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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차 팔던 날 / 최윤희
몇 차례 수술을 받았으나 가망 없다고
누군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나는 차가운 종이에 종말을 서명했다
강철 심장으로도 못 견디는 게 있었구나
세월. 그 허름한 옷을 입으면
우리네 사막에는 모래바람 부는가
낯선 이에게 너를 두고 오는 버스 칸
끝내 아내 얼굴에 두 줄기 햇살 빛난다
툭 툭 어깨를 쳐봤으나
그럴수록 우물 속 깊은 두레박 소리가 난다
한 때 새파란 어깨를 걸고 쏘다니던
늠름한 은빛 기억 때문일까
이제 우리도 낡아 간다는 사실 때문인가
결코 헐값에 합의 한 건
손때 묻은 기억까지 처분한 게 아닌데
그녀는 고물만 보면
입에서 허기진 바람소리를 낸다
창밖으로 쫓아가는 가련한 시선
구식으로 물 긷는 미련한 낭만주의자
그 옆자리가 따뜻하다
되창문 / 정성수
심부름을 갈 때마다 되창문이 열리고
마당 섶이나 마루 끝에 가래침이 떨어졌다.
어느 때는 내 발 아래 떨어지기도 했다.
나는 가래침을 슬며시 밟고는
할아버지가 눈치 채지 않게 짓이겼다.
뀅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웃집 할아버지는
산송장이었다.
그 때 심부름을 가는 것은
어린 나에게는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다.
법정 제3군 전염병. 폐결핵
폐결핵을 위해서
크리스마스 씰은 몇 장이나 사면되느냐고
대한결핵협회가 뭐하는 곳이냐고
인터넷을 뒤지며
때 늦은 공부를 한다.
옆방에서 아내가 밤새도록
가래침을 뱉는다.
가래침이 내 가슴 한 복판에 떨어질 때마다
유년의 되창문이 자꾸 자꾸 열린다.
* 되창문 : 초가집 안방문 옆에 조그만 유리창이 붙은 작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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