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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너덜겅이 / 한영숙

 

 

흔한 돌덩이가 비탈에 모여 슬픈 소리를 낸다

 

촌 어미의 딸아이가 묻혀서 애기무당 굿 소리 아득하다

 

는개로 떠돌면서 고깔모자 삼색 옷 걸치고 백무동계곡 오르고 내린다

 

뭇별들 피고 또 슬그머니 진 자리 꼬리치레도롱뇽의 시월이다

 

서어나무 마르고 뒤틀린 잎에도 초하루 아침이 풀린다

 

웅크리며 애 터지던 한 권의 말은 차례대로 입을 다문다

 

누군가 있어 높고 쓸쓸하게 죽어간 길

 

땀 냄새 긴 거름 냄새 싸드락싸드락 밟아 간다

 

 

 

 

얼룩무늬쐐기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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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상] 오븐 / 이혜미

 

여행자 하나 사막을 걷는다

스위치를 켜자 태양이 나른한 오후를 달구고

지친 여행자는 허공을 짊어지고 서서

목적지를 잊은 사람처럼 머뭇거린다

원근법으로 그려진 모래사막 캔버스 위에

물결무늬가 새겨진다

사막은 모래로 그려진 점묘화다

공기조차 모래빛이 스며든 듯한 폭염 속

목마른 발자국으로

오아시스를 찾아 헤맨다

메마른 붓터치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든 몸속 한 방울 물기까지

꼭 짜내어 가지고 간다

몇 겹으로 덧칠된 고요 속에서

낙타의 아몬드색 눈과 마주쳤을 때

침묵으로 노래하기 시작하는 사막

문을 열자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내리는

금빛의 파편, 채도 높은 한낮의 구도 속으로

휘몰아친다 바삭하고 담백한 죽음

식탁에 올려놓자 사막 속에서

닭 한 마리 천천히 걸어 나온다

 

 

 

보라의 바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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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를 포함하는 문학이 제대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시대에 시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쓴 응모작품들을 읽고 아직도 문학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시들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생활 속에서 시적 소재를 찾아 그것을 삶 속에 올곧게 자리매김하려는 시정신은 높이 평가해도 좋으리라 파악되었다.

 

<무우> 9(한명숙)은 일상생활 속에서 만나는 여러 사항을 진솔하게 표현해 놓고 있다. 다만 그 시적 표현이 다소 거친 것이 흠이고 보다 치열하게 생활에 임하는 시인의 정신이 돋보이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오븐> 4(이혜미)은 잘 짜여진 시편들이다. 무엇보다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돋보였다. 특히 <오븐><저문다는 것>에서 읽을 수 있는 시적 상상력은 높이 살만 하다. 언어를 다루는 솜씨만으로 좋은 시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시적 기교만이 아닌 온 몸으로 시는 써야 한다고 말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당선이 아닌 심사위원 추천 우수작품상으로 <오븐> 4편을 천거한 것은 시를 다루는 솜씨의 아까움이 이후 치열한 시정신을 온몸으로 감당하면서 보다 큰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너덜겅이> 4(한영숙)은 시적 소재를 전원에서 찾고 있는 독특함을 보인다. 그냥 지나쳐 버리기 십상인 어줍잖고 평범한 사물들을 삶의 예지와 아우르는 날카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진부한 것을 새롭게 관찰하고 있는 한영숙의 시들은 좀 엉성하기는 하지만 참신하고 새롭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질박하고 순수한 격조를 지니고 있다고 할 것이다. 1회 최치원 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천거하는 까닭이다.

 

심사위원 최동호(시인. 문학평론가. 고려대 교수), 김선학(문학평론가.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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