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애인 / 김이듬
물이 없어도 표류하고 싶어서
외롭거나 괴롭지 않아도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곳으로 떠났다 돌아오거나 영 돌아오지 않겠지
가까운 곳에서 찾았어
우리는 모였지 인도 아프리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인 학생들
지난해 여름부터 나는 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었어
불한당 청년들의 표류처럼 불규칙적이었지만
무서운 속도로 어휘와 문법을 습득하는 그들이 참 신기하더라
말이 무색해서 팔다리를 브이 자로 벌렸지
매일매일 뱃멀미가 났어
멀리서 돈 벌러 온 한 이방인에게 나는 미약했지만
그의 까만 손가락이 내 얼굴을 두드렸지
장난스럽게 단지 두드리는 시늉만 했는지 몰라
전혀 두드리지 않았는지 몰라
적절한 문장을 못 찾겠어 도무지 사랑할 수밖에
그는 자신의 긴 이야기를 음악 소리로 듣는 마을에 가서
내 갈색 귀에 다 털려버렸지 코 고는 소리도 뭔가 이상했어
외국인 남자는 어떨까 상상하지 않았다면
말 못할 관계로 가지 않았다면 나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어
생면부지의 것들을 만나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다면
위험하지 않다면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아니지만
끝없이 문제를 만들어야 했어
시험 문항을 만들고
혼혈의 아이들을 낳아 식탁에 둘러앉아 각자의 모국어를 섞어 말할지도 몰라
콩밥을 나누고 에이즈 환자 모임에 가야 한다 해도
사랑한다면 사랑할 수밖에
너와 헤어진 다음 날 그를 사랑했어
진주를 중심으로 활동중인 김이듬 시인이 제7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로 뽑혔다. 김 시인이 올 초 낸 <말할 수 없는 애인>(문학과 지성사)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또 제6회 김달진문학상 젊은시인상에는 길상호 시인(시집 <눈의 심장을 받았네>)이, 제6회 김달진문학상 젊은평론가상에는 김문주 평론가(평론집 <수런거리는 시, 분기하는 비평들>)가 각각 선정됐다. 그동안 월하지역문학상과 김달진창원문학상으로 진행되던 문학상을 올해 처음으로 통합해 시상 규모가 커진 만큼 지역문학의 수준을 높이는데 이바지하고,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위상을 갖춰야 한다는 문학상 운영진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수상자 선정이다.
심사위원들은 "김이듬 시인은 활달한 언어구사와 상상력으로 개인적 실존의 문제를 철저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노래했다"며 "이는 내면과 세계 사이의 균열을 심도있게 드러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김 시인은 진주에서 나서 부산대 독문과와 경상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했으며 시집으로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이 있고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가 있다. 제1회 시와세계작품상을 받았고 현재 경상대에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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