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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서 저녁까지 / 박정선

- 태안반도의 갯벌

 

태안반도 바닷물이 천리 밖으로 내려가고

번지르르한 갯벌이 사방천지 막힘이 없다

이제부터 마흔 다섯 살 소년 세철씨의 놀이터

마음 놓고 뒷걸음을 걸어도 앞걸음을 걸어도 거침없는 갯벌

물새처럼 세철씨가 갯벌에 앉아

손바닥 장심으로 찰진 갯벌을 진맥한다

고운 물이 퐁퐁 솟아나는 곳에 손바닥이 머물고

가운데 손가락을 질러 넣으면 손끝에

까끌한 바지락 닿는 감각

세철씨 얼굴에 벙긋 미소가 돌 무렵

벌써부터

노모의 달그락달그락 틀니 맞닿는 소리가 들려온다

 

무와 조선파를 썰어 넣고 바지락 국을 끓여 드리면

어머니는 틀니를 달그락거리면 잘도 잡수시고

밥상머리에 다소곳이 마주앉아

틀니 맞닿는 소리를 듣는 기쁨

 

팔순 홀어머니를 홀로 두고 대처로 떠났다가

두 눈을 몽땅 잃어버린 세철씨가

암흑 속에서 고작 손가락 끝으로 감지하는 행복

하나 둘 바지락을 캐낼 때마다

세철씨 얼굴에 피어나는 꽃 같은 미소

두 눈으로 영악스럽게 세상을 두리번거릴 땐

어둡게 그늘졌던 얼굴

 

해가 지고 가슴 뻐근하게 노을이 번지도록

세철씨 일어날 줄 모른다

쏴아, 쏴아, 밀려오는 들물 소리에

세철씨 몇 번인가 엉덩이를 들어 올렸다가

다시 손바닥으로 갯벌을 더듬는다

밀려오던 들물이 주춤주춤 걸음을 늦추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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