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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도 / 조율

 

 

옥탑방 평상에 앉아 수박에 칼을 찔러 넣는다
수박의 적도 부근쯤이다 지구본으로 따진다면
한 중앙에 위치한 에콰도르의 어느 도시 정도가 되겠지
이곳은 뜨거운 열대우림, 곰팡이가 타잔처럼 천장을
오르는 옥탑방, 생각한다, 왜 나에게는 선글라스를 끼고
일광욕을 즐기는, 그런 적도가 지나가지 않는가?
눅눅한 근로계약서에 손가락을 빌려줄 때마다
낮은 태양이 양철지붕 위로 더 무겁게 녹아 내려붙는다
가로줄이 많은, 빈칸이 많은, 적도가 많은
주름진 종이 속에는 엷은 비늘이 숨어 있다
적도를 벗어난 열대어의 서글픈 눈망울이 끔뻑인다
온통 경력자들만의 구인광고 박스, 열대성 기후 속에서
적도는 옆구리 뜨거운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구의 허리춤을 적도가 점점 조이고, 조여 오면
이거 벨트에 구멍을 하나 더 뚫어야 하나?
난간에 서서 입안에서 우물거리던 수박씨를 뱉는다
내가 맞히지 못한 뒤통수들은 달동네에 엉킨 오르막길을
왜 이렇게 가뿐히 풀어내는가? 수박씨 속에도 적도가
있다던데 그곳은 영영 바람 한 점 없단 말인가?
이천 원짜리 금간 수박에서, 무너진 신발장
경첩과 경첩 사이에서, 경력과 초보사이에서 도려낸 적도,
언제나 남은 절반은 절반을 닮아간다
바지랑대를 세워 하늘을 갈라본 적도,
구름을 베어본 적도, 적도 부근에 가본 적도 없지만
바람 잘 날만 있는 이곳은 언제나 바싹 말라가는 무풍지대,

 

  

 

 

우산은 오는데 비는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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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세상의 절반을 가득 울리는 시"

 

저는 구름을 뜯어먹어 본 적도, 남들 다 가는 그 흔한 시집을 가본 적도 없습니다. 쓰고 또 쓰느라 나를 읽어볼 새 없이 꼬박 서른을 채웠습니다. 이제, 저는 골목을 읽고 당신의 옆모습을 읽고 당신의 잘려나간 바짓단을 읽겠습니다.

 

2012년 겨울, 저는 꿈속에서 방석과 방석 사이에 '햄버거 패티'처럼 쑤셔진 뱀을 보았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을 거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잊어갈 무렵 당선 통보를 받았습니다. 한 남자를 잠시 생각하느라, 혹은 저울질하느라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럴 땐 달달한 것이 좋아 신기하게도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한 다음 날, 당선 소식이 왔습니다.

 

이제껏 시를 쓰며 시집갈 밑천은 없고 시집만 많은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될 뻔한 저에게 이렇게 시집이 많은 이유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그리고 얼마 전 밥은 해먹을 줄 아느냐며 칠 년 만에 꿈속에 나타나 걱정하던 아버지, 그리고 하나뿐인 남동생이 정말 기뻐할 것 같습니다. 학창시절 함께 공부했던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분과동아리 '시륜' 동인들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무너진 삼례역의 무지개, 온천은 없는데 온천역만 남은 신길온천역 찢어질 듯 붉은 서쪽 하늘, 안양시 귀인동 922번지 옥상, 역곡역 하늘을 쓰는 이름 모를 나무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언제나 세상의 남은 절반이 되어 남은 절반은 가득 울리는 시를 쓰겠습니다.

 

 

 

 

[심사평]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 녹아들어

 

누군가 혼신을 드러낸 작품에 대하여, 타인이 전혀 다른 주관적 잣대로 평가하는 일은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작품을 읽기 전에 작품 속의 사람을 읽어야 하며, 그가 겪은 체험의 변용을 진지하게 탐색해야 한다는 것. 그러므로 이러한 일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그 책임을 가능한 한 무겁게 지기 위해, 그리하여 그 결과를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다.

 

최종심은 '안정적인 작품을 가려낼 것인가, 불안정한 작품을 한 번 믿어볼 것인가'라는 두 가지 화두의 팽팽한 갈등 속에 이뤄졌다. 예심을 거쳐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은 송지은의 '마늘밭 유훈2', 문귀숙의 '어탁', 강동완의 '눈먼 꽃', 조율의 '적도' 등 모두 4편이었다.

 

'마늘밭 유훈2'와 '어탁'의 장점은 안정감이었다. 주제가 따뜻하고 형식적인 면에서도 꽤 숙련된 솜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안정감은 익숙한 리듬과 익숙한 시 전개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진부함을 느끼게 하였다. 반면 '눈먼 꽃'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행의 길이도 길어서 산문시의 느낌을 주었는데, 다행히 문장에서만은 성실함이 엿보였다. 그의 성실성을 향해, 수다스러울수록 명료하게 견지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숙고하기를 당부하고 싶다.

 

고심 끝에 당선작으로 고른 작품은 조율의 '적도'이다. 이 작품은 앞서 언급한 '불안정한 작품'의 경우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선택한 것은, 최종심에 오른 작품들 중 가장 불안정하지만 가장 매력적인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산뜻한 교차와 조화, 그 속에 투영된 결코 가볍지 않은 삶의 무게가 시의 불안정함을 상쇄해 주었다.

 

불필요한 사족, 남발되는 의문사는 물론, 행구분도 그리 전략적이거나 타당성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러나 눅눅한 근로계약서와 달동네를 읽어내는 그의 '옥탑방 평상의 꿈'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의 시는 가볍다. 그러나 단지 가볍지만은 않다. 차별화된 가벼움을 그의 장점으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심사위원 김규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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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거 속의 바다 / 김영란

 

 

온 몸이 글썽거린다 아득한 바다냄새

어쩌면 이 신열은 오래 전의 길 하나 열어줄지도 몰라

세상은 바다가 낳은 미지근한 비망록일거라고

아니, 그 비망록이 낙서들의 끝에 부려놓은 삽화일거라고

네가 나른한 힘을 얘기했던 곳으로

지금 나는 가고 있는지도 몰라

내가 너의 힘을 빌려 나에게 이르지 못할 때마다

변명처럼 꺼내든 바다가 아닌

방금 전 내 몸의 한 모퉁이로 들어오던

링거액 같은 바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잠깐의 외출로

조회할 수 있는 너를 믿지 않지

너의 웃음이 우리가 기억할 수 없는 날들 속에서

조난의 느낌 하나만으로

바람을 이끌고 오고 폭풍을 이끌고 와

끝내 범선 같은 고백을 숨겼던 것처럼

나 지금도 먼 옛날의 너를 믿지 않아

기억이란 몇 방울의 망각으로 걸어나갔던

오랜 신열의 발자국들

어디선가 때 이른 저뭄이 다가와

내 옆구리를 툭 친 것도

네가 나로부터 멀어지던 형식이었음을 기억하는 한 순간

내 통증의 한 쪽에서 고개를 드는 현실 하나

나는 잠시 링거액 건너편에 기대어 놓았던 목발을 챙겨

너의 바다가 보일 것 같은 창가로 절룩절룩 걸음을 옮긴다

 

 

 

 

 

[당선소감] 치열한 삶의 일부가 시로 흘러

 

기억의 모퉁이를 돌고 있는 쪽배하나, 포구로 튕겨져나간 조각들, 내 몸 속에서 떠다니며 글썽거리는 흔적들. 이 모두는 긴 겨울의 초입에서 거두지 못했던 시의 자리들이었다.

 

묵혀 놓았던 시들은 혼자 서러워했을까. 오랫동안 신열을 앓다가 만성이 된 구석진 자리의 염증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었던 불혹을 넘긴 오후에 변명처럼 꺼내든 바다를 버려야 했다. 그리곤 병실에서 다시 바다를 꺼내야했다.

 

시대가 고통이었지만 어머니는 통증을 이겨내는 법을 터득하셨고, 아버지는 즐기는 법을 아셨다. 어쩌면 그 분들의 족적이 내게로 이어져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 켠에 깃든 통증이 치열한 삶의 일부가 되어 시로 흐르고 있는지도. 가만히 더듬어보면 내 속에 흐르는 몇 겁에 걸친 흔적과 기억들이 내가 기억되는 나보다 훨씬 거대한 것 같다.

 

봄이 멀리 돌아 앉아 있었지만 겨울을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창으로 들어온 달빛 때문이었다. 달빛은 우주였고 친구였고 가족이자 스승이었다.

 

나의 인생을 빚어준 이케다 선생님, 시의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해준 손택수 시인, 그리고 차령문학의 박경원 선생님, 온머리 송봉헌 선생님, 오래전 시의 길을 열어준 황금찬 선생님, 최두석 선생님, 문학세계와 영등포문인협회, 부족한 나의 곁에 있어준 현웅, 지원, 승민, 영미, 성남, 정한 모두에게 마음껏 감사하고 싶은 밤이다. 마지막으로 한라일보사에 감사드리며 심사위원님에게도 깊은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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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형식적 면에서 가장 숙련된 솜씨


작품보다 작품 속의 영혼이 먼저 들여다보여서 감상이 순조롭지 못한 경우가 있다. 예심을 거친 작품들은 선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토록 다른 4인 4색의 영혼과 그 시력(詩歷)은. 고심하며 읽은 작품은 최재우의 '간이역', 김현의 '겨울의 안쪽', 황경철의 '공포의 기록', 김영란의 '링거 속의 바다'였다.

 

'간이역'에서 최재우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노숙함으로 조곤조곤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골대합실", "소달구지", "보따리"와 같은 소재를 통해 드러나듯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정겹다. 그러나 그는 그리 길지 않은 시력의 한계 또한 노정시키고 있다. '간이역'에서의 돌연한 장면 전환이나, 그의 다른 시 '포구'에서 드러나는 이미지 분절 등은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김현의 '겨울의 안쪽'은 세밑에 꼬옥 끌어안고 싶은 시이다. 서사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내는 능력은, 차고 낯설게 만연하는 시들과 차별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서사적일수록 정제된 호흡과 리듬감을 견지해야 하는 법, 몇 군데 군더더기가 눈에 띈다. 따뜻하지만 너무 잔잔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황경철의 시들은 미숙하고 거칠지만 패기가 있다. 다만 추상적인 대상을 추상적으로 풀어내는 일이 그에게는 힘에 부친 듯하다. 자폐적으로 분산된 이미지들이 제어되지 못한 채 범람하고 있다. 시가 아물 수 있도록 그의 상처가 더 깊어지기를 바란다. 깊어진 상처가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김영란의 '링거 속의 바다'는 형식적인 면에서 가장 숙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그러나 자신의 색채가 부족하고 소품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약점도 갖고 있다. 더구나 그의 시들은 작품들간의 격차가 드러나서 기우를 갖게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기는 어려웠다. 모쪼록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나갔으면 한다. 숙련된 자의 출발점은 지금 다시 놓여져야 한다.

 
심사위원  김규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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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목 / 고경숙

 

연대기를 알 수 없는
검은 책이다
먼 시간을 집대성한 페이지를 넘기면
불탄 새의 발자국이 떠도는
바람의 유적지
막다른 길에서 시간은 일어선다
이마에 매지구름 걸쳐놓고
진눈깨비 맞는 산,
박제된 새소리가 나이테를 안고
풍장에 든 까닭 차마 발설할 수 없어
활활 피우는 눈꽃은 은유다
명조체로 흐르는 햇살이 서술하는
몰락한 종교의 잠언서
나무의 필적이 행간을 읽는 동안
다하지 못한 어둠이 전하는 고전이다
꺾인 나뭇가지는
허공을 수식하는 문장이다
숨찬 몇 권의 눈부심이 사리처럼 반짝인다
새떼들 젖은 울음이 밑줄을 긋고
구전하는 말씀들
일편단심이다
생은 뼈를 삭이는 절명시다

맨몸으로 그루잠을 건너온
울창한 기억들
작자미상의 목판본 한 질을 집필하고 있다

 

 

 

혈을 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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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시, 낯선 얼굴로 만져주던 존재

 

탁구공이 내는 소리가 좋아 탁구장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정적을 깬 소리가 닫힌 나를 열고, 달팽이관 속의 웅크린 어둠을 먹어치운 뒤 내 눈빛마저 단숨에 삼켜 버렸다. 온몸을 던져 톡톡 우는 그 소리는 눈부시게 반짝거렸으며 짜릿한 쾌감을 주고도 남았다.

시도 그랬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주시하는 것처럼 시 역시 늘 낯선 얼굴로 와서 동그맣게 울었다. 그 울음은 차갑고도 명징해 귀먹은 나를 어루만졌고, 한 점 의혹도 없이 빠져들었다. 간간히 성마른 소리로 외면하기도 했으나 귀에 쟁쟁한 흐느낌을 모지락스레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아마도 부딪힘이 주는 아픈 여운 때문에 시의 탁구대 앞에 섰는지도 모르겠다.

맑고 투명한 소리가 전신을 휘감고 돈다. 이는 분명 시가 나를 부르는 신호이리라. 내부 깊숙이 들어와 엉거주춤 서 있는 나를 움켜쥐고, 시의 라켓을 들라고 한다. 두렵다. 하지만 내가 던진 공은 작고 가벼우나 내 시의 소리는 장대하기를 바랄 뿐이다. 다산어록에서 시는 자연스러우면서 해맑은 여운이 그 어려움이라고 했다. 명심할 점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시의 걸음마는 활달한 상상력임을 강조하신 유병근 선생님, 절제된 언어의 미학으로 큰 가르침을 주신 하현식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고 싶다.

아울러 생각지도 않은 웃음보따리를 선물하신 심사위원님과 한라일보사에 감사를 드린다. 내 시의 영원한 구경꾼인 남편과 두 딸, 미지와 영지에게도 사랑한다고 시적으로 말하고 싶다.

 

 

 

 

유령이 사랑한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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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선명한 묘사, 참신한 비유 돋보여

 

1300여편에 이르는 많은 작품들 중에서 한 편의 뛰어난 시를 고르는 일은 무척이나 지난했다. 오랜 수련과 고뇌를 거쳐 생산되었을 다기한 사연의 시들은 그 부피와 다양성만큼이나 압도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자의 눈을 확 트이게 하는 작품은 쉬 찾아지질 않았다. 여러 번 읽고 또 읽어서. 수준급의 기량과 언어의 진정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다른 응모작들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는 시편들로 우종태씨의 '대패질'외 2편, 김화섭씨의 '빈집에 서다'외 2편, 고경숙씨의 '고사목'외 3편을 최종적으로 선별해놓고 고심을 했다.

우종태씨의 경우 오랜 습작을 거친 분답게 시를 끌어가는 저력과 안정된 짜임이 돋보였지만 뒷심이 조금 딸리는 듯했다. 김화섭씨의 '빈집에 서다'는 묘사와 진술능력이 뛰어나고 이야기의 전달도 뚜렷했지만, 다른 작품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고경숙씨는 언어를 다루는 재치가 상당해보였다. 묘사의 선명성이나 비유의 참신함에 위트까지 두루 갖췄고 리듬에 대한 고려도 엿보인다. 그러나 재치가 승해서일까, 가끔씩 어휘가 시적 맥락 안에서의 조화를 잃고 튀는 흠결이 있었다. 나름대로 각각의 장점과 단점을 공유하고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시가 언어의 예술이라는 근본 명제를 들어 우리는 최종적으로 고경숙씨의 '고사목'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이 외에도 한교만, 안은주, 백명희, 이경옥 제씨의 작품들도 충분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음을 밝혀둔다.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아쉽게 탈락한 분들에게는 격려와 함께 지속적인 정진을 부탁드린다. 시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 있으라!

 

심사위원 김승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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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장을 버리고 / 박찬

 


장식장을 버렸습니다. 떨어져 덜컥이는 문짝을 청테이프로 길게 입막음 하고 동사무소에 들러 오천 원짜리 스티커를 사왔습니다. 저승길 노잣돈치곤 값싼 그 몸값이 안쓰러워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한참을 그와의 이별에 매달립니다. 모서리를 밀치고 튀어나온 못이 허리를 꺾어 작별을 고합니다. 아내와 함께 시집와 십 여년, 그 사이 고장난 어깨가 삐걱거립니다. 긁히고 벗겨져나간 살점들과 아이들의 낙서자국, 더 이상 채울 수 없는 몸은 뼈대만 앙상히 늙어갑니다. 그 안에 담아두었던 신혼의 이야기며 육아일기며 단란했던 한 가족의 앨범들. 그리움을 이야기하며 많은 날들을 지탱해온 가슴에 아쉬움이 복받쳐 오르고, 돌아오는 길 모처럼 어머니께 안부전화를 넣었습니다. 당신의 신경통은 다 나았다 걱정마라하시며 혼자 있는 자식걱정에 마음 졸이시는 어머니. 밥은 제때 챙겨먹는지 빨래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미국에 있는 아이들과 애 엄마는 잘 지내는지…. 비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걱정에 할 말 다 못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습관처럼 올려다보는 하늘. 아메리카로 가는 비행기의 불빛이 희미하게 반짝입니다.

 

 

 

 

[당선소감] '악재의 연속' 끊어준 당선 소식

 

길은 멀었다. 다리는 뻐근하고 축축한 습기 같은 한기가 옷깃을 파고들었다. 산을 만나고 강을 건너야 했다. 뼛속깊이 시린 추억들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쉬고 싶었다. 쉬면서 세상의 모든 안락과 희망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쉬는 일이 익숙하지 않았다. 몸은 이미 일에 맞게 재단되어 있었다.

전날 먹은 술이 만취가 되어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희미한 형광등처럼 나를 향해 껌벅거렸다. 그러던 중 당선통보를 받았다. 잠시 생각이 정전되었다. 좋은 일엔 역시 사람이 먼저인가 보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았다.

멀리 미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했다. 여진이 홍준이 그리고 진아. 모두가 자기 일처럼 좋아했다.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다. 기뻐할 일이라는 게 사실 살다보면 크게 없겠지만 그래도 작은 것에서부터 찾아주었어야 했다. 아이들과 아내의 웃음소리가 한동안 나를 설레게 했다.

올 한해는 우환이 많았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잇달아 병원을 몇 달씩 드나들었고 뜻하지 않았던 동생의 수술. 말 그대로 악재의 연속이었다. 이제 새 해가 밝아온다. 나의 당선 소식이 아버지 어머니께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텅 빈 집으로 들어간다. 유난히 아이들이 생각났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을 지어본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 시작을 영광스럽게 안겨준 심사위원님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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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일상적 언어로 그려낸 삶 남달라"

20년의 연륜 때문인지 지방지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181명의 시인지망생이 보낸 915편을 심사한다는 것은 어쨌거나 고무적인 일이다. 시가 밥이 되지 않는 건 현실이지만 문학이 죽었다는 표현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인지 심사하는 동안 외롭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또 읽었다.

우선 안은주의 '여덟 번째 이사하던 날', 황문희의 '왕과 나', 고경숙의 '자하문 열쇠수리공', 박찬의 '장식장을 버리고', 박은영의 '목선', 전용래의 '전망', 강동완의 '노을을 건너는 엿장수'를 가려낼 수 있었다. 다른 투고작에 비해 비교적 단단하고 고민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결국 두 작품으로 추렸는데 황문희의 '왕과 나'와 박찬의 '장식장을 버리고'로 압축시킬 수 있었다. 사실 이 두 작품은 우열을 가리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왕과 나'는 시에 다가서는 도발적인 상상력이 눈에 띄었고, '장식장을 버리고'는 일상적인 언어로 결코 일상적이지 않은 삶을 담담하게 그려내는 공력이 남달랐다.

고민 끝에 박찬의 '장식장을 버리고'를 취하고 '왕과 나'를 내려놓아야 했다.

모름지기 시는 시인이 독자들을 위해 차린 공기밥 한 그릇이다. 시가 몸의 밥은 될 수 없을지라도℃ 영혼을 위한 따뜻한 밥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당선작에 대한 칭찬 대신 낙선작에 대한 격려를 하고 싶다. 한두 번의 실패가 결국 진국 같은 시를 만들어 내는 소중한 경험임을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더욱 정진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심사위원 양진건, 김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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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잠 / 이민화

 

 

다섯 송이의 메꽃이 피었다.
아버지의 부재를 알리는 검은 적막을 깨고,
돌담을 딛고 야금야금 기어올라
초가지붕 위에 흘림체로 풀어놓는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바람벽이
움찔 다리를 절면,
마당가에 선 감나무도 키를 낮춘다.
아버지의 귀가에서 나던 솔가지 타는 냄새
너덜너덜해진 문틈으로 새어나오고,
가쁜 숨을 몰아쉬던 수도꼭지
끄윽끄윽 울음을 뱉어낸다.
산 그림자 마당으로 내려서면,
거미줄에 걸린 붉은 노을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먼지 쌓인 잠을 쓱쓱 문질러 닦아내면
아버지의 오래된 시간이 푸석한 얼굴로 깨어난다.
늙은 집이 메꽃을 피우고 있다.

 

 

 

 

오래된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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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처음으로 이름 석 자를 얻은 기분"

새벽에 꿈을 꾸었다. 누군가 하얀 봉투를 제 손에 꼭 쥐어주고 갔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느낌이었다. 뭔가 그럴싸한 일이 생길 듯한 예감, 응모 작품을 보내고는 잊어버리리라 생각했으면서도 은근한 기대와 설렘으로 지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포기 쪽으로 기울던 참이었다. 올해도 빈손으로 한 해를 건너는가보다 하며 초조한 기다림은 허탈함으로 바뀌는 중이었다. 그러다가 당선 통보를 받았다.

3년 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무슨 용기로 뛰어들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그저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신이 났다. 그런데 시를 쓸수록 자신이 없어지고 한쪽 가슴께에 통증이 왔다. 중간에 주저앉기도 여러 차례, 결국 시의 길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쓰는 것보다 쓰지 않는 것이 더 힘들고 아팠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많이 아팠던 기억뿐이다. 오랜 기간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병명을 알 수 없었다. 그런 저를 업고 다니시느라 어머니의 등에서는 항상 쉰내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가 결코 싫지 않았다. 그러기에 글을 쓰게 된다면 꼭 어머니의 냄새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었다. 이제 그 출발점에 서 있다.

누구보다 기뻐해준 남편과 아이들한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그 동안 온갖 짜증 다 받아준 남편한테 더없는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주말마다 시의 벽돌을 함께 쌓는 다층문학동인과 지도해 주신 변종태 선생님, 부족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도 아울러 고마움을 전한다. 살아 계셨으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기뻐하셨을 시아버님께 이 상을 바치고 싶다. 고인 물이 되지 않고 자만하지 않을 생각이다.

 

 

 

[심사평] 언어로 잘 그려낸 아버지의 폐가 풍경

응모작품은 2백여 명이 보내온 8백여 편이었다. 2008년 1백 50여명 6백여편에 견주면 응모자만도 50여 명이나 늘어났다. 응모자들을 살펴보자면 서울을 비롯해서 전국 곳곳에서 10대에서 80대까지 고루 응모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응모한 시 작품들은 풍족하게 많은데도 평년 수준을 밑도는 이상한 현상을 보였다. 당선작을 고르는 데 그래서 진땀이 났다.

우선 10편, 강병철의 '허수아비', 장유정의 '빈집', 권혁찬의 '노트북', 이민화의 '오래된 잠', 김웅철의 '11월 대정 골', 한규현의 '밥', 엄계옥의 '매미 집', 정현의 '곶감', 권삼현의 '까치밥', 임창선의 '우리 집 베란다에서는'을 뽑았다. 여기서 5편을 뽑았다. '허수아비''빈집' '노트북' '오래된 잠' '11월 대정 골'이 그것들이다. 모두 만만찮은 시 쓰기의 경지에 있다. 그런데도 모두 조금씩 부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구두점 쓰기 등에 좀더 마음 썼으면 한다. 여기서 '부족감'이라고 지적하는 바는 읽고난 뒤에 받는 시 읽기의 감동이다. 시 읽기는 혼의 울림을 깨닫는 자리가 아닌가. '11월의 대정 골'은 제주어로 시를 쓰고 그 시를 표준어로 다시 쓰고 있다. 아무리 인간의 혼이 언어라 하더라도 그 혼의 노래를 두루 알려져 있지 않는 토박이어로 쓴다는 것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마침내 우리는 최종심에서 '빈집'을 떨어뜨리고 당선작으로 '오래된 잠'을 뽑기로 했다. 시의 구조가 견고하지 못한 점도 없지 않지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는데 아기자기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통해 절제된 감정을 언어로 수채화 그리듯이 잘 그려내었다. 시간 구조도 과거를 현재로 잘 풀어냈다. 아버지가 살았던 집이 폐가인 데도 '낡은 집'이 아니고 '늙은 집'으로 의인화시키는 놀라운 표현을 간단히 해내고 있다. 정진하시라!

 

심사위원 문충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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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잠 / 김은실

 

 

황사를 빠져나오자 나의 행방은 나무들의 습성을 닮아간다

뒤를 돌아보면 오롯이 되살아나는 잎새들의 발자국

기린처럼 도시를 넘겨보거나 하루의 마지막 햇살들을

꿈인듯 곱씹어간다

사막이 될 사랑과 목마름 하나로 건너야 할 기억의 행방을

찾아내는 것

나무들의 소문이 심상치 않다

뿌리째 뒤적여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해묵은 반란들,

나이테들의 구석에 처박혀 잠이 들거나 이루어지지 않을

불면의 등성이들을 오르내린다

숨이 가빠지고 발목이 푸르러진다

누군가 적어놓은 유서들의 단서를 찾는 동안

문맹의 슬픔이 불어온다

심장의 한 켠에 푸른 병조각이 들어차고

이 도시에선 어떤 나무이든 술의 날들을 깨뜨리지 않으면

조금씩의 간격도 좁혀지지 않는 것이다

황사를 빠져나오자 나의 의문들은 나무들의 틈바구니에 묶인다

어제의 위치와 잎들의 수런거림이 나를 가둔 채

숲 저쪽으로 사라진다

오후의 통화와 몇개의 망각이 푸른 위궤양을 앓는다

기린처럼 목을 늘려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오월의 잠들,

계단을 타고 오르는 몇개의 잎새들을 상상하면서

나는 누군가 녹이다 만 박하사탕같은 사랑을 되짚어간다

 

 

 

 

파도들이 그 섬을 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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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섬 안 이야기들 새로이 풀어낼 것'


실로 오랫만의 시인이다.


구름을 쫓거나 들꽃들의 길목을 지키는 동안에도 목마름은 그치지 않았고 섬, 꿈으로부터 망명하듯 달려온 것이 또다른 문제였다.


섬의 곳곳은 잃어버린 시의 시간들이 되어갔고 때로 파도들의 끝에 이르러서는 시에 대한 멀미는 더욱 가까운 맥박소리처럼 깨어났다.


서울은 점점 아득해졌고 기억의 시침들은 몇 계절의 힘으로도 힘없이 휘어졌으리라.


굴절된 시간의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 섬 안의 새벽과 노을이 조금씩 밀물과 썰물로 뒤바뀌는 질서를 배우게 되었고 겨울산과 낯선 말들의 골짜기를 헤매는 사이 가슴 한 켠에 묻어나는 푸른 반점의 비표, 그게 시였으리라. 서울을 떠나며 영영 헤어질거라 단정했던 시가 나보다 더 깊은 섬을 헤매고 있었음을….


이제 꿈을 꾼다는 건 또다른 종류의 부채감이다. 자유롭던 공상, 무수한 밤들이 부려준 섬 안의 이야기들도 새로운 등잔 새로운 불면 속에서 밝혀내야 하리라.


인연이란 참 오래된 전생같다. 까풀까풀 희미해지던 가슴 속 오두막 하나 그리움의 더듬이로 찾게 해준 차령문학의 박경원 선생님. 이젠 좀 더 제 몫의 방식으로 깨있는 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늘 이면의 표정 속에서 낯선 행장과 밀행하던 나를 알아 보신 강화문학회와 최 회장님, 차소담 박은혜선배 문지수 황인호후배 그리고 그동안 함께 했던 몇몇 분들…. 내 안의 분신인 훈, 혁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뽑아주신 선생님들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심사평] '한줄기 사랑 놓지않으려는 당당함' 
 
시(詩)가 말(言)의 사원(寺)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유와 언어의 적절한 긴장을 담보하는 의미일 것이다. 시가 다른 글쓰기보다 얼마간 힘들고 신중하게 여겨지는 것도 바로 그 긴장의 밀도가 유다른 데서 연유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좋은 시란 그 숨 막히는 긴장을 잘 견뎌낸 결과물에 다름 아니다.


2008 한라신춘문예 시부문은 1백50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응모하여 풍성한 말의 성찬을 이루었고, 나름대로 각각의 솜씨들을 뽐내고 있었으나 아쉽게도 언어와 사유의 긴장을 잘 견뎌내고 있는 작품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는 작품들은 김경애, 김은실, 김일호, 명순이, 송정애, 이언지, 정두섭 제씨의 것들이었다. 이분들은 시적 구성이나 언어를 다루는 기술에서 일정한 성취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반면에 사유를 끌어가는 힘과 긴장의 밀도 면에서 각기 일정한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 중 사유의 깊이와 언어의 긴장에서 김은실씨의 '오월의 잠'이 조금 더 돋보였다. '오월의 잠'은 권태와 절망의 팍팍한 삶 속에서도 한 줄기 사랑을 놓지 않으려는 자아의 의지를 담담하게 그린 작품으로써 구성의 탄탄함과 신선한 비유가 뛰어났지만 부분적으로 모호한 진술과 맥락의 불분명함 때문에, 그리고 다른 작품들의 완성도가 부족한 점도 고려하여 아쉽지만 가작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심사자가 인색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후일을 위한 격려 차원임을 이해하여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김승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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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역 / 김재근

 

어디까지 갈지 모른다는 거
하루 벌어 하루 산다는 거
마른 겨울빛 받으며 벌 서고 있는 나무같이 견디는 거, 아닌가

구포역, 휘파람 불며 기차는 몰려오고
사람들은 낙엽처럼 또 부서져 내린다
찬바람 부는 광장구석 어깨 구겨져 서성이면
비릿한 무엇이 목 어디 가시처럼 걸리고
야산 겨울숲 너머로 하루해가 풀썩 지고 있다

늦은 역광장은 묘지처럼 이제 적막하다
빈 소주병은 시린 기억들을 꽉, 채우고 뒹굴고 있다
꺼져가는 모닥불 옆 용도폐기된 라면박스와 신문지에 쌓여
사내는 잠이 들고

작은 불빛들이 다가와 사내의 이마를 만진다
깜박이는 노숙의 굽은 등대, 상처여
이 후미진 외곽이 그대의 둥지였구나
물새의 알, 깨어진 알이여

바람과 겨울바다를 건너 그대가 흘린 모래알
나의 무릎에서 어지러이 날아오른다
첫 차가 오고 있다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그대와 나의 겨울을 태우고
목쉰 기적 소리 오래 울리며 떠나고 있다

 

 

 

 

무중력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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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붉고 깊은 거친 바다속으로"

해지는 바다에 서 있었습니다. 물기 빠져나간 갯벌과 몰려오는 파도 소리, 작은 고동들과 함께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일몰 속에서 목선들이 남해 쪽빛 바다에 떠 있었고 작은 물새들이 섬들 사이로 떠올랐습니다. 평화로웠습니다. 그 때 당선을 알리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순 남해 바다에 저는 섬인 듯 바람소리와 갯내음 안에서 한참을 그저 바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김수영 시집을 들고 해운대 바다에서 모래알을 뒤적이며 밤을 새던 일, 무작정 비오는 밤이면 빗물을 따라 걷던 일, 시가 무얼까? 나의 글이 시가 될까? 어떻게 살아야하나, 이런 생각으로 많이도 방황하던 일들이 갯내음처럼 묻어나옵니다.

대학은 국문과를 못가고 토목과를 갔습니다. 그러나 천형과도 같은 나의 역마와 그리움은 현실 속에서 늘 허우적거렸고 나는 늘 주변인이었습니다. 가슴 한 쪽에 부는 바람은 늘 차가왔고 가난하였으며 우기의 빗소리처럼 질기고 흐렸습니다.

내 안에 끓고 있는 그 미지의 아픔들을 조금씩 꺼내어 글로 적어보았습니다. 처음엔 나오지 않으려 안간힘쓰던 잡히지 않던 시어들이 하나 둘씩 눈물에 찍혀 나오곤 했습니다. 아파서 시를 썼지만 시를 쓸수록 더 아파서 시를 포기한 적도 있었지만 시는 저의 위안이었으며 저의 전부였습니다. 모든걸 다 잃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무작정 구포역에서 케티엑스를 타고 서울역까지 갔었습니다. 비오는 서울역 벤치에 앉아 비 맞으며 젖은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다시 내려온 적이 있습니다. 가장 짧고 먼 여행이었습니다. 이제 오래 머물러 있고 싶습니다.

부족한 글에 눈을 맞춰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숙여 감사드리며,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진정한 시는 온몸으로 울어야하고 미쳐야 하는데 아직 서툴고 낯섭니다. 시(詩)라는 붉고 깊고 거칠고 멋있는 바다에 한 발을 담궜습니다. 그리운 성산포의 제주, 시백(詩伯) 이생진님의 '고독'이라는 시가 생각납니다. '해삼 한 토막에 소주 두 잔 이 죽일 놈의 고독은 취하지 않고' 제주 푸른 바다에서 저는 이제 취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눈물 도는 주지적 서정 풍요로워

너무 많은 응모 편수에 '놀랐다'고 하면 화두가 될까? 시가 무슨 소용이 되느냐고 따따부따 말들 하다가 이제는 아무런 말조차 없어져 가는 이 불모의 시대에 응모작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한라일보의 신춘문예가 18번째를 맞으면서 전국적인 신인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음을 확인시켜주는 한편 아직 우리 시가 일궈야 할 황무지가 많음을 은밀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상말로 '아직 우리 시는 죽지 않았어!'하고 뻐길 수조차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인간의 혼이 언어라면 언어의 혼은 시이기 때문이다.

6백 편도 넘는 시들 가운데 10여 예비시인(?)들이 쓴 50여 편의 시가 골고루 뛰어났다. 선자는 선자로서가 아니라 독자로서 시를 읽는 행복을 오랜만에 맛보았다.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의 동시에서부터 육순의 노인네가 쓴 전국 곳곳에서 응모해 온 시편들. 물론 아직 너무 설익은 시들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응모자들의 시들이 읽을 만 했다.

우선 10편을 뽑았다. 김서윤의 <2월>, 한여운의 <장마>, 유행두의 <헛제삿밥>, 강미화의 <대장장이>, 김은실의 <두엄>, 고경숙의 <자하문 밖 열쇠수리공>, 문정희의 <수목원 은행나무>, 이혜경의 <졸음운전>, 위명희의 <거울 앞에서>, 김재근의 <구포역>- 이 시들이 보여주는 시의 세계는 각각 다르지만 '눈물 도는 주지적 서정의 풍요'로 선자에겐 읽혔다. 모두 당선작으로 뽑았으면 좋을 만 하다.

최종심에 오른 김서윤의 <2월>과, 김재근의 <구포역>을 두고 몹시 고심했음을 밝혀야겠다. 김서윤의 시들은 기성시인 못지않게 이미 뛰어난 경지에 올라 있다. 마침내 김재근의 <구포역>을 뽑는다. 이 작품 말고 <달팽이집>을 뽑을까도 했지만 <구포역>풍경이 어쩌면 오늘날 우리의 모습으로 어른거려 그 감동을 지울 수 없다. 평범해 보이지만 뛰어난 은유적인 언어 구사력, 견고한 시의 구조, 따뜻한 현실의식도 높이 샀다. 이 시에 대해 무슨 군더더기 말을 더 보태겠는가. 더욱 정진하시라!

심사위원 문충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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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집 / 김명희

 

 

내 유년 가까운 곳에는 개성집이라는 술집이 있었다
늙은 작부 하나가 있었고 아버지 부랑의 날들이 있었다
붉은 입술에 검은 점,
저녁이면 문득 툇마루 끝에 걸리던 속살 속의 노을,
개성집은 우리들의 적이었다
밤이 깊으면
낡은 송학표 주전자가 시끄럽게 장단을 이끌어주던
검은 루핑 지붕 밑에서 아버지는 몇 날 며칠을 머물렀다
아교처럼 단단한 아버지의 편력은 여름내 계속되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떠밀려 그곳을 들르곤 했다
돌아오는 길엔 눈깔사탕과 은전 한 잎이 내 안으로 넣어졌고
나는 사탕이 다 녹기도 전 어머니에게 둘러댈 붉은 변명들을
입 안 한 켠에 감춰야만 했다
그.게.슬.픔.인.지.도.모.르.고

어린시절 내 슬픔 가까운 곳엔 개성집이라는 유곽이 있었다
아카시아는 밤마다 멀미처럼 부풀어올랐고
저녁의 라디오 속에선 붉고 격양된 노래들이 꽃잎처럼 쏟아져
나왔다
조팝꽃이 끝나면,
한낮의 길엔 양산을 쓴 여인 하나 가볍게 스치었고
그런 날 어머니의 가슴은, 해가 지고 오랜 뒤에도
쉽사리 저물지 못했다

 

 

 

 

화석이 된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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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긴 밤 지새우던 신앙같은 詩”

 

비닐봉투에 팽팽히 담겨지던 하루가 막 일몰의 허리띠를 풀기 시작한 그 틈으로 뜻밖의 당선통지를 받았다. 그 동안 나는 무조건 ‘시’에 미쳐있었던 것 외엔 정말이지 준비 된 게 없었다.


‘시’의 산을 오르며 전신이 부러지고, 찢어지고, 피가나고, 굴러 떨어지기를 여러 번. 이제 다 왔구나! 하고 온 몸의 상처를 핥고 있는데…. 지금 선 바로 그 자리가 해발0. “자! 이제 부터는 더 가파른 산을 올라야 합니다”라고 말씀 하시던 내 문학의 어버이신 박경원 선생님께 가장 먼저 큰 절을 올린다.

 

그리고 늘 묵묵히 믿음으로 나를 지켜봐 주시던 차령문학회 회장 민성훈 선생님과 지금 이 순간에도 치열하게 문학의 능선을 넘고 있는 차령문학 회원들과 “우리말 지킴이로써 언제나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게 시인”이라고 늘 애정으로 다그쳐 주시던 김양헌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이 지금 이순간 눈에 선하다.

 

밤 늦도록 흔쾌히 강의실을 내어주시던 안성시립도서관 유병장관장님께 감사 드리고 ‘시’에 관한한 밤과 낮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던 안성도서관 문우들, 지금까지의 내 길을 믿고 지켜 봐준 남편과 한 없이 부족한 엄마를 넓게 이해하고 도와준 나의 보석인 영광이와 선영이, 사랑하는 선배님들, 그리고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진정으로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그리고 아직 부족한 나의 시에 날개를 달아 주신 김수열 심사위원 선생님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나의 일상은 언제나 내 몸 밖으로부터 전해져 오는 에너지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했다. 세상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영혼들이 수시로 내게 접속해 옴을 감지하며 그 언어들을 해독하기 위해 긴 밤을 하얗게 보내기를 여러 번, 언제 부턴가 ‘시’는 나의 신앙이 되어 있었다.

 

그 동안 나의 시가 되어 준 세상 모든 에너지들에 감사와 고마움을 전하며 앞으로 더욱 섬세하게 정신을 열어 난청지역에서도 능히 듣고 해독하며 기록하고 전달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붉은 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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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부박한 시대에 던진 낮은 목소리

 

공모 마감일까지 접수된 원고가 오백 편을 훨씬 웃돌았다. 지방언론사에서 주최하는 신춘문예 치고는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응모한 예비 작가들의 면면이다.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에서부터 칠순의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무척이나 다양하다. 어디 그뿐인가? 응모한 작품의 발신처가 전국의 경향각지를 총망라하고 있다. 영상 시대의 도래를 맞아 문자 매체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는 일부 비평가들의 지적이 한참 어긋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문학은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혼을 담아 꾹꾹 눌러쓴 시와 그 시들의 행간을 읽으면서 내내 행복했다. 많은 예비 작가들이 오랫동안 가슴 깊이 새겨둔 기쁨과 슬픔, 순수함과 아름다움, 아픔의 흔적과 덧난 상처들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를 아끼고 가까이 하려는 마음을 읽을 수 있어서 더없이 좋았다.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작품으로는, 이성임의 ‘별을 굽는 여자’, ‘시계대학병원이 있는 골목’, 박은영의 ‘놀러 와 주실 거죠?’, 조성란의 ‘동검도 폐교’, 이진화의 ‘귀뚜라미가 사는 동네’, 김명희의 ‘개성집’, ‘냅일물’ 등이다.

모두가 적지 않은 시력(詩歷)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이성임의 시편들은 시를 포착하는 지점이나 감성에 있어서 기성과 다를 바 없는 수준작이었다. 굳이 흠을 잡자면, 시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시인의 내면세계에 대한 뜨거운 통찰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보다 깊이를 더한 그의 시에 많은 기대를 걸고 싶다.

당선작인 김명희의 ‘개성집’은 우선 시의 깊이와 감동에 있어서 독자를 사로잡는 힘이 있다. 한없는 가벼움이 미덕처럼 횡행하는 부박한 시대에 던지는 낮은 목소리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우열을 가늠하기가 힘들 만큼 고른 수준이었다. 물론 흠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당선자로 선정하면서 굳이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이를 기화로 시의 밭을 일구어나갈 마음가짐이면 축하의 꽃다발을 받기에 앞서 마음의 죽비를 들어야 할 터이다.


심사위원 김수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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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최재영

 

 

처음 나는 겸손한 흙이었다
진흙 층층이 쌓인 어둠을 밀어내고
누군가와 끈끈하게 얽혀진 숨결
불룩한 옆구리를 뽐내며
어느 집의 연륜을 저장하는,
도대체 우화를 꿈꾸지 않았건만
나는 햇살을 움켜쥐고
내 안의 목록을 삭여내는 중이다
아주 오랫동안
해마다 비밀스런 내력을 보태며
맛과 맛, 그 아귀를 맞추는 시간들은
서로 맥박을 주고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럴때마다
번쩍이는 세월의 빗금하나 그어지고
그리운 것에 대한 열망으로
짜고 싱거움에 길들여진 것들
손꼽아 여닫히던 햇살들
점점 순도 높은 깊은 맛을 우러낸다
내게 저장된 세월을
프리스틱 통에 담아가는 사람들,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으며
겸손한 덕담 하나씩 건네준다.

 

 

 

꽃피는 한 시절을 허구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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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詩 쓰는 동안 행복과 고통이”

 

많은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내게 있어 詩를 쓴다는 것에 대해 뭐라고 정의 하기는 어렵다.
다만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들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한 편 한 편 완성하기 위해 보낸 많은 불면의 밤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그래서 나 스스로를 검증할 수 있게 되었지 않나 싶다.
詩를 쓰는 동안은 행복하고 또한 고통스럽다.
문장을 지우고 고쳐가면서 더 나은 글이 완성될 때의 그 만족스러운 순간들이 여기까지 오게 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는 겸허한 시인이 되고 싶다.
지난 일년을 어떻게 보냈나 싶게 빠르게 흘러간 시간들이다.
바쁘다는 말을 늘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다. 그 시간들 속에 함께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고맙다.
詩가 뭔지도 모르면서 다만 엄마가 지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좋아하는 아이들과 우리 가족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 주는 남편, 무엇보다도 고맙고 감사하다.
詩가 임재할 진정성에 대해 가르쳐 주신 박경원 선생님, 고맙습니다.
만나면 즐겁고 편안한 시원 동인 선배님들, 제가 한턱 단단히 쏘겠습니다.
詩의 길로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신문사와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쓸 것을 다짐하며 감사드립니다.

 

 

 

 

루파나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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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순도높은 깊은 맛 우러나오길

양의 풍성함과는 달리 질이 그것에 미치질 못해 실망스런 심사였음을 먼저 밝혀둔다. 한동안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응모작들이 일정한 수준을 견지했던 점을 생각하면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다. 응모하신 분들이 스스로의 문학적 진지성과 치열성을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경험의 지루한 서술이나 단순한 풍경의 묘사에 빠져 의미있는 언어의 장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었고, 어떤 응모작들은 맥락 없는 언어의 남용, 단절된 이미지들의 혼란, 장식적 비유의 화사함에 갇혀 스스로 시적 품격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또 어떤 응모작들은 자기에 대한 집착이 강해서인지 개별성이 보편성으로 이어지질 않아 유의미한 소통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었다.


몇몇은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었다. 주대생 씨의 경우 언어의 재치가, 고옥희 씨의 경우 비유의 참신성이 살만했고, 강란숙 씨는 일상적 체험에 대한 성찰이, 오영희 씨는 서사의 무게가 돋보였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주제의식의 밀도라든가, 시적 구조의 짜임새 등이 튼실하지 못하여 더 이상의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였다.


최재영 씨는 시적 자질이 그 중 나아보였다. 언어의 운용이 자연스럽고, 시를 얽어매는 솜씨가 꽤나 세련되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평범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제의식이 뚜렷한 것과 너무 빤한 얘기를 드러내는 것은 구별되는 것이다. 언어의 질박함이 미덕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표현의 수일성의 결함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신인임에랴.


정직하게 말하면, 나로서는 어느 것도 당선작으로 밀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젊은 문학도들의 기대와 희망을 헛되게 저버릴 수가 없다는 핑계로 나는 나 자신과 타협을 했다. 아쉬운 대로 최재영 씨의 「항아리」를 당선작으로 내보내는 까닭이다. 최재영 씨는 시의 길에 더욱 정진하여 ‘겸손한 덕담’만이 아니라 정말 ‘순도 높은 깊은 맛’을 우려낼 수 있는 항아리로 성장하길 바란다. 아울러 뽑히지 못한 많은 분들도 실망하질 말고 자신의 시업을 꿋꿋이 가꾸어 나갔으면 한다.

 

심사위원 김승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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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월의 진눈깨비 / 양인숙

 


그 날, 아버지가 세워놓은 지게가 맥없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돌담 밖으로 무너져 내리던 오십년지기 박토의 일생이 희망과 절망이 반쯤 절은 진눈깨비로 흩뿌려졌다. 모두들 떠나버린 시골마을 어귀에 순박한 하늘 한복판을 들여놓으며 넘어진 아버지의 빈 지게 위로 소나기도 함박눈도 되지 못한 회색 구름이 총총 걸린다. 당뇨병으로 수척해진 아버지의 말년, 날마다 야위어가던 퀭한 얼굴에 십일월의 시린 날들이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보라빛 상념이 달개비 꽃으로 피어나고 가끔씩 뱉어놓은 무서리에 놀라 고개를 떨군다. 무릎 저린 십일월의 진눈깨비 가슴마다 설움 깊어도 당뇨병 치료에 특효약인 달개비꽃 탕관에 달여지면 돌밭 사이로 하얀 씨앗들이 한숨을 묻고 있다. 중국산 수입 약초 향기에 밀려서 제 값 받지 못한 채 등 굽어 마르던 아버지의 잔기침소리. 희망과 절망의 반쯤 절은 십일월의 진눈깨비가 아버지 허리춤에서 겨울의 마지막 기운을 모아 힘찬 기지개를 켠다.

 

 

 

[당선소감] 詩가 동전 한닢의 사랑 됐으면

태풍 매미가 지나간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모양이다. 올해는 유난히 이웃을 향한 온정의 손길도 더디고 어느 복지기관에서는 모금이 부족하여 난방을 생략한 채 추위를 견뎌내고 있다는 소식에 마음이 무겁다. 내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 복도에 걸린 낡은 포스터와 마주칠 때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 아이들의 검은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었다. 그 포스터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져 있었다. “아주 특별한 동전 한 닢의 사랑” 유니세프의 기금 모집을 위한 아이들의 사진 앞에서 늘 부끄러워진다. 적어도 내가 쓰는 시가 특별한 동전 한 닢의 사랑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당선이라는 전화 소식에 기쁨은 잠시였고 어깨가 더욱 무거워졌다. 시를 좋아한다고 떠벌리고 다녔었던 철부지 시절은 다 지나고 늦깎이에 시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려면 그만큼의 책임이 뒤따르는 것이기에. 뼈를 깎는 매서운 추위를 견뎌낸 후 매향이 향기롭다는 옛 선인의 말이 나를 견책한다. 아름다운 시의 정점을 향한 환유의 계단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기만 한데 가야할 아득한 정신의 모험은 나를 매혹시킨다.

 

이제 서툰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도록 격려해주신 한라일보사와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그 동안 결점과 나태를 극복할 수 있도록 준엄한 가르침을 주신 김승립 시인께도 당선의 영광을 돌리고 싶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게 용기를 준 친구 미정이와 도원이 그리고 묵묵히 습작의 시를 읽어준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이 기쁨을 같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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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허세부리지 않은 따뜻한 일상

해마다 그렇지만 올해에도 자갈밭에서 옥(玉)을 고르는 수고를 면할 수 없었다. 어려운 일은, 자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골라낸 옥 가운데서 최상품의 돌을 고르는 것이었다. 부지런히 추리고 남은 것이 7편- 그 중에서 다시 3편을 골라, 두 사람이 돌려읽기를 수 차례 한 끝에 마침내 양인숙씨의 「십일월의 진눈깨비」를 당선작으로 낙점할 수 있었다. ‘버린 작품’ 중에는, 당선작을 내고 나서도 몇 번이고 다시 만지작거려야 했던 수작들이 있었다. ‘택시일지’라는 부제를 단 연작 중의 「나의 위치와 속도는 감지되고 있다」도 그런 작품이었다. 서울에서 응모한 작품인데, 입담이 좋고 도시 속에 산다는 것의 실존적 의미를 묻는 주제도 육중하다. 그러나, 방만해지려는 언어를 효과적으로 수습하지 못한 흠이 걸려 읽기가 편치 않았다. 이와 정반대의 예로는, 경주에서 보내온 「저녁」이 있었다. 단 8행의 시였으나, 주옥이었다. 그러나 동봉한 다른 보석들은 불순물을 꽤 함유하고 있었다. 그밖에도 대구에서 온 「보리밭」, 충북 음내리에서 온 「나무」, 서울에서 온 「침묵의 말로 꽃을 피우다」, 경남 진주에서 온 「上無住, 溪澗」도 독자 제위께 한 번 보이고 싶은 작품들이었다. 당선작 「십일월의 진눈깨비」는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안다. 대단치 않은 이야기를 대단치 않게 이야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 시에서 내리는 진눈깨비는 따스한 체온을 가졌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려고 허세를 부렸다면, 지금처럼 ‘가슴 찡 해지는’ 시가 못됐을 것이다.


심사위원: 한기팔(시인), 송상일(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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