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에 물을 준다 / 이선자
돌에 물을 준다
멈춘 것도 같고 늙어 가는 것도 같은
이 조용한 목마름에 물을 준다
이끼 품은 흙 한 덩이 옆으로 옮겨 온
너를 볼 때마다
너를 발견했던 물새우 투명한 그 강가의
밤이슬을 생각하며 내거 먼저 목말라
너에게 물을 준다
나를 건드리고 지나는 것들을 향해 손을 내밀 수도 없었고
뒤돌아 볼수도 없었다 나는 무거웠고 바람은 또 쉽게 지나갔다
움직일 수 없는 내게 바람은 어둠과 빛을 끌어다 주었다
때로 등을 태워 검어지기도 했고 목이 말라 창백해지기도 했다
아무하고도 말을 할수 없을때, 긴꼬챙이 같이 가슴을 뚫고 오는
빗줄기로 먹고살았다 아픔도,
더더구나 외로움 같은 건 나를 지나는
사람들 이야기로만 쓰여졌다 나는 몸을 문질렀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숨소리도 없이 몸을 문질렀다
내 몸에 무늬가 생겼다
으깨진 시간의 무늬 사이로 숨이 나왔다
강가 밤이슬 사라지고
소리 없이 웅크린 기억들이
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너의 긴 길이 내 몸 속으로 들어 왔다
멈출 수도, 늙어갈 줄도 모르는
돌 속의 길이
나에게 물을 준다
[당선소감 ]
언제부터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길 하나 품었다. 그 길은 어두웠다. 많은 사람들은 그 길이 너무 힘든 길이라거나 혹자들은 가보았자 무지개가 없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소리를 따라갔다. 그들의 길이었다. 나의 길을 꿈꿨다. 부엌의 싱크대 앞에서도, 아이들 꽁무니를 졸졸 따르는 부산한 하루 하루를 원망하면서도 나의 길을 꿈꿨다.
희미한 빛도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뒤돌아설까 생각도 했다. 그럴 때마다 다른 일을 하는 시간들이 무의미해지려는 것과 싸워야 했다. 시의 길은 나의 무기력과 맞서려는 길이다. 오늘 저녁도 나는 무기력한 길과 시의 길 앞에 망연히 서 있었던가. 아직은 멀었다고, 더 많은 시간을 가야 한다고 스스로 격려하면서 시의 길을 더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당선소식을 듣고 난 한참 후에야 어둡던 나의 길이 나타났다. 길 입구에 작은 불빛이 보인다. 불빛이 참으로 반갑다. 그 불빛을 따라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가리라.
불빛이 되어주신 전남일보사와 아직 서툴고 부족한 시를 선해주신 심사위원들께 머리숙여 감사드린다. 광주대 이은봉 교수님과 문예창작과 교수님들께 마음 다해 감사드린다. 힘이 되었던 고재종 선생님 격려 또한 잊을 수 없다. 진정으로 기뻐해주는 문우들과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싶다.
가장 먼저 이 길을 제시했던 친구 또한 잊지 않는다. 그리고 당신의 몸 하나로 칠남매를 키우신 어머니가 생각난다. 늘 큰 사랑으로 품어주기만 하는 셋째 언니, 형제들과 기쁨을 같이 하고 싶다. 누구보다 기뻐할 남편과 아이들, 이 모든 것들 위에 계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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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싱싱한 감각^유연한 시상 뛰어나”
예선을 거쳐 올라온 것은 아홉 사람의 시 44편이었다. 그 중에서 이선자씨의 `돌에 물을 준다'를 2005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선자씨가 응모작품으로 보내온 시는 위의 `돌에 물을 준다' 외에 `비닐봉지', `소리의 집', `잠들지 않는 육교', `그림 속의 물' 등 다섯 편이었고 이 시들의 수준은 거의 균일하였다. 한 사람의 작품 수준이 고르다고 하는 것은 그 시작의 능력에 신뢰감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사물을 끌어들이는 이선자씨의 싱싱한 감각, 어휘의 적절한 절약,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시상의 흐름도 장점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신춘문예의 시든 일반적인 시든,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시적 세계관으로부터 거리가 있는 시각, 지나치게 요설적이어서 부자연스러운 어휘들의 접합은 감동력이 약하다. 시가 아무리 개성의 문학이라고 해도 보편성을 너무 무시하면 요령부득의 암호가 될 수 있다.
최종까지 올라온 작품으로는 구본창씨의 `이 땅에 꽃이 존재하는 또 다른 이유'이다. 사설을 조금만 더 여과하면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의 길에 들어서는 이선자씨의 장도를 축하한다. 지금의 열정이 마르지 않도록 간수하면서 정성을 기울여 이끌어가기 바란다.
- 심사위원 이향아 호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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