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 / 송재학
허공이라 생각했다 색이 없다고 믿었다 빈 곳에서 온 곤줄박이 한 마리 창가에 와서 앉았다 할딱거리고 있다 비 젖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허공이라 가끔 연약하구나 회색 깃털과 더불어 뒷목과 배는 갈색이다 검은 부리와 흰 뺨의 영혼이다 공중에서 묻혀온, 공중이 묻혀준 색깔이라 생각했다 깃털의 문양이 보호색이니까 그건 허공의 입김이라 생각했다 박새는 갈필을 따라 날아다니다가 내 창가에서 허공의 날숨을 내고 있다 허공의 색을 찾아보려면 새의 숫자를 셈하면 되겠다 허공은 아마도 추상파의 쥐수염 붓을 가졌을 것이다 일몰 무렵 평사낙안의 발묵이 번진다 짐작하자면 공중의 소리 일가(一家)들은 모든 새의 울음에 나누어 서식하고 있을 게다 공중이 텅 비어 보이는 것도 색 일가(一家)들이 모든 새의 깃털로 바빴기 때문이다 희고 바래긴 했지만 낮달도 선염법(渲染法)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공중이 비워지면서 허공을 실천중이라면, 허공에는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들이 있다 바람결 따라 허공 한 줌 움켜쥐자 내 손바닥을 칠갑하는 색깔들, 오늘 공중의 안감을 보고 만졌다 공중의 문명이라 곤줄박이의 개체수이다 새점을 배워야겠다
송재학(55'사진) 시인이 문학사상사가 주관하는 제25회 소월시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공중' 외 14편이다.
심사위원회는 "송 시인은 특유의 언어 감각과 조사법을 바탕으로 시적 진술의 이완과 긴장을 동시에 포괄하는 산문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왔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문학사상사는 이와 함께 박라연, 손택수, 이재무, 조용미, 황인숙 시인을 소월시문학상 우수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상금은 대상 1300만원, 우수상 100만원이다.
송재학 시인은 197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1986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진흙얼굴' '기억들' '그가 내 얼굴을 만지네' 등이 있다.
그의 시는 끊임없이 고뇌하는 지적 체험, 존재가 보내는 눈짓을 감춤의 언어로 이전해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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