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석정 기념사업회와 신석정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허소라)가 수여하는 ‘제1회 신석정문학상’의 수상자로 도종환(60) 시인이 선정됐다. 또 신석정 시인의 첫 시집 ‘촛불(1938)’의 간행을 기념해 등단 여부와 관계없이 신작시를 응모한 ‘신석정촛불문학상’ 수상자로는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출신의 최정아(75) 시인이 이름을 올렸다.
지난 24일 서울 모처에서 열린 심사에는 문학상 운영위가 추천한 신경림 시인을 위원장으로, 오세영 시인, 정양 시인, 안도현 시인 등이 심사위원에 참여했다.
‘신석정촛불문학상’을 수상한 최정아 시인은 200여 명의 응모 작품 중에 예심을 거쳐 본심에서 선정된 작가다. 수상작으로는 ‘발아’란 작품이 선정됐다. 그의 시는 시적 체질을 잘 갖췄으며, 생명 정신을 한껏 고양 시킨 작품이 다수라는 평가다. 남원 출생인 최 시인은 지난 2002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시부문)와 2004년 시선을 통해 등단했으며, 전주문학상, 중산시문학상, 온글문학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밤에도 강물은 흐른다’ ‘봄날의 한 호흡’이 있다.
한편, 시상식은 10월 25일 오전 10시 부안 석정문학관 뜨락에서 열린다. ‘신석정문학상’에는 상금 3천만원이, ‘신석정촛불문학상’에는 500만원이 시상금으로 수여된다.
이 칼은 광석이 아니다.양쪽 날을 가지고 있는 검劍의 끝은 여전히 벼려지는 중이어서 휘어져 있다
누가 산속에 칼을 꽂아두고 갔나.새파랗게 녹슬면서 가끔 꽃도 피우는 그 칼을 누군들 쉽게 뽑겠는가
칼 한 자루를 오래 감상했다
향기가 일획으로 지나간다
정점으로 향한 떨림의 순간,바람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고 칼은 별자리 방향을 따라 빛이 바뀐다
칼은 스스로 시들어 칼집 속으로 웅크리고 들어간다
칼 가는 사람도 없이 파랗게 날을 세우고 휘두르는 힘이 다 빠지면 절 옆으로 휘어진다
한데 엉키는 칼끝을 조심해야 하며 봄이면 멀리 동쪽에서 찾아오는 꽃이 있어 서리와 동풍을 빼내야 한다
일합一合의 불꽃도 없이
꽃피운 칼
갈라지는 칼끝에서 꽃잎 떨어진다.
[심사평]소통이 되는 신선한 시를 바라며
제6회를 헤아리는 천강문학상은 국내외의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응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등단 여부에 관계없이 기성문인에게까지도 응모의 기회가 주어지는 상이며 멀리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 가운데서도 수상자가 나올 만큼 범위가 넓습니다.또한 대단히 공정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심사는 상의 위상을 한층 드높이고 있어 역량 있는 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바이기에 심사에 임하는 마음도 그만큼 긴장되었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겨진 작품은347분 총2,538편이었습니다.작품 모두는 작자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고 보아졌습니다.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작품들의 산문화였습니다.이것이 요즈음 우리 문단의 일반적인 경향인 듯도 합니다.시에는 산문시라는 갈래가 있습니다만 산문시가 산문과 구별되는 것은 그만큼 응축된 시정신과 간곡한 전언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그런 점에서는 미흡한 산만성이 엿보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작품들에 유사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성명과 기타 신분을 모르는 상황에서 작품을 심사하는데 주제나 소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작품들 나름의 특성을 찾기가 어려웠으며 동일 작자의 작품이라 하여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천강의 충절과 의로운 정신이 반영되고 내포된 작품들이 없었다는 점입니다.문학상의 특별한 성격을 헤아릴 때 그분의 삶과 행적에 대한 관심과 기림은 우선되는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심사에 임할 때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기준 삼았습니다.
첫째,소통성 유무였습니다.시가 가지는 필연적인 모호성과 난해성 이외의 이해 불능,불통의 시여서는 독자가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를 쓴다는 의의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앞서도 지적한바 얼마나 개성적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각자의 얼굴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듯이 시도 작자에 따르는 각각의 자기 얼굴과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참신성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끊임없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로 쓰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를 썼겠습니까.그러나 시가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늘 새로웠기 때문입니다.창작의 기본이 새로움인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넷째,응모한 여러 편의 작품들이 균등한 수준을 이루고 있는가를 보았습니다.작가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게끔 여러 편의 작품들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살폈습니다.
다섯째,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보았습니다.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나 뜨거운 감정이라 할지라도 시로 형상화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생경한 시의 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시로 형상화 되어 감동을 이끌어 낼 때 비로소 그 작품을 우리는“시”라고 부르게 됩니다.특별히 천강문학상의 취지와 정신을 생각할 때 감동적인 내용이 형식과 잘 조화를 이루었나를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략 이런 기준을 염두에 두고 본심에 임하였습니다.여러 번의 숙독과 심의를 거쳐 최정아씨(<꽃피는 칼>외)를 대상 수상자로,김대성씨(<버드나무 활극>외)와 정진혁씨(<녹이 슬었다>외)를 우수상 수상자로 뽑았습니다.
최정아씨의 작품들은 여러 편의 작품들이 고른 수준이었으며<꽃 피는 칼>에서 보여주는 비약적인 은유와 상상력,식물이미지와 광물이미지의 결속 등을 높이 살만 합니다.꽃을 피우는 식물은 항용 꽃이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잎이 주인이 되는 변용의 묘,충돌하면서 합일하는 비유의 심안은 만만찮은 기량을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굽힘 없는 생명의지,그리고 생명의 순환 과정을 그린 사색의 깊이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었습니다.
김대성씨의 작품<버드나무 활극>은 감각적인 묘사가 수용자의 시각과 청각과 촉각 등을 모두 동원하게 합니다.무생물들이 생명을 얻고 힘차게 움직이는 역동성은 제목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한 편의 활극입니다. <버드나무 수목장>이나<묵밥>은 죽음과 이별이 제재이지만 슬픔을 극복하는 의지가 긍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슬픔의 승화가 주는 정화의 세계가 독자를 이끕니다.그러나 좀 더 정연한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점과 더불어 감동의 깊이가 의도만큼 이루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진혁씨의<녹이 슬었다> <오이지> <목련이 페이지를 열었다>들에서 읽게 되는 목숨의 유한성은 운명이라는 말을 일깨웁니다.그중에도<오이지>의 선명한 비유는 공감력을 높이고 있습니다.시가 마땅히 지녀야 할 긴장감이 부족한 것은 이 글의 지나친 산문성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하면서도 주제를 흩트리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 간 저력에 주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김인숙씨의<자주달개비의 문>과 김인후씨의<윤도>등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입상하신 여러분께 축하를 드리며 문운이 더욱 빛나기를 빕니다.
한 떼의 구름이 내게로 왔다. 한쪽 끝을 잡아당기자 수백 개의 모자들이 쏟아졌다. 백 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의 모자도 나왔다. 그 속에서 꽹과리 소리와 피리 소리도 났다. 할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어깨 흔들며 춤을 추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삼십년 전에 죽은 아버지의 모자를 긴 손에 들고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 모자 속에서 망사 모자를 집어 들었다. 망사 모자를 쓰자 세상도 온통 모자로 가득했다. 빌딩이 모자를 쓰고 있었고, 꽃들은 모자를 벗겨달라고 고개를 흔들고 있었고, 새떼들은 모자를 물고 날아갔다. 수세기에 걸쳐 죽은 친척들도 줄줄이 모자를 쓰고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고 할아버지는 꽹과리를 치고 새들은 노래를 부르고 나는 그들을 데리고 바다로 간다. 둥둥둥 북을 친다. 풍랑에 빠져죽은 영혼들이 줄지어 걸어 나온다. 파도에게 모자를 던져준다. 모자를 쓴 파도가 아버지처럼 걸어온다. 갈지자로 걸으며 손을 흔든다. 친척들은 환하게 웃으며 춤을 춘다. 아버지가 두루마기를 입고 넘어진다. 그러나 아버지는 영영 일어서지 못한다. 아버지 모자를 다시 구름이 빼앗아간다.
[당선소감]
먼저 저의 졸작을 뽑아주신 심사위원 박재열, 안도현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선 소식을 접하는 순간 왈칵 눈물부터 쏟아졌습니다. 이게 사실인가. 아닐 거라고 부인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눈물이 더 나고 울음까지 터져 나왔습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얼굴을 드니 먼 행성으로 가는 길을 찾아 나서는 것처럼 앞이 까마득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내 안에선 또 뭔가 꿈틀거리는 것도 있었고요.
중학교 때 아버지를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리면서 소녀시절부터 허무를 먼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꿈을 자주 꾸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빛이 화려하고 아름다운 상상 속의 물고기 같았습니다. 나는 그 물고기를 잡으러 이 바다 저 바다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물고기가 바로 내 안에 있었고 어두운 강을 거슬러 오르려고 그동안 몸부림치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됩니다. 물고기를 잡게 해준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김영남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채찍이 이렇게 큰 영광으로 돌아올 줄 몰랐습니다.
이제 그 물고기를 꺼내 넓은 바다로 보내야겠습니다. 이유 없이 투정부리면 묵묵히 받아준 남편, 함께 공부하며 큰 힘이 되어준 정동진 회원 여러분들과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일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님께도 이 영광을 올립니다.
[심사평]
예심을 거친 21명의 작품을 읽으면서 대체적으로 신선한 감각에 호감이 갔다. 그러나 거개의 작품이 산문적인 발상이거나 묘사에 그쳐 있어서, 패기 있는 언어의 구조물이라는 느낌은 주지 못했다.
시가 삶이나 자연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그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이라면 그 과정에는 날카로운 인식과 상상력이 요구된다. 그런 뜻에서 최정아의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 이정희의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 류화의 「그녀의 검은 봉지」, 김승훈의 「곤달걀의 비명」, 김지훈의 「바다 복사실」, 이담의 「천상열차분야지도」, 정학명의 「구름정원의 기억」 등은 사물을 보는 독창적인 시각으로 해서 시의 기초가 튼튼하였다. 그러나 「그녀의 검은 봉지」는 이야기체를 못 벗어나는 한계를 보였고, 「천상열차분야지도」는 가상의 공간을 제시하는 만큼 리얼리티가 부족한 것 같았고, 「곤달걀의 비명」은 곯아버린 병아리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돋보였으나 강한 인상을 줄 만한 이미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광흥창문 두드리는 것들」은 베란다의 식물을 극화한 것은 신선했으나 역시 식물들의 구체화가 아쉬웠다. 「바다 복사실」, 「구름정원의 기억」,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는 현실과 상상, 외계와 내면을 무리 없이 넘나드는 만만찮은 기량을 보여주었다. 「바다 복사실」은 재깍거리는 복사실의 이미지를 바다 이미지와 멋지게 오버래핑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된 효과를 내는 데는 미숙해 보였다. 「구름정원의 기억」은 터프한 호흡이 매력적이었지만, 사물을 형상화하는 능력에서는 「구름모자를 빼앗아 쓰다」만 못했다. 최정아의 이 작품은 활달한 상상력에서 터져 나오는 내면세계가 제의적(祭儀的)으로 살을 채워나가면서도 상당한 예술적인 즐거움과 깊이를 주어,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