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비행기 / 나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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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비행기 날고 있습니다 구름들 위로 나도 떠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눈 비 맞아도 젖지 않는 어린 종이비행기의 활공이 꼬리없는 소문을 달고 구름들 사이, 대꽃이 피는 천년의 마을까지 날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내려다 봐도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칸칸마다 불안한 여행입니다 하늘이 제 갈 길로 헤어지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해는 기울었고 내 몸도 가벼웠습니다 어디서 귀떨어진 학울음소리 하늘가에 떠돕니다
2
하루종일 날아다녔습니다 누군가 다시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핏기 없는 그의 얼굴에서 캄캄한 두려움이 보였습니다 그는 백지장처럼 가벼워서 너무 가벼워서 흩어져 날릴 것만 같았습니다 아가미가 신선한 전설처럼 하늘빛도 파랗게 질려 있습니다 부서지고 무너지면서 길없는 길을 아슬아슬 날아오르는 그의 꿈도 기어코 가까운 하늘로 놓쳐버린 모양입니다 옛날에 우리 아버지도 어린 나를 등에 태우고 어린 나를 어르며 기울기울 학같이 날아올랐을 것입니다
[당선소감] “새로이 닻 올려 험난한 詩의 산맥 정복할 터”
겨울 햇볕이 ‘쨍’ 한 것이 아무래도 하늘의 안색이 예사롭지 않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빛이 욕스럽도록 푸르다. 이미 조락 해버린 계절이 이리 화창한 이치는 분명 치욕이리라. 뜻밖의 당선전화를 받고 나는 우선 달팽이처럼 웅크리고 앉아 원고지를 뜯어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상처와 균열로 짜여진 불안 투성이의 내 꿈이 종이비행기에 실려 종횡무진 제주의 하늘을 날았다. 늘 휘파람 같은 저음을 달고 내 안에 출렁거리던 제주의 바다. 그 출렁거리는 낮은 목소리는 안개의 미립자처럼 휑한 기억 속의 원고지에 몰려와 칸칸마다 젖은 언어를 쏟아 놓았다.
지난 가을 나는 갈매기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제주 섬에서 일주일 내내 출렁거렸다. 눅눅한 방안에서 중심을 잃어버린 나는 출렁거림을 바로 잡으려고 돌아눕고 돌아눕다가 불안한 꿈속을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사방은 분분했다. 흩날리는 눈발이 마지막 남은 사랑처럼 빈 나뭇가지를 마구 흔들었다. 잊었다는 듯 마른 산 갈대 몇 줄기도 따라 흔들렸다. 그렇다. 나는 이미 오래오래 출렁거리고 있었다. 바다의 비린내나는 상처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처럼 이 투명한 바다와 산맥 위에서 그지없이 흔들리는 고민이 많은 존재였다. 이제 할 수만 있다면 조여오는 넥타이를 풀고 반듯하게 닦여진 세상의 바깥으로 팔 벌려 뛰쳐나가고 싶다. 뛰쳐나가서 더 큰 산맥과 거친 제주 섬의 출렁거림을 만나야 할 것이다. 새로이 닻을 올리고 사나운 파도와 험난한 詩의 산맥을 쓰러 눕힐 터이다.
미흡한 나에게 넓은 문을 열어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눈물겨운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더욱 정진하라는 회초리로 받아들이겠다. 내 나약한 창작의지에 詩魂을 피워주신 이경교 교수님과 문예창작과 학우여러분에게 이 작고 부끄러운 열매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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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환상과 현실 융합시키는 수법 도드라져”
해마다 신춘문예로 무수한 신인들이 등단하지만, 살아 남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어 응모작 수준이 고르고, 발전 가능성이 높은 작품을 뽑기로 하고 전체 작품을 읽었다. 그 결과, 본 심사위원의 주목을 끈 것은 나정호, 현택훈, 김혜경의 작품이었다.
‘문학동 시(詩) 유괴 사건’ 등을 응모한 현택훈의 작품은 시상이 참신했다. 하지만, 서사적 구조를 지녔다는 게 약점이었다. 현재 이 순간의 이야기로 고정시키고, 모티프 간에 간극을 넓히면 대성하리라고 믿는다.
‘사월이 오고 있다’ 등을 응모한 김혜경의 작품은 서정성이 두드러지고,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아주 능란하였다. 하지만, 너무 아름답게 쓰려는 습성과 불안한 행 가르기 때문에 당선작으로 뽑을 수가 없었다.
‘종이비행기’ 외 4편을 응모한 나정호 작품은 타지의 당선작이 발표돼야 드러나겠지만, 결코 뒤지지 않으리라고 믿는다. 환상과 현실을 융합시키는 수법을 비롯하여, 주제에 따른 형식의 선택, 언어의 질감을 대조시키면서 구조화하는 능력은 아무나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병찬, 서애숙, 고금순, 권혁찬 작품도 조금만 더 노력하면 영광의 기회가 주어지리라고 믿어 이름을 밝혀 둔다. 모두 정진하시길.
심사위원 윤석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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