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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 / 김명은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여 냉이를 캡니다

폭설에 파묻힌 새의 발가락처럼 오그라든 냉이

당신의 식성과 뿌리의 맛을 아는 내가

언 땅과 뿌리를 파들어 가며 결속을 끊습니다

 

햇살은 공명통을 붙잡은 하프의 선율이 되고

나는 당신을 끌어당기듯 하프를 타는 마음입니다

 

구름은 느리고 검은 속도로 내려오는

까마귀떼와 눈부신 잔설

 

이 엄동설한에 호미를 들고 나온 여자에게

빽빽하게 나무를 더 심어야겠군

침엽수림 칼바람의 경계가 삼엄합니다

땅과 나무와 옹벽의 살갗이 갈라터집니다

 

습기를 머금은 호미의 그림자가 날을 세우고

내 그림자의 가슴으로 향합니다 들꿩이 놀라 달아납니다

하마터면 당신이 뽑히고 내가 무너질 뻔했습니다

 

촉수까지 얼어있는 고드름의 손끝

바람이 차가울수록 당신의 눈빛은 날카로워지고

그늘 밑 냉이꽃 같은 잔설의 집요한 생각이

쉽게 녹지 않는 추위의 중심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 중심에 봄을 아는 냉이의 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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