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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 / 유수진

 

 

폭포는 순간이 없다.

멈춤이 없다.

멈춤이 없으니

지구의 부속품 중 하나

 

폭포 아래에는 지구의 명치가 있어서 지구와 같은 시간을 흐르고 지구와 같은 기억을 간직하고 지구와 같은 길이를 짊어지고 지구와 같은 두통을 앓는다. 지구의 이마를 짚는 폭포. 쏟아지는 이유를 들어보자. 움푹하게 패인 곳을 더 움푹하게 파는 낙하가 그곳에 있으니, 움푹하게 패인 곳을 치는 주먹들이 있으니.

 

그곳에 소란이 있으니.

 

폭포 위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건 떨어지는 물보다 더 빠른 죽음이었겠지. 그건 쏟아지는 하늘보다 더 파란 죽음이었겠지. 순간이 있었다면 치솟는 일 같은 건 생각도 않고 아래로 아래로 순응하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바닥을 천명으로 여기고 손안의 주먹밥이 식은 걸 팔자 탓으로 돌릴 수 있었을 텐데. 문득 올려다 본 곳엔 두 손에 묶인 채 위로 위로 끌려 올라가는 폭포가, 파랗게 질려서 밑동까지 덜덜 떠는 폭포의 귀청들이,

 

폭포를 보고 있으면 계속 흐르는 중인지

계속 치솟는 중인지 모를 때가 있다.

함께 흐르는 듯 함께 치솟는 듯 해 폭포에게

무엇을 봤냐고 물어본다.

 

귀가 어두워서 모른다고

못 들었다고

못 봤다고 하고

바닥에서 다시 튀어 오르는 물은 마치 무명천이 펄럭이는 것 같다.

 

흘러간 물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쓰는 폭포. 이미 흘러간 물줄기는 천 리를 지나고 만 리를 지나고 지금쯤 어느 별에 닿았을 것인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낮마다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폭포는

그 옛날의 물줄기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네.

 

 

 

 

 

[심사평] 폭포와 죽음의 역동적인 대비에 성공해

 

제주4·3평화문학상은 공모주제를 미리 제시하고 작품을 모집하는 문학상이다. ‘4·3의 진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이 그것이다. 이에 따라 창작자들은 제주 4·3의 역사성에 기반을 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언어로 형상화하려고 궁리를 하게 된다. 사실 창작자의 입장에서 보면 소재를 선택하고 작품의 밑그림을 그리는 일에서부터 사전에 미리 제시된 주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사실이다. 주제에 매달리면 문학성을 의심받고 주제로부터 멀어지면 진정성을 의심받게 되므로. 시는 어떤 정답을 그대로 드러내는 양식이 아니라 정답을 숨기면서 정답에 근접하는 양식이다. 그것이 설사 옳다 할지라도 4·3이라는 사건을 도식적으로 표현하는 작품은 읽기가 거북했다. 민간인 희생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제주 방언을 몇 차용한다고 해서 4·3이 문학적으로 완성되는 건 아니다, 시는 그 매너리즘을 넘어서서 인식의 새 지평을 제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올해 10회째를 맞은 이 문학상이 더욱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자리 잡으려면 줄곧 희생자의 입장에서 현실을 드러내던 방식을 이제는 좀 수정을 해야 하지 않을까? 희생자의 상처와 고통을 직정적으로 토로하는 방식은 수없이 봐왔다. 가해자의 입장, 가해자의 반성과 자기 극복의 관점을 보여주는 시는 어찌해서 단 한 편도 만날 수 없는가? 역사적 사실과 시적 심미성은 별개가 아니다. 4·3은 상처를 추념하는 예술이 돌파하기 어려운 굴레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4·3이 인류의 보편적인 공감을 획득하는 차원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적 상상력의 전복이 더욱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31폭포를 올해의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 작품은 폭포라는 소재를 죽음과 대비하면서 역동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힘찬 긴장감이 더해지는 이 시는 폭포가 그 옛날의 물줄기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는 인식으로 발전한다. 시인의 인식이 독자에게 충분히 전이되어 설득력을 얻는 지점이다. 이분은 제주에 경사가 많다는 점에 착안해 삼십 도는/ 후회하기 좋은 경사인가”(경사) 묻기도 하고, 망자가 누운 관속의 빈 공간을 허방을 짚는 일”(발끝의 사례)로 파악하면서 유보를 통해 고통을 드러내는 방식에 능하다. 구문의 적절한 반복으로 시의 가독성을 높이고 있는 점도 좋게 보았다.

 

수상작과 함께 오래 검토한 73은 구어체적인 진술이 능숙했으나 4·3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개괄하는 듯한 목소리가 아쉬웠다. 시에 각주를 지나치게 나열하고 있는 점도 거슬렸다. 29는 시적 정황에 대한 실감 어린 묘사가 볼 만했으나 작시(作詩)’의 의도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

. 본인의 유려한 목소리를 본인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길을 모색해보기 바란다. 2월 말의 제주는 먹쿠슬낭으로 부르는 멀구슬나무 열매가 가지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있었다. 소리가 날 것 같았다.

 

- 심사위원 (시인 김사인, 시인 이문재, 시인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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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 / 김형로

 

 

설문대할망 다리를 놔 줍서

너럭치마에 고래실 흙 덩실덩실 떠 담아

남해나 동해 숨텅숨텅 놓아 줍서

나 백두산 마슬 다녀올라네

 

관덕정에서 북청이나 단천 어디쯤

다리 좀 놔 줍서 설문대할망

거기서 갑산 삼수 거쳐

영등할망 부럽지만 나 걸어갈라네

산에 산에 핀 꽃들 다시 볼라네

엎드려 꽃과 함께, 산사름 함께 며칠 지내다가

 

백두산 전에 고하겠네

큰넓궤 지슬과 정방폭포 총성을

정뜨르 안경과 알뜨르 녹슨 전선을

얽은 손과 부르튼 발을

그 위로 떨어지던 핏빛 동백꽃을

한몸으로 왜 못사나

훠이 훠이 날려 주고 오겠네

 

그해 남쪽 섬

붉지 않은 바위 셔낫던가

돌아앉지 않은 꽃 이서낫던가

 

설문대할망 다리를 놔 줍서

한라에 봉화 오르면

웃밤애기 알밤애기 오름마다 불을 받고

벌겋게 섬이, 달마저 붉게

백두에도 불 오르는 통일의 그날

호랑이도 곰도 느영 나영 춤을 추고

사름이 사름으로 살아지도록 신명나게 놀아봅주

좋은 싀상 우리 같이 살아도 봅주

 

설문대할망 어서 다리부터 놔 줍서

울어도 울어도 못다 운 노래 한 자락

가심에 박힌 돌멩이 들어내듯

검은 땅 검은 숨 붉게 울어 볼 거네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가만 풀어 볼 거네

 

 

 

 

백 년쯤 홀로 눈에 묻혀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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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예심 위원회가 본심에 올린 추천작은 모두 80(8)이었다. 본심 위원회가 최종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원탁 위에 올려놓은 작품은 5(5)이었다. <도령마루 꽃무릇> <북받친밭> <목시물굴의 별>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 <백비>(이상 접수 순). 심사 기준에 대한 본심 위원들의 이견은 이내 좁혀졌다. 작품의 완성도를 외면하지 않되, 작품에 내재된 문제의식과 파급력에 주목하자는 것이었다.

 

제주4?3평화문학상이 올해로 9회에 접어들었고 이제 새로운 10년을 바라보는 만큼 이번 수상작이 문학상의 위상을 새로 정립하는데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기를 기대해보자는 것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추천작 대부분이 70여 년 전 비극을 서정적 언어로 재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추천작은 저마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많은 작품이 소재(현장)주의, /악 이

 

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약자의 편에 선 분노와 진혼은 정당한 것이다. 발굴과 폭로 또한 문학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하지만 어느 한쪽으로 경도된다면 그것은 문학성으로부터 멀어질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인류의 보편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문학상 공모 취지를 떠올린다면 더더욱 그렇다. 4?3문학이 애도의 시간을 넘어, 제주와 한반도를 넘어,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창조적 시간으로 성숙해야 할 때다. 수렴에서 확산으로, 특수에서 보편으로,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전환해야 할 시점이다.

 

최종 후보작 중에 위와 같은 기준에 전적으로 부합하는 작품은 눈에 띄지 않았다. <도령마루 꽃 무릇><북받친밭> <목시물굴의 별>은 당시 현장을 재현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않았고 <백비>70여 년 세월을 반추하지만 미래로 열린 상상력이 부족했다(이번 심사 기준을 들이대지 않는다면 최종심에 오른 이 작품들은 저마다 빼어난 작품이다. 일반 문예지나 시집에 발표되었다면 독자들 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가 남았는데 앞에 거론한 후보작과 크게 달랐다. 제목이 환기하듯이 제주 4?3과 제주 설화를 다리() 삼아 한라백두의 만남을 주선하는 통일 서 사의 전개가 활달했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도 시야가 넓었다. 4?3의 야만성을 에둘러 표현하면서 위안부, 세월호 문제까지 관심사가 폭넓었다.

 

심사위원들은 <천지 말간 얼굴...>이 심사 기준을 온전하게 충족시키지는 않지만 여타 응모작과 견줄 때 주제 의식과 상상력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이와 같은 미덕이 향후 제주4?3평화문학상은 물론 4?3문학의 지평을 확대하는데 기여할 바가 적지 않으리란 판단에서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심사위원 이하석, 김광렬, 이문재

 

 

 

 

미륵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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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하는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제주 4.3평화문학상은 2012년 3월, 4·3의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수준 높은 문학작품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2019년부터 4·3을 직접 체험한 세대의 기록과 증언을 통한 ‘진실 찾기’를 이어가기 위해 논픽션 부문을 추가했다. 이번 문학상은 2020년 8월부터 2021년 1월 15일까지 공모가 진행되었고 총 1629편이 접수되었다.

당선작은 총 3편으로 장편소설 부문에서 이성아 작가의 ‘그들은 모른다’, 시 부문에서 김형로 작가의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 논픽션 부문에서 양경인 작가의 ‘제주4.3 여성운동가의 생애’이다. 특히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은 제6회 제주4.3평화문학상 이후 3년 만에 수상자가 나왔다. 

장편소설 부문 당선작인 ‘그들은 모른다’는 내전과 인종청소를 겪은 발칸반도의 역사를 한국 현대사 속 국가 폭력에 연루된 개인의 이야기에 대입한 작품이다. 제주4.3문학상이 지향하는 주제 의식의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며 특히 “역사적 안목과 함께 문제의 현재성, 당대성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 폭력에 대한 질문을 좀 더 넓은 시야로 성공적으로 옮겨냈다”고 평가했다. 

시 부문 당선작 ‘천지 말간 얼굴에 동백꽃물 풀어’은 제주4.3과 제주 설화를 연결 지어 한라와 백두의 만남을 주선하는 통일 서사를 담고 있다. 심사위원은 “여타 응모작과 견줄 때 주제 의식과 상상력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여주었고, 이와 같은 미덕이 4.3문학의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라 판단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논픽션 부문 당선작인 ‘제주4.3 여성운동가의 생애’은 4.3 사건 당시 사회주의 운동가로 활동했던 김진언 할머니의 삶을 담았다. 심사평에 따르면 4.3을 드러내놓고 언급하기도 쉽지 않았던 시기부터 집요하게 취재를 진행해 작품을 갈무리했다는 점에서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전했다. 

제 9회 제주4.3평화문학상의 시상식은 오는 4월 중 개최 예정이다. 상금은 총 9천만원으로, 장편소설 5천만원, 시 2천만원, 논픽션 2천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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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흰죽* / 변희수

 

 

불편해지면 죽을

끓입니다

 

식사라고 하기엔 좀 그렇지만

가볍게 훌훌 넘기고 싶다는 말

어제의 파도는 우물우물 삼켜도 된다는 그 말

 

그게 잘 안 돼요

부드럽게라는 말이 목에 걸려요

 

당분간 절식이나 금식

이상적인 처방이라는 건 알아요 미련이 생겨서

나는 죽을 먹습니다

 

맑고 흰죽을

 

한 숟가락 또 한 숟가락

돌아서서 코를 풀었죠

조금 묽어졌다는 뜻이지만

눈물은 짜니까

빨간 눈으론 돌아다닐 수 없으니까

그런 날은 손바닥마다 노란 가시선인장꽃

울지 않은 척 했어요

얹혔을 거라고 수군거릴 때마다

이 고비는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생각에 걸려

 

어제도 오늘도 삼키죠 백번도 더 생각하죠

죽이고 죽이다 보면 또 다시 죽

 

이렇게 맑고 흰죽

목이 메여요 달랑 죽 한 그릇인데

눈이 부셔요

 

새로 태어난 것처럼

몸속을 돌아다니는 물기가

어제의 죽이라 하겠지만

밤마다 복닥복닥 탕! !

죽 끓이는 시간이 또 다시 찾아오고

 

죽은 조금만 쑤어도 넘치게 한 솥이에요

후회도 한 솥 미움도 한 솥이어서

나는 먹고 또 먹을 테죠

다행이다 싶지만

 

맑고 흰,

무명의 시간들

 

좀 서운해요 돌아서면 고프고

어떻게든 달래고 싶은데

받는 게 이것 밖에 없는 이 속이

내 속이 그렇다는 거죠 지금

 

* 4.3 사건 피해자인 진아영 할머니는 턱과 이가 없어 평생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달고 살았다.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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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역사를 가정해서 말할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하여 말한다면 어떨까? 가령 4 ? 3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이 제주 땅에 극도의 비극적인 역사는 출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통곡과 반목과 질시의 고통스런 아수라의 세계 역시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역사는 이미 일어난 과거 사실이므로 당연히 되돌릴 수 없다. 더불어 이념의 대립과 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희생양들의 아픔과 슬픔도 지워질 수 없다. 그것은 우리의 안쪽과 바깥쪽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수시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것을 걷어내지 않으면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흔히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더는 참담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지나간 4 ? 3의 역사를 똑바로 직시하고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거울로 삼아 마땅하다. 이번에 시행되는 <8회 제주4 ? 3평화문학상>도 그런 취지에서 시행됨은 물론이다.

 

이번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면밀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공통점으로 느낀 견해를 몇 가지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작품에 투영된 작가의 시선들이 대체적으로 4 ? 3을 피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보는 경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뿐 아니라 4 ? 3의 현장성이나 리얼리티를 천착하는 과정에서 4 ? 3의 역사성이나 정신적인 측면이 간과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또는 과잉된 수사의 현란한 사용 등으로 독자(심사위원)와의 소통을 어렵게 하는 작품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4 ? 3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소 왜곡된 시 쓰기가 이루어진 경우도 없지 않았다. 앞뒤가 맞지 않은 비유를 사용하거나 난해한 시 쓰기가 시적 진실을 가려버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런 가운데 더욱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응모작품들이 다루는 소재나 내용, 의미 등이 일정한 틀 안에 갇혀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어떤 한계성을 극복하는 노력과 작품의 생산이 요망된다. 이제 4 ? 3문학은 제주만의 4 ? 3, 또는 흔적에 국한된 4 ? 3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이를 뛰어넘어 보다 세계사적인 범위로 의미를 확장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위에서 말한 내용 모두를 해결하거나 충족시키는 작품은 물론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시맑고 흰 죽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모았다. 이 작품은 4 ? 3사건의 피해자인 진아영 할머니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녀는 턱과 이가 없어 평생 소화불량으로 인한 위장병과 영양실조를 몸에 달고 살았다 한다.

 

이 작품은 을 통해 불편한 몸을 떠올리고, 그 불편함을 야기한 사건을 되새기면서, 그 사건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쉽게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하에서, 주어진 삶을 힘겹게 가누어나가는 한 인간의 애잔한 안간힘을 그려내고 있다.

 

죽을 먹을 수밖에 없지만, 언제나 부드럽게라는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리는 삶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다. ‘죽이고 죽이는 비극적인 사태를 떠올리는 매개체이면서 언제나 목 메이게 하는 것으로 가장 절실한 삶의 영양소이다. 음식을 통해 쓰디쓴 역사의 맛을 되새기는 절실함이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당선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이상국, 이하석, 김광렬

 

 

 

아무 것도 아닌,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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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자로 시 부문 변희수 시인과 논픽션 부문 김여정 작가가 결정됐다.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지난 20일 제주4.3평화기념관 대회의실에서 4.3평화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두 수상자에게 상패와 각 2000만원의 상금을 수여했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가 주최하고 제주4.3평화재단이 주관한 이번 시상식은 코로나 19 확산 방지를 위해 수상작가와 가족을 비롯해 현기영 운영위원장, 송승문 4.3희생자유족회장 등 20명 내외의 최소인원만 참석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인사말을 통해 "제주4.3의 지난한 진상규명운동 과정에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이산하의 시 '한라산' 등 많은 문학 작품들이 4.3의 증언자 역할을 해주었다""제주4.3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정의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만개하는데 4.3평화문학상이 가교가 되고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변희수 시인은 수상 소감을 통해 "4.3사건에 관한 작품을 누군가 계속해서 쓰고 또 누군가 계속 읽는다면 진아영 할머니를 비롯해서 수많은 희생자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그것이 문학의 가장 큰 힘이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여정 작가는 "'그해 여름'은 한국전사에 기록되지 못한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한 보광동 사람들의 이야기로 지난 3년여의 시간 동안 수없이 많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가슴 속 깊은 곳에 송곳처럼 박힌 이야기를 꺼내서 들려주신 보광동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한편 제9회 제주4.3평화문학상은 오는 7월 중 공모를 시작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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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살 때의 일 / 김병심

 

 

사월 볕 간잔지런한 색달리 천서동. 중문리 섯단마을로 도시락 싸고 오솔길 걷기. 늦여름 삼경에 내리던 동광 삼밧구석의 비거스렁이. 세 살 때 이른 아침 덜 깬 잠에 보았던 안덕면 상천리 비지남흘 뒤뜰의 애기 동백꽃, 동경에서 공부하고 온 옆집 오빠가 들려준 데미안이 씽클레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분위기는 남원면 한남리 빌레가름. 갓 따낸 첫물 든 옥수수의 냄새를 맡았던 신흥리의 물도왓. 친정집에서 쌔근거리면서 자는 아가의 나비잠, 던덕모루. 예쁜 누이에게 서툴게 고백하던 아홉밧 웃뜨르 삼촌. 백석이 나타샤와 함께 살았을 것 같은 가시리 새가름의 설원. 어머니가 끓여주던 된장국을 이방인인 그이가 끓여주던 한경면 조수리 근처. 매화차의 아리다는 맛을 사내의 순정이라고 가르쳐준 한경면 금악리 웃동네. 옛집에서 바라보던 남쪽 보리밭의 눈 내리는 돌담을 가졌던 성산면 고성리의 줴영밧. 명월리 빌레못으로 들어가는 순례자의 땀범벅이 된 큰아들. 해산하고 몸조리도 못 하고 물질하러 간 아내를 묻은 화북리 곤을동. 친어머니를 가슴에 묻은 아버지마저 내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애월읍 봉성, 어도리. 이른 아침 골목길의 소테우리가 어러렁~ 메아리만 남긴 애월면 어음리 동돌궤기. 지슬 껍데기 먹고 보리 볶아 먹던 누이가 탈 나서 돌담 하나 못 넘던 애월면 소길리 원동. 고성리 웃가름에 있던 외가의 초가집에서 먹던 감자. 동광 무등이왓 큰 넓궤 가까이 부지갱이꽃으로 소똥 말똥 헤집으며 밥 짓던 어머니가 불러주던 자장가. 깨어진 쪽박이란 뜻인 함박동, 성공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던 그곳에서 태어나 삼촌들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던 소설가. 초여름 당신과 손잡고 바라보던 가파도와 마라도, 알뜨르까지의 밤배. 지금까지"폭삭 속아수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제주 삼촌들과 조케들, 잃어버린 마을.

 

 

 

 

사랑은 피고 지는 일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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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은 지난 12W스테이지에서 제7회 제주4.평화문학상 시상식을 개최해 시() 부문에 당선된 김병심 시인에게 상패와 상금(2000만원)을 수여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 작가와 가족을 비롯해 현기영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장, 송승문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홍성수 제주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 이종형 제주작가회의 회장, 고운진 제주문인협회 회장 등 많은 문학인과 관련 인사 등이 참석했다.

 

양조훈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제주4.3의 남은 과제를 해결하고 인류보편의 평화정신이 4.3교훈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데에 문학의 힘이 필요하다""앞으로도 4.3평화문학상이 이 역할을 하는데 가교가 되고 험한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현기영 위원장은 "7회 공모에 이르기까지 전국 각지와 해외 응모 작가들이 꾸준히 증가한 것은 제주4.3평화문학상이 한국문단에서 중요한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했고 4.3의 전국화 세계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증거"라며 "감병심 시인의 수상을 축하하며 심사위원들의 노고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병심 시인은 수상 소감을 통해 4.3으로 인한 할머니의 행방불명과 마을의 폐동, 할머니의 흔적을 찾아 집념을 불태웠던 아버지의 이른 죽음 등 아픈 가족사를 소개하면서, "4.3 잃어버린 마을이 지금은 황폐하고 잡목이 우거진 곳으로 변했지만, 분명 콩떡 쑥떡 나눠주던 인심으로 사람살이가 좋았던 곳일 것"이라며 "그런 고향을 아버지에게 찾아드리고 싶었다. 너무 늦었지만 4.3사건으로 잃어버린 마을에 살았던 분들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김 시인은 안덕면 사계리에서 출생했고 제주대학교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97년 시 '발해를 꿈꾸며''자유문학' 시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고, 제주문인협회 회원으로 한라산 문학동인활동도 하고 있다. 시집 '더 이상 처녀는 없다', '울내에게', '바람곶, 고향' 등이 있다.

 

한편 제74.3평화문학상은 3개 부문에 329명이 2166(2031, 소설 119, 논픽션 16)이 응모했는데, 소설과 논픽션 부문은 당선작을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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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우翠雨 / 정찬일

 

 

봄비 맞습니다. 누가 급히 흘리고 갔나요. 밑돌 무너져 내린 잣담에서 밀려 나온 시리 조각. 족대 아래에서 불에 타 터진 시리 두 조각 호주머니 속에서 오래도록 만지작거립니다. 손이 시린 만큼 시리 조각에 온기가 돕니다. 온기 전해지는 길에서 비 젖는 댓잎 소리 혼자 듣는 삼밧구석입니다. 푸른 댓잎에 맺힌 빗방울 속이 푸릅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한밤 한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매 순간 모든 것이 흔들리고, 빛 속에 숨었던 얼굴들 다 드러나고, 누구도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진저리치는 생으로 불거진 물집 하나 서러운 적요로 붉게 물든 열매 하나조차도 투명하게 사그라지는

 

내게 와서 내가 되지 못한 눈빛들이, 돌을 뚫고 깨부수던 말들이, 견고한 나무의 길로 위장했던 내 비린 상처들이, 어둠을 혼자 견뎌내던 새들조차도 흔들리며 다 흩어지겠습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몸으로 번지는 비취색 나뭇잎 하나 배후로 삼아 한밤 한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단 한 번도 따뜻한 적 없는 시리 조각에 잠겨 한밤 한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주머니 속 시리 두 조각, 긴 세월 지나도 맞붙이 치는 소리 잇몸 시리게 쩡쩡거립니다. 이 봄비 그치면 취우 속에 가만히 들어 한밤 한낮을 꼬박 잠들겠습니다.

 

 

 

 

연애의 뒤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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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자로 김소윤(39·소설), 정찬일(55·) 씨가 선정됐다.

 

5일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에 따르면 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현기영)는 지난 228일 본 심사위원회를 열고 김소윤의 소설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 정찬일의 시 취우(翠雨)를 각각 제64.3평화문학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4.3평화재단은 지난해 7월부터 1220일까지 작품을 공모했다. 그 결과 국내·15개 지역에서 모두 231(1685, 소설 101)이 응모했다. 시상금은 소설 7000만원, 2000만원으로 국내 최고 수준으로 손꼽힌다.

 

<정난주 마리아-잊혀진 꽃들>1801, 조선조 후기 천주학 사건(황사영 백서)으로 인해 제주로 유배돼 관노비로 살게 된 여자 정난주의 비극적 일생을 그린 소설이다.

 

취우(翠雨)4.3로 잃어버린 마을 삼밧구석의 슬픔과 아픔을 서정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치유의 과정을 잘 드러냈다.

 

소설 부문 본 심사위원 김석희, 송기원, 한승원 씨는 심사평에서 조선이라는 봉건시대의 변방에 놓여있는 제주라는 어떤 차별성을 정난주라는 한 여인의 핍진한 삶과 연결시키는 작가의 진정성이 감동으로 다가왔다. 거기에 작가의 성실하고 개성있는 문체도 돋보였다고 호평했다.

 

시 부문 본 심사위원 강은교, 박남준, 정희성 씨는 “70주년을 맞이한 4.3은 이제 물 위로 올라와야 한다. 4.3평화공원에 아직껏 이름을 짓지 못해서 백비로 남아있는 비에 마땅한 이름이 새겨져야 한다. 주먹을 쥔 결기와 투쟁적 언어로는 어제와 오늘, 내일을 열고나갈 시대를 어루만질 수 없다. 서정의 힘이 다시금 필요할 때다. 취우(翠雨)가 그러한 시적 성취와 함께 치유의 덕목을 고루 갖추었다고 밝혔다.

 

김소윤 씨는 1980년 전북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소설 <물고기 우산>이 당선돼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한겨레21 손바닥 문학상에 단편소설 <벌레>, 2012년 제1회 자음과 모음 <나는 작가다>에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가 당선됐다. 저서로 장편소설 코카브-곧 시간의 문이 열립니다, 단편소설집 밤의 나라가 있다.

 

정찬일 씨는 1964년 전북 익산 출생으로 유년 시절 이후 제주에서 활동했다. 1998년 현대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한 뒤, 2002년 제2회 평사리문학대상에서 <꽃잎>으로 소설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05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유령>이 당선됐다. 시집 죽음은 가볍다가시의 사회학(社會學)이 있으며 현재 다층 동인,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64.3평화문학상 예비 심사위원은 소설 부문에 김숨·김한수·손홍규·심윤경·오수연·한창훈 소설가, 시 부문에 김경훈·박형준·손택수·안현미·황규관 시인이 각각 참여했다.

 

시상식은 3월 중 개최할 계획이며 당선 작품은 곧 공식 출판을 통해 독자들에게 선 보일 예정이다.

 

4.3평화문학상은 제주도가 20123월 제정해 제6회에 이르고 있으며, 2015년부터 4.3평화재단이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4.3평화문학상 제1(2012) 수상작은 현택훈의 시 <곤을동구소은의 소설 <검은 모래> 2회는 박은영의 시 <북촌리의 봄양영수의 소설 <불타는 섬> 3회는 최은묵의 시 <무명천 할머니장강명의 소설 <댓글부대> 4회는 김산의 시 <로프정범종의 소설 <청학> 5회는 박용우의 시 <검정고무신손원평의 소설 <서른의 반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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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신 / 박용우

 

 

어린 동생이 끌려가던, 길이었다

 

따라오지 말라고 눈물로 던진, 길이었다

 

여기다, 여기다 하며 두려움이 떨어뜨린, 길이었다

 

누이가 주워 가슴에 품고 가는, 길이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석날,

까마귀도 종소리에 숨죽인, 길이었다

 

섯알오름에서 노을이 핏물처럼 흘러내리는, 길이었다

 

땅 밑에서 고구마가 굵어지고

땅 위에서 고구마 꽃이 자주 빛 울음을 터뜨리는, 길이었다

 

누이가 터져 나오는 울음을 손으로 막고

초경을 앓던, 길이었다

 

동생에서 누이에게로 흘러내린 붉은 핏줄기가

상모리(上慕里) 불타는 골목마다 비린내를 몰고 가는, 길이었다

 

 

 

 

 

5회 제주4.3평화문학상 당선작이 선정됐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병택)는 지난달 28일 본심사를 진행한 결과 소설 부문 '1988년생'(현수영, 본명 손원평, 서울시), 시 부문 '검정고무신'(박용우, 경남 김해시)을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8일 밝혔다.

 

소설 당선작은 7000만원, 시 당선작은 2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4.3평화문학상은 4.3의 아픈 상처를 문학작품으로 승화함과 아울러 평화와 인권?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주특별자치도가 지난 20123월 제정해 제5회에 이르고 있다. 2015년부터는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이문교)이 업무를 주관하고 있다.

 

지난해 527일부터 1220일까지 이뤄진 이번 4.3평화문학상 전국공모에서는 시 1402(126), 소설 125편이 접수됐다.

 

소설부문 심사위원들은 무엇보다 제주4·3 정신의 문학적 형상화에 중점을 뒀으며 평화와 인권에 대한 전형성을 보여주는 작품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당선작 '1988년생'한국사회에 미만한 진짜를 가장한 가짜들, 약자를 악랄한 사기술로 착취하는 구조적 모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이 소설에 등장한다. 재벌의 은폐된 비리를 목숨 걸고 고발하고 그들의 저항은 비장하거나 영웅적이거나 하지 않고, 게임처럼 경쾌하게 행해진다.

 

심사에서는 "소설의 주인공은 그러한 저항의 몸짓들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왜소한 순종적 자아를 벗어내고 주체적 자아를 되찾게 된다. 위트가 넘치는 싱그럽고 유쾌한 소설이다"고 평했다.

 

시 당선작 '검정고무신'에 대해서는 "제주4·3의 비극을 소재로 삼아, 가족의 슬픈 정한을 줄기로 잡고 민담과 현실의 비애를 날줄로 엮은 그 구성과 기법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 심사위원들은 특히 "제주4·3의 진실이 명백하게 규명될 때만 이 정한의 끝이 나타날 것이다. 매우 역량 있는 시인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15일 오전 11시 제주도청 삼다홀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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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프 / 김산

 

 

공중의 바람은 한시도 그대로 머무는 법이 없다

붙들린 기억 저편으로 얽매이고 달아났다 이내,

방치하고 짓무른 거리의 흙 알갱이들을 토해냈다

13년간 복직을 위해 뛰어다닌 관절염은

헛기침 소리에도 소울음을 게워냈고

욕설처럼 들이밀던 탄원서는 침묵의 목도장만

시뻘건 일수를 찍어댔다

끝까지 몰려본 사람은 안다

눈 덮인 산기슭에 놓인 덫을 알고 있으면서도

외길로 쏜살같이 뚫고 나가는 산짐승은 안다

배낭에 생수 몇 통을 聖水처럼 짊어진 조성옥 씨는

지상 50미터 철강회사 굴뚝 위로 올라갔다

나선형의 계단을 징검돌처럼 한 생 한 생 밟을 때마다

죽지 위로 날개가 파닥거렸다

경계와 경계 사이에는 금을 긋는 법이 없다

땅은 땅이면서 하늘은 하늘 그대로를 담고 있다

굴뚝의 몸뚱어리가 후끈 달궈진 쇠근육처럼

매일같이 조여왔다, 휘어졌다

장미보다 들국을 좋아하는 눈이 파란 아내, 코넬리아는

배낭에 울음을 담고 로프를 묶고 있다

대롱대롱 매달린 배낭이 출렁이며 경계를 넘을 때

그는 순간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자신을 동여매고 산 한 올의 가닥은 무엇이었을까

백만 원 남짓의 서정적인 급료와

선술집에서나 통할 법한 철강 대기업의 명함 한 장

아니다 결코, 그건 아니다

웃자란 수염을 쓰다듬고 지나가는 공중의 바람이

지난날, 그가 배포했던 굴뚝 아래 뒷굽들의

처우개선 유인물처럼 세상의 길가 구석구석까지

낮게 낮게 손짓하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쌩쌩하다

 

 

 

 

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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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문학은 고통의 깊이를 파는데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그 깊이를, 깊을수록 아름다운 미래 전망의 씨앗으로 전화한다. 당선작 `로프`는 기존의 숱한 추모와 달리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잇는 역동적이고 긴장된 마디, 행들을 갖추고 있다. 첫 두 행은 거의 저돌적이다.

 

공중의 바람은 한시도 그대로 머무는 법이 없다

붙들린 기억 저편으로 얽매이고 달아났다,

 

이 긴장의 마디가 전편에 잠복하여 시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광경은 장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시뻘건 일수를 찍어댔다

끝까지 몰려본 사람은 안다

 

(중략)

 

나선형의 계단을 징검돌처럼 한 생 한 생 밟을 때마다

죽지 위로 날개가 파닥거렸다

경계와 경계 사이에는 금을 긋는 법이 없다

 

(중략)

 

대롱대롱 매달리는 매달린 배낭이 출렁이며 경계를 넘을 때

 

이 시의 마무리는, 당연히, 의미심장하게 느긋하다.

 

처우개선 유인물처럼 세상의 길가 구석구석까지

낮게 손짓하고 있었다

 

바람이 제법, 쌩쌩하다.

 

제주4·3 에 대한 추도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 마침내 제주도의 노래에 이른, 끝까지 아쉬웠던 경쟁작이 있었음을 일러둔다. 가령, `돌무더기를 용케 비집고 들어온 햇살에 눈이 쓰리다 졸음이 퀴퀴하게 번져가는`으로 시작되는 그의 `빌레못굴`은 오늘날의 제주도의 노래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는 당선작의 긴장이 그 노래의 가락마저 그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것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심사위원 고은 · 김순이 · 김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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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천 할머니 / 최은묵

 

 

할머니 얼굴에는 동굴이 있죠. 동굴은

쇠약한 바람의 입

고장 난 피리처럼 구멍에서 침식된 총소리가 쏟아져요

해풍이 불 때면

바람의 말을 새로 배우느라

밤새 빈병 소리를 내던 할머니

바닷물이 턱에 머물다 가면

정낭 올리듯

동굴 입구를 무명천으로 감싸야만 했어요

저 흰 천은 누굴 위한 비석인지

얼굴에 백비 동여맨 채 바다를 읽는

무명천 할머니

파도가 절벽을 적시듯 침을 흘려요

침은 닦지 못한 비명

숱한 어둠이 동굴에 터를 잡을 때마다

남몰래 뜰에 나와 달빛을 채워 넣었죠

수명을 다한 빛이 녹슬고

완성되지 못한 낱말들 진물처럼 떨어지면

새 무명천 꺼내 빗장을 걸던 할머니, 혼자 떠나요

바람의 언어를 중얼거리며

동굴 벽 짚고 떠나요

이제 동굴은 메워지고 피리소리는 멈추겠지요

잃어버린 턱을 채우려는 듯

월령리(月令里) 백년초가 바람의 말 속삭이면

할머니, 무명천 벗고 가시처럼 다녀가겠죠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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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제주4.3평화문학상의 영광은 시 무명천 할머니와 소설 ‘2세대 댓글부대에게 돌아갔다.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병택)는 올해 4·3문학상으로 최은묵(48·대전)씨의 시 무명천 할머니’, 장강명(40·서울)씨의 소설 ‘2세대 댓글부대를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5일 밝혔다.

 

이 당선작은 지난해 519일부터 1220일까지 전국 공모로 접수된 시 90·1026, 소설 55편 가운데 선정됐다. 당선자에게는 시 2000만원, 소설 7000만원의 상금이 지급된다.

 

무명천 할머니4·3의 상처를 고스란히 안고 살았던 할머니의 신산한 삶을 바탕으로 제주의 4·3과 제주의 바람과 바다를 제주의 가락에 담아 잔잔하면서도 끝이 살아 있는 언어로 녹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심사위원들은 예년에 비해 작품의 수준이 고루 향상됐다당선작은 문학의 보편성과 4.3문학상의 특수성을 고루 갖춘 기념비적(記念碑的)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2세대 댓글부대는 현재 저변으로 확대된 인터넷저널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정치권력이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그것의 하수인으로 살다 결국 용도 폐기되는 낙오자들의 참혹한 조건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댓글정치가 지닌 대중조작의 폭력성을 다뤘다.

 

심사위원들은 작가의 경쾌하고 날렵한 문체,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 치밀한 취재가 바탕이 된 현장감 등을 높이 평가했다.

 

본심사는 시 부문에 고은·김수열·김정환 위원 등 3, 소설 부문에 염무웅·이경자·현기영 위원 등 3명이 맡았다. 예심에는 각 부문별 5명의 심사위원이 참가했다.

 

시상식은 이후 일정이 정해지면 개최할 예정이며, 수상작품은 빠른 시일 내에 출판한다.

 

한편 제14·3문학상은 현택훈의 시 곤을동’·구소은의 소설 검은 모래, 24·3문학상은 박은영의 시 북촌리의 봄’·양영수의 소설 불타는 섬이 각각 당선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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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리의 봄 / 박은영

 

 

한 여인의 젖을 아이가 빨고 있었다

 

말 못하는 어린 것의 울음이 서모에서 부는 바람소리 같았다

 

핏덩이를 등에 업은 어미의 자장가가 들리는 듯한데

 

젖몸살을 앓던 아침, 붉은 비린내가 퉁퉁 불어 마을을 떠돌아다녔다 새들이 총소리를 물고 둥지로 날아갔다 소란스런 포란의 방향, 꽃을 내준 가지가 동쪽으로 기울었다

 

그것은 서쪽에서 해가 뜰 일

 

서모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말 못하는 어린 것의 울음 같았다

 

뚝 뚝, 지는 목숨들 사이

 

아이는 나오지 않는 젖을 한사코 빨아대고 있었다

 

어미를 살려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그 힘으로 동백꽃이 피고

 

젖 먹던 힘을 다해 봄이 오고 있었다

 

* 서우봉

 

 

 

 

구름은 울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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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는 동안, 참 많이 아팠습니다.

 

제가 몰랐던, 무지하여 알지 못했던 사실들로 인해 가슴을 치며 울었습니다.

 

새벽에 가슴 통증으로 일어나 거울을 보니 감자알만하게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멍 자국은 공모를 준비하는 내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 땅을 밟고 사는 게 참 많이도 부끄러웠고 까닭 없이 흐르고 했던 지난 눈물들 또한 죄스러웠습니다.

 

얼마나 아프셨습니까, 얼마나 몸서리치게 무서우셨습니까.

 

아직도 캄캄한 동굴 깊이 숨어 있을 분들, 그분들의 손을 잡고 함께 밖으로 나오고 싶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밤을 아침이 오도록 동행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젠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다시 봄이 오고 동백꽃이 피었다고, 저는 이 말씀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세상엔 왜 이렇게 가려진 것들이 많은지,

 

한 문장 한 문장 시를 통하여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잃어버린 마을들과 잃어버린 이름들과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되찾아드리고 싶었습니다. 그 간절함이 조금이나마 전해진 것 같아, 참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부족한 저를 믿어주시고 선해주신 신경림 선생님, 이시영 선생님, 김준태 선생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그리고 예심 심사위원님들 또한 머리 숙여 감사 드립니다.

 

저를 서른여덟 해 동안 마음 아프게 품고 계시는 부모님, 평생 갚지 못할 부모님의 기도로 제가 여기까지 걸어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그리고 유족 여러분 앞으로 제주 4.3을 알리는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의 아버지였고 어머니였고 할머니였고 삼촌이었고 이웃이었던 분들과 다시 재회할 수 있도록 시를 쓰겠습니다.

 

봄감자를 수확하는 손처럼 정직한 시인이 되겠습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응모자 아홉 분의 110편이었다. 전체적으로 의욕적인 작품들이 많아서 반가웠다. 올해로 비록 2회째를 맞이했지만 제주4.3평화문학상에 대한 문학인(문학지망생 및 기성문인)들의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어 보였다.

 

특히 제주4.3’에 대한 문학적 노력들이 살아나고 있는 것 같아 옷깃을 여미며 심사에 임하였다. 어제의 역사가 시, 소설을 통해서 다시 숨을 쉬게 된다는 것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삶(역사)과 문학에도 생산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효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제주4.3은 변방의 역사가 아니다. 6.25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한국현대사의 또 하나의 중심에서 제주4.3은 증좌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제주4.3을 거치지 않고 한국현대사에 대한 숙제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쪽 바다 한 가운데에 떠있는 제주4.3 이후 문제적 다중심의 하나로서 작동하고 있는 오늘 우리가 당면한 모습의 일면이기도 하다.

 

이것은 역설이지만 그런 의미에서 제주(제주4.3)는 한국문학에 중요한 모티브와 오브제, 그리고 테제와 안티테제를 어떤 책무처럼 두루 제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바로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제주4.3평화문학상응모작품들을 심사한 결과,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더없는 기쁨이었다. 테크닉 수사법에 의존하여 괜히 길어지는 컴퓨터시를 응모한 몇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일정 부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응모자의 시편을 가지고 작품성, 작가정신(시인정신), 미래전망 등을 고려하면서 심도 있게 심사함은 당연한 것이었다.

 

본심에 올라온 아홉 분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은 응모자(작품)는 다음과 같다.

 

[수산에 들다] [옛날, 옛날 썩은 섬에서] 8편의 시가 손에 잡혔다. “알돌과 밑돌이 서로에게 닳아가는 소리”([수산에 들다]) 표현은 화자의 시선이 발견의 눈을 가지고 있어 섬세하고 아름다운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썩는다는 것은 어디론가 몸 바꾸는 일등의 아포리즘 기법을 넣어 노래한 강정마을의 이야기는 가작이었다. [수산에...] 등을 응모한 이의 나머지 작품은 시적 긴장감이 떨어지고 어떤 시는 너무 평이하게 소재주의에 빠져 있었다. 사물에 대한 치열성이 더해지면 시로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주는 응모자였다.

 

[붉은 감나무 사원] 23편의 시가 다음으로 손에 잡혔다. 그러나 [붉은...]을 제외하면 응모자의 의욕과는 달리 시적 긴장감이 덜했다. 실패한 작품은 없는데 거의 모든 작품이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한 송이 꽃이 피는데도 천지(하늘과 땅)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터득한다면 그렇게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응모자는 어떤 매너리즘(타성)에 빠져 있어서 사물을 보는 시선이 한곳으로만 고정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이 응모자의 시에 대한 견결한 성실성은 다른 응모자들에 비하여 장점으로 보였음은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북촌리의 봄] [견치(犬齒)] [어우늘] [작은 뼈] [파종] [순이삼촌] [백년초] 등을 선보인 이의 시작품이 제2회 제주4.3평화문학상 응모자(응모작품)들 가운데서 단연 군계일학이었다. 제주4.3을 이만큼이라도 아픔과 사랑으로 혹은 눈물()을 가지고 시로 노래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로되, 이 응모자의 시작품은 우선 전체적으로 날것이 아니면서 읽는 이의 마음에 누군가의 살()이 낯설지 않게 닿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었다. 시를 노래하는 사람이 제주4.3(한국현대사)을 혈육의 슬픔(시의 힘)으로 소화하고 육화하고 있다는 것이 예의 시편들 곳곳에서 확인되면서 가볍지 않은 감동과 함께 시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슬픔을 슬픔으로 노래하기보다는 그 슬픔을 버텨내고 이겨내는것을 이 응모자는 자신의 견결하면서도 젖은 음색(봄비와 같은)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것은 이번 제주4.3평화문학상의 수확으로 여겨진다. [견치(犬齒)] [어우늘] [작은 뼈]도 만만치 않는 작품이었으나 [북촌리의 봄]을 수상작으로 올려놓는다. 제주4.3의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현장이기도 한 북촌리(혹은 너븐숭이)의 그날이 선연하게 되살아나고 있는 이 시의 마지막에서 1948년 그해 제주4.3은 이렇게, 오늘의 우리들에게 현현한다. 가을과 겨울이 아닌 봄으로. “뚝뚝, 지는 목숨들 사이 / 아이는 나오지 않는 젖을 한사코 빨아대고 있었다 / 어미를 살려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 그 힘으로 동백꽃이 피고 / 젖 먹던 힘을 다해 봄이 오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당선자의 작품은 제주4.3평화문학상의 취지에 가장 들어맞는 응모작으로 생각되며 전편이 분노와 회환으로 가득 찬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면서 큰 울림을 준다. 특히 견치파종은 시적 완성도도 험을 잡을 수 없을 만큼 높다. 시적 대상 앞에서 절대 흥분하지 않으면서 비극적 실화(實話)함묵의 예술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어서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오래 붙잡았다.

 

당선작 [북촌리의 봄] 응모자에게 축하드리며 앞으로 더욱 낮은 모습으로 거듭날 것을 믿는다. 한라산도 가장 낮은 곳, 바다 저 깊은 밑바닥에 뿌리를 두고서야 솟아있지를 않는가! 제주4.3문학상에 응모한 여러분의 건필과 건승을 빈다.

 

- 심사위원 신경림, 이시영, 김준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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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을동 / 현택훈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지

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서 곤을동

안드렁물 용천수는 말없이 흐르는데

사람들은 모두 별도천 따라 흘러가 버렸네

별도봉 아래 산과 바다가 만나 모여 살던 사람들

원담에 붉은 핏물 그득한 그날 이후

이제 슬픈 옛날이 되었네

말방이집 있던 자리에는 말발자국 보일 것도 같은데

억새밭 흔드는 바람소리만 세월 속을 흘러 들려오네

귀 기울이면 들릴 것만 같은 소리

원담 너머 테우에서 멜 후리는 소리

어허어야 뒤야로다

풀숲을 헤치면서 아이들 뛰어나올 것만 같은데

산속에 숨었다가 돌아오지 못하는지

허물어진 돌담을 다시 쌓으면 돌아올까

송악은 여전히 푸르게 당집이 있던 곳으로 손을 뻗는데

목마른 계절은 바뀔 줄 모르고

이제 그 물마저 마르려고 하네

저녁밥 안칠 한 바가지 물은 어디에

까마귀만 후렴 없는 선소리를 메기고 날아가네

늘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서 곤을동

예부터 물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여 살았지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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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택훈 시인이 곤을동으로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됐다.

 

한국 현대사 최대 비극인 제주 4.3사건 당시 잃어버린 마을인 제주시 화북1곤을동을 소재로 쓴 시가 영예의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제주도 4.3사업소는 제주4.3평화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조명철)가 지난 15일 본 심사 끝에 제주시 용담동 현택훈(39) 시인의 곤을동을 시 부문 당선작으로 결정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했다.

 

이번 제1회 제주4.3평화문학상에는 지난해 1220일 마감 공모한 결과 123명의 시 667편이 출품했었다.

 

심사를 맡은 시인 신경림(동국대 석좌교수)오랜 논의 끝에 곤을동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4?3평화문학상 제정 정신에 가장 근접한 시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4.3유적지인 곤을동은 현 씨의 고향 마을인 화북동에 속해 있어 지금도 현씨가 자주 찾는 등 오랫동안 천착해 온 곳이다.

 

목원대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한 현 씨는 지난 2005년 지용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2007시와정신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지구 레코드를 출간했고 제주작가회의 편집위원, 고팡문학 동인, 본지 정토의 아침도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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