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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이준관

 


2. 수상작품 :  「가을 떡갈나무숲」 외 5편

 


「가을 떡갈나무숲」

떡갈나무숲을 걷는다. 떡갈나무잎은 떨어져
너구리나 오소리의 따뜻한 털이 되었다. 아니면,
쐐기집이거나, 지난 여름 풀 아래 자지러지게
울어대던 벌레들의 알의 집이 되었다.

이 숲에 그득했던 풍뎅이들의 婚禮,
그 눈분신 날개짓소리 들리 듯 한데,
텃새만 남아
山 아래 콩밭에 뿌려둔 노래를 쪼아
아름다운 목청 밑에 갈무리한다.

나는 떡갈나무잎에서 노루 발자국을 찾아 본다.
그러나 벌써 노루는 더 깊은 골짜기를 찾아,
겨울에도 얼지 않는 파릇한 산울림이 떠내려오는
골짜기를 찾아 떠나갔다.

나무 등걸에 앉아 하늘을 본다. 하늘이 깊이 숨을 들이켜
나를 들이마신다. 나는 가볍게, 오늘 밤엔
이 떡갈나무숲을 온통 차지해 버리는 별이 될 것같다.
떡갈나무숲에 남아 있는 열매 하나.
어느 山짐승이 혀로 핥아보다가, 뒤에 오는
제 새끼를 위해 남겨 놓았을까? 그 순한 山짐승의
젖꼭지처럼 까맣다.

나는 떡갈나무에게 외롭다고 쓸쓸하다고
중얼거린다.
그러자 떡갈나무는 슬픔으로 부은 내 발등에
잎을 떨군다. 내 마지막 손이야. 뺨에 대 봐,
조금 따뜻해질거야, 잎을 떨군다.

 

 

 

천국의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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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장 호(시인), 김종길(시인, 고려대 교수), 김윤식(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황동규(시인, 서울대 교수), 김재홍(문학평론가, 경희대 교수)

 


4. 심사평

 

나는 먼저 김달진을 머리에 그리며 여섯 편의 시편들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그 일은 도로에 그쳤다. 당연한 일이지만 김달진에게서는 인간 삶의 땟국이 씻겨져 가뭇없는데 이즈음 시는 오히려 그것을 시의 알갱이로 잡아내려 들고 있으니 거기 그런 흔적인들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나는 나대로 생활현장이 그대로 작품에 노정되어서는 이건 정 김달진과는 연줄이 닿을 수가 없다는 생각으로 후퇴했다. 그러고보니 나름대로는 절반 숫자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거론된 분들이 모두 그만한 연조를 지녀 저마다의 빛깔로 압도해오는 터에 어느 한 작품, 어느 한 사람을 집어내기는 망설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 이준관씨의 10편은 기복이 없이 모두 어느 수준을 넘어서고 있었다. 연갈이를 한 작품은 한결 투명한 대신, 그렇지 않은 것은 또 그런대로 여태도 끓어오르고 있는 열기를 간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소재를 이모저모로 돌려대어가며 구워나가는 장인의식이 몸에 배어있는 듯이 보였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어느 거나 설익은 데가 없다. 소재를 그대로 배설해내는 우를 범하는 법이 없다. 어떤 상이든 꿀꺽 삼켜 그것을 이 시인의 내면세계라 할 따스한 심상풍경으로 차분하게 깔아보여주는 기량이 돋보였다. 그것이 바로 그의 장기인 듯이 느껴졌다.
카자르스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독주곡을 하루에 한 곡씩 오십 년 이상을 거르는 법이 없이 탄주했다고 들었다. 모두 여섯 곡 밖에 안되는 것을 지루한 줄도 모르고 평생을 되풀이한 셈이다. 그에게는 그 낡은 것이 오히려 새로웠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즈음 듣기 힘든 말로 고전적 훈련이 몸에 밴 것이다.
이준관씨의 작품에 늘 안심이 가는 것도 그런 독자적인 훈련이 뒷받침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章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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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상자 : 박태일, 「명지 물끝」 연작 외

 


2. 수상작품

「명지 물끝·5」

꼬리 문드러진 준치가 희게 솟다 가라앉았다 장어발이 통발 멀리 드문드문 갈잎이 되받아 주는 청둥오리 울음소리 마지막 찌 끝에 몸을 얹고 물가 곤한 물거품처럼 홀로 밀리면 겨울은 늘 낯선 마을 첫골목이었다.

 

 

명지 물끝.6

 

산 하나 산에 떠밀려 와 물밑으로 내려선다 쇠기러기 꾸룩 꾸룩 그새로 어깨 짚고 따음표처럼 돋았다 저녁 물마을 낮은 데 낮은 길은 멀리 빗발로 그치고 쥐불 식은 잿빛 두렁 태삼아 태삼아 하얀 당파 씹으시며 어머니 날 부르는.

 

 

 

명지 끝물.7

 

날개짓 푸른 하늘 꿈꾼다 건너 산자락 재실 낮은 골짝 다시 돌아보며 웃을 때 발 끝에 닿았다 달아나는 털게 달랑게 차운 손 호호 갈잎 젖히며 스며도 함께 쉴 곳 어디에도 없지 잊어버리자 가슴 가운데를 지르는 바람 한 끝 물오리 고개 묻은 모래등 멀리 따로 길을 닦고 터를 이루어 사람들 마을로 가는 모든 지름길을 지워버린다 잊지 말자.

 

 

 

명지 끝물.8

 

물 곳곳 마을 곳곳 눈 내린다 포실포실 보스랑 눈 아침에 앞서고 뒤서며 빈 터마다

 

가라앉는 모래무덤 하나 둘 어허 넘자 어허 넘어 들에서 물로 하늘 밖으로 내 목젖 마른자리 발톱을 세워 훌훌이 날아가는 붉은 물떼새.

 

 

 

 

풀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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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심사위원 : 정한모(시인), 구상(시인), 김종길(시인·고려대 교수)

 


4. 심사평

 

박태일의 「명지 물끝 5·6·7·8」을 읽고 오랜만에 詩다운 詩를 만난 기쁨을 맛보았다. 그것은 이를테면 양담배곽 속의 은박지에 부젓가락으로 지져서 그린 李仲燮의 小品을 만났을 때의 기쁨 같은 기쁨이다. 詩와 그림 사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비슷한 감동을 자아내는 것이다. 그것은 그것들이 다 같이 순수하고 치열한 예술정신의 結晶體들이기 때문이다.
「명지 물끝 5·6·7·8」은 連作으로 된 小品들로서 각각 두 개 내지 세 개의 문장들이 구두점 없이 연속되다가 끝에 가서 종결 구두점으로 끝난다. 그러나 형태상으로는 한 개의 문장이 내용상으로는 두 개, 세 개 또는 네 개의 문장들의 몽타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 連作 중의 「명지 물끝 5」를 예로 들어보자.

꼬리 문드러진 준치가 희게 솟다 가라앉았다 장어발이 통발 멀리 드문드문 갈잎이 되받아 주는 청둥오리 울음소리 마지막 찌 끝에 몸을 얹고 물가 곤한 물거품처럼 홀로 밀리면 겨울은 늘 낯선 마을 첫골목이었다.

이것은 형태상으로는 “꼬리……가라앉았다”가 한 개의 문장이요 나머지가 또 하나의 문장이니 도합 두 개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두 번째 문장은 형태상으로만 한 개의 문장일 뿐 “장어발이…홀로 밀리면”이라는 그것의 從屬節은 적어도 세 개 정도의 문장으로 풀어써야만 그 내용이 분명해 질만큼 복잡하고 애매한 이미지들의 몽타주가 되어 있다. 이것을 애매하다고 하는 것은 특히 “몸을 얹고…홀로 밀리면”이라는 이 節의 끝 부분을 두고 하는 말로 이 경우의 “몸”이 무엇의 몸인지 분명치 않은 것이다. 그것이 “장어발”의 몸이라면 구문상으로는 말이 되지만 “장어발의 몸”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의미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몸은 “청둥오리”의 몸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환각상태의 作中話者의 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애매한 구문도 이 작품에서는 큰 흠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작품이(그리고 이 連作 전체가) 이른바 ‘意識의 흐름’이라는 방법의 주된 기교인 ‘內的 獨白’의 양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J·T·쉬플리의 ꡔ세계문학용어사전ꡕ에 의하면 ‘意識의 흐름’은 “(1)우리의 의식적 과정의 앞뒤가 맞지 않는 요소를 활용하며 (2)공간과 시간의 경계를 무시하거나 우리의 일상의 깨어있는 상태의 움직임 대신 새로운 형식을 설정하며 (3)동기와 충동의 내면적 분석을 추구하며 (4)특히 감각적 인상을 강조한다.” 쉬플리의 이 설명은 박태일의 「명지 물끝」 連作의 방법적 특성을 더할 나위 없이 잘 말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 連作과 같은 성질의 작품들에 있어서의 통사론적 내지 의미론적 혼란 내지 애매성은 오히려 당연한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意識의 흐름’의 방법을 채택하는 경우에도 그 성과에 차등이 생기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이 連作 중 9은 ‘고 김헌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詩人이 작고한 친구를 생각하는 작품임을 알 수 있다.

물 곳곳 마을 곳곳 눈 내린다 포실포실 보스랑눈 아침에 앞서고 뒤서며 빈터마다 가라앉는 모래무덤 하나 둘 어허 넘자 어허 넘어 뭍에서 물로 하늘 밖으로 내 목젖 마른 자리 발톱을 세워 훌훌이 날아가는 붉은 물떼새.

이 小品의 끝부분 “…내 목젖 마른 자리 발톱을 세워 훌훌이 날아가는 붉은 물떼새”의 섬세한 아픔은 또한 李仲燮이 닭이나 새를 그릴 때 붉은 물감으로 그은 그것들의 눈에서 느끼는 아픔과도 비슷하다. 사물의 겉모습만을 그리는 엉성한 詩가 범람하는 현재의 우리 詩壇에서 비록 小品들이지만 밀도 높은 시적 眞實을 건져낸 박태일의 「명지 물끝 5·6·7·8」은 유형이나 성과에 있어 현재의 괄목할만한 실험적 업적이라 할만하다.(金宗吉)

 

 

 

파란 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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