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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 / 서광일

 

 

비닐 봉지가 터졌다

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들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복숭아

사내는 자전거를 세우고

떨어진 것들을 줍는다

 

길이가 다른 두 다리로

아까부터 사내는

비스듬히 페달을 밟고 있던 중이었다

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

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 했다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털이 보송보송한 것들만 고르느라

봉지가 새는지도 몰랐던 모양이다

 

알알이 쏟아져 멍든 복숭아

뱉은 씨처럼 직장에서 팽개쳐질 때

그리하여 몇 달을 거리에서 보낼 때 만난

어딘가에 부딛혀 짓무른 얼굴들

사내는 아스팔트 위에사

그것들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얼마만에 사들고 가는 과일인데

 

흠집이 있으면 좀 어떤가

식구들은 둥그렇게 모여

뚝뚝흐르는 단물까지 빨아먹을 것이다

사내는 겨우 복숭아들을 싣고

페달을 힘꼇 밟는다

 

자전거 바퀴가 탱탱하다

 

 

 

 

2001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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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낮에 아버지와 논에 나갔다. 추수를 앞두고 노릇노릇 익어야 할 벼들이 때 아닌 태풍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여기저기 비바람에 쓰러진 벼를 보고 있자니 태풍의 멱살이라도 잡고 싶은 게 들녘에 나온 농부의 마음일텐데. 아버지는 한참을 비 속에 서 계시더니 물꼬만 보고 그냥 가신다.

그동안 시가 안써진다고 얼마나 나 자신을 함부로 했던가. 시간은 결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를 더 깊은 심연으로 침몰시켰다.

그나마 몇 알 여물지도 않은 내 작품이 세상으로 나간다는 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서울에서의 어설픈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여름내 여물기 위해 얼마나 더위와, 또 내 자신과 싸웠던지 작품을 보내고 며칠을 앓았다.

겉으로는 멀쩡했지만 혓바늘이며, 몸살의 잠복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 때서야 알았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자동차 배기통에 대고 호흡하는 듯 답답한 시간이었다.

올 추석 고향에 내려가면 이것 저것 물어오는 친지들에게 뭐라 대답해야 할까. 차라리 이 지독한 도시에 남아 며칠 꾹 참으면 되지 않을까, 하다가도 태생이 촌놈이라 그런지 물소리가 좋고 풀내음이 좋아 결국 내려와 침묵으로 며칠을 보냈다.

짓궂은 친구들. 늘 그 자리에서 날 반겨주기도 하고 대목이라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 녀석들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철이 들었는지 서로 어깨도 도닥거린다.

관계란 참 대단하다. 내 언어의 텃밭이 되어준 부모님 동생들, 오래 곰삭아 텃밭에 거름이 되어준 고향 친구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텃밭을 함께 일구는 동기들, 그리고 '원광문학회' 식구들 모두 고맙다.

아니 미안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텃밭에서 거둔 부족한 열매 몇 알을 맛 보아 주신 심사위원님께도 감사드린다.

끝으로 내 오랜 문혈(文血) 현승이와 광대 희준, 내 안에서 질서가 되어준 이준에게 깊은 포옹을 건넨다.

 

 

 

 

뭔가 해명해야 할 것 같은 4번 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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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복숭아'(서광일)는 일견 평범하기 짝이 없는 시적 진술로 시작된다. 사내가 자전거를 세우고 길바닥에 흩어진 복숭아들을 줍는 1연부터가 그러한데 특히 비닐봉지에서 흩어져 나온 복숭아들을 '우르르 교문을 빠져나오는 여고생'에 비유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 평범의 시행들은 2연의 시적 비약을 감추기 위한 의도적인 온축으로 보인다. 2연에 의하면 사내는 한쪽 다리가 짧으며 그래서 자전거 페달을 비스듬히 밟을 수밖에 없으며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식구들을 위해 '털이 보송보송한' 복숭아를 고를 줄 아는, 작지만 눈밝은 기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시인의 시선은 사내가 '허리를 굽혀 복숭아를 주울 때마다/울상이던 바지주름이 잠깐 펴지기도' 하는 데까지 머물면서 이 가난한 날의 삽화를 돌연 활력 있는 어떤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이런 시대에도 시를 쓰고 읽는 이유일 것이다. 즉 '복숭아'는 시의 기본 규칙을 잘 준수하면서 어떤 가난에 특별하고 의미있는 삶의 충만을 선사했다. 그리하여 비록 순간에 불과하겠지만 어느 스산함 속에서도 자전거 바퀴는 기쁨으로 땡땡할 수 있는 것이다.


 '복숭아'를 중앙신인문학상 영예의 당선작으로 밀면서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 중에서 '성에'는 짧고 빛났으나 '소음동 삽화'같은 시들은 너무 시적 규범에 얽매인 나머지 안이한 감동만을 선사하고 있다는 점도 아울러 밝혀둔다. 예술가에게 있어 그 앞의 선행 규범이란 때로 과감히 깨뜨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점도 이해했으면 한다.


 당선작과 이들 작품의 수준차는 그리 크지 않다. 다만 당선작인 '복숭아'에 들어 있는 어떤 시의 눈, 작품 전체에 돌연 생기를 불어 넣는 그 무엇이 이들 작품에는 부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대저 예술이란 무엇인가. 죽은 사물에 가장 자연스럽게 살아 있는 숨결을 부여하는 행위 아닌가..더욱 분발하시기 바란다.

 

심사위원  황동규, 이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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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 / 박성우

 

 

거미가 허공을 짚고 내려온다

걸으면 걷는 대로 길이 된다

허나 헛발질 다음에야 길을 열어주는

공중의 길, 아술아슬하게 늘려간다

 

한 사내가 가느다란 줄을 타고 내려간 뒤

그 사내는 다른 사람에 의해 끌려 올라와야 했다

목격자에 의하면 사내는

거미줄에 걸린 끼니처럼 옥탑 밑에 떠 있었다

곤충의 마지막 날갯짓이 그물에 걸려 멈춰 있듯

사내의 맨 나중 생이 공중에 늘어져 있었다

 

그 사내의 눈은 양조장 사택을 겨누고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당겨질 기세였다

유서의 첫 문장을 차지했던 주인공은

사흘만에 유령거미같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조장 뜰에 남편을 묻겠다던 그 사내의 아내는

일주일이 넘어서야 장례를 치렀고

어디론가 더났다 하는데 소문만 무성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그 사내의 집을 거미집이라 불렀다

 

거미는 스스로 제 목에 줄을 감지 않는다

 

 

 

 

2000 신춘문예 당선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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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별을 털며 집으로 가는 퇴근길은 아름다웠다.

지친 몸에서 빠져나온 사내는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연필부터 깎곤 했다. 연필심처럼 생각이 올라오면 그것을 공책에 옮겼다. 사내의 왼손엔 어김없이 담배가 들려 있었는데 온 몸을 태울 듯 빠르게 타 들어갔다.

아침에 사내의 방문을 슬쩍 열어 보면 사내의 목이 앉은뱅이 책상 위에 툭, 털어져 있을 때가 있었다. 등을 흔들어 밤새 무엇을 썼느냐고 묻기도 전에 사내는 담뱃재처럼 흩어지곤 했다.

원고를 보내 놓고 나는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지 않았다. 대신 지독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모든 감각이 진공상태에 놓여 있었으므로 허공을 걷는 아찔한 맛을 볼 수 있었다. 또한, 혓바늘이 입천장을 찔러 대는 통에 나는 양식을 아낄 수도 있었다.

그런 증세는 1주일이 넘게 계속되었다. 몸살이 끝날 즈음 나는 일요일을 빌려 금강 하구의 갈대 숲에 접혀 있다가 돌아왔다.

혼자 콩나물국을 맵게 끓여 먹으며, 나도 누군가에게 얼큰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전화기를 내리자마자 몹쓸 아버지가 울컥거려서 잠시 젖게 내버려두었다.

생각하기도 전에 눈물이 되곤 하는 어머니 김정자 여사, 지난해 성탄절 전야에 흙으로 돌아가신 존경하는 아버지, 묵묵히 지켜 봐준 사랑하는 핏줄들, 한시름 놓으셨죠?

큰형으로 느낄 때가 더 많았던 이상복.정영길.이혜성 교수님을 비롯한 문창과 교수님들, 어머니 같은 박라연 교수님, 그리고 내 생활의 지침서이신 정종환 선생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호만형, 성민형, 문원을 비롯한 문우들과 시창작반 식구들, 절망할 때마다 다독거려 주던 동기생들, 출발점을 허락해 준 중앙일보와 출발신호를 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못 든 길에서 지도를 만들어 나가게 하신 강연호 은사님! 앞으로도 저를 가파른 벼랑 끝에 세워 두실 거죠? 선생님, 거기로 나오세요. 오늘은 제가 소주 한잔 살랍니다.

 

 

 

 

웃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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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을 거쳐 온 적지 않은 작품들을 읽으면서 올해의 응모작들이 시적 다양성이나 인식의 틀로는 예년의 수준에 미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게 하는 정서적 탄력이나 신인다운 패기 또는 개성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는 심사의 자리란 때로는 곤혹스럽다.

마지막까지 선자들이 주목했던 작품들은 김다솔.강성민.박승철.류남.박성우씨의 시편이었다.

김다솔씨의 응모 시에서 엿보이는 것은 섬세한 시어가 감당하는 풍경의 투명성이다. 관찰과 묘사에 기대고 있는 이 응모자의 시선은 드러나지 않는 삶의 굴곡과 파문들을 읽어내지만 정작 깊이나 높이로 확산되지 않아서 아쉬움을 주었다.

강성민씨는 환상과 이미지를 교직하는 매력적인 시상을 펼쳐 보이지만 그것들을 한 줄로 꿰보이는 맥락의 힘이 제대로 살펴지지 않는다. 응모 작품들이 유지하는 수준에는 편차가 두드러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겠다.

박승철씨의 작품은 사유의 힘이 돋보인다. 거기에 걸맞은 시어의 선택도 선이 굵다. 그럼에도 행간과 행간 사이에 긴장과 탄력이 지탱되지 않는 까닭은 범상하고 익숙한 수사에 비약이 심한 시상을 걸쳐놓고 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류남씨의 시편들은 분방한 상상력을 감당하는 그 나름의 형식미가 재미있게 읽혔다. 그러나 그것을 온전히 확인하기에는 응모 편수가 너무 적었다. 군데군데 부적절하게 동원된 시어들도 막상 선자들을 망설이게 했다.

박성우씨의 '거미' 가 당선작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습작의 연조 때문일 것이다. 그 외의 응모작에서도 시적 상상에 스며드는 체험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리하여 거의 제 솜씨로만 한 채 시의 집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응모자의 오랜 단련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다만 사물 앞에서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려는 노력만이 앞으로 제 몫의 장인으로 자신을 세우는 길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심사위원 김명인 황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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