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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회 신라문학대상 가작-

 

 

기림사 가는 길 / 이길은

누구의 부름이었는지 아무래도 좋다
간밤 자주 뒤척이던 별들
몇 번이나 고쳐 눕히다 잠든 늦은 아침
동쪽 창을 훔쳐보던 한없이 눈부신 태양의 목덜미를 만나고
山門을 지나오면
보인다
합장한 나무들이 각오한 듯
제각기 하나씩의 길을 끌고 어디론가 가고
그들을 배웅하는 어깨 너머
맨처음 발자국이 점점 멀어져 갈 때
등꽃 줄기 처럼 배배 꼬여 먼 하늘로 달아나는
불안한 마음들의 뒷모습
고여서 떠나려하지 않는 물의 뿌리와
튀어 달아나는 물소리 가는 곳 어딘지
어두운 가지 끝에 걸려 흔들리다 지워지는
산새들의 화두, 그 물음에 답하듯
제살 잘라내고 가는 구름떼들

결국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돌아오지 않는 길들과
우리를 버리고 간 발자국의 행방은
깊은 우물 아래 박힌 한 알 씨앗 속에 숨었는데
야윈 발목 잡아끌며 오라오라 외쳐대는 물소리 앞에서
빠트렸던 그림자나 행궈낼 뿐이다.

 

 

 

 

 황금편백나무의 노트에서

허락받지 못한 날개
그래서 아직 날지 못한다네
내 허리 껴안으며
돌아서 가던 바람
마치 먼 하늘로 띄워보내 줄 것처럼
한참을 흔들어대다 떠나버렸지만

밑둥 부근에 홀씨 퍼뜨려
자리 틀고 앉은 버섯 무리
그들이 독을 품고 있대도
나는 좋았네
그 향기에 취해 웃기만 하면
내 날개도 간드러졌네
다시 나는 꿈 꾸었고
꿈에서도 자꾸만 날개를 낳았네
아무려면 어때
그렇게 우리는 살아보기로 했네
내 날개로 그들의 부푼 홀시 날려주면서
살아보기로 했네
그렇게 한 번 날아보기로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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