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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퍼의 뼈 / 권성훈

 

수동식 입은 닫힐 때 마다 생각한다

내가 말할 틈도 없이 네가 열리는지도 몰라

여백에 갇혀 있다 맥없이 풀어지는

은밀한 기호의 숨결을 머금고

양 방향으로 길들여진 행간과 행간 사이

숨겨진 꽃술 붉은 혀가 기어 나온다

사방으로 연결된 행간의 혈관을 핥아봐

견고한 문장은 표피를 걷어내고

욕망의 내장을 느린 속도로 보여주잖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닫혀있는 촉수를 밀고 당겨

이제 날 허물어지는 문맥에서 찾아

너의 오감으로 뜸드는 육감을 적셔봐

스스로 열지 못하는 문자의 혓바늘로

자음과 모음이 맞물려 있는 압축된 가슴을 풀고

수백 개의 뼈로 관절 마디마디를 꺾어봐

이제 네가 들어올 깊은 바닷길이 열린다

가벼운 비명소리로 나를 열고나면

등골 빠진 몸은 버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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