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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집 / 엄정숙
어쩌다가 바닷가 빈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알고 보니 빈 집이 아니라
벌써부터 바다가 살고 있었다
집을 지을 때 누군가가 베란다에 서서
꽝꽝 못을 박고 바다를 가둔 채
지붕을 얹어 버렸나 보다
할 수 없이 나는 바다에 갇혀
하루 종일 바다와 함께 지낸다
아침마다
바다가 먼저 세수하고
바다가 먼저 거울을 닦는다
푸른 식탁 위에 아침해를 올려 놓고
가막섬 경도 소경도 불모섬
오래된 식구들을 불러 앉힌다
이 집에서 나보다 더 잘 사는 바다는
흐린 날이면 온종일 자리에 앓아 눕고
비가 오면 속으로 깊이깊이 울다가도
드센 바람이 불면 천길 벼랑끝을 마다않고
달려가 섬들을 껴안는다
만신창이가 된 몸뚱아리, 어머니처럼
제가 품고 사는 것들 하나도
다치지 않게 하는 바다는
아무리 바쁜 날에도
하루 두 번씩 집을 비우며
내게 마음 비우며 사는 법을
말없이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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