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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 정동현

 

 

짙은 물빛 가까운 저녁엔 단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누이들의 냄새가 그리워진다 겨드랑이 쉰내가 조개처럼 따닥따닥 매달려 유난히 북적이는 퇴근 시간- 나는 오랜 추억의 크기만큼 좁은 섬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마을 버스 속으로 꾸역꾸역 몰려들 듯 물결에 쓸려 고래 뱃속으로 가라앉는다 고깃집 붉은 빛과 싸이키 조명 탐조등이 능숙하게 훑고 지나가는 곳마다 파도가 일렁이고 산호초 춤추는 아로마 나이트크럽 아니 아로마 노스탤지아 나이트크럽 그게 그곳의 본래 이름일게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1-2번 로얄빌딩 바이더웨이 광덕슈퍼 목이동 파출소 지나 강서 보건소에서 노선은 끝난다 늘 그렇듯 구토와 주정과 욕설로 끝나는 나이트크럽 무인도보다도 외따로 떨어진 종점 버스- 춤추던 산호초들은 어디 있을까 파도소리도 없이 적막한데 빈 손잡이처럼 흔들리는 밤의 끝 한 누이가 내게 다가와 고단한 별들의 눈썹이 새겨진 전단지 하나 건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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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가 돈이 되지도 않고 명예가 되지도 않은 시절을 살아가면서 왜 이 지상 위에 시 쓰는 영혼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가에 대해서 선자들은 심사기간 내내 이야기했다. 새로운 시간들에 대한 열망, , 상처의 회복, 날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선자들의 손에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최미정, 나정숙, 정동현의 시편들이었다.

 

최미정의 `화성식료품'은 이미지의 전개가 탄탄하고 삶의 냄새도 곳곳에 스며 있었으나 식료품 가게 너머의 어떤 언덕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미흡하다는 생각으로 최종선에서 제외되었다.

 

나정숙의 `기억 저 편'과 정동현의 `무인도'를 두고 선자들은 격론을 펼쳐야만 했다. 두 작품이 분명한 장점과 결함을 한꺼번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 저 편'이 보기 드물게 정확한 풍경 묘사를 하고 있는 반면 그 시점이 과거지향적이라는 점이 지적되었고, `무인도'의 경우 범상한 삶의 풍경들을 자신만의 감정의 체에 걸러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으나 그 감정들이 지닌 열망과 꿈이다분히 감상적일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인도'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이 시가 지닌 철저한 현재성, 자신의 삶을 따뜻한 언어의 꿈으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을 산 때문이었다. 더욱이 함께 보낸 11편의 다음 시들이 일정한 치기를 내보이고 있음에도 거기 펼쳐진 언어들의 꿈이 충분한 장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선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안정보다는 변화를 열망하는 시대적 패러다임이 선자들의 선택 행위에 내재해 있었음에도 부인할 길이 없다.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과 열정으로 삶의 막막한 풍경들에 강렬하게 부딪쳐 나가는 멋진 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곽재구(시인·순천대 교수) 고재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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