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의 / 김수열
옛말 고르커메 들어보라
느네 성할망은 느네 아방 낳고 소박맞앙 여든 나도록 촌집에 혼자 살아시녜 어느 날 집에 강보난 우영팟엔 검질이 왕상 정지엔 거미줄이 고득허연 아이고, 영허당 죽어져도 모를로코나 싶언 옷가지 몇 개 이불 보따리에 싼, 집으로 모셩와신디 온 지 얼마 아니 되연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헌거라
느네 아방은 성할망신디 술은 절대 먹지 말렌 불호령을 해노난 말벗 어신 촌 할망 오죽이나 곱곱해실거라? 보기에 하도 딱허연 아방 모르게 점방에 강 할망 좋아허는 흰 술도 사고 붉은 술도 사고 찬장에 곱져둠서 흰 술 한 잔 붉은 술 한 잔 드려나시녜 느네 아방 모르게
성안에 온 지 두 달 보름 만에 할망이 오꼿 죽으난 정성 치성으로 영장 치르고 왕강징강 구왕풀이도 허고 사십구재도 허연 저승 상마을로 잘 인도해 드렸주
일 년 만에 소상 치르고 닷새 정도 지나신가 이모한테서 전화가 온 거라 영장 때영 소상 때 부지런히 부름씨해준 진수 어멍이 꼭 할망 씌운 거 닮덴 허멍 이거 무슨 일인고 허연 와랑와랑 달려간 들어보난 소상날 밤부터 빌빌빌빌 아프기 시작허여신디 누워둠서 허는 짓이나 허는 소리가 영락없는 죽어분 할망이렌 허는 거 아니라?
내가 봐도 할망이 돌아온거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눈물이 숨딱허연 손목 심엉 솔솔 달래멍 고랐주
ㅡ 아이고 어머님아 무사 이제도록 아니 갑디가? 구왕풀이에 사십구재에 소상까지 동그랗게 촐령 보내신디 무신 칭원헌 일이 이선 죄 어신 진수 어멍 몸에 의탁을 헙디가?
ㅡ 곧고 싶은 말 곧젠 해신디 몸은 진토가 되어부런 잠시 잠깐 놈의 몸에 의탁을 해시난 고라지민 바로 가켜
ㅡ 경허걸랑 고릅서 어머님아
ㅡ 고마웁다 메누리야 흰 술 받아줜 고마웁고 붉은 술 받아줜 고마웁다 메누리야 흰 술 한 잔만 받아도라 붉은 술 한 잔만 받아도라
ㅡ 아이고 우리 어머니 막 기리와났구나게 걸랑 그리헙써 와랑와랑 슈퍼에 달려간 소주 한 병 콜라 한 병 사단
ㅡ 흰 술 한 잔 받읍서 붉은 술 한 잔 받읍서, 허멍 드리난
ㅡ 고마웁다 메누리야 고마웁다 메누리야
닷새 동안 거동도 못허던 진수 어멍 소주 한 잔 쭈우욱 콜라 한 잔 쭈우욱 허연게마는 ‘아이고 시원허다. 이젠 살아지켜, 나 감져‘
벽장더레 돌아눕자마자 소르륵 자는 거라. 죽은 사람고치
다음 날 아침 그 어멍 ‘아이고 잘 잤져’허멍 펀드룽이 일어난 세수허고 로션 바르고 루즈 칠허고 십 년 넘게 다니는 사무실에 출근허연 이십 년 넘게 더 다니단 사오 년 전엔가 죽었덴허여. 여든다섯에
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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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풍진 세상 / 허소라
우리가 굳이 떠밀지 않아도
겨울이 떠나고
우리가 굳이 손짓하지 않아도
봄은 이렇게 절룩이며 오는데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는데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구경꾼은 없더라
팔짱 낀 구경꾼은 없더라
지난 폭설이나 산불에도
온전히 죽지 못하고 썩지 못한 것들
마침표 없이 출렁이는 저 파도 속에
비로소 그 큰 눈을 감는데
아무도 구경꾼은 없더라
그때 우는 모두는
아우성이었으므로,
그 속의
골리앗이었으므로.
올해 제3회 신석정문학상에서 허소라 시인과 김수열 시인이 공동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사)신석정기념사업회(이사장 윤석정)는 ‘제3회 신석정문학상’의 수상자로 허소라 시인과 김수열 시인을 공동 선정했다.
허소라 시인은 시집 ‘이 풍진 세상’(신아출판사·2015)을, 김수열 시인은 시집 ‘빙의’(실천문학사·2015)를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미발표된 시를 대상으로 공모하는 ‘신석정 촛불문학상’에는 김기찬 시인의 시 ‘오월’이 선정됐다.
신석정문학상은 지난 3년간 출간된 시집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신석정 촛불문학상은 기성 및 신인 등의 미발표 시를 공모받아 심사한다.
시상식은 오는 10월 8일 오후 3시 부안 석정문학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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