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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인 거절의 편지 / 정행심

 

지하철이 덜컹, 흔들리며 문이 열리면

신발을 손바닥에 신은 그 남자는 오늘도

엉덩이로 기어 다니면서 사람들

무릎마다 맞춤법도 다 틀리고

철자도 다 틀린 편지와 볼펜 한 자루 내민다.

 

(저는 백마 부대 병장 이철수..입니다..

월남전에 참전하여서...)

 

허리춤에서 키가 정지한 난장이만한 사내,

고엽제도 앓았을까, 얼굴이 울긋불긋

열꽃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 남자가 쓴 깨알 같은

밤새워 쓴 사연은 사람들이 다 읽기도 전

지하철 문은 열리고 닫히고 사람들은 빠져나간다.

 

그 남자가 엉덩이로 한 발씩 한 발씩 다가와

그것들을 다 수거하기도 전에

지하철은 종점에 닿는다.

 

그 남자는 아직도 총알이 빗발치는

사방 벽이 낡고 천장이 환해서

구름이 다 보이는 십자성 쳐다보며

아무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수취인 거절의 편지를 매일 쓴다.

우편배달부가 전할 수 없는

번지 없는 지하철․버스 안까지......

 

 

 

 

아버지의 6.25 / 서상숙

 

민족의 꿈 저버리고

남북을 가로 누운 38선!

그 비극의 38선은

아버지를 불렀다.

 

신혼의 꿈 뒤로 두고

새로운 보금자리

6사단 19연대!

아버지의 첫사랑이었다.

 

1950년 6월 27일,

강원도 홍천 말고개!

밀려오는 적!

짓누르는 눈꺼풀!

기관총 분대장 서 중사는

아련한 총소리를 들었다.

 

등에 업혀 들것에 담겨

종착지 부산 해운대 태양각!

실려 오는 전우들을 보면서

전선의 참담한 소식은

신음소리 조차 막았다.

 

인천 상륙 작전!

아군의 북진!

드디어 들려오는 승전보!

가슴에 통증 잊고서 두 손 들어 외친 만세!

가자! 북진이다!

 

아버지는 일어섰다!

아물지도 않은 총상을 감춘 채

병상 3개월의 휴가를 접고

전장으로 향했다.

 

다시 찾은 옛 부대 전우들!

단숨에 점령한 함경도 초산!

그러나!

눈앞에 승리 두고 눈물의 1.4후퇴!

생사의 고통 남기고

6.25는 쓸쓸히 막을 내렸다.

 

세월은 무상하다, 팔순의 아버지!

변변찮은 훈장하나 없지만,

가슴에 총탄자국 자랑하시며

큰아들 당신 뒤 잇게 하셨다.

 

총성이 멎은 지 반 백년!

휴전선엔 비둘기 넘나들어도

노병의 눈앞엔 화약연기 뽀얗고

귓가에 포화소리 들린다!

 

6월이 오면

아버지의 눈가엔 이슬이 맺힌다.

 

 

 

 

 

무궁화를 가슴에 담고 / 이재석

 

이슬을 머금고

허리띠 매면

나무껍질 같은

손등 위로 서리 내리는

밭두렁 끝자락

희끗한 귀밑머리

묻어 온 세월을

풀어헤치며

피고 지는 꽃

 

이름만으로

모두를

덮고도 남을

가슴으로

산화한 용사 무덤 위를

지키던 꽃

 

철조망에

목을 조이면

조국을 지키며

어머니를 외치던

학도병의 눈빛이

순결한

평화를 위해

잠들라고 하며

찢긴 살점이

깃발처럼 빛나던

황토 숲에 젖은

땅 비집고

가지 끝을 세워

동해의 푸른 물로

씻어 올린 정신

 

향기를 날리면서

금수강산에

꽃을 피워

바람으로 일어서며

花冠을

머리에 이고

다가서는

용사의 精氣

 

흙바람 속에

헤치며

담금질하는

시린 뿌리로

등불 되어

뻗쳐오르는

높은 지조

순백의 영혼 순백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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