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調 383편 現代詩 2,393편이 응모되었다. 기성(旣成)-신인(新人)을 망라한 이번 응모를 보아 여전히 우리는 詩歌를 좋아하는 백성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다.
宜寧郡은 작은 지자체이다. 그러나 宜寧이란 고을은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미래를 열어가게 하는 정신을 심어주는 선각자(先覺者)들의 고향이다. 엄청나게 응모한 時調-現代詩들이 이러한 宜寧을 향한 흠모(欽慕)의 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 물론 宜寧 고을이 베풀어준 후의(厚誼)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천강문학상이 모양새만 갖추자는 치례가 아니라 우리문학 속으로 의령정신을 스며들게 하려는 宜寧고을의 정성(精誠)이 파격적인 상금의 규모를 보더라도 잘 드러난다. 이 또한 宜寧이 나라사랑의 보금자리라는 고을의 자긍심에서 연유한다는 확신(確信)이 사무친다. 이러한 생각을 이번에 응모한 진지한 작품들이 보여주었다. 따라서 천강문학상은 지자체마다 다투어 여는 축제의 한 모서리가 아니란 사실을 증험(證驗)해주어 심사에 임하는 자세를 여미게 했다.
예심을 거친 모든 작품들이 다 잘 만들어져 꼼꼼한 심사를 요구했다. 作詩의 기교(技巧)는 모두 저마다 수준에 닿아 <기교의 꼼수>가 없이 풋풋하고 싱싱하게 <말하는(言之) 작품>을 택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심사해 갔다. 그 결과 유현주 씨의 시조 [감자를 묻다], 정일남 씨의 현대시 [구절리], 강명수 씨의 현대시 [배추벌레], 김승훈 씨의 현대시 [마블링], 김정아 씨의 현대시 [바람속의 잠], 이공 씨의 현대시 [성지순례], 백점례 씨의 시조 [물풀] 등등이 최종심에 올랐다.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에서 시조 [물풀]을 이의 없이 대상으로 정할 수 있었다. [물풀]은 시조 넷을 한편의 연작시조로 묶어 말의 울림을 잔잔하게 저미어간다. 그래서 [물풀]은 닫힌 마음속을 열어주는 호소력이 헷갈림 없이 눈길과 동행하고 있다. [물풀]에서는 어느 것 하나 외따로 있는 것은 없다. 서로 새삼스레 옹기종기 갈마들어 하나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물풀]이란 세상은 <모두 다 웃는다.>. [물풀]은 조용조용 갈마들게 하여 시조의 참맛을 술술 풀어내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어 고맙다.
[성지순례]는 뇌관에 불을 붙이기 직전 같다는 아슬아슬한 순간포착을 “디카”로 찰칵찰칵 한 쪽 씩 찍고 넘어가듯이 말해가는 솜씨가 여간 아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시인은 늘 손해 보는 편이 아닐까 싶다. 딱 부러지는 말이지만 어쩐지 불안하게 하는 층계 같을 때가 있음을 알아챈다면 [성지순례]의 전반부 가파른 시상(詩象)들로 넘쳐나게 열병(閱兵)하지 않았을 터인데 싶어 아쉽다.
그러나 [성지순례]는 詩象과 詩象을 치열하게 접근시켜 마음가기(志)를 상큼하게 하는 선뜻함이 강렬하다. [성지순례]는 틀에 박힌 삶을 한번 짚고 넘어가게 하는 현대시의 장기를 보여주고 있는 창창한 詩이다. 대상과 견줄 수 있는 詩로 손색이 없다는데 이의가 없었다.
기성시인을 뿌리칠 신인이 등장하기를 바랐지만 그런 이변(異變)은 없었다. 물론 신인 작품들이 예선을 통과한 것만도 대견하고 대단하다. 아무래도 신인들은 티를 내게 마련인 모양이다. 작품 속에 빠지면 안 되는 줄을 잘 몰라서 제 작품 속에서 익사해버리는 신인들이 참 많았다. 이런 형편은 다른 데서도 심사할 때마다 매번 겪는 아쉬움이다.
신인은 늠름하게 흐르는 말하기(言之)의 강을 강변에 서서 유유히 구경할 줄 아는 뒷심이 왜 필요한지 작시(作詩)할 때마다 연습하기를 바란다. 그럴수록 시인이 되는 길이 넓게 열리게 됨을 알아챘으면 한다. 그렇지만 기성시인들의 틈바구니를 무릅쓰고 작품들을 응모한 시인들의 작품들은 대담했고 풋풋했다. 이분들은 분명 다음 기회엔 작품으로써 한소리 하리란 예감이 들어 의령(宜寧)고을 천강문학상(天降文學賞)은 갈수록 창창하리란 믿음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