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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 수선공 / 최일걸



그는 구두 밑창에 겹겹이 달라붙은 길들을
더듬는다 뒤엉킨 길들을 풀어놓으려는
그의 손마디가 저릿하다

시한폭탄을 해체할 때처럼 진땀나는 순간,
자칫 잘못 건드리면 길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서거나
뜀박질이 그의 심장을 짓밟고 지나갈 것이다
자꾸 엇박자를 놓는 길과 걸음이 구두를 망가뜨린다

구두란 길과 걸음의 교차점,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걸음과 길에서
절충점을 모색하기 전에 그는 먼저 숨을 고른다
쉼 없이 구두 뒷굽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길,
막바지로 구두를 몰아세우는 걸음걸음,
그를 여기까지 내몬 것은 길도 걸음도 아니었다

구두방 선반 위에서
번득이며 광휘를 뿜어내는 구두가
시치미를 떼고 돌아앉는다
그는 어긋난 길들을 구두에서 삭제하고는
도톰한 밑창으로 새로운 길을 포장한 다음
못을 박아 단단히 고정한다

고공행진을 거듭하는 세상에서
굽의 높이를 조정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다
못이 박힌 손으로 나달나달 떨어진 날들을 깁는
그는 차츰 지워지고 실밥이 그를 대신하여
툭툭 삐져나온다

보행을 손보는 일은 손님의 몫이지만
그는 시선을 곧게 펴서 손님의 종종걸음을 떠받친다
그의 뼈마디가 시큰거리다가 어긋난다


 

 


[당선소감]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 노래하고 싶어

예기치 않은 당선 통보였기에 지각변동만큼 충격이 컸다.
그 충격파는 나의 전 생애를 고스란히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돌이켜 보면 눈물이 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신 부모님께 귀한 지면을 빌려 따스한 사랑을 전한다.
나의 어머니는 지방 화단에서 활동 중이시다.
어머니는 교육자의 길과 어미라는 말뚝에 묶여 있었기에 마음껏 꿈을 펼치지 못하셨다.
하지만 지금도 어머니는 붓을 놓지 않고 매일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시며 자신의 세계를 확충하고 계신다.
어머니의 재능과 열정이 온전히 나에게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나의 아버지의 끈기와 집념이 내 생에 근간이며 나의 추진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나의 문장은 어떠한 한계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당선의 영광은 나의 몫이 아니고 부모님의 몫이다.
몇 달 전에 저 세상으로 가신 외할머니께서도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농토에 생산된 쌀로 오늘도 시를 짓고 있다.
밥 한 공기의 따스함으로 늘 내 곁에 계시는 할아버지의 두런거림에 귀 기울여본다.
시는 나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이다.
세상에 그늘진 곳을 밝히는 시를 쓰고 싶다.
언제나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며 그 아픔을 노래하고 싶다.
세상의 이면을 꿰뚫어 보고, 그것을 시어로 형상화하여 하나의 세계로 견고하게 일으켜 세울 것이다.
부족한 시를 넉넉하게 품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깊은 감사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시를 쓰겠다는 다짐을 전한다.
나의 반쪽인 아내와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지금 나는 아들 진후의 첫걸음을 향해 열려 있다.
일 년 동안 아기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생명의 강인함을 배웠다.
아들과 함께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을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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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꼼꼼한 관찰·묘사 시적 가능성 충분


올해는 응모작이 줄어서인지 본심에 올라온 16명의 작품을 읽으며 전반적으로 수준이 다소 떨어진다는 인상이 들었다.
그 중에서 정영희, 김효준, 최일걸 등의 작품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았다.


정영희의 시는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세련되고 날렵한 반면, 의미구조가 취약하거나 모호한 게 흠이었다.


구체적 언어와 추상적 언어를 교직하는 것이 일종의 낯설게하기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지만, 정영희의 시에서는 그 연결이 순탄치 않거나 진술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패닉의 바다’, ‘소나무역’처럼 유니크하고 일정한 스케일을 지닌 시를 결국 내려놓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시적인 새로움이란 표현의 참신함뿐 아니라 읽으면 읽을수록 확장되는 의미의 깊이에서 온다는 점을 말해두고 싶다.
그에 비해 김효준의 시는 다소 거칠지만 시상을 밀고 나가는 힘을 지니고 있다.


‘박쥐의 서곡’, ‘구름공장’, ‘닭’ 등 가족의 고단한 삶을 동화적 비유나 우화적 상상력으로 그려내고 있는 김효준의 시들은 간명하고 발랄한 대신 시적인 복합성이나 여백을 잃어버리기가 쉽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소재의 폭을 넓히고 상상력을 좀더 다채롭게 변주할 수 있다면 좋은 시인으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당선작으로 뽑은 최일걸의 시들은 강렬하지는 않아도 꼼꼼한 관찰과 묘사를 통해 대상을 인상적으로 각인해낸다.


묘사 중심의 시들이 지닌 답답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답답함을 극대화하는 것도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선작인 ‘구두 수선공’에서도 “구두 밑창에 겹겹이 달라붙은 길들”을 읽어내는 그의 시선은 작은 움직임을 통해 시간과 공간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구두란 길과 걸음의 교차점”이라는 인식을 이끌어낸다.


그 외에도 정육점, 후미진 골목 등 변두리적 삶의 풍경들을 주로 보여주는 그의 시들은 조용하지만 단호한 칼날을 지니고 있다.


당선을 계기로 그 칼날이 더 예리하고 정확하게 삶의 어두운 환부를 베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나희덕
▲연세대학원 국문학 박사 ▲1989년 ‘중앙문예’에 ‘뿌리에게’로 등단 ▲1998년 제17회 김수영문학상, 2001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2003년 제48회 현대문학상, 2005년 제1회 일연문학상, 2007년 제22회 소월시문학상 수상 ▲‘뿌리에게’, ‘반통의 물’, ‘사라진 손바닥’ 등 작품집 다수.

/이문재
▲경희대 국문학과 졸 ▲1982년 ‘시운동’에 ‘우리 살던 옛집 지붕’으로 등단 ▲1995년 김달진문학상, 1999년 제4회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2002년 제17회 소월시문학상, 2005년 지훈문학상, 2007년 제7회 노작문학상 수상 ▲‘마음의 오지’, ‘산책시편’, ‘제국호텔’ 등 작품집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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