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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안연하

 

1. 무제

 

전쟁이 끝 난 뒤 황량한 땅 위엔

풀한포기 자라지 않을 것 같다가

붉게 젖은 땅 위에 싹 하나가 돋더니

자식 잃은 어미 눈물 떨어지고

형제 잃은 누이 눈물 떨어지고

아비 잃은 갓난쟁이 멋모를 울음에

눈물로 자라나

십수년이 지나서

창창한 나무가 되었다

 

이름 없는 언덕에 십자가로 남겨져

찾아주는 이 없이

홀로 남았어도

고향 땅엔 아직도 내 어머니, 내 누이

나 빼 닮은 아들내미, 딸내미

오손 도손 살겠지

 

빗물처럼 쏟아지던 총소리 잠잠해진

양지바른 땅에 누워

이제 생각하건데

아무 소리도 없는 이 적막함이

평화가 아닐랑가

 

총소리에 묻혔던

늙은 어머니 다듬이질 소리

누이 노랫가락 소리

코쟁이 아우 훌쩍거리는소리

갓난쟁이 아들내미 아장거리는 발자국 소리

들릴 듯 말 듯

조용한데 귀기울이는디

 

나는 이제도 저제도 고향은 못돌아간다 하니

이승도 아닌 저승도 아닌 여기 묻혀

남은 평생 지키고 서 있을 것이지만

내 숨쉬고 여기 창창한 잎사귀로 지키고 있는 동안에는

피흘리는 이 없이

아무도 총도 들지 말고

아무도 칼도 들지 말고

이 같은 고요 속에서 살기만 바라오

 

또 누가 지나는 길에

나를 보면은 알은체는 못해도

우리 고향집에 들러 소식만 전해주소

얼굴도 못보고 나온 아들래미

내 얼굴 까먹지 말라고

애비는 잘 여기 있응께

이 동구 밖 언덕빼기에 서서

내려다 보고 있을 텐게

 

또 내 얼굴 까먹을 까

잠도 안자고 나 기다리는 울 어매

이제 편안한 잠 주무시구로

안방에는 못가도

이 풀 밭에 엎드려 문안인사 올릴텐게

그 모습 보시면 이제 편히 주무소

 

2. 무제

 

반도의 땅 위에 한恨이 강줄기로 흘러내린다

누구를 기다리다 흘린 눈물인지

어느 전쟁터에서 흘러온 핏물인지

엉겁이 지나도 멈출 줄을 모른다

 

허리춤이 잘린 땅 위로

강물은 흘러내리는데

새는 날아도 나는 못가니

죽어 새가 되어

높이 날아

이 땅 굽어 보아

천년 만년을 지킬 것이오

내 누운 언덕에

이름자도 지워지고

찾아오는 이 없어도

이 몸이 나고 자란 땅에

다시는 피 흘리는 이 없게

푸른 싹으로 자라 꽃 피우고

새울게 할 것이오

 

내 무덤 위에 흰 국화는 놓지 말고

누구는 벚이 아름 답다하고

누구는 장미가 아름 답다하고

또 어떤이는 모란이며 매화가 아름 답다하여도

나는 오직 까만 무궁화 씨앗 심어

환한 무궁화 꽃 피우게 할 것이오

그 잎에 진드기 벌레 달라 붙어도

멍들지 않고

비 바람, 뜨거운 태양 내리 쬐어도

시들지 않고

오히려 더 무궁히 자라나

삼천리 강산에 꽃 피울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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