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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향리 민들레 / 박복화

나는 어디에도 있었으며
또한 어디에도 없었다
노오란 꽃잎의 짧은 기억으로
봄은 해마다 오지만
항시 부족한 빈혈의 봄날
날아 보고픈 욕망은
불발의 포탄 옆에서도 피어나고
움직임 없는 갯벌도 넘보는
오달진 내 꿈은
연약한 홀씨의 위태로운 비행이
표적으로 내달리는 굉음 속에서
늘 방향을 잃었다
선을 그어 확인하는 영토의 이정표
키가 작아서 목소리도 작았나
매향리 불면의 시간들이
불임의 땅 위에서
피고 지는 생명 위에서
오십사 년의 길고도 복잡한 이력에
철조망을 걷어내는 오늘
나는 날고 싶다
배란기의 성숙한 꿈으로
매향리에 오래오래 태어나고 싶다

 

 

 

[심사평] 삶을 통찰하는 눈으로

 

16편의 예선 통과 작품 중에서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은 것은 <매향리 민들레>,<죽음에도 이력이 필요하다>, <콩나물의 꿈> 세 편이었다. 그 외에도 <푸른 뽕잎 그리고 플라타너스>, <무 말랭이> 등이 거론되었으나, <푸른 뽕잎 그리고 플라타너스>는 도시의 노곤한 가을과 뽕잎에 대한 기억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고 너무 무난하게 작품이 형성되어 감동이 부족하였으며,<무 말랭이>는 중심소재를 끌고 가는 힘과 통일성은 있어 보이나 마지막 연의 처리가 전체를 아우르지 못한 점에서 제외되었다.

 

세 편의 작품을 두고 선자들은 여러 각도에서 토론을 하였으며, 어느 작품을 뽑아도 수상작으로 무난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그 무난함 속에는 어느 한 작품에 특별히 시선이 집중되지 못함도 시사되는 바이다. 전반적으로 16편의 작품들의 분위기가 몇 편을 제외하고는 "‘기억" "어머니" "아버지" "" 등을 소재로 하고 있어 시적 대상에 대한 인식의 폭이 좁다는 생각을 가졌으며, 한 시인이 쓴 것처럼 사용되는 문체나 언어가 유사하다는 것도 지적되었다.

 

세 편의 작품 중 가장 눈에 띤 작품은 <매향리 민들레>였다. 미군 사격장이 있는 매향리에 핀 민들레는 /불임의 땅 위에서/ 핀 아픔을 끌어안고 있으며, /키가 작아서 목소리도 작았나/라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에 은유적 표현은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함께 돋보이는 표현이다. /어디에도 있//어디에도 없/는 들판에 무수히 핀 민들레이거나 포탄에 날아 가버린 빈 들판의 가시적인 존재에 대한 시인의 인식 또한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날아 보고픈 욕망//오달진 내 꿈//늘 방향을 잃/어버린 것을 나타내기 위한 표현들이 장황해 보이며, /선을 그어 확인하는 영토의 이정표//배란기의 성숙한 꿈/ 등이 적절하게 앞뒤의 문장과 연결되어 의미를 확장시키지 못한 점 등의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띠었다. 그러나 시인의 시를 끌고 가는 역량이 앞으로 좋은 시를 쓰는 데 충분하다고 논의되어 수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죽음에도 이력이 필요하다>는 다른 작품에 비해 "죽음"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쓰여 졌으며, /죽음/인지 /죽임/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를 한 사람의 생에 대한 /눈물겹//그리운/ 것들에도 /이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의 서사적 구조를 가지고 있어 선자들은 주목을 했다. 그 사내의 죽음은 어쩌면 사회에서 격리된, 예고된 죽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은 한 생의 사라짐도 이력이 필요하다는 역설로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하지는 않았는지 모른다. 그런 생각의 깊이에 비해 이 작품은 긴장감이 결여되었다. 긴장감이란 시적 함축성과도 이어진다. 시어의 함축, 시상의 함축을 통하여 의미의 연결은 긴밀해지고 독자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것이다. 시가 산문과 다른 것은 언어의 배열이다. 또한 시에서도 기승전결의 구조가 단단하다는 것이다. 1연을 /한 사내의 생이 수취인 불명되었다/라고 했을 때, 수취 불명된 한 사내에 대한 궁금증이 다음 연이나 행에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쓴 시인도 그런 몇 가지를 꾸준한 습작으로 고쳐 나가면 충분히 좋은 시인이 될 것이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콩나물의 꿈>은 시인의 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어, 비교적 쉽게 읽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콩나물을 직접 기르는 어머니의 모습은 어쩌면 골방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면서 사는 불구의 자식에게 미치는 사랑과 같은 것이다. 불구의 자식은 늘 감추며 키우는 콩나물과 같은 것, 그런 따스한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는 시인의 모습이 잘 드러나 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시가 시인의 사유를 통하여 독자가 참여할 공간을 확보해야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주는 사유의 공간은 좁은 편이다. 그런 아쉬운 몇 가지 점에서 나중을 기약하기로 했다. 앞으로 시어의 의미를 확보하고 깊이를 만들어 간다면 좋은 시를 쓰실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더불어 개인적으로는옥탑 베란다도 좋은 작품으로 읽었다.

 

수상하신 분에게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아쉽게 탈락하신 분들도 다음 기회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심사위원 : 문정영, 박완호, 유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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