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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감성 제4회 신인상 공모 당선자 발표

 

안녕하세요. 깨끗함과 개혁을 표방하는 문예감성 제4회 신인상 공모에 많은 분들이 응모해 주심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최초 발표일을 3월15일로 공지 했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응모를 해 주셔서 1차, 2차를 거치는 과정에 다소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발표가 늦어진 점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당선작은 빠른 시간 안으로 신인상 수상작 게시판에 등재토록 하겠습니다. 당선되신 모든 분들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장르별 당선자

 

1. 시 부문
  김현승  '지렁이 발자국' 외4편
  김필대  '막후협상' 외 4편

 

 

지렁이 발자국 / 김현승

 

콘크리트 틈에 지렁이들이 피었다

그 와중에 모래 씨앗들을

새끼처럼 품은 이들이 있다

꺼지지 않는 호흡이다

토막 난 바람에도 혼절할까

온몸을 환대로 감싼다

그들을 깨운 생에 자양분이 되는 건

이슬 한 움큼

구름이건 햇살이건 바람이건

목숨이 세포인 생물에는 모두

견뎌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메마르고 어지러운 시간들이 온몸에 달라붙는다

환절環節마다 말라붙은 오후를 계속 기다보면

제 세상의 끝이 보일까

우거진 밤을 두 근육으로 밀어 끈 후에는

수평선이 닿아있는 시간의 배후에서

집을 짓고 있을지 몰라

그 틈에서도 그들은 호흡을 하고 있다

 

오늘, 거리에서 헝클어진 발자국을 보았다

 

 

지하역에 문병 가겠어요

 

결핍된 목구멍 속으로

지하의 生이 운반되어 오네요

정지했던 시간의 틈이 문을 열어요

코까지 차오른 숙성된 시간들이

토사물처럼 분비되지요

네 줄 서기로 흩어졌던 신발들이

멀미하는 구멍 속으로 모여요

사막 같은 발끝들을 머물게 했던

역사(驛舍)에 또

빈 바람만 씹히네요

 

결빙된 하루가 지하역에서 미끄러워요

그냥 내버려두면 넘어지겠어요

그것 봐요,

기절한 술병들이 흠집 나 있잖아요

구겨진 구직 전단지들 위에 딱지가 앉아 있어요

 

역 구멍 속으로 등이 굴곡진 생명들이 동거해요

관절염으로 마비된 넋들

시름시름 바닥을 기더라도 바람막이 벙커가 필요한 거겠죠

텅 빈 갈망으로 꽁꽁 둘러 싼

닳고 닳은 옷들

해진 마음 한 귀퉁일 매만져 줄래요

종양 같은 먼지의 무게를 덜어 주겠어요

 

지하역에 구멍이 있어요

지하역 구멍은 상처막이 벙커예요

그 안에 머무는 마른 생명들, 모두

편도선이 퉁퉁 부어 있어요

 

지하역으로 비대한 어둠이 걸어오고 있어요

 

 

노파의 장롱

 

긁히고 베이던 어린 날들이 있었지요

 

그때는 몰랐어요

처음부터 있었던 그대의 둔탁한 부재(不在)를

출처를 알 수 없던 살갗의 홍조는 늘

부재(不在)의 모서리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그러자 점점 귀 기울이게 되었어요

그대가 내게 건네는 말들에

쪼그라든 풀잎들, 꽃받침이 헐거워진 자리,

내장의 언어들을 물려주기 위해

내 몸에 자국을 남겼대요

 

처음으로 그대의 내력을 알게 되었어요

이불홑청 흐트러진 꽃잎들 사이로

첫울음 터뜨린 후,

내 어머니의 어머니들이 목련꽃을 낳은 해에

세상 울음길을 터 주었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그대의 낯이 쓸쓸하게 늙어 있네요

가장 낮게 엎드려 볼을 대고 서성여 보았어요

바람의 얼굴을 한 채 그대의 소매를 잡아당겼지요

 

차고 비릿한 숨이 몰아치고

검고 눅눅한 싱싱한 꽃잎들이 번져가고 있어요

 

어서 이 꽃잎들을 품어야겠어요

 

 

 

오래된 통증

 

그때도 사나운 밤이었다

 

골목 10m 간격의 나뭇가지들이 떼울음을 울었고

울음소리는 내 따귀를 때리고 있었다

차가운 울음 부스러기들이 몸에 들러붙을까, 슬쩍

피할 궁리를 하고 있는데

골목 한 귀퉁이에서 생선 비린내들이 새어나왔다

먼 과거로부터 흘러 들어온 생선 대가리들,

떠돌이 차림으로 각질처럼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도시의 무덤 속에 웅크린 중년의 사내,

얼어가는 수도관에 목숨을 걸어 놓고

초보의 몸짓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건너편 멀리 보이는 ‘來 美 安’ 불빛들과 부딪혀

동파하는 중년의 눈빛

골목의 울음 위에 얹혀 골목을 밀어올렸다

 

그때는 비릿한 밤이었다

고양이 울음이 어디선가 들려오고

생선 대가리의 울음이 저릿한 두 귀밑 거리를 메우던 밤

중년의 눈빛이 마음의 고리에 걸려 바람에 흔들린다

내내 비린 기억이 가시지 않는다

 

 

 

겨울 품에 들다

 

베개 밑에 겨울이 내려앉는다

 

충혈된 별 그림자가

손을 맞대고 비비는 소리

이불 속에 들어와 체온을 지펴주고

연방 꼼지락대던 어린 발가락들은

눈부신 공상에 잠이 멎는다

 

마당에는 새치름한 눈의 요정들이

얼음 왕국을 만들고 천장 밑 환상화에

까르르대던 머리맡

할머니의 잔소리도 유쾌한 그날은

목련도 한껏 필듯하였다

이불 속 공상을 지피는 집을 찾지 못해

꼼지락대던 시린 발가락들도

베개 밑 겨울과 잠을 청할 때

베개 밖 겨울에도 눈이 내려앉는다

 

아스팔트길에 피울

인조 불빛을 가공하는 도시

어떤 이들은

귓가에 걸린 별 그림자 소리 잃어가고

어떤 이들은

베개 밑 겨울만 훔쳐가지만

할머니가 계시던 그해, 겨우내

지붕 위에 베개 밑에 겨울이 내려앉던,

그 이불 속 어린 발가락들은 여전히

그리운 공상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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