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철물점과 행복부동산 사이 / 정동철
우리철물점과 행복부동산 사이
그가 끼어 있다
손톱만한 햇살이 간신히 창에 비쳤다
사라질 때쯤이면 늘, 나는 그의 집을 지나친다
움켜쥔 칼끝으로 그가 새기고 싶은 것과
도려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가 칼끝으로 파낸 햇볕의 부스러기들은
결코 이름이 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는 이름 사이에 낀 것들을 도려내며 늙었다
그가 밖으로 나오는 법은 거의 없었다
조금씩 이빨이 자라는 설치류 꽉 다문 입 속,
엉거주춤 끼어 남의 이름을 도드라지게 새기다가
반복되는 자기 생까지 파내버릴 듯하였다
날마다 자신의 뭉툭한 손가락을 하나씩 빼내
손가락 끝에 아프게 지문을 새기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목도장을 하나 파러 갔다가 어느 날
나는 그의 뒤통수에 난 창문 하나를 보았다
(그것은 잠깐, 둥근 보름달이었다가 그믐이 되기도 했다)
나뭇결 사이에 촘촘하게 어둠을 밀어 넣는 동안
달빛이 인주를 찍어 뒤통수에 도장을 박아 넣은 것이었다
[심사평] 깊은 시선·다양한 형식 시적 가능성 보여줘
모든 심사는 새로움과 완성도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미묘한 저울질과도 같다.
풋풋한 개성과 독창성을 지닌 작품에는 무언가 한끝 모자라는 공백이 보이고, 잘 짜여진 구조와 안정된 화법을 만나면 각(角)이 너무 다듬어져 익숙한 느낌이 들기 십상이다. 그래서 양자가 적절한 지점에서 만나는 작품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투고작 중에서 실험의식과 젊은 감각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준 것은 원진철의 시였다. 쉼표나 마침표만으로 제목을 삼는 것도 재미있는 발상이라 할 수 있고, 활달한 구어체 문장은 다소 거칠고 산문적인 대로 씹는 맛이 있다. 그러나 시상이나 이미지를 전체적으로 조율하고 집중시키는 힘이 약해 산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최미정의 시는 차분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간결하고 절제된 서정성을 보여준다.‘마중물’같은 작품에서 그런 특징은 일정한 성취에 도달하지만, 전반적으로 상투화된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문으로 된 기술방식이 특유의 속도감을 낳기보다 의미를 분산 또는 분절시키는 것도 그 한계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당선작과 함께 마지막까지 논의된 작품은 신유정의 ‘폐품장의사’였다. 그의 시에서는 사유의 힘이 느껴지고 안정된 호흡과 군더더기 없는 문장에 호감이 갔다. 시어를 이 정도로 유연하게 구사한다는 것은 오랜 숙련의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자꾸 읽을수록 왠지 허전해지고 그 낯익음이 드러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선작으로 뽑은 정동철의 ‘전주철물점과 행복부동산 사이’도 사실 아주 낯선 소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를 읽다 보면 골목의 작고 어두운 공간에서 도장을 파며 살아가는 사람의 등을 통해 ‘삶’이라는 이름이 아름답게 부조(浮彫)되는 듯하다. 그것은 아마도 대상을 바라보는 깊은 시선과 신중한 손끝이 낳은 이미지일 것이다. 한 가지 스타일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형식의 모색을 보여준다는 점도 그의 시적 가능성에 신뢰를 갖게 한다.
다만, 뛰어난 시는 ‘나뭇결 사이에 촘촘하게 어둠을 밀어 넣는’ 노력 못지않게 비약과 파괴를 통해 탄생한다는 것을 부기(附記)해두고 싶다.
심사위원 안도현,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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