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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고 하였다 / 권지현

 

 

우루무치행 비행기가 연착되었다

북경공항 로비에서 삼백삼십 명의 여행자들은

여섯 시간째 발이 묶인 채 삼삼오오 몰려다녔다

현지여행객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여행가방에 다리를 올리고 앉아

떠들어대거나 서로 담배를 권했다

 

담배를 피워올리건 말건

나는 도시락으로 식사를 했다

비행기는 언제 올지 오지 않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연착한다는 안내표시등 한 줄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나는 로비를 몇 바퀴나 돌고

하릴없이 아이스크림을 핥다가

마침내는 쪼그리고 앉아 지루하게 졸았다

항의하는 나를 마주한 공항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가야할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

 

비행기는 오지 않고

결리는 허리뼈를 아주 잊을 때까지 오지 않고

우루무치행 비행기는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였다

 

 

 

 

201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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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문학의 길 가르쳐주신 스승께 큰 절

 

하이데거는 시의 본질을 구명하는 자리에서 시는 존재의 개명(開明)’이라고 말했습니다. 완성된 시작품 자체의 내용뿐만 아니라 시를 이루어가는 과정이 존재를 개명해 가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요.

 

삶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에서 시 쓰기는 제 생의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벌써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제는 구체적인 주물을 부어주고 숨결을 들어앉혀 생동감 넘치는 세계들을 하나씩 세상 속으로 내보내고자 합니다. 그 세계 속으로 초대된 사물과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표정, 다른 마음결로 싱그러워지기까지 저는 나폴대며 떠가는 민들레 씨앗에 가볍게 얹혀 날아오르다가도 시원한 장대비 따라 두 발 철벅이며 흘러내릴 것입니다. 그리곤 어디쯤에선가 튼실한 시의 뿌리를 내리고 싶습니다.

 

사람은 단지 절반만 그 자신이며 나머지 절반은 그의 표현이라고 에머슨은 시인에서 이른 바 있습니다. 작품을 쓰기 전에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하며 작품 속에서 다시금 새롭게 자신의 생을 구체화해야 함을 이른 말이라 생각됩니다.

 

문학의 길을 가르쳐주신 스승 신대철 선생님께 큰 절 올립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편 박성우 시인과 딸내미 규연양, 언니와 동생 가족들,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 국민대 학우들과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정양 김용택 안도현 선생님을 비롯한 전주 쪽 응원부대 여러분, 참 고맙습니다.

 

저에게 큰 기회를 주신 유종호 신경림 심사위원님과 세계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더 넓은 문학세계로 나아가라는 뜻에 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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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담담하고 소박하면서 서정성·균형감 가져

 

좋은 작품이 여러 편 눈에 띄었다. 권지현의 모른다고 하였다는 담담하고 소박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담담하고 소박하다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공항 여직원/ 가슴께에 걸린 얼굴 사진이 흐릿하게 지워져 있어/ 내가 갈 길마저 희미해 보였다처럼 평이한 일상 속에서 삶의 결을 찾아내는 눈은 결코 예사로운 것일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는 시를 가지고 무슨 엄청난 것을 해보겠 다는 허영심이 억지와 무리로 이어지면서 읽기 어려운 시가 범람하는 우리 시단을 향하여 던지는 새로운 질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낡지 않은 서정성과 균형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이 시의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지나치게 평범하다는 비판이 따를 수도 있겠지만, 주말부부의 쓸쓸한 삶의 단면을 그린 냉동실이며 박물관을 통하여 과거와 오늘을 대비시킨 플래시도 이 작자의 저력이 탄탄함을 말 해준다.

 

고민교의 어느 결혼이민자를 향한 노래는 아주 재미있고 따뜻하면서, 시의에 맞는 주제이기도 하다. 쉽게 융합할 수 없는 둘 사이를 가래추자에 비유한 것도 적절하고, 간절한 마지막 구절도 강한 울림을 준다. 이 시를 읽으면서 시는 역시 시의 특성을 버릴 수 없으며, 시가 산문의 상태를 그리워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하게 된다.

 

신은유의 시 가운데서는 고딕식 첨탑이 가장 좋았다. 좀더 난삽한 바닥만 보면서 걷는 것은 내 오랜 습관이다도 마찬가지이지만, 깊은 사유와 고뇌의 흔적이 아로새겨져 있어서, 읽으면서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드는 시다. 하지만 너무 말이 많고 어지럽다. 말을 고르고 빼는 보다 엄격한 과정을 거친다면 참으로 좋은 시를 쓸 사람으로 생각된다.

 

이상 세 사람의 시를 놓고 토의한 끝에 선자들은 권지현의 모른다고 하였다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심사위원 유종호, 신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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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해설가 / 권지현

 

 

휘돌던 매 부리내린 능선에
나무구름 풀구름 흐르고
바위틈 얼비치는 물빛 건너온
숲 해설가 어깨에
날아와 앉는, 옥색긴꼬리산누에나방
산초나무 나란히 사람들 멈추어선다

 

저기 양 팔을 층층이 펼친 건 층층나무구요,
이건 누리장나무, 뒷간에 심어 냄새를 중화했지요
잎을 뜯어 냄새 맡아보세요

 

산뽕나무 가지에서 머리 들고 돌아보는
구름표범나비 애벌레, 눈 사이 일렁인다
잎새 건네받은 얼굴에 푸른 수액이 돌아
촉지도 읽듯 나뭇결 더듬대며 쓸어보는 사람들,
양평 봉미산이 들어올린 잣나무 사이로
다래덩굴 타고 내린다
은빛 가지 틈틈 부신 해, 머리 위에서 화선지를 펼치고
바람에 결 다듬은 잎새를 뒤집는 숲으로
호랑지빠귀 푸르르르 날아올라
촘촘히 타래 풀리는 빛,
나무뿌리 밑으로 플러그를 꽂는다
산 아래 굽어보던 자작나무가
비탈 얽어내린 뿌리를 땅껍질 위로 차고 오른다

 

 

 

 

작은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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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세상과 이어진 길들을 걸어들어가는 데 저는 늘 늦되었습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더라면 조금만 더 총명했더라면 조금만 더 사리분별에 지혜로웠더라면… 그 길들이 쉽게 열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우수수 흰 눈발에 묻혀 떨어져 내리는 오후에 저는 당선 통보 전화를 받았습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사년째 접어들고 있습니다. 창작 속으로 몰입하는 순간으로의 잠행을 지상 최고의 자양분이라 생각하며 퍼즐 같은 언어의 사원에 발디딤을 이제 막 즐기게 된 참이었습니다. 탁 트인 세상과 정신으로 올곧게 나아가 사물과 사람들 틈으로 내려서겠습니다. 그리하여 풍경과 사물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묘사와 이미지가 되고 서사 구조가 되고 의미 있는 반향이 되는, 생기 도는 시를 빚겠습니다.

아픈 저를 다독여 사람답게 빚어주신 존경하는 어머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정현언니, 숙현이, 성현이, 수민이, 성순이, 은정이, 국민대 학우들과도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부족함 많은 저를 선해주신 신세훈·이근배·손해일 세 분 심사위원님, 모교의 큰 스승이신 신대철 선생님, 주종연 선생님, 황동규 선생님께 감사 말씀을 전합니다. 돌올한 언어와 정신으로 문학의 새 장을 펼쳐 보답하는 길을 가겠습니다.

 

 

 

 

[심사평] “57편 본심 … 깊이있는 성찰 높이사”

많은 응모작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것이 57편이었다. 이 중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숲 해설가〉 〈신명〉 〈귀농일기:방아꽃 밭에서〉 〈착각 혹은 능청〉 〈무청다듬기〉 〈벌초〉 등 6편이었다. 각기 신춘문예투의 시류를 벗어난 참신성과 뚜렷한 개성으로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었지만, 심사위원들은 즐거운 고민 속에 〈숲해설가〉 〈신명〉 〈귀농일기〉 3편으로 압축했다.

다시 최종 논의와 숙고 끝에 권지현의 〈숲 해설가〉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시적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대화체를 깔끔하게 안배한 표현의 묘와 감칠맛 나는 언어 조탁 능력을 높이 샀다. 당선자의 다른 응모작 4편도 고르게 수준이 높았다. 마지막까지 남은 조훈성의 〈신명〉은 탈춤과 마당놀이의 신명을 사설조의 질퍽한 언어로 잘 형상화했으나 언어의 과잉과 간추림 부족이 흠으로 지적되었다. 박형권의 〈귀농일기〉 역시 농촌 현장을 실감나게 포착한 구수한 입담과 해학적인 문체가 돋보였으나 너무 현란한 사설이 언어 절제 면에서 흠이 됐다. 아쉬움 속에 응모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신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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