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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숫돌의 눈물 / 조연환

 

나 어릴 적 아버님은 숫돌에 낫을 가셨다.

손톱으로 누르면 꼭 들어갈 것 같은 여린

숫돌에 몇 방울 물을 떨어뜨려

낫을 문지르면 숫돌은 제 몸을 깎아 내며,

날을 똑바로 세워 주었다

 

손끝으로 만져 보아 가면서

한쪽 눈감고 외눈으로

날이 넘지 않았는지

제대로 날이 섰는지를

숙제 검사하는 선생님처럼

아버님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곤 하셨다

 

아내가 부엌칼이 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리며 칼을 갈아 달란다.

출장길에 큰맘 먹고 사온 칼 가는

쇠막대에 부엌칼을 득득 문질러대면

칼칼 소리를 내고 제 몸을 불사르며

쇠막대가 칼날을 세워 준다

 

손끝으로 칼날을 만져본다.

한 눈 감고 칼날을 검사해 본다. 아버지처럼

아버님이 숫돌에 가셨던 날은

부드럽고 매끄러웠는데

내가 간 부엌 칼날은 꺼칠꺼칠하기만 하다

 

여린 돌로 강한 쇠를 깎아내던 숫돌이

제 몸을 깎아내며 날을 세워 주던

숫돌의 눈물이 그리워진다

 

아버님은 숫돌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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