편의 시가 응모되었다. 그 중에서 예심을 통과해 내게 온 詩 마흔 한 분의 작품과 동시 열다섯 분의 작품들은 매우 진지한 태도로 세계를 관찰하는가 하면 최근 우리 시의 도전의식을 보여주는 젊은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지역과 연령층에 상관없이 응모작 속에 좋은 작품이 많다는 뜻이다. 김포의 지역성이 문학을 매개로 해서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반증이어서 반가웠다.

최종심에는 다섯 분의 작품이 올라왔다. 박정애(전북 군산)의 「두바이, 두바이」는 한 편의 시에 서사를 앉히면서 어떤 박진감 있는 분위기를 능숙하게 연출한다. 상상의 폭이 넓고 언어는 활달하다. 다만 드라마틱한 서사를 구성하면서 극단적인 시어를 자주 등장시키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활자를 눕히거나 불필요한 부호를 남용하는 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 신진향(경기 광주) 「마트료시카와의 인터뷰」는 친근한 구어체를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시에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하고 있다. 거침없는 전개 능력과 적재적소에 배치된 사유의 힘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그게 수다스럽고 장황하다는 인식을 주면서 감점 요인이 되었다. 「소경목림」의 김종화(인천 부평) 응모자에게도 앞에서와 같은 지적을 해주고 싶다. 시가 단정한데 갑갑하고 깜찍한데 불안하다. 목소리가 명랑하지만 조급함이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 세 분에게는 시의 호흡에 대해 좀 더 고민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동시 부문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있어 최종심에 올리지 못했다.

우수상으로 뽑은 김미나(경기 구리)의 「꽃은 뱀을 몰고 온다」는 전통적인 서정이라고 부를 만한 세계를 자신만의 기법으로 차분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원래 제시했던 꽃과 뱀과 나무의 이미지를 변주하는 능력도 만만치 않다. 삶의 구체성에 더 렌즈를 들이대보라는 말을 하면 욕심일까. 노수옥(경기 안양) 「봄엔 다 그래요」를 또 다른 우수상으로 골랐다. “우리 집 자(尺)들이 조금씩 자랐어요/ 그만큼 세상의 길이들은 줄었겠지요” 이렇게 시작하는 서두는 단번에 독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봄이라는 계절의 아름답고 섬세한 변화를 감각적인 이미지에 실어 표현한 이 시의 따뜻한 여운을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수상자에게는 술 한 잔을, 고배를 마신 분들께도 또 술 한 잔을.

(안도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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