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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사그륵사그륵 맷돌은 돌고 / 심규한
-백석풍으로-

힘없이 차가운 방바닥에 누워 벽시계를 보면
밤과 낮의 맷돌에 내가 사그륵사그륵 갈리고
새까만 중학시절 누워 눈감고 우주 끝으로 비행하다
소용돌이 어질병에 나락같이 꺼져들듯
내 척추가 하늘과 땅의 맷돌에 으깨질텐데

사그륵사그륵 맷돌이 돌아가면서
온 하늘의 은하가 다 빨려들어가고

황해바다 속엔 지금도 사그륵사그륵 요술 맷돌이
저 혼자 돌아 소금을 낳고 있다는데
그 찝찔한 것이 눈물이 양념이라고 가마로 들여
할머니는 폭폭한 계절 가마니에서 간수를 받아내어
썰렁썰렁 바람 불면 두부를 가라앉힌 것이었다
신석기 적부터 갓옷 입고 곰녀가
맨땅에 무릎을 꿇고 돌확에 수수를 갈던 그 소리로
몇 만 년 동안 우릴 먹여 살렸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금은 할머니도 사라지고 할머니의 맷돌도
사라져 농업박물관의 어둠 속에 꿈처럼 잠들었는데
사그륵사그륵 돌 갈리는 소리만 남아
내 가슴에는 여태도 돌고 있는데

태초에도 이 소리는 있어
흑암 바닥 사그륵사그륵 맷돌 돌며
우주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연신
블랙홀로 들어가 화이트홀로 솟아나듯
콩가루 같은 별무리가 터진 대폭발이 있었다는데
그것이 해일로 자꾸만 떠밀리며 멀어져
밤하늘은 그립고 슬픈 것들로 까맣게 되었고
사람은 지상에 외로운 것들로 태어나

수백억년 뒤
할머니가 다시
그 맷돌을 돌리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날 사그륵사그륵 맷돌 도는 툇마루로
다사로이 떨어져 할머니의 옷고름에 흘렀던
볕살은 우주의 고솝고 고손 콩가루였는지
참으로 환했던 것이었는데

결국 온 우주를 빨아들이고
새 우주를 낳는 그것에
우유도 바르고 쌀가루도 뿌리며 오른돌이로
천축국 사람들은 다음 생에 황금 같은 환생을
빌고 빌었던 것이었으리라

지구는 누가 돌리는지
흰손이 잡힐듯도 한데

찬 방바닥에 누워
내가 간수로 잘 굳힌 두부도 그립고
콩가루 꾹꾹 눌러 찍어먹던 인절미도 그리운 것은
나를 먹여주는 그 손 때문이리라

뱃속에서 공연히 천둥이 울고
피식 웃음이 새고 마는
것이었다


 

 

 

 

 

 

 

[금상] 달방 있음 / 임화수

 

겨우내 누추한 꽃 송이를 열고 허름한 눈송이들이 쉬어 간 동백장 여관

붉은 고무통에 꽂힌 팻말, 달방 있슴

침침한 밤들이 지나다녔을 복도에서 달이 투숙할만한 방을 찾는다

둘둘 말린 달무리를 다리 사이에 끼우고 새우잠 자는 초생달은

온돌방일테지, 헐 값의 과부 퍼진 별빛을 팔베개하고 말이지

땡땡하게 여문 몸뚱아리 통통 튀는 보름달 분비나무 숲처럼

침대를 삐꺽이며 전기장판 열선보다 뜨거워 있겠지

십오만원이 비싸 만원쯤 더 깍다가 퇴짜 맞았을 달방

마지막 지폐처럼 남은 시퍼런 겉 잎 김치 아껴 찢으며

기진한 달빛으로 끓인 파도를 라면처럼 빨아당기고 있겠지

종일 모래를 져나르며 지은 어둠

불빛에게 다 나눠주고 굽은 등 펼곳 한 칸 없는 달들의 숙소

맑은 위액 비우다 비우다 쓰러진 소주병 곁에

돌부리 많은 한숨을 삽질하던 불면도 곯아 떨어지겠지

제 발 밑도 비추지 못하는 그믐달 침침한 눈을 씹던 껌처럼

방 바닥에 붙이고 마지막으로 파야할 어둠을 들여다 보겠지

바람이 나이롱 커튼에 도배풀같은 아침를 묻히기 전에

한숨이라도 붙여야 해장술로 쏟아지는 하루 또 마시겠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그러다 이태쯤 눌러 앉아

동백장 여관 갈라진 벽에 빠듯한 달빛을 발라 주겠지

 

동백장 여관에는 달이 묵는 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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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팽히 돌던 일상이 깨지다 / 달수니
- 팽이와 한 남자

한낮,
가로수 옆에 오십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쓰러져 있다
양파껍질처럼 몸에서 빠져 나온 구두 한 짝 만이
주인의 대변인 마냥 이따금 툭 툭,쏘아대는 세상의 눈들을
흘기며 투덜댄다. 저 햇살은 정말 지독하군,
남자는 지난 밤 중심을 잃고 쓰러진 팽이다,
빛을 등지고 돌아누운 저 등허리
팽팽한 긴장으로 돌던 관성의 흔적이
꾸깃해진 옷자락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얼핏 드러나는 목 줄기의 터져 나올 것 같은 굵은 실밥과
구멍 난 양말사이를 비집고 나온 문드러진 발톱은  
그가 맞은 매의 이력이다  간당간당
남자의 손끝은 가로수의 뿌리에 닿아 있다.

그도 한때 신명나게 돌았을 것이다,
쉼 없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자 일년을 하루같이
시계바늘의 꽁무니를 쫒아 정신없이 돌았을 것이다
탯줄을 끊고 나와  이 땅에 휙 던져지며 울음 울던  
그날 이 후부터 그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쓰러지고
다시 일어섰을까  돌고, 돌고, 또 돌았지만  지금 그를
안스럽게  쳐다보는  가로수처럼 근사한 뿌리한번
내리지 못하고 여기 쓰러져 있는 것이다  이제 누가,무엇이,
그를 일으켜 세울 것인가  아니,
어떤 힘으로 그는 다시 일어나 돌수 있을 것인가
지친 그도 딱 한번만 더,돌고 싶을 게다,
평생을 돌고 돌아야 하는  팽이의 생애가 그러하므로
궹한 마음 접으며 발걸음을 돌리려다 문득 하늘을 보니
뜨거운 팽이 하나, 헉헉 거리며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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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민들레 / 박복화

나는 어디에도 있었으며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노오란 꽃잎의 짧은 기억으로
봄은 해마다 오지만
항시 부족한 빈혈의 봄날
날아 보고픈 욕망은
불발의 포탄 옆에서도 피어나고
움직임 없는 갯벌도 넘보는
오달진 내 꿈은
연약한 홀씨의 위태로운 비행이
표적으로 내달리는 굉음 속에서
늘 방향을 잃었다
선을 그어 확인하는 영토의 이정표
키가 작아서 목소리도 작았나
매향리 불면의 시간들이
불임의 땅 위에서
피고 지는 생명 위에서
오십사 년의 길고도 복잡한 이력에
철조망을 걷어내는 오늘
나는 날고 싶다
배란기의 성숙한 꿈으로
매향리에 오래오래 태어나고 싶다

 

 

 

[심사평] 삶을 통찰하는 눈으로

 

16편의 예선 통과 작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은 것은 <매향리 민들레>,<죽음에도 이력이 필요하다>, <콩나물의 꿈> 세 편이었다. 그 외에도 <푸른 뽕잎 그리고 플라타너스>, <무 말랭이> 등이 거론되었으나, <푸른 뽕잎 그리고 플라타너스>는 도시의 노곤한 가을과 뽕잎에 대한 기억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너무 무난하게 작품이 형성되어 감동이 부족하였으며,<무 말랭이>는 중심소재를 끌고 가는 힘과 통일성은 있어 보이나 마지막 연의 처리가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 점에서 제외되었다.

 

세 편의 작품을 두고 선자들은 여러 각도에서 토론을 하였으며, 어느 작품을 뽑아도 수상작으로 무난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무난함 속에는 어느 한 작품에 특별히 시선이 집중되지 못함도 시사되는 바이다. 전반적으로 16편의 작품들의 분위기가 몇 편을 제외하고는 "‘기억" "어머니" "아버지" "" 등을 소재로 하고 있어 시적 대상에 대한 인식의 폭이 좁다는 생각을 가졌으며, 한 시인이 쓴 것처럼 사용되는 문체나 언어가 유사하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띤 작품은 <매향리 민들레>였다. 미군 사격장이 있는 매향리에 핀 민들레는 /불임의 땅 위에서/ 핀 아픔을 끌어안고 있으며, /키가 작아서 목소리도 작았나/라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에 은유적 표현은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함께 돋보이는 표현이다. /어디에도 있//어디에도 없/는 들판에 무수히 핀 민들레이거나 포탄에 날아 가버린 빈 들판의 가시적인 존재에 대한 시인의 인식 또한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날아 보고픈 욕망//오달진 내 꿈//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들이 장황해 보이며, /선을 그어 확인하는 영토의 이정표//배란기의 성숙한 꿈/ 등이 적절하게 앞뒤의 문장과 연결되어 의미를 확장시키지 못한 점 등의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띠었다. 그러나 시인의 시를 끌고 가는 역량이 앞으로 좋은 시를 쓰는 데 충분하다고 논의되어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죽음에도 이력이 필요하다>는 다른 작품에 비해 "죽음"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쓰여 졌으며, /죽음/인지 /죽임/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한 사람의 생에 대한 /눈물겹//그리운/ 것들에도 /이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 선자들은 주목을 했다. 그 사내의 죽음은 어쩌면 사회에서 격리된, 예고된 죽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한 생의 사라짐도 이력이 필요하다는 역설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모른다. 그런 생각의 깊이에 비해 이 작품은 긴장감이 결여되었다. 긴장감이란 시적 함축성과도 이어진다. 시어의 함축, 시상의 함축을 통하여 의미의 연결은 긴밀해지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것이다. 시가 산문과 다른 것은 언어의 배열이다. 또한 시에서도 기승전결의 구조가 단단하다는 것이다. 1연을 /한 사내의 생이 수취인 불명되었다/라고 했을 때, 수취 불명된 한 사내에 대한 궁금증이 다음 연이나 행에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쓴 시인도 그런 몇 가지를 꾸준한 습작으로 고쳐 나가면 충분히 좋은 시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콩나물의 꿈>은 시인의 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쉽게 읽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콩나물을 직접 기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쩌면 골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사는 불구의 자식에게 미치는 사랑과 같은 것이다. 불구의 자식은 늘 감추며 키우는 콩나물과 같은 것, 그런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 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시가 시인의 사유를 통하여 독자가 참여할 공간을 확보해야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주는 사유의 공간은 좁은 편이다. 그런 아쉬운 몇 가지 점에서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앞으로 시어의 의미를 확보하고 깊이를 만들어 간다면 좋은 시를 쓰실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옥탑 베란다도 좋은 작품으로 읽었다.

 

수상하신 분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아쉽게 탈락하신 분들도 다음 기회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심사위원 : 문정영, 박완호, 유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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