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우리詩문학상』신인상 당선작>
인사동 가는 길외 4편
이동훈
그날 서울역으로 마중 나온 것은 폭설이었다. 한 치의 여유 없이 매몰찼던, 좀처럼 써지지 않던 자기소개서처럼 바로 앞을 가리던 폭설이었다.
눈을 털며 들어선 식당, 국물 한 술에 입천장을 데었다, 우라질, 재수 옴 붙은 인생에 시빗거리라도 찾고 싶었을 게다, 그때는, 기다리는 게 일이고 견디는 게 전부였던 시절, 끓던 속도 곧 시들해졌다.
벼린 칼날 같은 눈발 속, 짐 부리다 발목 잡힌 차량의 경적으로 들썩하는 어둠 속을 다시 걸었다. 기록적인 폭설도, 전구 한 알에 어른거리는 후줄근한 옷가지도, 쪼그려 앉거나 서성거리는 사내도, 그저 데면데면했다.
인사동 가는 길은 아예 눈에 묻혔다. 약속에 대어 가지 못하고 들어앉은 여관 주점에도 눈이 내렸다. 입 안의 쓰라림은 어디인지 모르게 자꾸 번지고, 술 탓인지, 눈 탓인지 통점마저 흐려졌다. 쌓인 눈을, 쌓인 도수를 생으로 버티며, 쓸데없는 눈 걱정으로 훌쭉해진 볼을 자꾸 비벼대던 날이 있었다.
기침
기침이 잦아지면서
성가시던 가려움증이 사라졌다.
독한 놈을 더 독한 놈이 몰아낸 꼴이다.
쿨룩, 쿨룩
혹여 비뚜로 나간 말이나 행동이
이부자리까지 들썩하게 하는 게 아닐까.
짐짓 일상을 반성하는 시늉까지 하는데
아내는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기운을 다 소모하면 편안해질 것을
처방 받고 기운을 차리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그래도 아내 말에 토를 달지는 않는다.
아예 밥까지 먹지 말라고 하면 곤란하니까.
굶을 수만 있다면 그리해도 좋겠지만
가려움증이나 기침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게
한 끼를 굶는 일이다.
구걸도 마다않는 가난 앞에는
너무 부끄러운 고백이다.
배고픈 이웃은 가까이 있는데 무수한 말들만
분파를 나누어 배부르게 경계를 쌓고 있지 않은가.
기침은 어느 분파에도 속하지 않아
저 홀로 밤새 터져 나오니
아내 입장에서는 께름한 것이 당연하다.
다 낫기 전에 병원에 가야겠다는 우스갯말을
느지막이 고민해 보는데
그래, 안 그래, 그래, 안 그래
연하여 묻듯이
쿨룩, 쿨룩대는 것이다.
허균에게
책을 암만 읽어도 쓰일 데가 없어 술로 허송하던 시절, 천출이 세상에 어디 있냐는, 기왓장 깨는 듯한 당신의 일성은 내게 바로 길이었습니다. 그 길은 죄 없이도 불안한 무지렁이들과 함께 하는 길이었고, 등쳐먹고 곤댓짓하는 양반 나부랭이를 조지는 길이었고, 태어날 때부터의 차별을 거부하는 길이었습니다.
모든 것의 위인 왕과 모든 것이 성은이라고 비위 쓰는 무리가 당신과 나의 행동반경을 조여 오자, 슬프게도, 당신은 현실과 타협하는 쪽에 섰습니다. 나를 외딴섬으로 유폐시킨 것은 당신이 마주한 벽을 내게 강요한 것입니다. 적통인 당신은, 서자인 나를 홍길동이란 이름으로 세상에 내보냈지만 팔도 어디에서도 나를 허구라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내가 당신의 분신이라서가 아니라 이 땅의 꿈꾸는 자의 소망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디쯤에선가 당신의 꿈과 나의 꿈이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저 당신과 나란히 앉아 같은 높이로 술 한 잔 나눌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이 없는 나라를 한통으로 말하면 오죽이나 좋았겠습니까. 우리의 혁명은 실패에 직면했습니다. 위를 받들고 위와 아래의 구별을 없애고자 했던 당신의 한계입니다. 허나 실패에 대한 책임은 누구의 몫도 아니고, 모두의 몫입니다. 질서라는 이름의 폭력을 질서에 순응하며 바루는 일이, 법을 따르면서 악법을 고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압니다. 그럼에도 그리 가야하는 것인지……, 당신, 숙제입니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가을이면 느티나무가 좋았다.
두 해 전 말라죽기 직전
막걸리 대여섯 동이 빨아들이고
살아났다는 느티나무였다.
그리고는 나이를 거꾸로 먹기 시작했다.
바스라진 껍질을 떨어뜨리고
미끈한 맨살을 내놓으며
갈수록 참해지고 야해지다가
드디어 잎잎이 붉게 타올랐다.
낮술 걸친 날
느티나무 아래 일없이 서성거리다가
느티나무 이파리처럼 빨갛게 물들어
느티나무 꼭대기를 쳐다보았다.
막걸리 두 잔에 되돌릴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고
그런 공짜가 있겠냐고
주름진 하늘이 묻고 있었다.
술 깨는 저녁에
느티나무 아래 서서
느티나무도 공짜 술을 먹지 않았느냐고
그 덕에 지금 불타고 있지 않느냐고
이제 나도 젊음을 지펴
생명을 한껏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부르르 떨다가 돌아섰다.
느티나무 아래
바람 이는 소리가 사납게 들렸다.
그런 가을이었다.
무서운 이야기
보일러 끓는 소리 따라 이야기도 슬렁슬렁 풀어진다.
몸이 아프면 귀신이 든다고 하잖아. 내가 그 꼴인 게야. 오줌을 늦게 가렸어도 무탈하기만 했는데 덜컥 저승길이 보인 거야. 요즘 같으면 병원에 간다고 호들갑이겠지만 그땐 걱정스런 눈빛만 잔뜩 부조 받았어. 앓는 소리도 못 내는 불덩이의 몸으로 이불 덮고 죽은 듯이, 아니 거지반은 죽어서 흰자위만 치뜨고 있었을 거야. 밤새 물수건을 대던 할매도 등을 보이며 졸고 있었어. 아릿한 마음에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할매, 할매를 불렀지. 웬일인지 돌개바람에 문풍지가 사납게 울더니 정신이 번득 들더군.
……할매가 아니구나!
목소리가 안 나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다시 죽음 같은 깊은 잠을 지나고나니 머리맡에 할매가 알 듯 말 듯한 웃음을 물고 있었어. 열은 감쪽같이 내렸고 말이야.
내 이야기가 무섭지 않아?
보일러 기름 값이 더 무섭다고.
그럼 이제 뜨거운 이야기 하나 해볼까.
<신인상 당선 소감>
잘 여문 시 한 편을 위하여 | 이동훈
국숫집 가는 길이었습니다. 집집이 면발도 다르고 국물도 다르지만 그 다른 것이 제 맛을 내도록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망설이다가 재차 내놓은 글이 선에 들었다는 말씀을 듣고는 국수 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 기쁘고, 또 한편으로는 두렵기도 했습니다. 바깥에 내놓아도 되는 글맛인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 딴에 그럴듯하게 여기고 마침표를 찍었던 것도 며칠 후에 꺼내 보면 엉성한 데가 수월찮이 눈에 뜨였습니다. 어찌 보면 글 쓰는 사람 자체가 빈구석이 많고 허술한데 글발이 속 시원히 통한다면 그게 이상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빈 곳간에 가깝지만 제 주변을 잘 건사하고, 이웃의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고 그 삶을 들여다보면서 부족한 곳을 조금씩 채워 나가겠습니다. 언젠가는 잘 여물어 똘똘한, 그래서 나누어가질 만한 시 한 편을 외게 될 것이라고 주문을 걸어 봅니다.
저의 모자람을 좋게 헤아려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를 숙입니다. 발이 익어 저절로 찾게 되는‘시마을’벗님들께도 머리를 꾸벅입니다. 오는 주말엔 가족과 함께 소문난 국숫집에 가야겠습니다. 같이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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