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 병어젓 / 박옥영
1
이 새 저 새 해도 먹새가 으뜸이라
고흥 진석화
낙월도 백하 영암 모치젓
강진 꼴두기 함평 병어젓
푸욱푹 삭아
짭짤하게 간이 들어도
바다를 끼고 사는 제 어미 품속에 자라서
입맛이 다 다른 법이라
2
오늘이 벌써 칠일이니
설장이 서겠네
한창 병어젓, 엽삭젓 맛이 들겠네
칼칼한 겨울비 내리는 장터
해 지기 전부터 장작불 지필 것이네
평생 보따리 챙겨들고 살아
더러 모나고 휘어졌지만 억척스레 살아남은 얼굴들
온 나절 선짓국 설설 끓다
병어젓 한 쪽지에 간 맞추며
훌훌 막걸리 들이켜 불을 쬘 것이네
파장한 시장 모퉁이
구구절절 마지막까지 지키고 서서
수더분한 손매로 몇 십 번 손을 잡았을
온갖 자식자랑 늘어놓는 목숨들
아, 설 대목 바쁜 틈에도
짭짤한 겨울비 내리고
장바닥 여기저기 퍼 놓은 장국냄새
아직 그리움 버리지 않았을 게고
오랜 근심에 삭아 골골한 할머니 무릎 앞
비좁은 틈새로 꾸역꾸역 파고 들어와
갖은 흥정에도 저렇듯 넉살좋은 병어새끼들
아직 싱싱하니 설 밑천이 되겠네
철퍼덕 앉은 병어 몇 마리
인사성 밝은 뉘 집 새끼 만나자
도톰한 손바닥들 탁탁 치며
금방이라도 팔딱 뛰어오를 듯 뛰어오를 듯
3
비 오는 함평장터
입심 좋게 타던 장작은
삭아들수록 옹골찬 불담이 되고 함평 병어젓은
뼈마디 살점 하나 하나
푸욱푹 삭아야 제 맛이지
겨울엔 더러 비가 내려야 제 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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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30대 중반 이상의 응모자가 많아서인지 전체적으로 젊고 참신한 시보다는 삶에서 얻어진 경험이나 깨달음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시들이 주조를 이루었다.
발상과 표현의 탄력성이 약한 대신 차분하고 진솔한 어법을 보여주는 시들의 미덕이 나름대로 있기는 하지만, 신인을 발굴하는 신춘문예에서 이런 현상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본심에 올라온 시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겨진 것은 박옥영, 김희철, 이지담, 장민하, 김영기의 시였다.
김희철의 시는 묘사 속에 서사를 녹여 넣어서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지나친 생략이나 비약이 시의 서사적 구조를 모호하게 만들고, 전체적인 의미보다 부분적인 언어를 다듬는 데 공력을 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지담의 시는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 시상을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지만, 다소 작위적이고 어색한 표현이 종종 눈에 띈다. 주관적인 의미 부여가 좀더 보편성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장민하의 시는 어조가 활달하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게 특장이지만,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시상을 좀더 압축하고 정제했으면 좋겠다. 김영기의 시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 삐걱거리는 내면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 삐걱거림을 더 깊이 내면화하면서 문학적 수련을 충분히 해나갔으면 한다.
당선작으로 뽑힌 박옥영의 `함평 병어젓'은 향토적 정감과 자연스러운 입담으로 설 대목의 장날 풍경을 맛깔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시에서 푸욱 삭아 제맛을 내는 것은 함평 병어젓만이 아니다. 시장에 목숨을 붙이고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부대끼는 모습은 아름답고 훈훈하다. 그러나 성찰적인 성격이 강한 다른 시들에서 깨달음이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되거나 모호한 관념에 머무르고 있는 시구들이 발견되곤 한다.
일정한 상투형에 따라 시를 의도적으로 만들기보다 시적 대상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숨결과 리듬을 살려낸다면, 그의 시가 좀더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당선이 그런 거듭남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나희덕 (시인 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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