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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파리 / 김오늘

 

 

그냥 천장에 거꾸로 붙어 서서

조용히 손이나 비비고 있었더라면

간당거리는 파리 목숨

며칠 연장했을는지 모른다

 

초대장도 없이

파리는 파티복도 입지 않고

맨 손에 두 폭 망토 휘날리며

감히 천장의 샹들리에 찝쩍거렸다

 

어설픈 춤사위 부추기며

하얗게 흐르는 시나위 장단

이왕 무대에 올랐으니

등 떠민 적 없는 바람에게도 인사하고

가지지 않은 명주 수건 탓도 하면서

모서리의 살풀이 한 판 끝내주는 순간,

느닷없이 후려치는 신문의 몽둥이 한 방

나동그라지는 숯검댕이 무희

 

제 피로 무대에서 부고장을 쓰게 될 줄 몰랐다

사건 사고의 침엽수림 광고란에

붉은 꽃상여가 놓였다

이만한 죽음이면

평생 손 비벼 기도한 보람은 있는 것이다

 

 

 

 

 

[심사평]

 

본심에 올라온 24명의 작품 가운데 박형권의 현고수와 김오늘의 파리를 최종심에 올렸다. 두 작품은 어느 것을 대상작으로 정해도 좋을 만큼 작품의 완성도나 성취도가 엇비슷했다. 현고수는 화자의 내면적 표출 방법의 하나로 마스크를 쓰고 이를 작품의 주제 구현에 활용하는 솜씨가 돋보이고, 파리는 시어의 정서적 기능을 활용하여 화자의 감정이나 태도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기량이 돋보인다.

 

 

나는 북을 걸어둔 느티나무다.

 

몇 발자국 뒤의 생가에서 나와 둥두둥! 북을 두드리는

 

마흔 살 선비다.

 

그 선비의 붉은 철릭이어서 뿌듯하다

 

육백 년을 살았어도 불혹의 깊은 속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선비와 나는 한 몸이다.

 

―「현고수 첫 부분

 

 

 

그냥 천장에 거꾸로 붙어 서서

 

조용히 손이나 비비고 있었더라면

 

간당거리는 파리 목숨

 

며칠 연장했을는지 모른다

 

―「파리 첫 연

 

 

현고수는 화자가 일명 곽재우나무로 불리는 느티나무를 통해 나를 드러내지만 실은 곽재우의 패기에 찬 열정과 우국충정을 노래한 작품이고, 파리는 한 마리 곤충의 입을 빌어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파리목숨의 덧없음을 토로하되 현실세계의 비루한 삶을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두 작품이 이렇게 소재와 주제가 다르고, 방법론적 특성도 달라 작품의 우열을 가리는 기준을 찾기 어려웠다. 둘 중 하나를 대상작으로 뽑아야 하는 입장에선 난감했다. 여느 심사에서는 본심위원이 으레 둘 이상이라 서로 상의하여 우열을 가렸거니와 그렇게 하면 덜 힘들고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이번 심사는 필자 단독으로 우열을 가리고 그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고심 끝에 현고수를 대상으로, 파리를 우수상으로 결정했다. 현고수는 동봉한 응모작 가을이 왔다」 「읍내여관 등과 함께 시적 기량이 일정 수준 이상일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활달하고 시어를 조합하는 능력이 두드러졌다.

 

 

오늘 밤에는 귀뚜라미가 내 낡은 구두를 연주한다

 

구두 안에서,

 

구두의 노래를 귀뚜라미가 대신 불러줘서 얼마나 다행인가

 

... (중략)...

 

어쩌면, 지금 나를 열어두면

 

나중에 내가 한 행성을 지나갈 때

 

멀리서 새어나오는 읍내여관 불빛을 보며

 

내가 의령읍의 가을에 잠시 존재하였음을 깨달을 것 같다

 

― 「읍내여관 허두와 결구

 

 

이 시인의 활달한 상상력과 시어를 조합하는 능력을 볼 수 있는 표현들이다. 아울러 이 시인이 관념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 대상 자체를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그런 묘사적 특성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묘사적 이미지 형성 방법은 시에 구체적 사실감을 안겨주는 데 기여한다.

 

우수상으로 결정한 김오늘의 파리 및 함께 응모한 시 낚시 금지구역」 「완전한 수술은 순위에서는 밀렸지만 작품의 우열 면에서는 그리 밀릴 것 없는 수준이다.

 

 

그냥 천장에 거꾸로 붙어 서서

 

조용히 손이나 비비고 있었더라면

 

간당거리는 파리 목숨

 

며칠 연장했을는지 모른다

 

...(중략)...

 

제 피로 무대에서 부고장을 쓰게 될 줄 몰랐다

 

사건 사고의 침엽수림 광고란에

 

붉은 꽃상여가 놓였다

 

이만한 죽음이면

 

 

평생 손 비벼 기도한 보람은 있는 것이다

 

― 「파리 허두와 결구

 

 

예시에서 보는 바와 같이 표현이 활달하고 어조가 시원시원하다. 비참한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 절망감을 낳을 법도 한데 시인은 이를 낙천적으로 감수하면서 결코 기죽지 않는 자세를 보여준다. 만일 단일 작품으로 우열을 가린다면 어떤 선자는 파리를 대상 작품으로 밀법도 하다. 파리를 뒷받침하는 다른 시들의 무게가 골랐다면 좋았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상상력도 더 힘을 받지 않았을까<미끼도 없는데/고기는 끝없이 잡혔다/잡으면 잡을수록/강물에 고기가 넘쳐났다/퍼덕이는 고기를 보고/나는 낚시질을 그만둘 수 없었다/그 날 나는 고기를 잡느라/집에 돌아오지 못했다/나는 고기들에 파묻혀 죽어버렸다> 이 얼마나 함의가 많은 대목인가.

 

참고로 본 심사는 주최 측의 철저한 보안 속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작품을 응모한 시인의 이름은 심사를 마친 이후에야 알 수 있었으며, 지면 관계상 미처 언급하지 못한 응모작들, 특히 망우정에서」 「화살」 「빗살무늬, 획을 긋다 등의 시가 몹시 마음에 걸린다.

 

- 심사위원 감태준(시인, 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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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현고수 / 박형권

 

 

나는 북을 걸어둔 느티나무다

몇 발자국 뒤의 생가에서 나와 둥두둥! 북을 두드리는

마흔 살 선비다

그 선비의 붉은 철릭이어서 뿌듯하다

육백년을 살았어도 불혹의 깊은 속을 다 읽지는 못하지만

선비와 나는 한 몸이다

나는 성리학을 알지 못한다고 기록되었고

별시문과에 뽑혔으나 임금의 비위를 거스른 문장이라

합격이 취소되었다

첫 줄기의 생장점이 꺾인 것이다

그리하여 잎눈과 꽃눈을 내지 않았다

한양 쪽으로는 이파리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나의 북소리는 주경야독에서 나왔고 은둔에서 나왔다

임진년 허술했던 봄, 임금은 벌벌 떨고 관군은 도망할 때

나는 스스로 의병을 일으켰다

비루하고 인색하다고 입에 오르내린 사재를 털어

천강홍의장군이라는 깃발 아래로 의병들을 불러들였다

나는 알았다

북은 스스로 운다는 것을

정암진에서 붉은 철릭을 입고

이천의 의병으로 이만의 왜군을 수장시킬 때도

관군은 도망치고 시기 질투하였다.

나는 날랜 병사를 불러 핏빛 옷을 입혔다

홍의장군은 어디에나 있었다

임금이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잠깐 하다가 손을 놓았다

그건 모두 어린애를 홀리는 단물과 같은 것이었다

나중에 나는 패랭이 장사를 하며 솔잎을 먹으며 출사를 거절했다

 

모든 것이 북소리로 시작되었다

마침내 오늘에 와서 다시 북을 건다

명예롭게 남고 싶은 백성들은 누구라도 와서 두드려라

오늘 밤 바람이 몹시 차다

너희를 덮을 만큼 잎을 떨어뜨린다

따뜻한가?

 

 

 

중랑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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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오영호 의령군수)는 지난 4일 제7회 천강문학상 수상자와 제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결정, 발표했다고 7일 밝혔다.

 

군에 따르면 지난 91일부터 930일까지 접수한 제7회 천강문학상은 754명에 3781편이 접수 되었고 제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에 164명에 301편이 접수됐다.

 

이에 천강문학상은 분야별로 시에 2171538, 시조에 70명에 504, 소설에 138명에 233, 아동문학에 동시 125893편과 동화 50명에 150, 수필에 154명에 463편이 접수됐다,

 

심사는 비공개로 엄정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 수상자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

 

심사위원들은 심사장소인 의령을 찾아 곽재우 장군과 휘하 17장령 및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에서 참배를 한 후 기념관을 둘러보고 곽재우 장군의 생애와 사상, 철학, 문학의 업적 등에 대해 설명을 듣고 심사에 임했다.

 

천강문학상 부문별 대상으로 시 부문 대상 박형권(창원)<현고수>가 차지했다.

 

시조에는 권점희(서울)<갈잎, 붉다>, 소설 부문에 문서정(경북 포항)의 단편 <개를 완벽하게 버리는 방법>, 아동문학 부문에는 이은미(경기 용인)의 동화 <깜지>, 그리고 수필 부문에 김현숙(대구)<유리로 만든 창>이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 대상은 초등학교(저학년부) 부문에 의령초등학교 김건의 <“얼음. “”>, 초등학교(고학년부) 부문에 의령초등학교 김도원의 <햇살 담기>, 중등부 부문에 지정중학교 조시언의 <액자>, 고등부 부문에 의령여자고등학교 송인영의 <홍의동화>가 영광을 차지했다.

 

시상식은 오는 1125일 금요일 오후 4시 의령 군민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린다.

 

7회 천강문학상은 시를 비롯해 시조, 소설, 아동문학, 수필 등 5개 부문에 걸쳐 공모를 했다. 시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은 1000만원, 우수상은 500만원이다.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에 각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이다.

 

특히 올해는 1회 의령군 청소년 천강문학상을 신설해 군내 초··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초등 저학년부(1~3학년), 초등 고학년부(4~6학년), 중등부, 고등부 4개 부문에서 운문 및 산문 실력을 겨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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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버드나무 활극 / 김대성

 

 

버드나무 그림자에 불을 붙인다. 불을 씹어 화병(火病)을 태운다. 마음의 경계가 무너진 수면. 찌불은 물의 흐름을 끊어 놓고 어둠은 고여 잠잠하다. 여명 속으로 가라앉는 급류. 능청능청 물밑으로 그늘을 밀어 넣는다. 허공의 발목에 안개의 푸른 띠를 채우고 무대 위를 껑충 뛰어오른다. 주린 목구멍을 열고 있다. 목구멍 속으로 쭈르르 미끄러지는 구렁이. 빛기둥을 틀어쥐고 있다

 

달빛은 물속에 고름을 짜내고 밤새 귀가 아프다. 완성을 목표로 쏟아지는 빛. 찌불을 밝혀 물결무늬 속 문장을 읽는다. 물의 행간체가 덜컹거린다. 녹색 구렁이의 혀가 잘리고 빛기둥 아래 소금쟁이들이 수면의 뇌관을 당긴다. 달빛에 쏘인 버드나무 가지들이 경악한다. 흔들리고 있다. 고목은 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웅크린 벼랑 아래로 실버들이 유탄처럼 생각을 늘어트리고 있다

 

밤새 털 달린 짐승들이 내려왔다가 잠시 나를 견디고 갔다. 마음의 여울을 흔들 때마다 고독은 유쾌하다. 산중협곡 뭇별들은 또렷하고 털 달린 짐승들은 착하다. 물속 고름집이 터지고

 

찌 불 하나가 뭉클, 솟아오르고 있다.

 

 

 

 

 

[우수상] 녹이 슬었다 / 정진혁

 

 

십정동 골목 옛집 철제대문 앞에 걸터앉아 어제를 기다리다가 구멍 뚫린 녹의 냄새를 맡다가 감꽃이 똑 떨어지는 골목에 쇠망치처럼 앉아 있다가 희미한 시간에 대해 물어보다가 압정 같은 대답에 온몸을 찔리며 빨간 노을을 따라가다가

 

철판 같은 당신의 이름에 녹이 슬었다 녹은 습기 쪽으로 치우쳐 하지 않은 말을 피워내고 있었다 녹을 감추기 위해 파란 페인트를 두껍게 칠해 놓았다 기억은 우툴두툴 보기 흉했다 어딘가 존재하지만 부를 수 없었다 꽃은 잠깐 왔다 갔지만 녹은 한 번 와서는 혼자 가지 못했다 내 손에는 녹을 닦아줄 그 무엇도 남지 않았다

 

녹은 차가운 쇠에 입혀진 무늬 당신 속의 녹은 아마도 내 입김이 다녀간 시간이다

 

누군가를 다시 부르는 일은 녹슨 대문을 밀어 보는 일 저 안의 풍경이 삐그덕 소리를 냈다 닿는 것마다 녹물이 들어 지워지지 않았고 피 같은 비린 냄새를 풍겼다 녹은 소리도 없이 조용히 왔다 종아리가 가려워 벅벅 긁었다 뻘건 녹 가루가 땅에 떨어졌다 온 몸에 녹이 슬었다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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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보다 열기를 더했던 의령 천강문학상의 올해 수상자가 결정됐다. 2일 군에 따르면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오영호 의령군수)는 제6회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확정, 발표했다.

 

분야별로는 시에 347 2538, 시조에 104명에 749, 소설에 179명에 317, 아동문학에 동시 163 1189편과 동화 70 217, 수필에 220명에 668편이 접수됐다.

 

시 부문 대상은 서울 최정아씨의 꽃피는 칼이 차지했으며, 시조 대상은 경기 화성 박복영씨의 저녁의 안쪽이 차지했다.

 

소설 대상에는 전북 익산 이경호씨의 중편 늑대를 기다리며, 아동문학 대상은 서울 김정민씨의 동화 내 의자, 그리고 수필 대상은 경기 의정부 조현미씨의 항아리가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각 부문별 우수상은, 시는 서울 김이솝(본명 김대성)씨의 버드나무 활극과 인천 계양 정진혁씨의 녹이 슬었다’, 시조는 경기 안성 이윤훈씨의 셔코항에서와 경기 고양 조경선씨의 배웅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또 소설은 서울 양진영씨의 단편 냉동 발레리나와 대전 최석규씨의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아동문학은 울산 장석순씨의 동시 덩굴손과 경기 안양 김귀자 씨의 동시 전철역 비둘기’, 수필은 대구 김이랑(본명 김동수) 씨의 헌책방을 읽다와 충북 청주 조옥상씨의 무종이 각각 선정됐다.

 

6회 천강문학상 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이 1000만원, 우수상은 500만원이다.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에 각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이 수여된다.

 

시상식은 곽재우 장군 탄신 462주년 다례식과 병행하여 오는 21일 일요일 오후 4시 의병박물관 야외 특설 무대에서 열린다.

 

천강문학상은 의령군이 의병장인 곽재우 천강 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은 물론 인물의 고장 의령의 브랜드를 더 높이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으로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의 주최아래 의령문인협회가 주관해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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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꽃피는 칼 / 최정아

 

 

칼자루도 없이

칼은 새파랗다

 

봉안鳳眼이 조각되어 있는 칼날, 칼이 하는 일은 바람을 베는 일이지만

자투리 필요한 한 뭉치 바람이 스스로 와서 베일 때가 많다

 

이 칼은 광석이 아니다. 양쪽 날을 가지고 있는 검의 끝은 여전히 벼려지는 중이어서 휘어져 있다

누가 산속에 칼을 꽂아두고 갔나. 새파랗게 녹슬면서 가끔 꽃도 피우는 그 칼을 누군들 쉽게 뽑겠는가

 

칼 한 자루를 오래 감상했다

향기가 일획으로 지나간다

 

정점으로 향한 떨림의 순간, 바람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고 칼은 별자리 방향을 따라 빛이 바뀐다

 

칼은 스스로 시들어 칼집 속으로 웅크리고 들어간다

 

칼 가는 사람도 없이 파랗게 날을 세우고 휘두르는 힘이 다 빠지면 절 옆으로 휘어진다

한데 엉키는 칼끝을 조심해야 하며 봄이면 멀리 동쪽에서 찾아오는 꽃이 있어 서리와 동풍을 빼내야 한다

 

일합一合의 불꽃도 없이

꽃피운 칼

갈라지는 칼끝에서 꽃잎 떨어진다.

 

 

 

 

혼잣말 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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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소통이 되는 신선한 시를 바라며

 

6회를 헤아리는 천강문학상은 국내외의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응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등단 여부에 관계없이 기성문인에게까지도 응모의 기회가 주어지는 상이며 멀리 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 가운데서도 수상자가 나올 만큼 범위가 넓습니다. 또한 대단히 공정하고 엄격하게 이루어지는 심사는 상의 위상을 한층 드높이고 있어 역량 있는 문인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바이기에 심사에 임하는 마음도 그만큼 긴장되었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넘겨진 작품은 347분 총 2,538편이었습니다. 작품 모두는 작자의 기량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고 보아졌습니다.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작품들의 산문화였습니다. 이것이 요즈음 우리 문단의 일반적인 경향인 듯도 합니다. 시에는 산문시라는 갈래가 있습니다만 산문시가 산문과 구별되는 것은 그만큼 응축된 시정신과 간곡한 전언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는 미흡한 산만성이 엿보였습니다.

 

다음으로는 모든 작품들에 유사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성명과 기타 신분을 모르는 상황에서 작품을 심사하는데 주제나 소재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작품들 나름의 특성을 찾기가 어려웠으며 동일 작자의 작품이라 하여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천강의 충절과 의로운 정신이 반영되고 내포된 작품들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문학상의 특별한 성격을 헤아릴 때 그분의 삶과 행적에 대한 관심과 기림은 우선되는 내용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심사에 임할 때 심사위원들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기준 삼았습니다.

 

첫째, 소통성 유무였습니다. 시가 가지는 필연적인 모호성과 난해성 이외의 이해 불능, 불통의 시여서는 독자가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시를 쓴다는 의의를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 앞서도 지적한바 얼마나 개성적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각자의 얼굴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듯이 시도 작자에 따르는 각각의 자기 얼굴과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참신성에 대하여 생각하였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지 않으면 새로 쓰는 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시를 썼겠습니까. 그러나 시가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늘 새로웠기 때문입니다. 창작의 기본이 새로움인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넷째, 응모한 여러 편의 작품들이 균등한 수준을 이루고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작가의 기량을 가늠할 수 있게끔 여러 편의 작품들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가를 살폈습니다.

 

다섯째,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보았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이나 뜨거운 감정이라 할지라도 시로 형상화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생경한 시의 자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시로 형상화 되어 감동을 이끌어 낼 때 비로소 그 작품을 우리는라고 부르게 됩니다. 특별히 천강문학상의 취지와 정신을 생각할 때 감동적인 내용이 형식과 잘 조화를 이루었나를 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략 이런 기준을 염두에 두고 본심에 임하였습니다. 여러 번의 숙독과 심의를 거쳐 최정아씨 (<꽃피는 칼> )를 대상 수상자로, 김대성씨 (<버드나무 활극> )와 정진혁씨(<녹이 슬었다> )를 우수상 수상자로 뽑았습니다.

 

최정아씨의 작품들은 여러 편의 작품들이 고른 수준이었으며 <꽃 피는 칼>에서 보여주는 비약적인 은유와 상상력, 식물이미지와 광물이미지의 결속 등을 높이 살만 합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항용 꽃이 중심이 되는 것이지만 잎이 주인이 되는 변용의 묘, 충돌하면서 합일하는 비유의 심안은 만만찮은 기량을 드러낸다고 보았습니다. 굽힘 없는 생명의지, 그리고 생명의 순환 과정을 그린 사색의 깊이도 간과할 수 없는 점이었습니다.

 

김대성씨의 작품 <버드나무 활극>은 감각적인 묘사가 수용자의 시각과 청각과 촉각 등을 모두 동원하게 합니다. 무생물들이 생명을 얻고 힘차게 움직이는 역동성은 제목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한 편의 활극입니다. <버드나무 수목장>이나 <묵밥>은 죽음과 이별이 제재이지만 슬픔을 극복하는 의지가 긍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슬픔의 승화가 주는 정화의 세계가 독자를 이끕니다. 그러나 좀 더 정연한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 점과 더불어 감동의 깊이가 의도만큼 이루지지 않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진혁씨의 <녹이 슬었다> <오이지> <목련이 페이지를 열었다>들에서 읽게 되는 목숨의 유한성은 운명이라는 말을 일깨웁니다. 그중에도 <오이지>의 선명한 비유는 공감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시가 마땅히 지녀야 할 긴장감이 부족한 것은 이 글의 지나친 산문성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면서도 주제를 흩트리지 않고 끝까지 이끌어 간 저력에 주목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김인숙씨의 <자주달개비의 문>과 김인후씨의 <윤도> 등이 논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더욱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입상하신 여러분께 축하를 드리며 문운이 더욱 빛나기를 빕니다.

 

- 심사위원 문인수 허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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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도요와 영산댁 / 박산하

 

 

제 몸피의 반을 버려 삼만 리를 난다는 새

삶의 반을 물속에서 살지만 물갈퀴를 키우지 않는 겸손은

멀리, 높이 날기 위한 것

칠게 한 마리를 잡기 위해 부리는 더욱 길어야만 했고

길어진 만큼 휘어졌으니

말랑말랑한 땅 농사가 얼마나 질척대는지

늪에 발을 담가본 사람은 안다

갯벌은 어찌 그리도 집이 많은가

그 집들의 문이 열리는 때를 도요만이 아는 건 아니다

영산댁, 뻘배 미끄럼 타지 않으니 허릴 굽힐 일 없지만

아슴히 멀어지는 바다만큼이나 사라지는 도요의 날갯짓을 맥 놓고 본다

그녀, 허리를 펼 때면

서너 발 발치에서 현란한 부리로 농락하던 새

그래, 도요가 갯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긴 다리 한 번 더 꺾기 때문,

갯바람이 뺨을 후려쳐도 온순해져야만 한다

만경의 끝 심포, 맘껏 부리지 못한 그 바다 저리 섬들을 키우더니

이제 제 입을 막고 그녀의 입마저 막는구나

두세 평 블록 방 양철지붕 숭숭 뚫린 구멍으로 바람은 새들어오고

진수치 못한 목선은 날마다 가벼워지는데

소주잔 들린 그녀의 손, 마치 사포 같구나

하지만 심포, 생합의 명성이 시들해지는 강둑에 도로가 나고

갯벌공원 또한 생기면 좋아질 거라며,

막내가 첫 월급으로 끼워준 누런 금니를 반 이상 드러내며 희죽 웃는다

 

 

 

 

고니의 물갈퀴를 빌려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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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덤불설계도 / 정정례

 

 

가을덤불은 어둑한 그늘도 이사 간 빈 집이다

찬바람만 들고 나는 곳

햇살이 똬리를 틀던 뱀을 따라하고 있다

푸른 부피가 다 빠진 덤불을 보면 봄과 여름이 이사 간 빈 집 같다

흘리고 간 꽃잎 몇 장

빛바랜 잎사귀 몇 개 매달려있다

 

뼈대만 앙상한 것 같지만 사실 줏대 없는 것들끼리 지탱할 수 있는 유용한 설계도다.

그래서 봄에 꽃 필 때도 네 줄기 내 줄기 찾지 않는다

 

굳이 따지고 내려가면 꽃피는 계절이 훌쩍 떠난 뒤에 엉킨 줄기를 헤집고 확인할 필요가 없는 덤불. 잘 못 건드리면 주저앉을 수도 있는 것들. 가만히 두어도 제 자리를 지켜내는 질서가 정연하다

 

휘어지고 얽힌 집에 남아 있는 것은

수북이 쌓인 흔적들

이름을 찾기에는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스스로 호명을 한다

색색이 문패를 단다

 

빈 줄기 같지만 그 중 하나 뚝 잡아 꺾으면 물기 가득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

 

지금은 더 많은 양의 전류를 충전 중이다

잘 못 건드리면 줄기 곳곳에 날카로운 불꽃이 인다

꽃들이 피다 간 곳, 방전이다.

 

 

 

 

덤불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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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군 청강문학상인 지독하게 더웠던 여름만큼 뜨거운 열기를 보였던 하늘이 내린 의로운 문학상인 천강문학상의 올해 수상자가 결정됐다.

 

 

4일 군에 따르면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김채용 의령군수)는 제5회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확정 발표했다.

 

소설 부문 대상은 경기도 고양에 사는 김주욱(46) 씨의 단편 <미노타우로스>가 차지해 상금 1천만원을 받게 됐다.

 

시는 대구 변희수(50)씨의 <>, 시조는 경북 김천 유선철(54) 씨의 <늦가을 문상>, 아동문학은 전북 군산 신솔원(43) 씨의 동시 <할머니의 등긁기>, 그리고 수필은 울산 박동조(64) 씨의 <거미>가 각각 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또 각 부문별 우수상은 소설은 최종미 씨의 단편 <로봇청소기와의 동거>와 박정원 씨의 중편 <암홍어>가 차지했고 시는 정정례씨의 <덤불설계도>와 박산하 씨의 <도요와 영산댁>, 시조는 김석이 씨의 <아우라지>와 성국희 씨의 <균열>, 아동문학은 우애란 씨의 동화 <천개의 돌탑>과 이서영 씨의 동시 <미안해서>, 수필은 현경미 씨의 <경계에서>와 허효남 씨의 <, 너를 더듬다>가 각각 영예를 안았다.

 

시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 1천만원, 우수상은 5백만원이며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 각 7백만원, 우수상은 각 3백만원이다.

 

시상식은 곽재우 장군 탄신 461주년 다례식과 병행하여 내달 2일 수요일 오후 5시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린다.

 

의병의 날인 지난 6 1일부터 7 31일까지 접수한 제5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에는 모두 1,030명에 5,142편이 접수됐다. 지난해 제4 1,034, 5,280편과 비슷한 수준이다.

 

분야별로 보면 시 275 2,001, 시조 110명에 816, 소설 172명에 285, 아동문학 동시 142 1,034편과 동화 86명에 258, 수필 245명에 748편이 접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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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 변희수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서면 늘 바람이 거세다

조금만 불어도 윙윙, 사나운 소리를 낸다

공기의 흐름을 막아놓아서라고 했다

바람이 뿔났다, 사실

막힌 곳이 많은 우리 집에도 여러 마리 뿔이 산다

공기의 흐름이 심상찮은 날이면 서로 으르렁거린다

그런 날엔 뿔을 함부로 세우는 바람에

잠시 격리될 뻔 한 뿔도, 제 뿔에 제가 걸려 넘어진 뿔도 있다

막힌 곳이 제일 많을 것 같은 아빠는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모자 속에 뿔을 숨겨 두었다가

상한 줄도 모르고 꺼낸 적이 있다 꼭 중국산 가짜 같았다

뿔 중에서 가장 약발이 센 뿔은 단연 엄마의 뿔이다

엄마는 알래스카 순록처럼 우아하게

뿔을 장식하고 다니지만 한 번 찔리면 오래 간다

TV에서 일 년에 한 번씩 뿔 갈이 하는 순록들을 보았다

순록들은 바위나 나무에 뿔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벅벅 문지르고 나서야 새로 태어난 것처럼 온순해졌다

통증의 깊이로 까맣게 익어가는 순록들의 눈망울을 보면

아니, 서로 엉덩이에 난 뿔을 뽑아주려다가 상처투성이가 된

우리 집 뿔들을 보면 후시딘 같은 거 필요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끝없는 설원을 헤매다가 온 것 같은 밤이면

아무리 다정하게 얼굴을 맞대고 잠들어도 뿔 근처가 욱신거린다

우연히 한 우리에 갇히게 된 짐승들처럼

뿔과 뿔이 엉키는 악몽을 꾸기도 한다

막다른 곳에 서면 예민해지는 우리 집 뿔들

툰드라의 이끼처럼 납작하게 엎드려 바람의 출구를 살핀다

쓰자마자 벗어야하는 순록들의 아름다운 을 생각하며

나는 지금 웃자란 내 뿔을 관리하고 있는 중이다

뿔 대신 쫑긋해진 두 귀,

온순하게 한 철을 보낼 작정이다

 

 

 

[수상소감] 나는 빛을 통해서 완성된다

 

햇볕을 망사처럼 펼쳐놓은 들판을 걷는다. 눈이 부시다. 나는 어디쯤 왔을까.

 

궁금해서 늘 자주 뒤돌아보았다. 초속30만 킬로미터의 속도를 거쳐 내게 달려온 이 빛들은 내게 일종의 언어였다. 이 현란함 앞에서,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이 똑똑한 실감들 앞에서 나는 제대로 고개 들 수 없을 때가 많다.

 

나는 빛을 통해서 완성된다. 내 어깨에 내 머리칼에 닿은 빛은 언제나 나보다 먼저 완성된 시였다. 빛은 사물을 만지고 사물을 감각한다. 눈을 찌를 듯 아찔하게 빛이 스친 순간마다 한 줄의 시가 태어났다. 그러나 그것의 반쪽은 늘 캄캄한 어둠이었으므로 나의 시는 아직도 구름 속에 들어있다.

 

언젠가 그 어둠이 빛의 다른 언어라는 걸 선명하게 알게 될 때가 있을 것이다.

 

흐리다고 어둡다고 절망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잠시나마 내게 닿았던 빛들에게 축배의 잔을 바치고 싶다. 고배의 잔을 마실 때도 따뜻한 함을 보여주신 천강문학상운영위원과 심사위원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나의 가족과 감사를 전해야할 모든 분들께도 선선한 마음을 실어 보낸다.

 

 

 

 

거기서부터 사랑을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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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인간의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정신을 내포하고 있어야

 

예심을 거쳐 본심의 대상이 된 작품은 23명의 150여 편이었습니다. 다양해진 현대시의 화원을 보는 듯 자연, 가족, 역사, 일상 등을 소재로 한 다양한 개성적인 몸짓을 접할 수 있어 심사위원들의 눈을 즐겁게 했습니다.

 

5회째를 맞은 천강문학상의 위상에 걸맞게 상당한 수준의 시편들이 응모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들이 감각적 표현을 통한 이미지 조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주제의식이 전반적으로 미약했습니다. 시적 표현이 묘사로만 집중되어 있어, 시의 정교성은 어느 정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라는 형식의 그릇은 만들어져서는 곤란합니다. 그 그릇 속에 알찬 내용물이 담겨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시편들이 담겨져야 할 내용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는 시적 대상을 자기화해서 육화하는 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로 보입니다. 이런 경향이 현재 우리 시단의 한 경향이란 점에서 특별한 현상으로 치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우리시가 언어적 기교만으로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내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이런 우리 시의 한 경향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었습니다.

 

응모대상이 된 시편들을 두고 이러한 시적 관점을 취한 이유는 천강문학상이 지향하는 바가 시를 위한 시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가치를 고양하는 정신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은 시에서 필요한 개성적 이미지의 형상화도 필요조건이지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주제가 선명한 감동적인 시에 더 점수를 주기로 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일차적으로 걸러진 대상은 원앙무덤,디지털 호미,도요와 영산댁,덤불 설계도,등이었습니다.

 

원앙무덤은 시적 발상은 살만했지만, 하나의 주제 의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약했습니다.디지털 호미역시 그 발상이나 아날로그 호미를 디지털 호미로 전환시켜나가는 이미지 전개가 재미나는 시였습니다. 그러나 이 언어적 재미가 남기는 주제 의식은 그렇게 감동적이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두 편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편을 두고, 오랜 논의를 했습니다. 나머지 세편의 시를 응모한 세 사람의 시편들이 앞선 두 사람보다는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요와 영산댁은 주제의식은 상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시의 진술이 약간은 직설적이고, 연 구분을 하지 않고 있어 무거운 주제를 한 호흡으로 급박하게 읽어내리기에는 시적 리듬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시는 산문이 아니라 노래라는 사실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두 편이 덤불 설계도이었습니다. 덤불 설계도는 시에서 중요한 언어미학이 제대로 구축되어져 있는 깔끔한 시편이었습니다. 시의 완성도라는 점에서 보면, 나무랄 데가 없는 완벽성을 내보이고 있는 시편입니다. 감각적으로 미세한 부분까지 섬세하게 이미지화하고 있는 솜씨는 상당히 뛰어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완벽하게 완성된 덤불 설계도를 통해 독자에게 건네는 감동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서는 언어미학 차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비해 은 작품 중간 중간에 드러나는 요설에 가까운 시적 서술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세련미가 있고, 인생 삶의 문제를 일상의 소재를 통해 쉬우면서도 의미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이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풀어내는 시적 추진력이 남달라 시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되었습니다.

 

그래서 을 대상으로, 덤불 설계도도요와 영산댁을 각각 우수상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수상자들에게 박수와 함께 한국시의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정진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아깝게 수상하지 못한 분들도 부단한 탁마를 통해 입선의 기회를 가지시길 기원합니다. 하늘이 내린 깨끗하고 의미 있는 <천강문학상>이 일취월장하여 한국 문단에서 가장 의로운 문학상으로 발전되어가길 기대합니다.

 

- 심사위원 : 감태준(시인), 남송우(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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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화농의 봄 / 김춘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진 것들을 상처가 내려다보고 있다

 

꽃들이 다래끼를 앓고 있다

납작한 돌멩이와 돌멩이 사이에 숨겨놓은 눈썹

발 돋음 하던 봄이 와르르 무너지면

눈썹이 묻어 있던 곳마다 꽃들이 진다

 

꽃의 입술, 바람을 물고 있는 떨림

가장 늦게 돋아난 가장 깊은 것들이 깜빡 거리고 있다

꽃잎의 요의가 불편하듯 흔들려

봄의 內衣를 서둘러 내리듯 눈썹 몇 개를 뽑는다

 

퉁퉁 부어오른 나무의 화농을 짜내고 있는 꽃송이들

먼 곳의 꽃들이 더 연연하다.

두꺼운 겉옷의 언덕을 넘어온, 제 색을 다 채우지 못한 눈 끝의

開花

소보록해진 눈꺼풀에 발기되는 봄

 

꽃이 피고 지는 밀실은 아무도 본적이 없어

가장자리만 붉었던 입술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어깨위로 툭 떨어져 버린 꽃

 

中心을 놓친 무게는 씨앗을 키운다.

떨어진 꽃들이 혼자이거나 혹은 여럿이거나 떨어진 자리에는 딱지가 있다

꽃 진자리 찾지 못하는 안대를 한 봄이 아물고 있고

화농으로 그려진 꽃의 부적을 몇 겹으로 접고 있는

화전놀이 철.

 

 

 

 

 

[우수상] 감자를 캐며 / 임세한

 

 

넓고 가파른 밭

익모초와 바랭이가 시들시들 조는 한낮

어머니, 흰 수건 머리에 두르고 뜨거운 고랑에 오른다

무딘 호미의 날이 흙덩이를 뒤집으면

하얗고 통통한 감자알들이 밭고랑에 툭툭 불거졌다

 

주르르 흘러내리는 등짝의 땀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입술이, 중얼중얼 감자 줄기를 캐낸다

입속에서 툭툭 불거지는 감자알들을 뱉어놓는다

더위에 지친 대추나무를 바람이 흔들고 가면

은빛 팔랑대던 잎들이 어머니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굵고 실한 놈으로 가득 채우던 싸리나무바구니

어머니가 지나간 고랑마다 초여름이 푸르게 길을 놓는다

 

저것들,

밭고랑에 넘쳐나는 눈물의 탯줄을 자른

희고 통통한 감자들, 저들을 키운 것은 땅이 아니라

날마다 휘어지던 허리의 통증이라는 것을

어머니 종아리에 퍼렇게 내비치던 거미줄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그해 유난히 무덥던 하지 무렵엔

벗겨진 정수리마다 자글자글 들끓던 태양이

야윈 어머니 등짝을 빨갛게 태웠던 것도

 

 

 

 

 

의령군이 의병장 곽재우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을 위해 마련한 천강문학상의 올해 수상자가 12일 최종 확정됐다. 천강문학상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채용 의령군수)는 이날 소설 등 5개 부문의 제4회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확정, 발표했다.

 

시 부문 대상은 대전에 사는 최은묵(45)씨의 밤 외출이 차지했으며, 시조는 인천 박해성( 65)씨의 만복열쇠점, 소설은 경기도 성남 홍이레( 39)씨의 독거미가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또 아동문학 대상은 대구 강영인(48)씨의 동화 우리 집 우아낙이, 수필대상은 부산 최미지( 54)씨의 바닥론()‘이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각 부문별 우수상은 시 부문 김춘순씨의 화농의 봄’, 임세한씨의 감자를 캐며’, 시조는 최영효씨의 나목시대’, 이하림씨의 독서-갠지스 강이 수상자로 결정됐다.

 

또 소설은 최지애씨의 늙은 여자의 노래와 부산 장미영씨의 그룹 헤로인이 차지했고 아동문학은 홍이지민씨의 동시 은행나무 파라솔과 김현희씨의 동화 투명인간’, 수필은 이정순씨의 인생소묘와 미국 시애틀 거주 김윤선씨의 틈이 말하다가 각각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이 가장 많은 1000만원이며 우수상은 5백만원이다.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 각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씩 지급된다.

 

지난 6 1일부터 7 31일까지 접수한 제4회 천강문학상 작품 공모에는 모두 1034명이 5280편을 접수해 전년에 비해 960여명이 증가했다.

 

시상식은 곽재우 장군 탄신 460주년 다례식과 병행하여 오는 10 13일 오후 4시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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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밤 외출 / 최은묵

 

 

문 없는 방

이 독특한 공간에서 밤마다 나는

벽에 문을 그린다

손잡이를 당기면 벽이 열리고 밖은 아직 까만 평면

입구부터 길을 만들어 떠나는

한밤의 외출이다

밤에만 살아 움직이는 길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문을 닫고 잠들었다

나도 엄마 등에서 잠든 적이 많았다

엄마 냄새를 맡으며 업혀 걷던 시절엔

갈림길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어

나의 발은 늘 여유로웠다

어둠에서 꿈틀대는 벽화는 불면증의 사생아

내가 그린 길 위에서 걸음은 몹시 흔들렸다

걸음을 디딜수록 길은 많아졌고

엄마 등에서 내려온 후로

모든 길에는 냄새가 있다는 걸 알았다

열린 벽, 문 앞에 멈춰 냄새를 맡는다

미리 그려둔 여름 길섶

펄럭 코끝에 일렁이는 어릴 적 낯익은 냄새

오늘은 그만 걷고 여기 가만히 누워

별을 그리다 잠들 수 있겠다

하늘에 업힌 밤

오랜만에 두 발이 여유롭다

 

 

 

[수상소감]

 

어릴 적 나는 성경책을 읽으시는 어머니 곁에 엎드려 집에 있는 책들을 모조리 읽었습니다. 생각으로 넘나들 수 있는 세상이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다 크고 넓은 강 앞에서 멈추었습니다. 나는 강을 건너기 위해 커다란 돌을 짊어지고 돌다리를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을 건너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강물은 나의 행동과 상관없이 흘렀습니다. 돌다리에 주저앉아 한참동안 강물이 흐르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천강문학상으로 다시 돌다리 하나를 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만큼 더 깊이 강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시를 쓴다는 건 강을 건너는 게 아니라 강물에 나를 적시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힘을 내어 강을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딜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가족들에게, 감사를 전할 모든 분들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어머니, 어제는 나이 드신 어머니의 떨리는 손을 오래 잡아드렸습니다. 어머니의 체온은 세월이 지나도 주름지지 않고 그대로였습니다. 그런 시를 쓰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 부끄럽게 쓰이지 않도록 늘 같은 마음으로 시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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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시는 불꽃이요, 한 벌의 의상이다. 시는 비교적 단일한 것으로 이해되는 시상을 노래한다. 시는 시적 대상을 다른 대상에 견줌으로써 그 대상에 대한 해석의 폭을 확장한다. 유비(類比)가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시가 진술의 형태를 갖더라도 시는 주견을 강조하지 않는 장르이다. 시적 화자의 위치를 낮춤으로써 시적 대상을 추켜세우는 것이 시의 미덕이다. 비교적 단일한 것으로 이해되는 시상을 노래하는 것이기에 서사 구조를 회피하려는 성향을 갖게 되고, 또 시상 전개에 있어서는 구조화가 중요하게 된다.

 

4회 천강문학상 시 부문 공모에는 총 300명의 작품 2171편이 접수되었다. 뜨거운 열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작품의 질적 수준도 매우 높은 편이어서 심사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다. 빈틈이 없이 차분하고 조심스럽게 심사는 진행되었다. 물론 공모작품들을 살피면서 아쉬움도 있었다. 첫째는 가족과 관련한 시가 많았다. 대개는 가족 구성원과의 이별로 인한 비감, 그리고 지나간 과거에로의 아련한 회귀와 재생 같은 것이 주류적 심상을 이루었다. 둘째는 시간의 경과에 따른 일이나 마음의 형편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로 인해 산문화되는 경향이 다분히 많았다.

 

예심을 통과해서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스물아홉 분의 시편들이었다. 오랜 숙고 끝에 세 분의 응모작을 두고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김춘순, 임세한, 최은묵 세 분의 작품들이었다.

 

김춘순님의 시편들은 독특한 자기 발언력을 갖고 있었다. 시적 대상과 세계에 대한 독자적인 육성을 들려주었다. 시적인 사건들을 대개는 통증으로 이해하는 성향을 보여주었다. 가령 <화농의 봄>에서 만개한 은 신생의 생명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화농으로 인식된다. 그렇다고 삶의 비극성을 발언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김춘순님의 시는 상상력의 탄력성을 잘 보여주었지만 특별한 시적 진술을 발굴하려는 의욕이 너무 강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임세한님의 시편들은 농촌 서정에 기반을 두면서도 모성애적 보살핌을 주로 노래했다. 작물이 뿌리내린 공간은 어머니의 자궁과 태에 비유되곤 했다. 가족의 관계를 중심으로 해서 펼쳐지는 그의 시는 따뜻했다. <눈 오시는 날>이 현시하는 서정성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만 막연한 애상에 빠지는 경우가 있어 감정의 낭비를 조절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의 영예는 최은묵님에게 돌아갔다. 최은묵님은 활달한 상상력과 트인 수사를 보여주었다. 작품들의 수준도 높낮이나 차이가 없이 한결같았다. 풍부한 창작 경험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했다. 대상작 <밤 외출>업다라는 행위를 변주한 작품이다. 어릴 적 엄마의 등에 업혔던 기억에서 이 시는 탄생한다. 그리고 그 업힌 기억은 평온과 자유로움의 그것으로 노래되고 있다. 이 시의 백미는 시의 후반부이다. 별을 바라보는 화자가 있다. 화자가 별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화자는 능동적인 위치에 있다. 그런데 이 시는 밤하늘을 바라보는 화자가 되레 밤하늘에 업히는 입장으로 전환되어 버린다. 지상과 하늘이라는 두 공간, 그리고 주체와 객체라는 두 입장을 역전시켜 버린다. 이런 변전은 읽는 이에게 어떤 인식의 새로운 열림과 그로인한 쾌감을 경험하게 한다. 심사위원들은 최은묵님의 이러한 능력을 소중한 것으로 평가했다.

 

간발의 차이로 수상자가 되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낙담하지 말고 계속 정진하길 바란다. 수상자들에게는 박수를 보낸다. 앞길에 문운이 함께 하길 바란다.

 

- 심사위원 김후란, 시인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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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붉은발말똥게 / 한승엽

 

 

어젯밤 목구멍으로 토사가 흘러들어 오고야 말았습니다

장맛비 그친 구럼비 바다의 수면은 온갖 잡념으로 넘실거리지만

제일로 손꼽는 나의 근친입니다

말똥거리던 눈앞으로 범섬이 노란 띠랑 둥둥 떠다니기 시작하면서

겨우 한목숨 이곳에 남겨진 이유를 가늠할 수 있는 까닭이지요

S라인 해안이 콘크리트삼발이에 아찔하게 점령당하고

덤프트럭 굉음에 집게발 부러져도

나는 무수한 깃발 너머, 갯바위 틈의 인동초를 보려 합니다

다시 눈이 뜨거워지는 강정마을 맑은 물 위로

깨진 달빛 송곳니처럼 박혀오면

이제 당신은 습관처럼, 너는 도대체 누구냐고 묻곤 합니다

그러면 촉촉한 기억 하나 베갯머리 적시며 지나갑니다

어디 스쳐가는 게 그 얕은 물살뿐이랴

야행의 틈을 놓치지 않으려 깔아 놓은 통발에 속아

이 비천한 몸뚱어리 높다란 펜스 안에 갇히는 날이면

입천장에 달라붙은 마지막 거품의 온기 아슴푸레하고

불쑥 나타날 것만 같은 고즈넉한 삶의 환영이

간결한 깨우침으로 앞질러 다가오기도 하지요

흙탕물에 범벅이 되어도 환한 길섶을 더듬어가던 순간

아뿔싸! 세상물정 모르고 늘 순했던 나의 오른팔 은어는

너무 고단하여 비늘만 허옇게 드러낸 채 잠들어 있고

나 홀로 몸 밖의 풍경으로부터 흉흉한 소문을 밀어내듯

가파른 욕망과 알 수 없는 빈혈의 냄새를 지우기 위해

붉게 달아오른 등딱지,

얼핏 들으면 들꽃 같은 내 이름이 어렴풋이 보이시나요.

 

 

 

 

별빛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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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물속 경주 남산 / 임재정

 

 

1.

 

맨발이 된 김에 진흙이나 밟자 싶었습니다.

 

2.

 

경주 남산 민박집의 밤에 쉼표로 웅크린다. 뿌리에 어떤 불씨를 물어서 열꽃 오른 몸엔 물빛 지느러미가 돋고. 자꾸 어딘가를 넘보면 꿈에서도 발이 부르트는 모양.

 

3.

 

연못을 팠는데 하늘이 고이고 보름마다 환한 산이 내려와 몸을 씻었다는 오래전 이야기. 얼핏 거기에 거꾸로 떨어졌는데도 아프지 않아서 후생인가 했다. 물속에 차오른 달빛을 지키며 물결을 뜯는 흰 사슴, 수면은 온통 파문난장이라서 비늘 없는 영혼이 따로 없을 법 한데. 삼천 삼백의 손을 가진 물결이 떠받든 진흙 배 물속에 흔들리고, 물 위에도 여벌의 배 한 척 바람에 돛을 올린다던데.

 

4.

 

신발 한 켤레 매어놓고 열꽃 피워 저어가던 어느 영혼도 함께 흔들리겠다. 낮에 본 남산 무두불(無頭佛)들은 다들 어떤 한때를 머리로 달아보려고 몸 안으로 머리를 디밀었는지. 부처의 몸으로 누구의 연()에 닿으려고 사람들은 제 머리를 얹고 사진을 찍나. 낮이 얼비치는 이 밤은 어느 인연의 물속인지. 이부자리에 체온을 벗어두고 댓돌에 앉은 새벽 하늘가, 온통 뜬눈으로 쏟아지는 뭇 별의 이마를 짚느라 삼천 삼백의 손 분주한데. , 발바닥이 가렵다.

 

 

 

내가 스패너를 버리거나 스패너가 나를 분해할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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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의령군수)는 지난달 31일 제3회 천강문학상 수상자를 확정, 발표했다. 최고상금인 1000만원을 받는 소설 부문 대상은 함안 김영옥 씨의 안경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시 부문 대상은 서울 오정순 씨의 공터의 풍경이 차지했으며, 시조는 서울 송영일 씨의 누이의 강, 아동문학 부문에는 서울 신난희 씨의 동시 숲에서’, 수필 부문은 경북 경주 윤승원씨의 , 수목원을 읽다가 각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각 부문별 우수상은 시 부문에 경기도 남양주 임재정씨의 물속 경주 남산과 제주에 사는 한승엽씨의 붉은발말똥게’, 시조 부문에 서울 김진씨의 아홉굿 의자마을과 서울 박혜란 씨의 사과3’가 받는다. 또 소설 부문에 경북 포항 한수연 씨의 과 경기도 군포시 송방순 씨의 ’, 아동문학 부문에 경북 경주 엄정숙 님의 동화 조롱박등과 경기도 남양주 장정희 씨의 동시 겨울바지’, 수필 부문은 부산 김정화 씨의 숨은 소리와 경북 경주 최윤정 씨의 반딧불이처럼이 각각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3회 천강문학상은 시를 비롯해 시조, 소설, 아동문학, 수필 등 5개 부문에 걸쳐 공모를 했고 시상금은 소설 부문 대상은 1천만원, 우수상은 500만원이다. 시와 시조, 아동문학, 수필은 대상에 각 700만원, 우수상은 각 300만원이다.

 

지난 61일부터 81일까지의 작품 공모에는 모두 965명에 5129편이 응모해 지난해 제2960, 4965편보다 많이 접수됐다.

 

분야별로 보면 시에 3122363, 시조에 83명에 611, 소설에 133명에 223, 아동문학에 동시 125951편과 동화 64명에 192, 수필에 248명에 789편이 접수됐다.

심사는 비공개로 하여 엄정하고 공정하게 진행됐고, 수상자는 예심과 본심을 거쳐 최종 결정됐다.

 

심사위원은 본심은 시 부문에 시인 김종해씨와 문학평론가이며 시인인 진주교육대학교 송희복 교수, 시조에는 시조시인 이근배씨와 시조시인 김교한 씨, 소설부문에 소설가 정종명 씨와 문학평론가인 경남대학교 명형대 교수, 아동문학에는 동시인 신현득 씨와 동화작가 조평규 씨, 수필에는 수필가인 부경대학교 박양근 교수와 수필가 하길남 씨가 각각 맡았다.

 

예심은 시 부문에 시인 배한봉 씨와 시인 박서영 씨, 시조 부문에 시인 강현덕 씨와 시인 하순희 씨, 소설 부문에 문학평론가인 중앙대학교 임영봉 교수와 소설가이며 문학평론가인 관동대학교 김정남 교수, 아동문학 부문에 시인 권순희 씨와 동화작가 최미선 씨, 그리고 수필에는 수필가인 양미경 씨와 윤지영 씨가 맡았다.

 

한편 제3회 천강문학상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국내는 물론 미국을 비롯해 뉴질랜드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도 응모해 해외 동포 문인들에게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시상식은 곽재우 장군 탄신 459주년 다례식과 병행하여 전날인 오는 24일 곽재우 장군을 비롯한 휘하 17장령과 무명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충익사 경내에서 열린다.

 

천강문학상은 의령군이 의병장인 천강 곽재우 홍의장군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계기를 마련하고, 충의정신 함양 및 문학의 저변확대와 우수 문인 배출은 물론 인물의 고장인 청정 의령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제정한 문학상으로 천강문학상운영위원회의 주최아래 의령문인협회가 주관해 시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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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공터의 풍경 / 오정순

 

 

공터에 내리는 비는 구겨진 절기의 줄기가 느릿합니다

버려진 액자가 있고

시든 난 한 포기가 비에 젖고 있습니다

일직의 빗줄기가 지나가고 뿌리를 잡고 있는 바위에

푸른 이끼라도 살아 날듯합니다

깨어진 유리에는 깨어진 햇볕이 어울리겠지요

반짝, 비가 갠 공복의 허공엔 햇볕이 따뜻합니다

소슬하게 바람이라도 불었는지

흔들린 난잎 주변에 먹물이 번져 있습니다

골목을 막 들어선 봄의 등 뒤로 아지랑이 배접이 구불구불하고

몇 년 아니, 몇 십 년 쯤 피어있었을

꽃대가 피곤해 보입니다

붉은 노을이라도 세 들어 있는지

낙관엔 오래 흔들린 악력握力이 흐릿합니다

 

낡은 시선만 가득한 풍경,

떠나 온 벽의 경사가 누워 있습니다

어쩌면 저 풍경의 크기만 한 흰 공터를

벽에 남겨 놓았을지도 모르지요

상실의 흔적들이란 저렇듯 각이 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공터의 담 벽이 비스듬히 그늘을 만들고 있고

어쩌다 풍경화 한 점 걸리는 호사를 누리고 있는 담 벽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공터의 배접으로 드러눕는 시간

흔들리는 그늘들은 모두 저녁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제, 그 어떤 풍경도 이 액자에 들어 갈 수 없다는 듯

캄캄해지고 있습니다

 

 

 

 

우주가 들어있는 작은 공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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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

 

깨진 액자 유리 사이로 비가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핏물처럼 번져나가며 흐릿해지는 꽃과 낙관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누군가 간절하게 잡고 있던 것들이 사라지는 모습은 내게 하나의 풍경으로 남았습니다.

 

시를 쓰면서 언제나 어둠을 헤맸습니다. 늦은 시작이 어둠에 묻혀버리는 절망이 될까봐 새벽까지 깨어있는 날이 많았습니다. 이제 조금은 형체를 분간할 수 있다면 교만일까요. 수상이란 벅찬 감격을 잠시 호사를 누리듯 기뻐하면 안 될까요. 숨을 조였던 시간들이 일제히 푸른 이끼 같은 울음을 토해내려고 합니다.

 

이제 알겠습니다. 어둠 속에서 자주 넘어지지 말라고, 넘어져도 많이 다치지 말라고 발자국을 떼는 법을 알려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미덥지 않은 딸을 위해 늘 기도해주시는 부모님. 늦은 밤 스탠드 불빛에 눈이 부셔도 자는 척 해주는 나의 남편, 사랑하는 두 아들 대식, 윤식 그리고 나의 글 동지 덕희, 수정, 미자, 언주, 하린, 수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모든 영광 나를 일으켜 세우신 하나님께 드립니다. 소중한 기회를 허락하여 주신 의령군민,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큰 절로 감사를 드립니다.

 

 

 

 

 

[심사평]

 

서정시는 단순성의 미학이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구조의 틀, 혹은 주제를 구성하는 의미론적인 층이 비록 복잡성을 띠고 있는다고 해도, 적어도 발화 형식의 결에 있어선 그렇다는 얘기다. 시를 쓰려고 하는 사람들 중에 시를 산만한 사설(辭說)의 언술임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하고 싶은 많다면 어쩔 수 없이 산문의 장르를 선택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시를 쓰는 사람은 다름 아니라 산문을 쓰는 사람이 하지 못하는 말을 부리는 사람이다. 그는 산문을 쓰는 사람이 쉽사리 할 수 없는 구석진 말의 물결 같은 흐름에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시는 사물의 이면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의 상상적 결과가 아닌가 여겨진다.

 

우리 심사위원 두 사람은 예선에 통과한 스무 명의 공모작 약 150편 정도의 작품을 철저한 익명의 상황에서 면밀히 검토한 결과, 세 분의 응모자, 즉 한승엽, 임재정, 오정순의 시 작품들을 뽑는데 의견을 함께했다. 이 세 분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대상 한 편을 최종적으로 고르기로 했다.

 

한승엽의 붉은발말똥게는 시의성(時宜性)이 있는 글감에다 독특한 발상으로 인해 가장 먼저 눈길이 가는 작품이었다. 우화적인 실존의 인격으로 투사하며 이를 현실의 장력(場力)으로 확대한 붉은발말똥게의 동선과 궤적을 바라보는 작자의 예리하면서도 주 · 객관적인 교차의 시선도 진지함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적 진술의 긴밀한 통사구조가 의도적인 탈문법이라기보다는 좀 미숙해 보이는 듯한 약점 때문에 이완되거나 해체되는 것 같아서 대상으로 미는 데 주저함이 앞섰다.

 

임재정의 물속 경주 남산과 오정순의 공터의 풍경을 두고 오랫동안 논의를 거듭하였다. 물속 경주 남산은 매우 환상적인 시다. 환상 그 자체가 주제이기 때문에 이 경우 주제를 현실로 환원시킬 필요가 없다. 이 밤은 어느 인연의 물속인가……화두를 튼 선객(禪客)의 격조 있는 어록과도 같다. ()의 세계로 약동하는 듯한, 꿈속처럼 아슴해 보이는 화려한 난센스의 언어! 여기에 서정시의 진경(眞境)이 있을 법하다.

 

오정순의 공터의 풍경은 버려진 그림이 있는 공터의 풍경을 묘사해 가면서 추보식으로 구성한 현대적인 의미의 서경시다. 전통적인 의미의 선정후정이 없다. 시 쓰는 이의 주관적인 감정의 실마리를 끝내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오래된 이미지즘 시를 연상하게 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삶의 이면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버려진 의미를 탐색해 가는 가운데, 무언가 채워놓을 수 없는 삶의 아쉽고도 그리운 부분들을 여백처럼 남겨놓고 있다는 점에서 사뭇 다르고, 그래서 한결 인상적인 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종이 한 장 차이의 독창성과, 여타의 작품들이 지닌 신뢰성의 한 뼘 높이에 있어서, 오정순의 공터의 풍경을 대상으로 결정하기로 했다. 천강문학상 시 부문 대상 수상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앞날에 문운이 왕성하기를 기원한다.

 

- 심사위원 : 김종해(시인), 송희복(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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