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 고기리
계표기와 카드의 입맞춤 값 팔백 원을 지불하고
하루 몫의 등짐 추스르며 플랫폼에 선다
형광빛 광합성으로 젖무덤에 핀 광고판 속 장미꽃처럼
어제 놓고 내린 꿈 수정란의 꽃으로 다시 피우고 싶어
열차를 기다리며 괄약근을 조이는 사람들
뜨거운 입맞춤 후 쓰레기통에 버려진 종이컵들
빠듯한 일인분의 산소량을 아껴 호흡하며
몇 모금의 액체 속에 용해된 카페인을 아가미로
분리수거해 하품을 쫓는 사이
잠들었던 푸르른 성감대의 선로 우르르 울리며
바닥을 향해 비어가는 종이컵 속으로 열차가 도착한다
선에서 선으로 색에서 색으로
모든 오고 감의 끝이 무엇인가를 학습하기 위하여
해웃값 따질 겨를도 없이 암수 몸 맞대고 땅굴을 달린다
휴대전화 핸드폰 휴대폰 셀폰 모바일폰 DMB폰 …
육성과 기계음이 서로 접붙어 변종 불협화음을 산란한다
혼자서 인공호흡을 하는 노숙자의 가위눌린 숨소리가
카드 빚 쳇바퀴에 치인 누군가의 신음소리에 꺾꽂이 되고
선따라 색따라 타고 내리는 정거장마다
밤새 숙성된 수정란 좌석마다 포기 나뉘어 착상되는데
액정화면에서 무리지어 짝짓고 허공으로 날아간
메시지의 자음과 모음이
년상과 년하가 자리 바꿔 앉는 의식에 꽃가루처럼 날리고
통화중 튀어나와 광고지처럼 나눠지는 웃음소리가
벗은 제 허물을 먹고 몸을 풀어 날개를 짓는
우화(羽化)의 과정에서 잘린 더듬이
아, 손금을 고쳐 환승하고픈 한숨소리에 휘묻이되고 …
소리보다 더 옹골진 삶의 바탕인 침묵이 깨질 때마다
우연히 같은 지하철을 탔을 뿐인 사람들끼리
때론 눈을 흘기고 때론 빙긋 웃음을 흘리며
동승자의 대가를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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