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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순* / 강윤미

 

 

길섶 가시덤불 속에서
용케도 멜순을 찾아내시는 어머니

재잘거리는 내 눈이 서운할까
마주치시는 것도 잊지 않고
말에 간간이 추임새를 넣어주면서도
그녀의 등허리는 보이지 않는 그것을 향해 있다

두 눈 부릅뜨고 그녀의 눈길을 따라가 보지만,
내 눈에는 엉킨 실타래같은
가시덩굴 뿐

선밀 나물은 나를 피해 요리조리 숨어 있다가
어머니가 부르면 얼른 달려와 다소곳이 앉는다
그 부름으로 환해지는 산보길
멜순도 허겁지겁 봄을 불러와 꽃을 피운다

내 입에서 나오는 선밀 나물과 어머니의 멜순
길바닥에서 엉켜 뒹구는 그 말들을 모아
어머니는 버무리신다
데쳐도 향기는 손끝에 남고,

어머니 몸엔 멜순향 나는 파스가 숨어 있다

* 멜순: 선밀나물의 제주도 방언

 

 

 

 

 

자장면 먹는 노인

 

nefing.com

 

 

 

[당선소감]

 

오늘 저녁,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대학원서를 냈던 열아홉의 겨울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지평선 위를 달리던 기차를 생각했습니다. 처음 보았던 기차가 얼마나 신기했던지요.


올해로 제주도를 떠나온 지 육 년이 되어 갑니다. 그 동안 다섯 번의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또다시 겨울이 왔습니다. 항상 첫눈을 기다리던 마음이었는데, 막상 당선소식을 듣고 보니 부끄럽기만 합니다.


먼길을 갈 수 있게 용기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힘겨울 때마다 말없이 손을 잡아주시는 이상복 교수님, 믿고 지켜봐 주시는 정영길 교수님, 정동란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전동진 선생님, 박성우 선생님, 유재화 선생님, 원광대 문창과 동아리 '시공간'과 대학원 식구들, 나의 친구들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물푸레나무 정배오빠, 동생 윤정.수복, 오늘도 집어등을 켜고 딸을 응원해주시고 계실 부모님께 이 기쁨을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부족한 시를 항상 따뜻하게 읽어주시는 강연호 교수님!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심사평]덜 길들여진 감수성 높이 사

 

새롭고 도전적인 목소리를 만나고 싶은 기대를 충족시키기는 갈수록 어려워져가는 것 같다. 투고작들이 일정한 수준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소재나 발상이 비슷비슷하고 시단의 유행을 모방하기에 급급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도 강윤미, 주영국, 문정희 등의 시는 일정한 궤도에 올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정희는 말을 다루는 솜씨가 능란하고 일상을 섬세한 감수성으로 변주해 내고 있지만, 상상력과 어법이 지나치게 낯익은 것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주영국은 사회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시에 포섭해 들이며 건강하고 뚝심있는 세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스케일에 비해 내용이 명료하지 못한 것은 시어가 과녁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다는 증표일 것이다.


강윤미의 시는 주영국의 시에 비해 감정의 선(線)이 너무 여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선자들은 강윤미의 덜 길들여진 감수성과 발견의 시선을 높이 사서 '멜순'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즐겁게 합의했다.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멜순'이라는 낯선 말을 통해 풀어내고 있는 이 작품 역시 그런 특장을 잘 보여준다. 당선자의 이 새로운 출발이 커다란 공명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심사위원 강은교,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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