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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난 그냥 앉아있기만 했다 / 이초우
둥근 것은 언제나 돌고 싶은 근성이 있다
운전석 옆 자리에 든든하게 누워있던 작은 페트병
가득 담긴 물 한 모금 했더니 수위가 꽤 내려갔다
내가 놀라 급브레이크를 밟으니
저 둥근 것이 얄밉게, 목마르게 기다렸다는 듯
탁, 튀며 깔판 바닥 위에 통쾌하게 떨어졌다
그때서야,
고르지 않은 깔판 위에서 제 근성을 맘껏 부리는 물병
저 아랫도리도, 몸통도 입술하며
둥글지 않은 데가 없다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고
굴곡진 길을 내가 돌면 함께 무거운 엉덩이부터 휘익 돌며
곡예를 하고,
잔뜩 신이 났다
제 뱃속에 채워진 물, 차가 정지해 있을 땐 참 싫은가보다
온 몸에 소름이 도는 지 미세하게 몸을 떨며
질겁을 하고, 물의 조상도 일러두길
그냥 있지 말고 움직여야 산다고 했던가
출렁출렁, 물병이 신이 나니 함께 춤을 추는 물
그렇게 취한 듯 춤추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페트병이 떼굴떼굴 제아무리 굴러도
간지럼만 잔뜩 탈 뿐 함께 돌지 않고 출렁이기만 하는 물
바람에 부대껴
어머니가 몇 차례 넘어졌어도
양수에 떠 있던 나는
금방 생긴 눈만 말똥거렸을 뿐, 돌지 않고 그냥 앉아있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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